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뒤처지면 죽는다! -->
… 그워워워워!
온 정글에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무들은 마치 겁먹은 양 몸을 떨었고, 칼날초들도 소리의 주인을 두려워해 그 잎을 접었다.
식물들뿐만이 아니었다.
“끼개개객! 끽!”
사냥감을 쫓아다니던 칵톨레므 역시 공포에 질려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일렁 - 일렁 -
은신했던 칵톨레므의 몸이 반짝거리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겁에 질린 까닭에 은신을 유지하는 것도 잊어버린 까닭이다.
“5시 쪽에 칵톨레므! 쏴!”
타타타타탕 -
칵톨레므가 쫓아다니던 사냥감, 아니 이제는 사냥감이 아닌 사냥꾼이 된 인간들의 총구에서 탄환이 쏟아져 내렸다.
풀썩.
화망에 노출된 칵톨레므가 풀썩 쓰러졌다.
“푸하하, 저 새끼 봤어? 갑자기 비명 지르면서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어. 멍청한 놈 같으니.”
헌터 하나가 피식 웃으며 칵톨레므의 손발을 잘라냈다.
그사이 다른 헌터들이 경계하며 잡담을 나눴다.
“근데 방금 그 소리 뭐야?”
“그냥 짐승 소리 같던데. 왜?”
다른 헌터가 별거 아니라는 듯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게 유명한 사냥터에선 다른 헌터들의 총성 혹은 짐승들의 울부짖음 소리를 듣는 게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여기는 칼날 정글이잖아. 다들 소리 잘 안 내지 않아?”
맞는 말이었다.
칵톨레므가 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었기에, 생태계 자체가 고요한 짐승들만 살아남을 수 있는 형태였다.
이에 칵톨레므 포함 칼날 정글에 있는 짐승 대부분은 될 수 있으면 큰 소음을 내지 않았다.
근데 엄청난 소리를 내뿜으며 울부짖는다?
둘 중 하나였다.
겁을 상실해서 미쳐버렸던가,
겁을 먹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강하던가.
시시덕거리는 헌터들과 달리, 길잡이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중국 개척지에 사는 조선족이었는데, 뭔가 깨달은 것 같았다.
“서, 설마….”
“왜 그러쇼? 뭐 짚이는 저라고 있나?”
반면 다른 헌터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피식 웃기만 했다.
“지, 지금 당장 도망가야 합니다!”
도망가야 한다는 말에 헌터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무슨 소리야? 이제 시작했는데 어딜 가?”
“이러고 있다가 다 죽습니다!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조선족은 거의 발광하듯 소리쳤다.
헌터가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씨발 놈아, 길 안내 잘할 수 있다며. 왜 들어온 지 5시간도 안 돼서 지랄이야. 겁 먹었냐? 쫄려?”
“그게 아입니다. 여 정글에는 요괴가 산단 말입니다!”
요괴.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말에 헌터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요괴? 칵톨레므가 요괴같이 생기긴 했지. 우리도 잔뜩 잡았잖아. 앙?”
“그, 그게 아닙니다!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당장 달음박질을 쳐야 합니다!”
듣다 못한 헌터가 길잡이를 개머리판으로 때렸다.
“이보쇼, 동포 양반. 우리가 맘만 먹으면 당신 여기다 버리고 가거나, 칵톨레므 미끼로 쓸 수도 있어. 그러니까 제발 닥치고 맡은 일 잘하자. 응?”
조선족은 부어오른 볼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요괴가 오고 있는데, 다 죽는데….”
헌터가 그런 조선족을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얘 맛이 간 것 같은데요?”
“내버려 둬. 쟤도 그냥 미끼로 쓰자고.”
“예, 알겠습니다. 수갑 채울….”
… 쿠웅 - 쿠웅 - 쿠웅 - 쿠웅 …
헌터가 수갑을 만지작거리다 멈칫거렸다.
뭔가 달려오는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어…? 형님 무슨 소리 나지 않아요?”
났다.
그것도 아주 크게 났다.
소리가 가까워지자 조선족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칼날초에 옷이 찢기고, 전신에 자상이 남아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헌터들은 그런 조선족을 쫓을지, 정체불명의 괴물을 잡기 위해 매복할지 고민했다.
“그냥 보내. 어차피 선금 안 줬으니까 상관없어. 다들 엄폐. 소리는 9시 방향이다!”
헌터들은 매복을 위해 자리를 잡았다.
전체 인원은 다섯.
소총 세 자루에 기관총, 저격총까지 있는 분대였다.
대형 몬스터도 순식간에 쓰러뜨릴 수 있는 화력이었다!
‘뭐가 나오던 쏴 죽여 주마!’
헌터 대장의 얼굴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쿠웅, 쿠웅, 쿠웅! 우지끈!
약 6M는 족히 되는 짐승이 나타나자 얼굴이 굳었다.
“하…!? 사격 개시! 풀 오토로 긁어!”
타타타타타탕!
타타타타….
순식간에 100발이 넘는 총알이 짐승을 때린다.
고기 다지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지만, 짐승은 꿈쩍도 하지 않은 체 서 있었다.
너무 많은 탄환에 쓰러지지도 못하고 죽은 걸까?
아니었다.
- 아니야, 너희가 아니야. 여기에도 없어.
단지 공격에 앞서 무언가를 찾듯 관찰하고 있는 거였다.
- 그렇다면 모조리 죽여도 상관없겠구나.
짐승이 분노를 담아 그르렁거리는 사이.
헌터들은 넋이 나가 있었다.
“OTN탄이… 박히질 않아?”
이후 한 헌터가 급히 RPG를 조립해서 발사했지만,
슈우우웅 - 쾅!
짐승은 여전히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그워워워워워!”
엄청난 울부짖음!
피포식자의 몸을 마비시키고, 본능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포식자 특유의 맹성이었다!
“끄어어… 억… 안 돼….”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그렇게 헌터들은 짐승, 아니 정글의 주인이 동료를 하나씩 찢어 죽이는 걸 보고만 있어야 했다.
정글의 주인은 모두 찢어 죽은 뒤 다시 한 번 울부짖었다.
“그워워워워!”
- 내 아이를 훔쳐 달아난 마지막 한 놈. 어디에 숨어있든 상관없다. 반드시, 반드시 찾아내서 죽여버리겠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목표들이 도망칠까 싶어서 울부짖지 않았거늘, 이제 그럴 필요가 없었다.
놓쳤다면 이미 정글 밖에 있을 테고, 그렇지 않으면 정글 안에 있다는 얘기였다.
- 내 정글에 있는 모든 먹이들에게 고한다. 내 아이, 그리고 내 아이를 훔쳐간 녀석을 찾는 녀석은 내가 직접 보호해 주겠다. 평생 안전하게 해주겠다! 찾아라. 찾아서 산채로 내 앞에 데려와라!
굉장히 끔찍한 광경.
상황으로 보니 정글의 주인은 약 사나흘 전부터 계속 새끼를 찾아다니고 있는 듯싶었다.
만약 지훈 일행이 운이 나빴다면?
아마 저 헌터들과 비슷한 꼴이 됐으리라.
☆ ☆ ☆
… 그워워워! 워워워!
거대한 울음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헉… 더 가까워진 것 헉… 같은데요.”
민우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굳이 민우가 아니더라도, 가벡, 칼콘, 지훈 전부 다 그 사실을 알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뛰는 게 나았기 때문이었다.
타타타탓!
‘얼마나 남았지?’
달리는 도중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5분 뛰었으니 대충 10분 더 가면 됐다.
“민우, 10분은 더 달려야 돼. 괜찮아!?”
지훈이야 가속 이능을 쓰고 달리면 됐지만, 그랬다가는 나머지 일행이 따라올 수가 없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민우가 이동속도가 제일 느렸기 때문에 적잖이 신경이 쓰였다. 겨우 5분 달렸는데도 벌써 헉헉거렸기 때문이다.
“주, 죽을 것 같… 헉, 헉….”
“MP5버려! 힘들면 방탄복도 버려라!”
비싼 물건을 버리라는 말에 민우가 기겁을 했다.
“아니 목숨 걸고 일해서… 후으! 번 돈으로… 헉… 산 장비인데… 어떻게 버… 헉!”
아무리 마법 부여 중 수준이 낮은 경량화라 할지라도, 마법자 붙은 순간 가격이 엄청나게 비싼 물건이었다.
그걸 버린다고?
쉬이 놓지 못하는 게 정상이었다.
“새끼야. 여기서 뒤처지면 죽어! 10분은 더 가야 하는데 버틸 수 있겠냐고!”
“으아아아…! 씨발!”
10분이라는 말에 민우가 MP5를 집어 던졌다.
차마 방탄복까지는 버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무게가 가벼워졌기 때문일까?
뒤처졌던 민우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질퍽, 질퍽, 질퍽, 질퍽.
습기를 잔뜩 머금은 땅이 질척거리며 일행의 발을 붙잡았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철푸덕!
미끼가 바닥에 쓰러졌다!
상품으로 팔리기 위해 감옥에 갇혀있던 때부터 지금까지 먹은 거라곤 변변치 못한 벌레 몇 마리와 만두 하나가 다였다.
애초에 각성자 및 주기적으로 운동을 시작한 민우를 뒤따라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Don't go. Don't go. Help me! (가지 마요, 가지 마요. 도와주세요!)“
미끼가 어미 잃은 새끼처럼 울부짖었다.
하지만 일행 중 그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민우가 넘어져도 챙겨줄까 말까 하는 상황에 생판 모르는 남을 챙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단지 인간의 마지막 존엄성은 지켜주기로 했다.
‘이능 발동, 집중.’
선두에서 달리던 걸 슬쩍 몸을 이탈했다.
그 사이 바로 뒤를 쫓던 칼콘과 가벡이 앞질렀다.
- 지훈, 지금 뭐하는…!
깜짝 놀라는 칼콘에게 손짓으로 괜찮다고 말하고는…
빈토레즈로 미끼의 머리를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
푝!
즉사였다.
아마 살아있었다면 산채로 짐승에게 뜯어 먹히며 고통에 온몸을 떨며 죽어갔으리라.
‘될 수 있으면 살려서 내보내고 싶었는데, 쯧.’
다시 몸을 돌려 대열 맨 뒤로 합류했다.
혹여라도 민우가 쓰러지면 빈토레즈를 버려서라도 짊어지고 갈 생각이었다.
‘우민우, 제발 쓰러지지 마라!’
타타타탓!
다시 5분.
일행은 여전히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오는 길에 칼날초들을 정리하고, 주인의 영역이라는 특성 때문에 칵톨레므를 마주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누군가 피부를 바늘로 찌르는 느낌과 함께…
달려가는 방향 우측에서 기묘한 일렁임이 보였다.
칵톨레므였다.
‘시발, 여기에 왜 칵톨레므가…!’
욕지거리도 잠시였다.
칼콘의 목이 날아갈 위기였기에 바로 경고했다.
“칼콘! 속도 줄여! 우측에 적 출현!”
비명 같은 경고가 뿜어져 나왔다.
서로 신뢰가 없었다면 무시했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경고.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함께했던 팀워크가 그 터무니없는 내용을 한 치의 의심 없이 실행하게 만들었다.
“으롸!”
칼콘이 진행방향 우측 허공이 쇠사슬을 휘둘렀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헛짓으로 보였지만…
휘리릭! 철컥!
잠시 후 쇠사슬이 걸리며 칵톨레므가 모습을 드러냈다.
칼콘이 바로 오른손을 당겼다.
후욱!
쇠사슬이 풀리며 칵톨레므가 빙글 돌아 바닥에 엎어졌다.
아무래도 C등급 손톱을 가지고 있고, 은신에 능한 칵톨레므라지만, 신체 능력은 일반 짐승과 똑같았다.
각성한 오크의 힘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철푸덕!
이후 뒤따라오던 가벡이 칵톨레므를 확인, 들고 있던 오류기기 파괴용 곤봉으로 바닥을 쓸듯 휘둘렀다.
고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칵톨레므 머리가 박살났다.
눈앞에 4,000만 원짜리 시체가 있었지만, 챙기고 있을 여유 따윈 없었다.
더이상 시간을 지체했다간 죽는다.
최대한 빨리 차를 타고 도망가야 했다.
“이제 뭐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조심해!”
속도를 조금 늦춰서 달리기도 잠시…
쿵, 쿵, 쿵!
이번엔 11시 방향 100M에서 커다란 곰이 튀어나왔다.
“이런 씨-이-발, 진짜. 바빠 죽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