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품 줍기. -->
진입 2시간째.
일행이 슬슬 경계로 지쳐갈 때쯤…
… 삐빅! … 삐빅!
민우의 GPS에서 작은 알림이 들렸다.
“형님, 여기서 서쪽으로 2KM 지점에 하나 떴어요.”
슬쩍 들여다보니 감지 아이콘이 초록색.
D등급 아티펙트란 소리였다.
‘서쪽으로 2KM… 차가 갈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차가 다닐 수 있을법한 길은 없었다.
D등급 아티펙트 가격. 1,000만 원.
이동이 어려웠기에 그냥 넘어갈까 싶은 생각도 잠시. 어쩔 수 없이 찾으러 가기로 했다. 전부 찾기도 어려운 상황인지라, 최대한 많이 챙겨두려는 심보에서였다.
‘거 빌어먹을 너구리 할배. 의리 지켜주다가 뼈 삭겠네. 들들 볶아서라도 돈을 더 받아야지, 쯧.’
“찾으러 가자, 다들 내려.”
장비를 챙겨서 내리고 있자니 민우가 물었다.
“차는요?”
“그냥 내버려 두고 간다. 혼자서 지키고 있다가 칵톨레므한테 당하면 그게 더 큰 일이야.”
칼날 정글에서는 무조건 2인 이상이 붙어있어야 했다.
기타 무시무시한 짐승들도 짐승이지만, 칵톨레므가 조용히 사각으로 돌아 뒤를 노리기 때문이었다.
까닭에 혼자서 불침번 혹은 경계를 서고 있다간, 목을 따이거나 뒤통수에 구멍이 날 수 있었다.
민우는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공포영화에서 제일 먼저 죽는 엑스트라 A라도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염려가 엿보였다.
“안 죽어, 새끼야. 안 죽어. 걱정하지 마.”
“에이, 누가 겁먹었다고 그러십니까, 형님.”
“네가 겁을 먹은 것처럼 보입니다, 이 새끼야.”
민우는 애써 아니라는 듯 미소를 지었으나, 다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훅, 훅, 훅,
챙, 채쟁, 챙!
정글 및 산악 지형에 익숙한 가벡이 선두로 이동하며 칼날초들을 베어 넘겼다. 그의 손에는 업을 짊어지는 자가 들려 있었다.
“이 검 잘 드는군. 나한테 넘길 생각 없나?”
“빌려준 거니까 얌전하게 쓰고 잘 반납해라.”
“쯧, 아쉽군.”
가벡은 업을 짊어지는 자가 탐나는지, 쩝 소리를 냈다.
“근데 이게 그렇게 위험한 풀이에요?”
민우는 케이블 타이로 만든 사슬(?)로 미끼를 끌어오며 물었다.
“우리 같은 각성자는 아니지만, 너한테는 위험하지.”
경고의 의미로 빈토레즈 탄창 하나를 칼날초에 긁었다.
끼기기긱!
칼에 대고 긁은 것 마냥 기괴한 소리였다.
칼날초의 잎 자체는 일반적인 식물과 비슷했으나 그 모서리만 기괴하게도 칼날처럼 날카로웠던 것.
까닭에 아무 생각 없이 정글을 헤집고 다녔다간, 온몸에 자상이 생겨 과다출혈로 죽는 게 보통이었다.
“어우… 왜 다들 그렇게 난리인지 알겠네요.”
아마 민우는 대학 시절 ‘이런 풀이 있구나. 시험에 나올까?’ 하는 심정으로 슥 하고 넘어갔을 풀이겠지.
실제로 보니 그 감흥이 색다르다 못해 섬뜩한 모양이다.
일행은 서서히 서쪽으로 나아갔다.
마음 같아서는 후다닥 달려서 물건만 슥 집고 돌아오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온몸에 출혈이 생길 게 분명했다.
출혈은 후각이 예민한 칵톨레므를 불러올 테고, 돌아올 무렵에는 등 뒤에 연예인 쫓아다니는 사생팬 마냥 드글드글 모여 있겠지.
그 외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라도 이렇게 느리게 이동하는 게 안전에 좋았다.
후욱… 후욱…
저벅, 저벅, 저벅.
철컥, 철컥.
평소 같은 실없는 잡담은 오가지 않았다.
단지 거친 숨소리, 지친 발걸음, 움직임에 따라 총과 고정용 버클이 부딪치는 소리밖에 나질 않았다.
칵톨레므가 언제 어디서 따라붙을지 모르기 때문에 다들 신경을 곤두세웠기 때문이었다.
“커흑, 컥….”
뒤따라오던 미끼가 기침을 내뱉자, 무기가 네 개가 동시에 돌아섰다.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아이, 썅. 진짜….”
“지훈, 저거 꼭 데리고 가야 해?
“흠….”
날카롭게 서 있던 감각이 흐려지자 다들 짜증을 내뱉었다.
“참아. 나중에 혹시 모를 상황이 오면 저 녀석이 우리 대신 죽어줄 거다. 예비 목숨이라고 생각해 둬.”
대신 죽어줄 희생양 취급하니 기분이 아려왔지만, 뭐 어쩌겠는가. 미친 세상에서 동정심 가지고 있다간 사소한 일에도 진행이 덜컥덜컥 막히기 마련이었다.
대충 25분 정도 이동하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참혹한 광경이 펼쳐졌다.
“이게 뭔….”
멀찍이서도 옅게나마 썩는 냄새가 난다 싶어 뭔가 싶었거늘, 도착하니 반쯤 썩은 시체가 놓여있었다.
팔과 다리는 누가 뜯어갔는지 오체분시 된 것처럼 전부 사라져 있었고, 몸 중앙에는 이름 모를 꽃인지 버섯인지가 하나 피어있었다.
혹시 독이 있을지도 몰랐기에 민우를 쳐다봤다.
“아는 식물이냐?”
“잠시만요. 렌즈는 처음이라 잘 보이지가 않네요….”
민우는 보호경과 안경을 벗고 눈을 부비적거렸다.
“시체 버섯이네요. 꽃처럼 생겼는데, 포자 생식을 해서 버섯류로 분류돼요. 포자를 들이마시면 폐렴이 생길 수도 있긴 한데… 아마 각성자는 괜찮을 거예요.”
괜찮다는 말에 성큼 다가가 살펴봤다.
시체 썩는 냄새가 불쾌했지만, 참을 수 있을 정도였다.
‘팔과 다리가 너무 말끔하게 잘려있다.’
칼톨레므 손톱으로도 말끔하게 잘릴 수 있겠지만, 보통은 사지절단보다는 목이나 몸통을 노리는 놈이었다.
반면 이 사체는 머리, 목, 몸 그 어디에도 손톱자국이 남아있지 않았다. 게다가 칵톨레므의 소행이라면 잡아먹기 위한 사냥이었을 텐데, 어디 뜯어 먹은 흔적도 없었다.
‘사람 소행이면 장비가 없어야 하는데… 전부 있다.’
반대로 사람이 사람을 습격했을 경우 무조건 강도라는 얘긴데, 그 가능성도 낮아 보였다.
시체에서 장비를 벗겨간 흔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뭔데?’
혹 싸구련가 싶어서 들어보자, ‘콜드 스틸’이라는 상표가 보였다. 콜드 스틸은 일반 물품도 1,000만 기본으로 붙는 프리미엄 브랜드였는데, 이걸 놓고 간다고?
‘사람 짓은 무조건 아니다.’
뭔가 찜찜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칼톨레므도 아니고, 강도도 아니다.
근데 숙련된 헌터인 홍궈 일행이 모조리 당했다.
당장 그만두고 나갈까 싶은 생각이 스쳤으나, 넣어뒀다.
잔고도 잔고거니와, 여기까지 이동한 시간과 기름값이 아까워서라도 손익분기는 넘을 때까지는 벌어와야 했다.
“민우, 가벡. 아티펙트 찾아봐. 나랑 칼콘이 경계한다.”
말이 떨어지자 가벡이 바로 시체를 뒤적거렸다.
“일단 갑옷, 투구 둘 다 비싼 물건이긴 한데, 아티펙트는 아냐. 다른 거 찾아봐. 벗겨가는 건 아티펙트 찾고 나서 나중에 하고.”
“흠, 알겠다.”
수색 중인 가벡과 민우를 드문드문 살피며 주변을 훑었다. 딱히 눈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였다.
‘아무것도 없나.’
그렇게 안심하려는 순간…
… 사각, 사각 … 사가각.
동료들이 내는 소음 사이로 이질적인 소리가 섞였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버석거리는 소리가 순식간에 멈췄다.
‘뭐지?’
쥐나 토끼 같은 작은 짐승이라도 지나갔던 걸까. 너무 예민해 봐야 피로만 가중될 것 같았기에 신경 끄기로 했다.
그렇게 약 10초.
… 사각, 사각, 사칵.
다시 한 번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도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마치 귓속에 벌레가 기어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끈적하게 달라붙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 칼콘, 무슨 소리 안 들리냐?
- 잘 모르겠는데? 왜 그래?
위험을 귀신같이 감지했던 전과 때문인지, 칼콘이 바싹 긴장하며 쇠사슬을 만지작거렸다.
- 저기 저쪽.
손짓으로 소리가 난 방향을 가리켰다.
다시 한 번 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칼콘은 그 장소를 유심히 살펴봤다.
1초.
2초.
3초.
등을 맞대고 있던 칼콘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 저, 저거 뭐야? 아까 봤을 때는 없었는데?
도대체 뭘 봤기에 저러는 걸까?
지훈의 눈에는 그저 어두운 그늘 사이로 나무 몇 개, 그리고 드문드문 나 있는 칼날초밖에 보이질 않았다.
- 뭔데?
- 몰라… 그냥 이상해. 이상한 게 보여. 아무것도 없는데, 뭔가 있는 것 같…
거기까지만 듣고 바로 마법을 영창했다.
칼콘이 뭔가 봤다면 분명 밤눈이 어두운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valgus(빛).”
손에 끼고 있던 습작 954번에 작게 떨림과 동시에, 마법 강화 효과를 담은 빛이 목표 지점으로 뿜어져 나갔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사람만 한 크기만큼 공간이 일그러져 있는 게 보였다.
은신한 칵톨레므였다.
녀석과의 거리 약 20M.
달려들었다면 바로 목이 달아났을 거리.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씨발!’
빈토레즈를 돌리며 사격 준비를 했다.
칵톨레므도 발각됐다는 걸 깨달았는지 바로 달려들었다.
후웅 - 철컥!
타타타탓!
“끼이이이익!”
불쾌한 고음과 함께 칵톨레므가 달려들었다.
굉장히 빠른 속도!
가속을 발동할 새도 없었다.
단지 빈토레즈를 돌려 사격하려고 했지만…
총구가 도는 속도보다 칵톨레므가 더 빨랐다.
‘느, 늦었다?’
눈앞에 C등급 짜리 흉기 4개가 날아온다!
죽음을 앞둔 순간.
더 이상 공격을 생각했다간 발포보다 앞서 목이 잘린다.
공격을 포기하고 회피하기 위해 몸을 무너뜨렸다.
몸을 숙이며 다음 수를 읽기 시작했다.
고공 점프로 이탈할까? 들이받을까?
이대로 구르며 사격할까?
개머리판으로 후려칠까?
1초도 안 될 시간 속에 여러 선택지가 마치 얽히고설킨 실타래처럼 뇌 속을 헤집기도 잠시.
앞에 큼지막한 뭔가가 나타났다.
칼콘의 방패였다.
그 모습을 보고 안심할 수 있었다.
카가가가각!
칵톨레므의 손톱이 칼콘의 가시 방패를 좀먹었지만, 엄청나게 두꺼웠던 까닭에 채 1cm도 뚫지 못했다.
이후 칼콘은 방패를 휘둘러 칵톨레므를 때려버렸다.
뻑!
피를 흘리며 날아가는 칵톨레므!
이에 지훈은 바로 앉아 쏴 자세로 사격했다.
표표푝!
우악스러운 9x39mm짜리 ONT 탄두가 하늘을 날았다.
얇은 가죽을 가지고 있던 만큼 전혀 튕겨내지 못하고 온몸이 찢겨 나가는 칵톨레므!
“끼익… 끽. 깨긱….”
칵톨레므는 바닥에 엎어져 질질 기어 다녔다.
녀석의 몸이 마치 빛이 굴절되는 양 연신 일렁거렸다.
가까이 다가가 빈토레즈로 마무리를 했다.
풀썩.
- 민첩이 상승했습니다. D등급 (21) = > D등급 (22)
“미친… 말로만 들었지, 뭐 이딴 새끼가 다 있어?”
은신에 능하다고만 들었지, 소리까지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줄일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런 녀석이 24시간, 48시간 내내 3마리~5마리까지 쫓아다닌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녀석 덩치가 작네. 보니까 성체도 아닌 것 같아.”
아마 성체였다면 더욱 좋은 솜씨로 숨어들어와 날카로운 일격을 날렸으리라.
현재 C등급 갑옷을 입고 있어서 몸 공격은 문제가 없었지만, 목이나 머리를 맞으면 즉사할 수도 있었다.
만약 방금도 칼콘이 막지 않았다면 엄청난 위험에 처했을지 몰랐다.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네. 그리고 고맙다, 칼콘.”
“뭐가 고마워, 당연한 건데. 지훈이 내 목숨을 두 번이나 살려줬잖아. 노예로 삼지 않은 것만으로도 내가 고맙지.”
칼콘의 말에 그나마 긴장이 날아갔다.
녀석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피식 웃었다.
칵톨레므 때문에 일어난 소란도 잠시.
약 5분 정도 지나자 민우가 아티펙트를 발견했다.
아티펙트는 사지가 죄다 잘려나간 녀석의 것이 분명해 보이는 팔에 꼭 쥐어져 있는 상태였다.
“권총이네요? 거기다 이거 마법 물품인가 본데요?”
총기류 아티펙트는 대부분 마법 공정을 거치기 때문에, 등급에 비해 굉장히 비싼 물건이었다.
아마 비싸게 쳐주면 억 언저리쯤은 나올 물건이리라.
“어디 보자… 베레타 권총이네. 미친 할배, 도대체 이딴 귀한 물건 어디서 쑥쑥 구해오는 거야?”
말로만 각성자 부릴 돈 없다고 하지, 아마 마음만 먹으면 F~D등급 각성자로 이뤄진 사설 병력도 갖출 수 있을 정도는 될 게 분명했다.
단지 주변 눈치가 보여서 그러지 않는 것뿐이겠지.
‘또라이 같은 양반. 파면 팔수록 신기하네.’
일단 물건을 챙기되, 민우에게 MP5 대신 D등급 베레타 권총을 쥐여줬다. 마침 같은 9mm 총기라 호환도 됐다.
“그… 석중 할배 물건인데 막 써도 돼요?”
석중할배가 신경 쓰이는지 민우가 물었다.
아마 저번 충돌을 아직 마음에 담아두는 듯했다.
“여기서 죽으면 가져다주지도 못해. 그냥 써.”
예비 탄창이 없어서 재장전이 힘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위력 하나는 절륜하니 MP5보다는 나을 게 분명했다.
“자… 그럼 다시 차로 돌아가서 다음 물건 찾자. 빨리 끝내야 집에 가지 않겠냐.”
물론 칵톨레므의 손과 발을 잘라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돌아가는 중 ‘왜 시체가 썩을 때까지 다른 짐승들이 입을 대지 않았지?’ 라는 궁금증이 솟았으나, 떨쳐버렸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생각과 달리, 첫 대면 이후 칵톨레므는 긴 시간 동안 잠잠했다.
상위 포식자인 만큼 개체 수가 적기 때문이었다.
“계속 경계해야 하나요? 이거 엄청 피곤한데….”
지루한 시간이 계속되자 민우가 불만을 토해냈다.
당연한 얘기였다.
경계를 하기 위해선 최소 1~2kg짜리 장비를 들고 언제 어디서 뭐가 튀어나오던 반응할 수 있게끔 온몸의 정신을 집중하며 걸어야 했다.
그냥 걷는 것과 다르게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니 팔을 시작으로 등, 허리, 허벅지, 종아리, 발 그 어느 하나 부담 안 가는 곳이 없다.
“편하게 걸어. 그냥 뒤지면 되지 뭐가 문제야. 아니면 나나 칼콘이 대신 죽어줄 수도 있잖아. 그럼 아싸리 좋겠다 버리고 가면 되겠다. 그렇지?”
“아… 형님, 진짜. 비꼬지 마세요.”
민우가 투덜거렸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그도 그럴게 녀석도 칵톨레므를 눈앞에서 봤기 때문에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 때문이었다.
지근거리까지 접근했는데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 말은 지금 10M~20M 거리를 두고 칵톨레므가 따라오고 있다고 한들 알아챌 방도가 없다는 얘기였다.
불안함, 초조함.
저 두 감정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고, 지치고 힘들어진 육체는 편안함을 찾게 만들었다.
없을지도 모르잖아.
편하게 있을까?
조금 정도는 쉬어도 되겠지.
내가 괜히 혼자서 날카로운 거 아닌가?
괜찮을 거야.
만약 칵톨레므가 붙어 있다면, 저렇게 긴장 풀릴 때가 습격에 제일 적합한 순간이리라.
‘더럽게 힘드네, 씨발.’
불안은 사람을 늘어지게 하는 동시에, 제일 위험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고무줄을 쉬지 않고 쭉 늘어뜨리고 있는 기분이 약 15분.
SUV에 도착했다.
그나마 차에 탈 때는 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차가 없었다면 다들 지쳐서 바닥에 쓰러져 있거나, 칵톨레므 배 속에 있을 게 분명했다.
“다음 아티펙트 얼마나 남았냐?”
“이제 200M요.”
“조금만 더 힘내보자.”
…
이번에도 오체분시 된 시체가 보였다.
저번과 다른 게 있다면 머리가 떨어져 있다는 것 정도?
시체는 깔끔했고, 짐승이나 사람이 건든 흔적은 없었다.
“음… 거리로 보니까 저 시체 안에 있는 것 같아요.”
민우가 얼굴을 찡그렸다.
반쯤 썩은 시체를 뒤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서 찾아봐. 이번에도 나하고 칼콘이 경계하지.”
빈토레즈를 한 손으로 들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빛 마법을 영창했다.
우응 -
마치 라이트 돌리는 경계병 마냥, 빛을 여기저기 비춰가며 칵톨레므를 확인했다.
… 사각, 사각, 사각.
얼마나 지났을까?
귀가 간질거리는 느낌과 함께 소리가 들렸다.
고민할 것 없이 바로 소리가 난 방향으로 발포했다.
기습을 당하는 경험은 한 번으로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사람이나 미아라면?
그딴 거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여기서 길 잃었으면 얼마 못 가서 죽을 목숨이고, 강도면 어차피 죽여야 했다.
일단 공격하고 보는 게 신상에 이로웠다.
푝!
바람 갈리는 소리와 함께 탄환이 뿜어져 나왔다.
총소리에 민우와 가벡이 움찔거리며 수색을 중단, 총구가 향한 방향을 쳐다봤다.
그곳엔 사람 허리까지는 거뜬히 올 법한 사마귀가 쓰러져 있었다.
“사마귀?”
푝, 푝, 푝.
김이 새버렸지만, 그렇다고 경계를 늦출 수도 없는 상황.
빠르게 확인사살을 하고는 다시 주변을 훑었다.
“마저 찾아. 빠르게 찾고 이탈한다.”
“예, 형님.”
2번째 아티펙트는 망토였다.
프리(free)가 아닌 플리(Flee) 무브먼트라고 적혀있는 짝퉁 브랜드로, D등급 아티펙트였다.
꼴에 짝퉁도 아티펙트라고, 성능에는 하자가 전혀 없었다.
‘끝 부분이 뜯어져 있지만, 수선하면 쓸 수 있겠군.’
“챙겨. 이탈한다.”
아티펙트를 챙겨 귀환했다.
☆ ☆ ☆
차에 도착하자마자 천장에 동작 감지 터렛을 올려놨다.
쉬는 사이 습격당할 걸 우려해서였다.
“씨발. 이래서 칵톨레므 사냥 잘 안 다니는 거였구만.”
중국 개척지 주변에 그나마 가성비 좋은 사냥감이 칵톨레므라 그렇지, 실상은 굉장히 사냥하기 어려운 짐승이었다.
한 마리를 사냥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사람 목숨 던져가며 잡아야 하는 것은 물론, 이동 중 항시 경계해야 하므로 사람 미치기도 딱 좋은 환경이었다.
이에 국제 헌팅 협회(IHA, 이하)는 칵톨레므 사냥 장비로 아군 식별이 가능한 모바일 터렛을 2개 이상 보유할 것을 권장했지만, 그딴 비싼 물건 살 돈 있으면 애초에 칵톨레므 사냥을 올 리가 없었다.
차라리 그 터렛 들고 다른 사냥감을 사냥하고 말지.
“비겁한 짐승이군. 아주 비겁해.”
가벡은 기습을 하는 칵톨레므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알겠으니까 밥이나 먹어라. 신경 곤두세우고 있으니까 허기가 엄청나게 빨리 지네.”
식사는 각자 챙겨 온 도시락으로 했다.
민우는 볶음밥을 퍼먹었고, 칼콘은 개사료를, 가벡은 통째로 구운 닭고기를 씹어먹었다.
이에 지훈도 짐에서 주섬주섬 식사를 꺼냈다.
“그건 뭐야?”
“고기만두.”
“나 하나만 먹어봐도 돼?”
“안 돼, 새끼야. 네꺼 먹어.”
식사하며 약 30분 정도 쉬었다. 주변에 칵톨레므가 있지는 않았는지 터렛이 발포되는 일은 없었다.
미끼가 일행이 쉬는 틈을 타 도망가려 했다.
이에 민우가 리모콘으로 터렛을 끄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 하다는 얘기를 들려주자, 미끼는 서글프게 울먹였다.
“밥 먹는데 시끄럽군.”
가벡의 말에 칼콘이 주먹을 들어 보였다.
미끼가 이를 꽉 물고 울음을 참았다.
“새끼들아, 사람이 짐승도 아니고. 그만해라.”
그 모습에 동정심이 일어 먹던 만두를 몇 개 건넸다.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모습에서 묘한 동정심이 일었다.
아마 포탈이 열리지 않았다면, 좋은 집에서 태어났다면, 학교에서 공부나 하고 있을 나이였겠지.
‘쯧, 불쌍한 새끼.’
미끼는 만두를 허겁지겁 먹고는 조심스럽게 ‘더 없나요?’ 하는 눈빛을 보내왔다. 이에 짐을 뒤적거려 초코바를 하나 더 건네줬다.
과자 까먹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동정해 봐야 상황상 놓아줄 수 없는 상태.
괜한 감정소모를 했다간 본인만 피곤해진다는 걸 알았기에, 딱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식용으로 키우는 닭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듯, 도구로 구입한 인간에게 과한 동정심을 가질 필요는 없기 때문이었다.
‘쯧, 괜한 생각을….’
이블 포인트 때문일까?
과거였다면 아무런 생각 없이 질질 끌고 다니다 버릴 터였지만, 근래에 따라 이런 생각이 잦아졌다.
죽이지 말까?
도와주고 갈까?
좋게 해결할 수 없을까?
꼭 이런 방법을 써야 하는 걸까?
생각이 깊어지려고 하자 머리를 휘저어 털어버렸다.
본디 맹수는 피포식자에게 공감하지 않는 법이었다. 식사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다가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지 않던가.
이렇듯 미친 세상에서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단단히 무장해야만 살 수 있었다.
마음을 정리하고 앉아있으니, 미끼가 툭툭 두드렸다.
“Give me more food, please. (음식 좀 더 주세요.)”
지훈은 미끼를 멍하니 지켜보다가 말했다.
“Shut up, motherfucker. I'm not your feeder (닥쳐, 개새끼야. 내가 네 밥 챙겨주는 사람이냐?)”
“I'm so hungry, sir. please… (배가 고파요. 제발….)”
아마 곧 죽을 놈이라 생각했는지, 상점에 있을 때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모양이었다.
기껏해야 날벌레나 파리 구더기나 주워 먹었겠지.
사정은 딱했으나 무시하기로 했다.
이 세상은 미쳤고,
미친 사람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음식 대신 주먹을 줬다.
퍽 소리와 함께 미끼가 쓰러져 엉엉 울었다.
칼콘은 그 모습을 보고 깔깔댔지만, 지훈은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 이블 포인트가 1 상승했습니다. 현재 포인트는 60입니다. 악성향까지 16포인트 남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호인은 못 될랑갑다.’
조용히 울리는 알람을 배경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맛이 썼지만, 묵묵히 빨았다.
가끔은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 ☆ ☆
3번째 아티펙트는 나무 위에 매달려 있었다.
“도대체 뭐 한다고 저기까지 올라갔을까요?”
나무에는 각성자가 급히 올라가려고 했던 흔적과 함께, 짐승의 손톱자국이 마치 크레이터처럼 남아있었다.
“도망갔군.”
정답이었다.
아마 칵톨레므 포함 위험한 짐승의 공격을 피하고자 나무를 탄 것 같았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 증거로 거대한 나무 위에 시체가 걸려 있었다.
효수라도 된 것 마냥, 팔다리가 하나씩 잘린 체 언제 찢어질지 모르는 옷에 매달린 상태였다.
생명 연장의 꿈이 처참히 짓밟힌 모습. 퍽 불쌍해 보였으나, 어찌 됐든 죽은 놈은 죽은 거고, 챙길 놈은 챙겨야 했다.
“자… 그럼 저거 어쩔래?”
문제는 저 위에 있는 시체를 어떻게 끌어 내리냐였다.
머리를 맞대본 결과 가벡이 나무를 타기로 했다.
훅, 훅.
비적비적.
꽈악 - 꽉.
가벡은 능숙한 솜씨로 칼날초의 잎을 제거한 뒤, 줄기를 엮어 약 1M 정도 되는 줄을 만들었다.
이후 그 줄을 나무를 감싸게끔 만든 뒤, 양 손바닥에 감고 줄을 버팀목 삼아 올라가기 시작했다.
스윽, 스윽, 스윽.
그 모습이 마치 애벌레가 꿈틀거리며 나무 위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확실히 산악지형 출신이라 그런가 잘 타네.”
“지훈은 나무 탈 줄 몰라?”
“글쎄다… 담 넘는 건 좀 한다마는, 나무는 모르겠다.”
나무도 뒷집 감나무쯤 돼야 올라갈 엄두가 나는 법. 초심자가 건물 높이만큼 자란 나무를 타기는 어려웠다.
휘이이익 - 퍼억!
10분쯤 기다리자 나무 위에서 시체가 떨어졌다.
“아티펙트 여기 있냐?”
“GPS 상으로는요.”
“찾아봐.”
민우가 토할 것 같다는 표정으로 시체를 뒤적이다 이내 소방도끼로 보이는 물건을 집었다.
“그거라고? 정확해?”
D등급 아티펙트라면 거의 헌팅용. 일상 제품으로 보이는 소방도끼가 D등급이라는 말이 나오자 궁금증이 솟았다.
“맞는 것 같은데요?”
민우가 도끼를 홱 집어 던지자 GPS 감지기에 찍혀있던 초록색 점이 개미 똥만큼 움직였다.
맞았다는 뜻이다.
저 물건의 정체는 바로 소방서에서 보호를 위해 강화 격벽이 필요한 건물(군부대, 벙커, 안전가옥, 연구시설, 은행 등)에 돌입 시 사용하는 도끼였다.
보통 시중에는 나돌아다닐 수 없는 물건이다.
속사정을 까보면 대충 이러했다…
은퇴한 소방대원이 퇴직금이 잘렸다는 얘기에 화가 나, 퇴직금 대신 소방도끼를 챙겨버린 것.
그 물건이 흐르고 흘러 석중 손아귀까지 들어오고, 석중이 홍궈 일행에게 빌려줬으며, 결과적으로 사용자가 사망해서 지훈이 되찾게 됐다.
“독특한 모양이네. 공포영화 소품으로 쓰면 딱 맞겠네. 챙겨라, 돌아가자.”
소방도끼를 획득한 후 다시 차량으로 귀환했다.
[획득 아티펙트 - D등급 3개(권총, 망토, 도끼)]
[남은 아티펙트 - D등급 2개, C등급 2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