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114화 (114/173)

<-- 군상 그리고 정글. -->

호텔로 돌아오니 민우가 잠에서 깨 있었다.

어디 다녀왔느냐는 물음에 개인적인 일이라 답한 후 바로 장비를 살펴봤다.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빈토레즈를 시작으로, 업을 짊어지는 자, 습작 954번, C등급 알케로스 체인 셔츠, E등급 고공 점프 부츠를 챙겼다.

그 외 의복으로는 뒷골목 시절부터 줄기차게 입던 갈색 가죽 재킷과 물 빠진 청바지를 입었다.

겉모습만 보기엔 어디 제3국 용병 같은 차림새였지만, 딱히 신경 쓰는 사람도 없었다.

포탈 열리기 전에야 케주얼한 옷차림과 총기류 조합이 어색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개나 소나 헌터하는 시대였다.

도리어 군복, 공격대 유니폼 같은 물건을 입는 사람들이 더 눈에 띄었다.

“자 다들 준비 끝났냐?”

짬밥을 괜히 먹은 건 아니었는지, 지훈이 제일 먼저 무장을 끝내곤 동료들을 훑어봤다.

[장비]

[지훈]

무기.

빈토레즈 (9x39mm OTN탄)

업을 짊어지는 자 (B+등급, 얇은 외날 곡도)

글록 (9mm 일반탄환)

방어구.

습작 954번 (B등급, 마법 물품)

알케로스 체인셔츠 (C등급)

고공 점프 부츠 (E등급, 마법 물품)

재킷, 청바지 (일반)

털모자 (일반)

기타.

휴대전화

[칼콘]

무기.

왼쪽 팔 (B등급, 마법 물품)

왼쪽 다리 (B등급, 마법 물품)

두꺼운 쇠사슬 (일반 물품)

방어구.

묵색 비늘갑옷 (D등급)

가시 방패 (D등급, 대형)

가시 박힌 그리브 (일반)

[가벡]

무기.

오류 기기 파괴용 곤봉 (B등급)

95식 소총 (5.8mm 일반탄 80발, 노획 물품)

방어구.

거친 가죽 갑옷 (일반)

운동화 (일반)

운동복 하의 (일반)

[민우]

무기.

MP5 (9mm OTN탄)

방어구.

경량 방탄모 (D등급, 마법 물품)

경략 방탄복 (D등급, 마법 물품)

경량 워커 (F등급, 마법 물품)

보호경 (일반)

기타.

시야 교정용 콘택트렌즈 (일반)

마력 감지 안경

GPS 감지기

[공용]

식수 및 식량 2일 분량.

침낭 3개.

민우가 눈을 부비적거렸다.

“근데 콘택트 렌즈는 왜 가져 오라고 하셨어요?”

“껴봐.”

마력감지 안경을 건네줬다.

여태까진 시연이 침묵했기 때문에 쓰지 않았지만, 최근에 ‘써도 돼.’ 라는 확답을 받았기에 가져온 물건이었다.

“이게 뭐예요?”

“마력 감지 안경이다. 뭐 좀 보이냐?”

“네, 보여요. 형님 장갑이랑 신발이 반짝거리네요? 나머지는 그냥 아무런 반응 없고요.”

갑옷이 아무리 C등급 아티펙트라 할지라도, 마법 가공이 들어가지 않으면 마력을 띌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업을 짊어지는 자는 대단한 물건이라 할 수 있었다.

단순 원재료 가공만으로 B+.

FS들의 기술력을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마법 물품이라서 그래. 잘 기억해 둬. 정글 속에 있어도 구분해 낼 수 있어야 해야 한다.”

“음… 어렵겠지만, 노력은 해 볼게요.”

일행은 SUV를 한 대 렌트해서 탑승했다. 칼날 정글은 지형이 험했기 때문에 벤츠를 끌고 갈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문득 칼콘이 물었다.

“지훈, 이번엔 심박 감지기 안 써?”

심박 감지기.

페커리 사냥 때 썼던 물건으로, 심장 박동을 감지해 적의 위치를 파악해 주는 물건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제 아무리 보호색을 띤다고 해도 심장 박동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꽤 날카로운 질문.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긴 세드였다.

상식 따위가 제대로 먹힐 리 없었다.

“쟤네 은신 시작하면, 신진대사 느려져서 심박도 감소한다. 그래서 감지 자체가 잘 되질 않아. 10초에 한 번 잡힐까 말까인데, 그 사이에 기습당하면?”

의미가 없다. 도리어 관측을 하기 위한 인력이 하나 비기 때문에 손해라도 봐야 옳았다.

“그렇구나. 생각보다 까다로운 녀석이네.”

“잘 알아둬. 칵톨레므는 숨어 있다가 일격에 사냥감의 숨통을 끊는 녀석이야. 기습 딱 한 번만 막으면 된다.”

“인내심 싸움이 되겠군.”

가벡은 귀찮겠다는 듯 킁 소리를 냈다.

“아마 엄청 피곤한 싸움이 될 거다.”

서남쪽 출구에 가까워지자, 칵톨레므 사냥 붐에 이끌리듯 만들어진 헌터 용품 거리가 펼쳐졌다.

딱 봐도 헌터로 보이는 사람들이 득실거렸다.

누군가는 사냥을 끝내고 정산을, 누군가는 커다란 한탕을 노리며 사냥을, 또 누군가는 그런 헌터들의 주머니를 털기 위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어차피 초입부에서 구할 물건 따윈 없었기에 풍경을 무시하고 바로 심층부로 향했다.

이후 무기상에서 동작 감지 센서를 이용한 무인 터렛을 하나, 뒷골목에서 미끼 하나를 구입했다.

뭐… 말이 미끼지, 실상은 사람이었다.

“I, I don't want die. (죽고 싶지 않아요.)”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애였는데, 상황을 들어보니 까트를 운반하다 걸린 모양이었다.

마약에 대해 엄격한 중국 정부는 바로 사형을 때렸고, 교도소로 이송되던 사이 모종의 커넥션을 통해 칵톨레므 사냥용 미끼로 빠진 듯싶었다.

“지훈, 얘 자꾸 뭐라고 지껄여. 어떡해?”

“좀 조용히 시켜 봐. 운전하는 데 정신 사납다.”

뻑!

말 떨어지기 무섭게 칼콘이 미끼를 때렸다.

미끼가 우는 소리와 함께 피 섞인 어금니를 뱉어냈다.

“아니, 씨발. 왜 패냐. 말로 해도 되잖아, 새끼야.”

“어차피 죽을 놈이잖아?”

동료고, 친구였지만 이럴 때는 정말 종족 차이를 심하게 느끼는 지훈이었다.

사실 지훈은 사냥에 사람을 쓴다는 게 달갑지 않았다.

보통 칵톨레므 사냥을 할 경우, 원거리에서 개폐가 가능한 우리에 사람을 묶어놓은 뒤… 칵톨레므가 미끼를 먹는 사이 우리를 폐쇄하고 원거리에서 쏴 죽인다.

물론 지훈은 칵톨레므 사냥이 주목표가 아니라 아티펙트를 찾아오는 게 목표였기에 저런 사냥은 할 생각이 없었다.

근데 왜 미끼를 샀을까?

바로 안전 때문이었다.

‘더러워도 어쩔 수 없다. 그냥 가기엔 너무 위험해.’

칵톨레므가 1기만 붙어있으면 상관이 없었지만, 3기 이상이면 얘기가 달랐다.

누군가 목숨을 잃을 확률이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그런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미끼를 산 것이었다.

위험 상황 시 미끼를 놓치듯 풀어준다면?

당연히 미끼는 달음박질을 칠 테고, 칵톨레므는 일제히 무리에서 떨어진 약한 개체를 쫓아갈 게 분명했다.

비록 미끼는 죽겠지만 그로 인해 일행은 안전하겠지.

참 씁쓸한 선택지가 아닐 수 없었다.

“우민우, 너 영어 좀 하지?”

“예, 예… 그냥 조금 해요.”

“사냥용 미끼가 아니라 안전용으로 산 거니까, 별일 없으면 집에 보내준다고 잘 따라다니라고 말해.”

민우는 말을 몇 번 더듬긴 했지만, 이내 지훈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해 줬다.

미끼는 울먹거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10분 쯤 더 이동하니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저게 뭐지? 칵톨레므인가.”

가벡의 물음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이족보행에, 기괴하게 틀어진 역관절 다리, 그리고 말뚝마냥 뾰족한 각뿔형태 대가리. 그리고 무엇보다 손에 돋아난 흉측한 검은 손톱이 인상적인 짐승.

칵톨레므였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으나, 그 주변에는 BOSA 연구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목적은 알 수 없었으나 칵톨레므의 머리에 이상한 헬멧이 씌워져 있는 걸 봤을 때 연구가 진행 중인 모양이었다.

딸칵, 딸칵.

한 연구원이 게임기 같은 물건을 조작거리자 칵톨레므의 색깔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정확하게는 주변 환경에 녹아들어 갔다고 봐야 옳았지만,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할 정도였다.

딸깍, 딸깍.

연구원이 다시 한 번 조작하자, 칵톨레므가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뿐만 아니라, 마치 게임 캐릭터 마냥 부자연스러운 움직임도 몇 번 보였다.

저게 뭔가 싶기도 잠시.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내용이 있었다.

‘원격 조종?’

술 먹다 귀동냥으로 BOSA가 생물병기를 연구하고 있다고 듣긴 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신선한 모습에 ‘저거 괜찮겠네.’ 하고 있자니, 머지않아 엘프 시위대와 마주쳤다.

약 10명 남짓했는데 다들 화가 난 모습이었다.

- 생태계 파괴하는 BOSA는 각성하라.

- 동물 학대하는 BOSA, 과연 옳은 일을 하고 있는가?

- 자연을 훼손하지 말고 복종하라.

- 섭리를 거스르는 자는 응징을 받을 것이다.

생태계 및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사랑하는 엘프로서는 저런 실험을 용납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지랄을 해라, 지랄을.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 동물이라고? 그렇게 동물 좋아하면 앞마당에 한 마리 키우지 그래.’

그딴 짓 했다가는 당연히 사단이 난다.

아무리 동물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자나 호랑이와는 같이 살고 싶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였다.

“헌터 여러분! 더 이상 칵톨레므를 사냥하지 마십시오! 최근 정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정글의 주인이 노했을 수 있습니다! 피바람이 불어올 것입니다!”

엘프 시위대 선봉이 소리를 질렀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지훈 역시 동감이었기에 시위대를 무시하고 지나쳤다.

중국 측에서 칵톨레므 사냥을 규제하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었기에, 아무런 제지 없이 개척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제부터 강도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조심들 해라.”

운전석 옆에 뉘어 놨던 빈토레즈를 민우에게 건네줬다.

“이상한 놈이 다가온다 싶으면 일단 겨누고, 여차 싶으면 바로 쏴. 가벡 너도 민우가 사격하면 그냥 드르륵 갈겨.”

“네, 형님.”

“알겠다.”

SUV가 비포장도로를 질주했다.

덜컹, 덜컹, 덜컹.

불편한 시간이 약 1시간.

운이 좋았는지 귀찮은 일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칼날 정글의 첫인상은 만드라고라가 있던 숲과 비슷했다.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은 이름 모를 나무가 햇빛을 가려 내부가 어두웠고, 땅 주변에는 잎이 칼처럼 날카로운 칼날초가 잔뜩 자라 있다.

다행히 정글 초입은 유동 인구가 많은 까닭에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길이 뚫려있었다.

부르릉 -

SUV가 칼날 정글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그늘이 지는 모습이 마치 밤과 낮 그리고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를 지나는 것 같이 기분이 이상했다.

꼭 본격적인 헌팅 시작이라는 신호 같았다.

철컥, 철컥!

지훈만 그랬던 건 아니었는지 일행 모두 정글에 들어서자 각자 무기를 쥐고 창밖을 주시했다.

자동차의 이동속도가 칵톡레므보다 빨랐기에 큰 위험은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GPS 반응 있냐?”

“아직 없어요. 아예 심층부까지 들어가 볼까요?”

고민됐다.

초입부야 들락날락하는 사람이 많아서 차가 다닐 수 있는 큰길이 있었지만, 심층부는 아니었다.

“일단 길 따라서 좀 더 가보고.”

사람의 손길이 단 한 점도 닿아있지 않은 말 그대로의 야생 정글이라는 뜻이었다. 섣불리 들어갔다가는 칼톨레므 밥이 될 수도 있었다.

‘아이 씨발 줄 거면 장거리 감지 가능한 물건 주던가, 이딴 물건 쥐어주고 뭘 하라는 건데?’

속으로 짜증이 솟았다.

받을 때는 몰랐지만, 까고 보니 지훈이 받은 물건은 근거리(5KM 이내)만 감지 가능한 물건이었던 것.

아티펙트가 흩어진 사실을 파악한 걸 봤을 때 석중은 초장거리 감지가 가능한 GPS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지만, 비싼 물건이라 내어주지 않은 모양이었다.

‘빌어먹을 너구리 같은 노인네. 일 잘하다 꼭 이렇게 한 번씩 엿을 처먹이네.’

속으로 분을 삭였다.

넓디넓은 칼날 정글에서 5KM짜리 GPS 감지기 들고 아티펙트 찾기? 보물찾기는 개뿔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기에 가까웠다.

꽤 고생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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