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117화 (117/173)

<-- 원흉. -->

삑 - 삑 - 삑 -

후욱, 후욱…

숨 막힐 듯한 고요 속.

오로지 GPS 감지기 소리와, 거친 숨소리만 났다.

“뭐 이리 조용해?”

칼콘이 불안한 듯 중얼거렸다.

마치 성냥불로 짙은 암흑을 쫓으려는 듯, 작은 묘목이 태풍에 거센 춤을 추듯 애처로워 보이는 목소리였다.

“이상해. 새가 우는 소리도, 날벌레 날갯짓 소리도, 쥐새끼 움직이는 소리도 전혀 들리질 않아.”

“칼콘 말이 옳다. 이 장소는 뭔가 잘못됐다.”

맞는 말이었다.

이미 저 둘만 아니라, 둔감하다 못해 귀머거리에 가까운 민우도 불안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반면 지훈은 끈적끈적한 기분만 계속됐을 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민우, 얼마나 남았냐?”

“약 1.5KM요….”

심층부는 심층부답게 칼날초가 많지 않았다.

아마 빠른 걸음으로 1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으리라.

“저거만 찾아서 바로 나가자. 얼마 걸리지 않을 거다.”

지훈의 결정에 칼콘이 입을 다물었지만, 가벡은 슬쩍 불만을 내비쳤다.

“내 경험상… 지금 우리는 앞마당에 있는 것 같군.”

“앞마당이라니? 그게 뭐야?”

민우가 물었다.

“주인의 영역을 말하는 거다.”

문득 엘프들이 부르짖던 내용이 떠올랐다.

- 최근 정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정글의 주인이 노했을 수 있습니다! 피바람이 불어올 것입니다!

‘…그딴 게 진짜 있었다고?’

단지 샤머니즘을 토대로 한 미신이라 생각했었다.

“만약 그 영역 안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되지?”

가벡은 귀를 긁적거렸다.

“주인 성격에 따라 다르다. 무시할 수도, 쫓아낼 수도, 잡아먹을 수도 있지.”

“말이 꼭 만나본 것처럼 얘기하는군?”

만나봤느냐는 물음에 가벡이 픽 웃었다.

“가시 산맥에는 주인이 없지.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직접 잡았다는 말일까?

아니다.

E등급 각성자가 홀로 잡았다면 그건 ‘주인’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산짐승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거다.

“개소리 집어치우고 제대로 설명해.”

“그가쉬, 겐포, 칼륑 세 부족 연합 통 200명이 총, 창, 활, 검으로 무장하고 덤볐다.”

가시 산맥의 주인은 고슴도치였다.

결과적으로 200명 중 160명이 죽었고, 생존자 중 부상자가 반 이상이었다. 가벡 역시 그 부상자 중 하나였다.

“지형으로 봤을 때 이곳의 주인도 엄청난 놈이겠군.”

말이 끝나마 마자 다들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그럼 위험한 거 아냐? 당장 나가자.”

“형님…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칼콘과 민우가 이쪽을 쳐다봤다.

“걱정하지 마라. 영역이 넓어서 누가 어디서 뭘 하는지는 주인도 전부 다 알지는 못한다. 가서 물건만 가지고 나온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다.”

“나도 가벡 말에 동의한다. 가벡 말대로라면 칵톨레므나 기타 짐승들도 여기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이니까 조용히 갔다가 물건만 들고 오면 된다.”

일행의 의견을 묻기 위해 슥 훑었다.

민우는 반대하는 듯싶었지만, 우물쭈물했고,

칼콘은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동의했으며,

가벡은 오히려 주인과 싸워보고 싶어 했다.

다수결에 의해 빠르게 물건만 챙겨오기로 결정됐다.

민우는 뭔가 항변을 하려 했지만, 그래 봐야 시간만 소모되고 건질 게 없다는 걸 알았기에 입을 다물었다.

“가자.”

어느 정도 다가가자 눈앞에 커다란 굴이 보였다.

높이 약 4M, 너비 3M쯤 되는 타원형 동굴이었다.

“여기라고?”

“GPS 상으로는 이쪽 맞는 것 같아요. 아니면 굴 위쪽에 있을 수도 있구요.”

자연 동굴인지, 몬스터가 만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만약 후자라면 곤란한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칵톨레므가 굴 생활을 하던가?’

헌팅 전에 알아 온 정보로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

혹여 칵톨레므 서식처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일방통행인지라 빛을 비추며 전진하다 적이 나타나면 풀오토로 드르륵 갈기면 됐기 때문이다.

“가자. 굴 위쪽에 있으면 우회해야 한다.”

2열 종대로 모여 전진했다.

전위에는 근접전에 강한 칼콘과 가벡이,

후위에는 후방 지원이 가능한 지훈과 민우가 섰다.

저벅- , 저-저벅-, 저벅-, 저-저저-벅-.

여덟 발소리가 굴 안에 울려 퍼졌다.

만약 안에 생명체가 있다면 반응할 만큼 큰 소음. 하지만 몇 분이 지나도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거나, 자리를 비운 거 아냐?”

경계를 슬쩍 늦추며 전진하길 다시 몇 분.

문득 거친 숨소리가 빠른 템포로 들려왔다.

후윽 - 후윽 - 후윽 - 후윽.

소리가 들리자마자 다들 걸음을 멈췄다.

수신호로 명령했다.

- 일렬. 선두 칼콘. 그 뒤로 나, 가벡, 민우.

칼콘이 방패로 길을 막은 뒤 오른손을 반쯤 가로로 굽혔다. 총을 올려놓으라는 소리였다.

칼콘의 팔오금에 빈토레즈를 거치하고 아주 느린 속도로 전진했다.

마치 촉수가 퍼져나가듯, 날카롭게 날이 서린 감각이 굴 안 구석구석을 훑었다.

전방은 눈으로, 좌, 우는 귀로, 후방은 수없이 많은 전투로 갈고 닦인 오감으로 뭐가 어디서 튀어나와도 반응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칵톨레므를 경계하며 걷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

일 초가 길게 늘어지는 듯한 착각 속에서 아주 긴 1분.

그리고 일행 앞에 나타난 것은…

타 - 앙!

티잉!

팅!

휘청!

전등 불빛을 동반한 총성이었다.

방패가 관통됨과 동시에 정체불명의 탄환이 칼콘의 갑옷에 부딪혀 깨졌다.

“끄!”

고통에 겨운 칼콘의 신음!

하지만 방패를 놓치지는 않았다.

‘사람!?’

총을 쐈다는 얘기는 안에 있는 게 사람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2Cm가 넘는 D등급 금속 덩어리를 뚫을 정도의 탄환이라면, 최소 VGC(벤전스) 탄환이라는 뜻!

고등급 혹은 부유한 헌터일 가능성이 높았다.

“엄폐 제대로 해!”

‘이능 발동, 가속!’

왼손에 낀 AMP 반지가 짐승처럼 떨기 시작, 이후 심장이 시동 걸린 엔진처럼 미친 듯이 펌프질을 치고, 온몸의 혈액이 고삐 풀린 황소 마냥 날뛰기 시작했다!

‘일격에 끝내야 한다. 벤전스 탄환 사용자라면 방어구도 제대로 갖췄을 터. 무조건 머리나 목을 맞춰야 해.’

옆으로 구르며 집중 이능을 발동했다.

다시 한 번 AMP가 부르르 떨며 세상이 느려졌다.

타앗 - 데굴.

몸을 우측으로 튕김과 동시에 목 뒤, 어깨, 팔순으로 충격을 완화하며 굴렀다.

영화 속 슬로우 모션마냥 세상이 느린 속도로 세상이 한 바퀴 돌았다.

이후 자세를 바로잡으며 발포하려는 순간…

목표와 눈이 마주쳤다.

“하…?”

“이런…!?”

방아쇠 한 번에 생사 사가 오가는 순간!

목표와 지훈의 동공이 동시에 크게 부풀어 올랐다.

“잠….”

목표는 크게 소리를 질렀고,

지훈은 방아쇠를 당기려던 손가락을 거뒀다.

‘이능 해제. 가속, 집중.’

“…깐! 쏘지 마! 흐이익!”

“사격 중지! 아군이다!”

목표의 목소리와 지훈의 목소리가 동시에 동굴에 울렸다.

칼콘을 포함, 일행 모두 벙찐 표정을 지었다.

“뭐야, 아는 사람이야?”

칼콘은 구멍이 뚫린 방패를 보며 짜증을 냈다.

“이 새끼가 홍권승. 홍궈다.”

홍궈라는 이름이 나오자 다들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팀원이 모조리 오체분시 되어있어서 당연히 시체가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봐, 괜찮나?”

흥궈는 손전등을 돌려 지훈을 비췄다.

“나, 나… 너 알아! 안다고! 미, 미친 사냥개잖아!”

“그래. 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질문했지만 만족스러운 답은 얻을 수 없었다.

“나 안다고! 알아! 그러니까 쏘지 마! 쏘지 말라고!”

침까지 흘려가며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모습.

정신이 나간 게 분명했다.

일행과 떨어져서, 언제 뭐가 다가올지 모르는 상태로 온몸의 감각을 극대화 시킨 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2주 이상 경계한 결과였다.

아마 지훈도 혼자 떨어졌다면 저런 상태가 됐으리라.

“진정해 흥궈. 난 너를 죽이러 온 게 아니야.”

“쏘지 마, 쏘지 마! 쏘지 말라고!”

흥궈가 총을 들며 위협했다.

순간 온몸이 싸늘하게 굳었다.

안에 들어있는 총알은 VGC.

몸에 맞으면 살겠지만 다리나 머리는 아니었다.

“구하러 왔다! 총 내려, 미친 새끼야!”

“쏘지 마! 쏘지 말라고!”

이미 총 따윈 내린 지 오래였거늘, 홍궈는 계속 쏘지 말라는 말만 반복했다.

결국 보다못한 칼콘이 달려들었다.

쿵, 쿵, 쿵, 쿵!

이에 홍궈가 인식하고 바로 사격!

타앙 -

티잉, 티잉 -

이번에도 방패는 뚫렸지만, 갑옷은 아니었다.

그렇게 칼콘은 한 대 맞아주고는 쇠사슬로…

뻐억!

홍궈의 머리를 후려쳤다.

쇠사슬 연결부위에 살이 몇 조각 뜯겨나감과 동시에 홍궈가 바닥에 처박혔다.

“미친놈은 매가 약이지.”

칼콘이 씩씩거리며 홍궈를 내려다봤다.

홍궈는 얼굴에서 피를 쏟아내며 연신 ‘죽이지 마… 제발 나를 죽이지 마…’ 하는 말만 중얼거렸다.

약 5분 후.

충격요법이 제대로 적용했는지, 홍궈가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렸다.

“후우… 후우… 그러니까 너희가 나를 구하러 왔다고?”

“정확하게는 네 아티펙트를 구하러 왔지.”

홍궈의 목숨 따위 죽든 살든 알 바 아니었다. 단지 얼굴을 아는 사람이라 공격 하지 않은 것뿐이다.

“프히히… 그딴 거 상관없어. 어차피 우린 다 죽을 거야.”

“무슨 소리지? 칵톨레므라면 이미 오는 길에 잔뜩 잡았다.”

칵톨레므라는 말에 홍궈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딴 거 나도 열 마리, 스무 마리 잡을 수 있어.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라고… 우린… 전부 죽을 거야. 죽을 거라고!”

아직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걸까?

정신병자를 데리고 돌아다닐 수 없었기에, 정신 차리지 않으면 죽일 기세로 몇 대 때렸다.

뻐-억. 뻑.

“정신 차려, 새끼야. 버리고 가는 수가 있다.”

“너… 여기가 어딘 줄은 알아?”

“칼날 정글이잖아.”

“그래… 그거 말고, 지금 이 위치가 어딘지 아냐고.”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지금 홍궈에 지훈 일행이 있는 곳은 칼날 정글의 최중심부.

정글 주인의 서식지였다.

“이러고 있을 시간 없다. 아티펙트를 내놓든가, 따라오든가 알아서 선택해라. 조용히 따라온다면 밖으로 꺼내는 주지.

물론 그에 합당한 보수를 받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홍궈는 나가기를 거절했다.

“싫어… 나는, 나는 나가지 않아. 여기 있을 거야. 나가면 죽을 거라고!”

그냥 죽여버리고 장비를 챙길까 싶은 생각도 잠시.

이블 포인트가 마음에 걸려 그냥 아티펙트만 받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아티펙트 내놔. 가져간다.”

“그딴 C등급 아티펙트… 가져가. 어차피 그 녀석에게는 소용없었어….”

홍궈가 제 옆에 있던 가방을 건네줬다.

가방 안에는 멋진 세공이 들어간 단검이 들어있었다.

‘이게 마지막이군.’

D등급 아티펙트가 하나 남아있긴 했지만, 그 정도는 포기해도 됐다.

이제 더 이상은 이 불길한 정글에 남아있고 싶지 않았다.

단검을 챙기고 있자니 문득 가벡이 물었다.

“네 가방에는 뭐가 들어있지?”

홍궈가 매고 있는 가방을 묻는 거였다.

“아,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없다고.”

홍궈가 꼭 겁먹은 새끼 고양이처럼 움츠렸다.

“아티펙트 챙겼으면 됐다. 뺏지 마라.”

더 이상 홍궈를 자극하면 등에 총알이 박힐 수도 있었기에, 가벡을 제지했다.

“아니. 저건 꼭 확인해 봐야 한다. 저기서 냄새가 난다.”

뭔지 물어봐도 가벡은 대답하지 않았다.

결국 가벡은 홍궈에게서 반강제로 가방을 뺏었고, 그 내용물을 확인했다.

지지지직 -

지퍼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등장한 건…

“끼에에 - 끼엑 -”

새끼 원숭이 비스므레하게 생긴 독특한 짐승이었다.

녀석은 가벡을 보며 끼엑 - 끼엑 - 하고 귀여운 울음만 내뱉었다. 반면 가벡은 온몸의 털을 곤두세웠다.

“빌어먹을….”

“왜 그래?”

조용히 욕을 지껄이는 가벡에게 칼콘이 다가갔고, 칼콘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지훈… 이거 내가 봤을 때… 정글 주인의 새끼 같은데?”

지훈이 악귀 같은 얼굴로 홍궈를 쳐다봤다. 홍궈가 책임을 회피하듯 고개를 돌렸다.

“이, 이건 단순히 헌팅이었어… 돈을 벌고 싶었다고… 너희도 돈 벌기 위해서 칵톨레므를 죽였잖아! 나는 BOSA에 이걸 팔면 나는 부자가 될 거야… 저리 꺼져. 이건 내꺼야!”

“이 미친 새끼가…!”

뻑!

있는 힘껏 때렸다.

등급에 비해 저항이 낮았던 걸까.

홍궈의 볼살이 그대로 뜯겨 나갔다.

“헌팅도 상황 봐가면서 해야지, 맨몸으로 벌집을 건드리면 주변 사람들은 어쩌란 말이냐!”

뻑, 뻐억!

근육이 날아가고 뼈가 드러나도 상관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이 빌어먹을 놈 때문에 일행 전체가 위험에 빠졌다는 거였다.

있는 힘껏 홍궈를 때리고는, 재킷에 피를 닦았다.

이후 들고 있던 빈토레즈로 홍궈를 조준해서…

“잠깐. 죽일 건가?”

가벡이 끼어들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홍궈는 아무런 반응 없이 헤실헤실 웃기만 했다.

“주인이 온화한 성격이라면 거래에 사용할 수 있을 거다.”

그 말을 듣고는 총을 거뒀다.

어차피 죽을 놈이라면, 지금 당장 죽이는 것보다 거래 도구로 쓰는 편이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새끼는 어쩔 거야? 두고 갈 거야?”

“들고 간다. 여기에 둘 바에는 만났을 때 집어 던지는 게 훨씬 더 낫다.”

만약 새끼가 어딨는지 찾을 수 있다면, 애초에 홍궈가 시체가 됐어야 했다. 그 말은 곧 새끼를 감지할 수 없다는 뜻.

주인의 새끼가 들어있는 가방을 등에 짊어졌다.

“가자. 여기 있다간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일행은 빠른 걸음으로 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굴에서 다 나왔을 무렵…

… 그워워워워.

멀찍이서 거대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등골이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멀리서 울어 재낀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잡히는 순간 뒤지는 건 확실하다. 달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