<-- 탈출. -->
“꾸어엉!”
곰이 전속력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멀리서 봤을 때도 커 보였거늘, 가까워지니 더 커 보였다.
길이 약 3M에 몸에는 덕지덕지 돌 같은 장갑이 붙어있는 걸 봤을 때 다이어 베어가 분명했다.
“어떡해!?”
칼콘이 외쳤다.
다이어 베어의 속도는 낮게 잡아도 시속 50Km.
애초에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순간, 도망치기는 글렀다.
“싸워야 한다. 막을 수 있겠냐!?”
“한 번 해볼게!”
퍼즈즈즈즉!
칼콘이 달리던 걸음을 멈추며 방패를 내려놓았다.
들고만 다녀도 칼콘의 몸 반을 보호해 주는 절대적인 보호막이자, 걸어 다니는 벽이었다!
쾅!
순식간에 높이 1.5M, 너비 75cm, 두께 2.5cm짜리 가시 벽이 나타났다!
“가벡, 지훈. 도와줘!”
그 무엇에도 밀려나지 않을 것 같은 위상과 달리 칼콘이 급히 도움을 청했다. 아무리 저 방패가 단단하다고 한들, 그걸 들고 있는 칼콘까지 철인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둘 다 달려가서 칼콘의 어깨를 강하게 밀었다.
꾸우욱!
민우가 자기는 어쩌냐고 물었지만, 하지 말라고 답했다.
괜히 충격에 뼈라도 부러지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권총 들고 엄호해! 마법 물품이라 쓸 만할 거다!”
정신이 나간 거로 보였던 홍궈 역시 위험한 상황이 되자 본능이 발동했는지 들고 있던 총을 곰에게 겨눴다.
탕! 탕! 탕!
타앙 - 타앙 - !
박힌 것인지, 튕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곰은 속도를 전혀 늦추지 않고 계속 달려왔다.
쿠궁, 쿠궁, 쿠궁, 쿠궁!
남은 거리 약 10M!
칼콘이 소리를 질렀다!
“충돌 대비해!”
뻐어억!
가시 벽이 거세게 흔들렸다.
차라도 와서 들이받은 것 같은 충격!
원래대로라면 날아가야 정상이었지만, E등급인 칼콘과 가벡 그리고 B등급인 지훈이 힘을 합쳐 막을 수 있었다. 만약 조금만 더 힘이 부족했다면 셋 다 방패채로 날아갔으리라.
“끄어어어!”
칼콘이 고통을 호소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와 동시에 가시 벽도 기울어지기 시작했지만 괜찮았다.
이미 공격권은 이쪽으로 넘어왔다.
맹수의 돌진을 피할 수만 있다면,
맹수를 한 자리에 묶어둘 수만 있다면,
맹수가 근접 공격을 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이쪽의 승리였다.
“가벡, 달려들어! 원거리에서 원호한다!”
“으롸! 피가 끓는구나!”
가벡은 왼쪽, 지훈은 오른쪽으로 튀어나왔다.
“꾸어어!”
적이 양쪽에서 동시에 튀어나오자 멈칫거리는 다이어 베어!
‘이능 사용, 집중.’
푝! 푝!
그 짧은 틈 사이에 집중 이능을 이용, 곰의 오른쪽 눈에 총알을 박아 넣었다.
제아무리 다이어 베어라고 해봐야 동물. 눈알에까지 장갑이 달려있을 리 없다.
곰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도리질을 쳤다.
후웅! 후웅!
눈먼 일격.
보기에는 우스웠지만, 방심해서 한 대라도 맞았다가는 온몸이 피떡으로 변할 게 분명했다.
손톱?
그딴 건 갑옷에 막힐 테니 상관없었다.
단지 능력치로 환산하면 B~A는 족히 될 미친 근력이 문제였다. 목에 맞으면 머리가 뽑혀나가고, 몸에 맞으면 내장이 걸레가 되며, 사지에 맞으면 뼈가 가루가 된다.
둘 다 그 사실을 알았기에 섣불리 다가가지는 않았다.
단지 10초 정도 곰이 발광하길 기다렸다가…
곰이 제힘을 이기지 못하고 앞발을 내려놓은 순간!
가벡은 곰의 턱을 올려쳤고,
지훈은 곰의 겨드랑이를 사선으로 내려 벴다.
퍼억!
스걱!
치명적인 일격이 동시에 틀어박혔다!
아래서 위로 올려친 두부 공격은 뇌를 흔들었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 벤 사지 공격은 앞발을 끊어냈다.
쿠웅 -
곰이 고통에 겨운 신음을 냈다.
아직 죽지 않았지만 무시했다.
“다시 달려!”
어차피 저 정도 상처라면 따라올 수 없기 때문이었다.
☆ ☆ ☆
그 시각.
“끄아아아….”
비명 하나가 시끄럽다가 뚝 끊겼다.
우적, 우적, 우적.
정글의 주인은 이름 모를 고기를 씹다가 퉤 뱉었다.
타액과 함께 피, 천, 철편 등이 기괴하게 섞여 있었다.
- 모조리 죽여버릴 테다. 털 없는 오만한 원숭이들!
정글의 주인이 분노를 담아 그르렁거렸다.
그 모습을 본 헌터가 입을 꾹 틀어막고,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냥 가라. 제발, 제발, 제발.’
정글의 주인은 그 헌터를 멍하니 바라봤다.
피비린내 섞인 침묵이 5초.
정글의 주인이 헌터를 내려다봤다.
이내 그와 눈높이를 맞췄다.
사람 머리만 한 거대한 눈동자에 겁에 질린 피포식자의 모습이 비쳤다.
“크르륵.”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짐승의 그르렁거리는 소리임에도 헌터는 이상하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 살고 싶어?
“사, 살려주세요… 꺽… 잘못했습니다. 제발….”
헌터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울부짖었다.
공포에 질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정글의 주인은 그런 헌터를 바라보다 말했다.
- 내가 왜?
“으아아… 아, 아아….”
헌터가 도망도 가지 못하고 자리에 앉아 오줌을 지렸다.
절대적인 포식자 앞에서 인간의 존엄은 너무나도 쉽게 구겨졌고,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던 인간은 순식간에 움직이는 먹이이자, 고깃덩이로 떨어졌다.
- 네 종족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내 첫째 아들을 죽였다. 내가 왜 너를 살려줘야 하지? 말해 봐.
인간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논리적으로 설득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공포에 뇌가 녹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 오만하구나, 아주 오만해. 내버려 둔다고 해서 너희가 이 정글의 주인이 아니거늘, 진정한 공포가 무엇인지 모른 채 해서는 절대 안 될 짓을 저지르는구나.
정글의 주인이 이를 드러내며 적의를 드러냈다.
이에 헌터는 미쳐서 웃기 시작하더니…
“으어어… 어어억… 히익! 히히히!”
재빨리 품에서 권총을 꺼내…
탕!
자살했다.
정글 주인의 눈에서 싸늘한 분노가 묻어났다.
이후 그 분노는 시체를 오체분시하는 것으로 표출됐다.
서걱, 서걱, 서걱.
미니어쳐 장난감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아주 정성 들여 시체를 모독했다. 그렇게 작업이 거의 다 끝나갔을 때 쯤…
… 타앙 -
쫑긋!
총소리와 함께 정글 주인의 귀가 발딱 섰다.
소리가 난 방향은 그의 영역.
인간들은 될 수 있으면 들어오지 않는 곳.
그녀의 육감이 찾고 있는 목표가 저기 있다고 외쳤다.
“그르르르!”
이를 드러내고 여과없는 적의를 표현하기도 잠시.
쿵, 쿵, 쿵, 쿵!
정글의 주인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지훈 일행이 있는 방향이었다.
☆ ☆ ☆
저 멀리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따위 알 수 없었다.
단지 페이스를 조절하며 달렸다.
“허윽… 헉… 끄으….”
민우는 슬슬 한계에 닿은 듯 숨을 못 쉬기 시작했다.
아마 내장이 뒤틀리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시간을 확인했다.
차까지 남은 시간 약 4분.
곰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과 체력을 너무 많이 뺏겼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속도를 감속해서 민우와 맞춘 후…
“허… 형님?”
그대로 적당히 힘 조절해서 로우킥을 찼다.
턱 소리와 함께 앞으로 넘어지는 민우!
그에 맞춰 몸을 적당히 숙이며 기울인 뒤 왼손은 민우의 고간에, 오른손은 뒷목을 잡았다.
“꺼억! 억… 형님, 저 괜찮습니다! 진짜!”
민우가 버둥거리며 저항했지만, 놓아주지 않았다.
이대로 뒀다간 분명 뒤처져서 칵톨레므나 기타 맹수들의 밥이 될 게 분명했다.
“너 좋아서 해주는 거 아니니까, 닥치고 있어. 씹새끼야.”
가속을 이용해 일행을 따라잡은 뒤 해제했다.
“후우… 후우….”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금방이라도 멈춰버릴 것 같은 불안함이 스쳤지만, 모조리 떨쳐버렸다.
잡생각 할 시간 따위 없었다.
지금은 무조건 달려야 했다!
타타타타탓!
얼마나 달렸을까?
질척이는 땅을 박차는 소리, 숨에 겨워 헉헉대는 소리, 장비들이 부딪치며 내는 쇳소리 그리고 그사이에 괴상한 소리가 하나 섞이기 시작했다.
질퍽퍽, 질질퍽 … 쿵!
헉, 쿵 … 쿵!
쿵 … 철컥, 철컥!
‘가까워지고 있다?’
격한 운동으로 온몸에 땀이 나고 있음에도, 이름 모를 한기가 느껴졌다.
공포.
공포였다.
지훈은 정글의 주인이 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정글의 주인이 오고 있다! 전력 질주해!”
주인이 오고 있다는 말에 홍궈가 제일 먼저 반응했다.
“흐이이이익! 죽을 거야! 우리 모두 죽을 거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살고 싶었는지, 있는 힘껏 달리는 홍궈였다. 이후 가벡과 칼콘도 홍궈를 따라 속도를 높였다.
속도가 제일 느린 민우를 짊어진 덕에 이제 낙오를 우려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능 발동, 가속!’
여러 번 껐다, 켰다 해서 몸에 무리가 갔지만 무시했다.
뒤를 봐줄 필요 없기에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빠른 속도로 뒤처지는 일행!
‘먼저 가서 시동을 걸어놓고, 차 문을 모두 열어두자.’
강도 및 냄새를 우려해서 차 문을 전부 잠가놓은 상태.
무조건 먼저 도착해서 시동을 걸어놓고, 모든 차 문을 열어놔야 했다.
탑승에 걸리는 시간은 겨우 30초 남짓이라고 한들, 이런 상황에선 그 30초가 생사를 가를 수도 있었다.
…
… 쿵, 쿵, 쿵, 쿵!
차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걸음 소리는 더욱 커졌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끈적한 불안감이 온몸을 핥았다.
‘차에 못 타는 순간 죽는다고 봐야 옳다.’
어차피 이 정글에서 주인 행세를 하는 놈이라면, 이 정글 어디에 숨든 위험할 게 분명했다.
죽음을 향해 달리는 기분이 이럴까?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뇌에서 엄청난 양의 엔돌핀이 뿜어져 나왔다.
저 멀리 차가 보이기 시작한다.
더더욱 속도를 가속했다.
질퍽, 질퍽, 질퍽, 질퍽!
발이 거의 10cm씩 빠져 들어간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바짓가랑이를 잡는 기분.
그뿐만 아니라 원혼들이 어깨를 짓누르듯 몸이 무겁다.
하지만.
속도는.
줄이지.
않는다.
삐걱, 삐걱, 삐걱, 삐걱!
찌걱, 찌걱, 찌걱, 찌걱!
날카롭게 날이 선 감각에 뼈와 근육이 뒤틀리고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심장이 미친 듯이 펌프질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머릿속에 뇌 대신 심장이라도 들어있는 기분도 잠시.
“으아아아 - ! 씨발!”
순식간에 차 앞에 당도했다.
집어 던지듯 민우를 내려놓고, 당장 문에 차키를 꽂았다.
퍼억!
드르륵, 철컥!
살짝 시야를 돌리자, 드문드문 보이는 노을 뒤로 거대한 뭔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쿵쿵쿵쿵쿵!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사신!
몸이 굳을 정도로 엄청난 공포가 밀려왔지만, 악으로, 깡으로 견뎠다.
“민우! 차 문 전부 다 열어! 트렁크도 열어!”
“알겠습니다!”
민우와 함께 모든 문을 연 후, 시동을 걸었다.
부르르르릉 -
시동을 걸자 민우가 급히 조수석에 탑승했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앞유리 너머로는 정글의 주인이 달려왔고, 룸미러에는 가벡과 칼콘 그리고 홍궈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대충 속도를 계산했다.
‘정글의 주인 속도가 훨씬 빠르다.’
이대로 기다리면 다 죽을 상황!
“안전띠 차!”
민우가 당황하며 안전띠를 당겼지만, 원래 세게 잡아당기면 잘 나오지 않는 법. 하지만 다시 뽑을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았다.
기어를 후진으로 놓고…
‘이능 발동, 집중.’
그대로 엑셀에 발을 올렸다.
끼기기기긱!
엔진이 급격하게 RPM을 높임과 동시에, 차가 빠른 속도로 뒤로 달려 나간다!
“으아아! 뒤에 나무밖에 없는데 뭐하시는 거예요!”
“닥쳐, 새끼야!”
길이 없다는 건 알고 있다.
후진으로 밟아봐야 얼마 가지도 못한다는 것도 안다.
나무를 피해서 지그재그로 가봐야 100M.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허리를 반쯤 돌려 시선을 후방으로 향한 채 왼손으로 핸들을 돌렸다.
끼이익! 끼익!
나무가 가까워지는 걸 핸들을 꺾어 피했다.
등이 쫄깃해지는 곡예 운전!
차가 소음을 내며 방향을 바꿀 때마다, 일행이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렇게 약 5번 정도 방향을 틀었을 때…
“으롸차!”
칼콘이 달리는 그대로 트렁크 쪽으로 몸을 날렸다.
쿠웅!
연이어 가벡도 몸을 날렸다!
쿠웅!
마지막으로 홍궈가 점프했다.
쿠웅!
“지훈, 밟아!”
함성을 신호로 바로 기어를 바꾸고는 엑셀을 밟았다.
부르르릉!
앞을 바라보자 건물만 한 짐승이 포효했다.
“그워어어어!”
- 내 아이를 돌려줘!
머리에 소리가 울렸지만 그딴 거에 집중할 시간 없었다.
순식간에 왔던 길을 되돌아갔고,
쿠웅!
내려 찍히는 주먹을 피해 드리프트!
끼이이익!
“끄아아악!”
열려있는 트렁크 문으로 튀어나가지 않게끔, 손잡이를 꽉 부여잡은 칼콘과 가벡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중 홍궈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으나, 그나마도 가벡이 두 다리로 엮고 있던 탓에 버려지진 않았다.
“끄워!”
거대한 울림과 함께 사람 손바닥만 한 손톱이 주변 나무들을 죄다 쓸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화가 나다 못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힘!
감탄하고 있을 사이도 없이, 엑셀을 밟았다.
부으으응!
덜컹!
SUV가 심하게 덜컹거리며 정글 주인의 다리 사이로 지나갔다. 그렇게, 목숨을 건 레이스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