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113화 (113/173)

<-- 이걸 어디다 어떻게 넣는다고? -->

장씨는 얼굴을 슬쩍 찌푸렸다가 폈다.

“주괴로군. 아주 작은.”

현재 지훈이 가진 AMP는 손가락 2개 정도 굵기였다. 반면 검 하나를 만들 때 보통 저런 주괴가 10개는 더 필요하다.

화살촉이나 총알 같은 투사체의 탄두를 만들 수도 있었지만, OTN, VGC, MN, CRN 네 가지 금속 중 구릿빛을 띄고 있는 물건은 없었다.

한 마디로 뭘 할지 감이 안 온다는 말이었다.

“이걸 내 몸에 최대한 밀착시켜야 하오.”

정철수 교수는 AMP는 사용자와 접촉 면적이 넓으면 넓을수록 더 큰 효과를 낸다고 말했다.

반면 이 사실을 모르는 장씨 입장에서는 무슨 헛소린가 싶을 따름이었다.

“그게 무슨 금속인데?”

“신금속. 이름은 나도 모르오.”

사실 AMP의 이름과 정보, 효능까지 전부 알고 있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쓸 대 없는 주둥이질 해서 손해 볼 필요는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언제 발견된 건데?”

“한 달 안팎. 우연히 구했지.”

“잠깐, 그럼 녹는점이나 강도, 탄성 다 모른다는 얘긴데 그걸 어떻게 만지라는 거야?”

아무리 주괴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그 금속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으면 가공할 수 없었다.

주조 과정에서 불순물이 섞일 수도 있었고, 담금질 과정에서 균열이 생기거나 금속이 깨져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몇 번 때려보고, 작살을 내 보면 감으로 특성을 알 수 있긴 하겠지만, 귀한 금속으로 연습할 수도 없는 노릇.

까닭에 장씨는 거절하려 했지만, 지훈이 붙잡았다.

“모두 알고 있으니 걱정 마쇼.”

- 녹는점, 강도, 탄성 전부 OTN이랑 비슷합니다.

정철수 교수는 분명 저렇게 얘기했었다.

오스테나이트, OTN.

이빨에 박는 임플란트와 같은 이름을 쓰는 금속.

사실 OTN은 그렇게 좋은 금속은 아니었다.

동급 금속인 베릴-크롬나이트(BCN)만 해도 OTN보다 강도와 탄성이 높았지만… 요는 바로 가공성이었다.

OTN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가공이 쉬웠다.

이는 곧 AMP 역시 가공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정확한 온도는 모르고?”

“그거 알면 내가 연구원 하고 있지, 뭐한다고 여기까지 와서 이 지랄 하고 있겠소?”

장씨는 끙 소리를 냈지만, 이해하는 듯 했다.

비전공자에게 전문지식을 물어봐야 제대로 된 답을 알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좋아. 이걸 몸에 최대한 밀착시켜야 한다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씨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지훈을 위아래로 훑었다.

“키랑 몸무게 몇인가?”

“177cm에 90kg.”

“이런 젠장, 빌어먹을 각성자.”

보통 각성자는 근밀도 때문에 일반인보다 무게가 더 많이 나갔다. 까닭에 키와 몸무게로 체형을 구분하기 쉬웠다.

장씨는 투덜거리며 줄자를 가져왔다.

“사이즈 재 봐. 가슴, 팔뚝, 손목, 발목, 손가락.”

AMP를 어디에 붙일지 결정하는 절차 같았다.

지훈이 칼콘의 도움을 받아 사이즈를 재고 있는 사이, 장씨는 AMP 주괴에 쇠톱을 가져다댔다.

“아무리 OTN이랑 비슷하다지만, 쇠톱으로 잘리겠소?”

“그야 보면 알겠지.”

그극, 그그극, 그극!

예상과 달리 AMP는 너무나도 쉽게 잘려나갔다.

아마 아티팩트 내지는 신금속을 가공해 만든 연장이리라.

이후 장씨는 금속의 특성 파악을 위해 작게 잘라 놓은 AMP 샘플을 녹여보기도, 때려보기도 했다.

부그르.

깡! 깡! 깡!

그 사이 지훈은 사이즈를 다 재고는 알려줬다.

“흐음… 생긴 거랑 다르게 은근히 덩치가 있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거 깨지면 안 되는 물품이지?”

당연했다.

방어구 만들 거면 굳이 좋은 금속 다 내버려 두고, 뭐한다고 OTN강도 밖에 안하는 물건으로 만든단 말인가?

“얇게 펴서 내갑으로 만들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덩치가 커서 어렵겠어. 재료가 부족해.”

“그건 나도 사양이오. 갑옷을 껴입었다간 둔해지거든.”

속도 위주의 전투를 하는 지훈에게 있어 감속은 곧 전투력 반 토막이오, 사망으로 향하는 지름길이었다.

“그럼 장갑으로 해야겠군.”

그럴싸한 선택이었지만 역시나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지훈에게는 이미 B등급의 장갑이 있기 때문이었다.

“팔찌나 발찌는 어떤가?”

꽉 끼게 만들 수도 없거니와, 그렇게 만들어도 피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역효과다.

“피어싱은 어떤가.”

“피어싱? 설마 그 계집애들 끼는 그거 말하는 거요?”

근래에 들어 남자들도 끼기는 했지만 소수였다.

“그래. 귀, 젖, 배, 심지어 물건에도 박을 수 있지.”

아무래도 살에 닿는 면적이 많다보니 효과는 좋겠지만… 불쾌함이 앞섰기 때문에 거절했다.

“개소리 찍 싸는 거 들으려고 먼 길 온 거 아니니까, 적당히 하쇼. 듣기 거북하군.”

“농담은 아니었다만, 어쨌든 싫다면 다른 걸 찾아야겠군. 반지는 어떤가?”

반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접촉면은 좁겠지만, 밀착이 좋다. 아마 타 장비에 비해 능력의 증폭이 일정하다는 장점이 있을 게 분명했다.

“그나마 제일 괜찮긴 한데, 반지 만들어 봐야 저거 반이나 쓰겠소?”

“열손가락에 옥가락지 마냥 전부 끼워도 못 쓰지.”

한숨을 내뱉었다.

일단 반지는 두껍게 2개 정도 만들기로 하고, 이후 남은 AMP를 어떻게 쓸까 이래저래 토론하기도 잠시.

문득 칼콘과 가벡이 끼어들었다.

“그냥 몸 안에 넣으면 안 돼?”

“나도 그 편이 좋아 보이는군.”

금속을 몸 안에 넣는다니?

뭔 개소리 하냐는 듯 쳐다봐줬다.

“중금속 중독으로 누굴 조지려고 그러냐.”

“아냐. 우리 종족만 해도 Orckishtone(오키쉬톤, 오크의 독특한 제련법으로 나오는 금속)을 넣는다구?”

오크나 버그베어 같은 경우 부족에 따라 다르긴 했지만, 몇몇은 나무나 철을 몸 안에 박아 넣는 경우가 있었다.

이 얘기에 장씨가 혹했는지 거들기 시작했다.

“보면 남자도 성적인 용도로 구슬 박아 넣지 않던가? 여자도 구리 같은 거 넣어서 피임하기도 하고. 딱히 나쁜 방법은 아닐 것 같은데 말이지.”

“아니 무슨 장비 만드는 게 오입질도 아니고, 예를 들어도 그딴 걸로 들어야겠소? 그리고 중금속 중독은 어쩌고?”

“여태 그거 쓰면서 어디 아프거나 하는 거 있었나?”

“전혀.”

아프기는커녕, 간지럽거나 알러지 반응도 없었다.

“뭘 고민하나. 그냥 넣어.”

“그게 좌약도 아니고 쑥쑥 들어가겠소? 그래, 내가 백번 양보해서 넣는다고 칩시다. 어디에 넣을 건데?”

장씨는 지훈을 위아래로 훑고는 쓱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서 미친 세상에서만 볼 수 있는 광기가 스쳤다.

“넣을 곳이야 많지. 원래 있던 뼈를 갈아내고, 거기에 집어넣어도 되고, 살을 파내고 우겨넣어도 되고, 아예 의수를 만들어도 좋아.”

장씨는 특히 의수라는 부분에 미친 사람처럼 힘을 줬다.

그 모습에서 지훈은 한 가지 사실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밖에 있는 MES가 저 녀석 작품이었나.’

실력 좋은 대장장이가 직접 만든 MES.

힘으로 부딪쳤다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였다.

‘그치, 구린 거 하나 없는 놈이 뒷골목에 있을 리가. 이놈도 어디 하나 미친 또라이 새끼군.’

사실 장씨는 양지에서 사업을 하던 대장장이였으나,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그 입지를 잃고 뒷골목으로 숨었다.

그 사건은 바로 토막 살인이었다.

MES를 만들어 보겠다고, 싫다는 사람 강제로 끓어다가 팔 다리를 잘라내 버린 것…

- 아파? 참아. 내가 더 좋은 팔과 다리를 달아 줄께!

이렇듯 장씨는 의수 및 인체 가공에 엄청난 집착을 보였다. 아마 숨겨뒀던 그 욕망이 칼콘의 말로인해 터져 나온 것이리라.

“안전한 거요?”

“나야 금속 특성을 모르니까 알 수 없지. 하지만 알러지 반응 없는 거 봤을 때 안전해 보이는군.”

결국 선택의 문제였다.

더 고민하던가, 일단 집어넣어 보던가.

사실 더 고민하며 사용법을 알아내는 게 좋았지만, 안타깝게도 지훈에게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젠장, 쫓기는 기분이군.’

어쩔 수 없이 집어넣어 보자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지훈의 단단한 피부를 뚫기 위해서는 실력 좋은 외과의사와 아티펙트로 만든 강력한 메스가 필요하겠지만, 조건만 충족된다면 언제든지 수술을 할 수 있었다.

재생 변이가 있으니 후유증 및 도로 뽑을 경우의 피해 역시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다.

‘넣자. 넣고 보자. 문제 생기면 뽑으면 그만이다.’

“그럼 넣는 쪽으로 알아보도록 합시다. 반지 2개랑 몸 안에 넣을 가공물로 하나. 할 수 있겠소?”

의심스럽게 쳐다보자, 장씨가 씩 미소를 지었다.

“내 이름 걸고 하는데 그까짓 거 하나 못하려고.”

깡, 깡, 깡!

키이이이이잉!

브스스스스!

브르르륵, 브륵! 브르르륵!

버석, 버석, 버석, 버석.

소문만큼 실력도 좋았는지, 반지 2개를 만드는 데 1시간 밖에 걸리질 않았다.

“세공은 다른 녀석에게 해. 나는 그런 거 안 한다.”

“어차피 멋 부리려고 차는 거 아니니 상관없소.”

눈으로 슥 둘러봐도 흠잡을 곳이 하나도 없었다.

현재 권능의 반지는 오른쪽 약지에 껴놓은 상태였기에, AMP 반지를 각각 왼손 약지와 검지에 끼웠다.

우으으으응 -

손가락에 끼우자, 반지가 작게 부르르 떨었다.

잘 처리됐다는 증거였다.

‘마음에 드는 군.’

반지를 만들기 위해 소모한 AMP는 약 1/5. 이제 남은 부분을 가공할 차례였다. 다 되길 기다리고 있으려니, 장씨가 픽 웃으며 축객령을 내렸다.

“내가 죽이는 녀석으로 만들 거라서, 시간이 좀 오래 걸릴 거야. 글피 쯤 다시 와. 그리고 주문도 밀려서 이것만 붙잡고 있을 수 없다고.”

AMP를 빼돌리려는 생각이 아닐까 싶었지만, 그만뒀다.

어차피 거처를 알고 있는 상태였거니와, 장씨는 지금 자기가 만지는 금속의 이름과 효능 그 무엇도 몰랐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신금속은 발견 직후에는 가격이 그렇게 비싸지도 않았다.

탄두나 장비에 쓰인다면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지겠지만, 생활용품이나 기타 특수 목적으로 쓰일 경우 가격이 평가절하 되기 때문이었다.

‘빼돌릴 가능성도 적거니와, 빼돌린다고 해봐야 금방 되찾을 수 있을 거다. 조금 귀찮기는 하겠지만 말이지.’

MES가 거슬리긴 했지만, 그래봐야 저 녀석 혼자였다.

지금이야 비무장 상태라 이기기 어렵겠지마는 방어구에 총폭탄류를 모조리 들고 온다면?

손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

상황 판단이 끝났기에 미련 없이 일어섰다.

“여기, 선금 원화로 500이오. 끝나면 500더 드리지.”

“그래, 그래. 놓고 가라고.”

장씨는 돈에는 별 관심도 없다는 듯 픽 웃고는 다시 금속을 만지작거렸다.

밖으로 나오니 칼콘이 작게 하품을 했다.

아무래도 의리상 따라오긴 했어도, 본인 일이 아니니 기다리는 내내 지루했던 모양이다.

“이제 뭐할 거야?”

“뭐하긴. 조금 쉬었다가 바로 칵톨레므 사냥 나가야지.”

지루한 표정도 잠시.

칼콘과 가벡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입에 미소를 드리웠다.

“그것 참 좋은 소식이군.”

“나 칵톨레므 고기 먹고 싶어. 어떤 맛일까?”

알 수는 없었지만, 식용으로 유통되지 않는 걸 봤을 때 유독하거나 맛이 더럽게 없거나 둘 중 하나였다.

돌아가는 길에 반쯤 헐벗은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도와달라고 말했지만 무시했다.

“안 도와줘?”

최근 사람 좀 구하고 다녔던 이유에서였을까?

칼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저거 미끼다.”

“흐음?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물었던 칼콘 말고, 가벡이 끼어들어 물었다. 아마 덫을 좋아하다 보니 저런 형태의 미끼가 신기했던 모양이다.

“여자 옷이 찢어져 있다면 강간하려고 했다는 얘기인데, 도대체 어느 누가 옷만 찢고 얼굴을 내버려 둬?”

굉장히 더러운 얘기였지만, 사실이 그랬다.

보통 성범죄를 하기 위해서는 여자를 ‘제압’해야 했다. 저항하는 상대를 덮치기는 어렵기 때문이었다.

“아마 진짜 피해자였다면 피를 흘리고 있었거나, 얼굴이 잔뜩 부어있었을 거다.”

“으음? 닭도 껍질 먼저 벗겨먹는 놈이 있잖아. 그런 녀석이면 어쩌려고?”

칼콘이 끈질기게 물어왔다.

“그럼 그 년이 재수가 없었던 거지. 내 알 바 뭐냐?”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이에 칼콘은 픽 웃음을 터트렸다.

“지훈답네.”

“시끄러워, 새끼야.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칵톨레므를 어떻게 사냥해야 좋을지나 생각해 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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