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 그냥 좀 들여보내 주지? -->
아무리 약도를 받았다지만,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뒷골목을 헤집고 다니는 건 퍽 고역이었다.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아?”
칼콘이 킁 소리를 내며 뒤를 돌아봤다.
뒤에는 열 살배기 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쫓아오고 있었다. 슬쩍 쳐다보니 아이가 서투른 미소와 함께 어색한 영어를 내뱉었다.
“I can help! Give me some money! (돈을 주면 내가 안내해 줄 수 있어요!)“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하긴 이쪽은 딱 봐도 위험한 냄새 풀풀 나는 이방인이었다. 멍청한 녀석 말고는 습격할 생각을 하지 않겠지.
예컨대 코끼리로 보면 쉬웠다.
크고, 고기도 많고, 상아도 비싸다. 하지만 숙련된 사냥꾼이 아니고서야 함부로 건들지 않는다. 섣불리 덤볐다간 손쉽게 밟혀죽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바보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용감하던가 둘 중 하나리라.
물론 그 어느 쪽이던 죽는 건 매한가지겠지만 말이다.
“… … … …!”
아이를 보는 사이 삼인조 무장 강도가 휙 튀어나왔다.
손에는 QBZ-95(중국군 제식소총, 한국명 95식 소총)을 들고 있었는데, 연신 뭐라 뭐라 지껄였다.
총구를 겨누고 있는 걸 봤을 때, 가진 걸 다 내놓으라는 말인 것 같았다.
“워~ 워~ 강도다! 강도!”
“… 젠장.”
칼콘과 가벡이 강도에게 양 손바닥을 보여줬다. 저항이 낮아서 총 맞았다간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반면 지훈은 얼굴을 찡그리곤 아이를 쳐다봤다.
“저것들 네 작품이냐?”
아이는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
말은 알아듣지 못해도, 분위기를 읽은 걸로 보였다.
고개를 돌려 강도를 쳐다봤다.
“… … … ! … !”
연신 중국어를 내뱉으며 총으로 위협하고 있었다.
“지훈, 우리 지금 장비 없잖아. 그냥 현금 주자.”
가장 안전한 선택지였다. 부상 위험도 없고, 불필요한 싸움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굴욕적이었다.
“현금 주기는 개뿔. 겁 없으면 죽어야지.”
“그럼 지훈 마음대로 해.”
일단 손을 들어 투항하는 척 강도들에게 다가갔다. 강도들은 총구를 아래로 휘적거려 무릎을 꿇으라고 했다.
이에 응하는 척 무릎을 꿇은 뒤…
타닷!
‘발동, 날개 깃털.’
고공 점프를 발동함과 동시에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마법 강화 덕분일까?
지훈이 꼭 총알처럼 날아갔다.
이후 양 팔을 쭉 펴고…
뻐억!
퍽!
퍽!
전방에 있던 강도는 머리로 들이받고, 나머지 둘의 목에는 팔을 걸어버렸다.
“꺽!”
유효하다 못해 치명적인 일격.
머리로 들이 받은 녀석은 얼굴이 뭉개졌고, 나머지 둘은 목에 팔이 정확히 들어가 그대로 뒤통수로 낙법을 쳤다.
쿵!
쿠쿵!
“멍청한 놈들.”
쓰러진 녀석들을 내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후 재킷에서 글록을 꺼낸 뒤 마무리를 했다.
푝, 푝, 푝!
사실 일반인의 몸으로 각성자의 돌진을 받아 낸 시점에서 반병신 혹은 행동불능이 됐다. 굳이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괘씸죄’라는 게 있었다.
“쯧, 더럽게.”
손바닥에 침을 뱉어 이마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시체는 어떡해?”
“여기 중국이라 주변에 인육 유통하는 놈들 있을 거다. 그 쪽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내버려 둬.”
대충 이마를 닦아내고는 꼬마를 쳐다봤다.
꼬마는 겁에 질려 도망치지도 못하고 있었다.
“No, no. I'm not. Don't kill me! (아니에요, 난 아니에요. 죽이지 마세요!”
말없이 지갑에서 오만 원 지폐 한 장 꺼내서 이마에 묻은 피를 마저 닦고는, 약도와 함께 아이에게 건네줬다.
“Guide me(안내 해).”
아이는 오들오들 떨며 약도를 훑고는 안내를 시작했다.
☆ ☆ ☆
약 10분 정도 걷자 눈앞에 낡은 아파트가 나타났다.
“here(여기)?”
“Y, yes. can I go? (네, 네. 저 가도 돼요?)”
“if it is(맞으면).”
손짓하자 칼콘이 아이의 어깨를 잡았다.
그 모습이 꼭 삼촌이 조카를 잡고 있는 것 같았다.
“뭐 확인해 보면 알겠지.”
문 앞으로 다가가자, 장식품으로 보였던 로봇이 움직였다.
사람보다 약간 큰 크기에, 이름 모를 구리색 장갑을 가진 녀석이었다.
위잉 - 위잉 - 척.
“씨발, 이건 또 뭔데?”
얼굴을 찌푸리자 로봇이 지껄였다.
“… … … ? … … !”
기계음이라기엔 뚜렷한 사람 목소리. MES(Mechanized Exoskeleton Suit, 반자동 외골격 강화복)가 분명했다.
‘MES 사용자? 저딴 게 왜 여기 있어?’
지구면 모를까 유지비 및 극심한 전력소모 때문에 세드에선 잘 사용하지 않는 장비였다. 사용한다고 해봐야 연구 및 기술 인력을 가지고 있는 거대 길드나 군대 정도가 다였다.
궁금증이야 둘째 치고, 일단 안으로 들어가야 했기에 대화를 시도했다.
“hey, kid. translate it. (꼬마, 번역해 봐.)”
꼬마는 오들오들 떨며 말했다.
“He say don't know you. (저 남자가 당신 모른대요.)“
“장씨 찾아왔다고 말해.”
꼬마가 말하자 MES가 짧게 답했다.
꽤 복잡한 내용이기 때문이었을까?
꼬마의 조잡한 영어 실력 때문에 번역이 불가능했다.
결국 머지않아 건물 안에서 남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이후 MES와 남자 둘이서 대화, 남자가 한글로 지훈에게 물었다.
조선족인 모양이다.
“장씨를 찾아왔다.”
“누가 보내서 왔습니까?”
말하는 내용으로 보건대 잘 찾은 모양이다. 만약 여기에 장씨가 없다면 ‘장씨가 누굽니까?’ 라고 물었지, ‘누가 보냈냐?’ 라고는 묻지 않는다.
약속한 대로 꼬마를 풀어주고는 말을 이었다.
“한국 개척지의 석중.”
사실 석중은 이 일과 연관이 전혀 없었다.
단지 개인적으로 찾아왔다고 하면 일이 틀어질 것 같아 이름을 판 것뿐이었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노트를 꺼내 뭔가를 뒤적거렸다.
“무슨 일로 왔습니까?”
“물건 제작하러.”
남자는 단호한 태도로 손바닥을 보여줬다.
“손님 안 받습니다. 가세요.”
“씨발, 장난해? 그럼 누가 보냈냐고 왜 물어봤는데?”
언성이 높아지자 MES가 큼지막한 손을 지훈과 남자 사이에 밀어 넣었다. 일종의 경고로 보였다.
“가세요. 여서 소란 부리면 너 죽습니다.”
남자가 눈짓하자 MES의 팔에서 총구가 튀어나왔다.
장갑과 탄환으로 무슨 금속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싸구려라면 업을 짊어지는 자로 벨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지?’
선택지는 세 가지였다.
1. 설득.
2. 강행 돌파.
3. 추후 재방문.
일단 설득은 들어 먹을 것 같질 않았다.
대장장이라기에 그냥 가게 주인 정도로 생각했거늘, 문지기로 MES쓰는 거 봤을 때 이미 범인은 아니었다.
대장기술을 통해 부를 축적, 이후 가격 흥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무력을 갖춘 듯싶었다.
‘아마 비싼 고객만 받으려는 심보겠지.’
강행 돌파는 매력적이었으나 위험했다.
문지기로 MES쓰는 녀석들인데, 안에는 도대체 뭐가 있을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기껏 들어갔는데 안에 탱크라도 있다면?
곤란하다.
게다가 혹여 죄다 뚫고 들어갔다고 해도 문제가 되는 게, 상대방은 기술직이었다. 협력여부도 미지수였고, 엿이나 먹으라는 심보로 어렵게 얻은 AMP를 작살냈다간 큰일이 터졌다.
추후 재방문.
안전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쵸프무자가 나타나기까지 약 2주. 그 전에 AMP를 무조건 처리해 놔야했다.
‘시간이 없다. 무조건 지금 처리해야 돼.’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설득을 선택했다.
“이봐, 진정하고 얘기를 하자고. 얘기 조금 한다고 누구 죽거나 다치는 것도 아니잖아?”
남자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들어보겠다는 듯 쳐다봤다.
…
처음에는 동정에 호소했다.
“한국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삯이 얼만지나 알아? 돈 둘째 치고 일주일이나 걸렸다고!”
“그거야 우리 알 바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어떻게 동포끼리 이럴 수가 있나? 응?”
“제 국적은 중국이지, 한국이 아니지 말입니다.”
결과는 실패였다.
과연 조선족. 한국말 할 줄 아는 중국인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이 개새끼가 진짜….’
화가 났지만 참았다.
…
두 번째는 돈으로 회유했다.
“값 두둑이 쳐주지.”
기껏 주괴 만지는 데 비싸봐야 1억이었다. 그 정도는 출혈 각오하고 지불할 수 있었다. 만약 구멍이 난다고 해도 가벡이나 칼콘에게 잠시 빌리면 그만이었고.
“장인의 기술은 돈 받고 팔 수 없지 말입니다.”
누가 공산주의 사회에 살던 사람 아니랄까봐, 돈으로 유혹해도 넘어오질 않았다.
‘나발이고 그냥 엎어버릴까?’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탱크가 있어봐야 가속 이능 쓰고, 포문이랑 기관총만 조지면 어떻게 제압할 수 있…
‘에휴, 됐다. 더 해 보자. 아직 속단하긴 이르다.’
…
세 번째는 그냥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아, 몰라. 배 째. 못 가!”
조선족과 MES는 곤란하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리 뒷골목에 위치했고, 무장을 단단히 했다지만 녀석들은 범죄 집단이 아닌 단순 용병이었다.
막가자는 심보로 싸움 걸어올 것 같지는 않았다.
중국은 주석의 철권통치로 인해, 공안(공권력)의 힘이 세계에서 둘째가면 서러울 정도로 강력했다.
걸리지만 않으면 문제는 없지만, 한 번 걸렸다 하면 정말 뼛속까지 죄다 털어갈 정도였다. 그러니 사소한 사건으로 공안과 얽히긴 싫을 가능성이 높았다.
“마음대로 하십쇼. 어차피 저도 시간 많습니다.”
하지만 실패였다.
‘이런, 썅!’
…
“거 진짜, 사람이 왜 그러나. 진짜 내가 장씨도 처음 볼 금속을 가지고 있다니까?”
“헛소리 그만하시고, 이제 그만 가십쇼.”
남자가 지훈을 밀어내고 손을 뻗었다.
“거. 손은 넣어 두지? 잘리기 싫으면.”
결국 참다못해 폭발했다. 오른손은 허리춤에 달려있는 검에, 왼손은 쟈켓 안에 있는 글록 위에 얹었다.
이에 MES는 양 손을 들어 총구를 지훈에게 겨눴다.
‘가속 이능 쓰고 움직이면 어차피 맞추지도 못한다.’
뇌까지 개조해서 사격 제어 장치를 삽입했으면 모를까, 거의 2배속으로 움직이는 사람을 맞추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
분위기가 싸늘하게 굳었다.
여차하면 부딪칠 상황…
- 괜한 드잡이질 하지 말고, 들여 보라.
스피커에서 억센 억양의 한글이 튀어나왔다. 그 말이 튀어나오자마자 MES와 조선족 둘 다 길을 터줬다.
“쯧… 들었소? 들어가쇼.”
“이보쇼 장씨, 정말 현명한 선택을 한 거요.”
- 거는 보면 알 수 있겠지.
아파트 안은 묘한 풍경이었다.
원형으로 만들어진 아파트를 중심에는 약 100평 남짓한 공원이 펼쳐져 있었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역시 갱단은 아니었나.’
하늘을 올려다보니 마치 감옥 같은 기분이 들긴 했지만, 이내 떨쳐버렸다.
‘어차피 AMP만 처리하면 볼 일 없는 곳이다.’
조선족 남자의 안내를 따라 장씨의 공방으로 향했다.
공방은 1층 관리실을 개조해서 만든 것 같았는데, 멀리 있음에도 화끈한 열기가 전해져왔다.
“아무나 못 보는 공방인데 말이지. 영광으로 알아.”
장씨는 약 40~50은 되어 보이는 반백의 중년이었다.
얼굴과 피부색은 건강하게 그을려 적당히 까무잡잡했고, 그 피부 아래로 고된 작업으로 단련 된 근육이 보였다.
그는 제 공방이 자랑스러운지, 가슴을 쫙 폈다.
“그래서 뭐가 필요한가?”
지훈은 주머니에 넣어뒀던 AMP를 건넸다.
“이제부터 그걸 얘기할 참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