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111화 (111/173)

<-- 장씨를 찾아가다. -->

러시아 개척지.

이제는 마스코트라고 해도 될 정도로 유명한, 싸늘하고 불친절한 여군들과 마주쳤다.

굉장히 배타적인 특성을 가진 국가답게 역시 아니나 다를까 트집이 잡혔고, 이에 뇌물을 건네줬다.

괜히 사소한 걸로 시간 잡아먹히기 아까웠기 때문이다.

“아니 무슨 통행료가 20만원이나 해요?”

그 사실을 모르는 민우가 물었다.

“뇌물, 새끼야. 뇌물.”

역시 돈이 생기니 세상이 편했다.

자본주의에 살았으니 당연한 얘기였지만, 포탈의 등장과 함께 그 정도가 심해졌다.

포탈 등장 전이야 수정자본주의 같은 제어 수단이 있었기에 딱히 돈이 없어도 살만한 세상이었지만…

세상이 혼탁해짐과 동시에 온갖 더러운 법률이 날치기 되듯 통과. 이내 고삐 풀린 자본주의가 미쳐 날뛰었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뭐 있긴 했다.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거대한 경제의 흐름, 그 자체를 얘기했다면…

지금의 보이지 않는 손은 말 그대로 사회와 돈 뒤에 교묘하게 숨어서 세상 하는 조종하는 ‘빅 브라더’로 그 의미가 타락했다.

까닭에 밑바닥 사람들은 오늘 살기도 바빴고,

상류층 사람은 돈으로 모든 걸 살 수 있었다.

지훈 역시 밑바닥에서 하수구를 악착같이 헤엄치던 시절이 있었으나, 말 그대로 옛날이었다. 지금이야 헌팅 한 번 나가면 돈을 쓸어 담으니, 이 세상이 말 그대로 ‘편했다’.

범죄에 연루 되도 뒷골목으로 숨으면 됐고, 사소한 경범죄 및 귀찮은 일들은 모조리 돈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가자. 빨리 간다고 샛길로 빠지지 말고, 그냥 대로 타고 쭉 가다가 왼쪽으로 꺾어.”

“응!”

칼콘이 엑셀에 발을 얹었다.

러시아 개척지 안을 달리고 있으니, 문득 도본옙스코 일행이 떠올랐다.

도본옙스코는 과거 러시아 개척지 하수구 때 만났던 인물로, 지훈과는 마약 거래 건으로 악연이 하나 있었다.

뒷골목 치고 악연 아닌 사람이 있긴 있겠냐마는…

어쨌든 지훈은 도본옙스코의 친족을 장애인으로 만들었고, 도본옙스코는 이에 마약 공급을 끊는 걸로 응수했다.

딱 그 전 까지는 사이좋게 지냈었으나, 그 거래 한 번으로 모든 게 틀어져 버렸었다.

‘같이 다시 한 번 보드카 들이키기는 글렀군.’

술 앞에 두고 러시안 룰렛을 하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다.

피식 웃어버리며 도본옙스코를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그는 이미 지나간 사람이었다.

돌이 킬 수 없는 관계 아니던가?

괜히 감정소모하며 시간낭비 하고 싶지 않았다.

일행이 워낙 징징댔던 까닭에 가까운 슈퍼에서 독한 술 몇 병과 맥주 그리고 꽃게 과자를 하나 샀다.

“아니 왜 한국 과자가 여기에 있어?”

식료품 부족 터지면서 생산량이 퍽 줄어버린 과자였다.

한국 개척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물건이 러시아 개척지에 떡하니 유통되니 굉장히 신기했다.

“아 그거요? 불곰들이 사랑하는 한국 음식이 딱 3개 있대요. 초코과자 정파이랑, 도시락으로 불리는 라면, 그리고 러시아 발음 쉽새 라고 불리는 꽃게 과자, 이렇게요.”

그러고 보면 옛날 마약거래 하러 갈 때, 석중이 초코 과자를 챙겼던 게 생각났다.

- 할배, 입 심심한 건 알겠는데 그건 좀 놓고 가지?

- 모르면 닥치라. 이거 굉장히 중요한 물건이디.

- 하이고, 좆질 못하니 입질이라도 하시게?

- 거 아가리에 오줌 채우기 전에 다물라. 시끄럽디.

“민우야, 꽃게과자 발음이 쉽새야? 욕 같아.”

칼콘이 ‘쉽새, 쉽새, 쉽새.’하며 낄낄거렸다.

“응, 쉽새 맞아. 쉽새야.”

어느덧 말을 놓게 된 민우가, 칼콘을 지긋이 쳐다보며 ‘쉽새’ 라고 확인시켜 줬다.

“지금 나한테 욕한 거야?”

“아니. 그냥 확인해 준 거야.”

어설픈 꽁트를 치고 있는 모습에 픽 웃음이 나왔다.

가벡은 조용히 뒷좌석에 앉아 보드카로 나발을 불었다.

“크으으으! 전사의 술이로다!”

그 놈의 전사 소리 그만 좀 들었으면 싶었다.

“재밌는 거 보여줄까?”

“심심한대 잘 됐군. 뭐지?”

유리잔에 보드카를 채운 후, 그 위에 버카디를 따라 층을 만들었다. 이후 라이터를…

화악!

소위 몰로토프 칵테일(화염병)이라 불리는 폭탄주였다.

“불?”

“마셔.”

“이걸 마시라는 건가?”

진심이냐는 듯 쳐다보는 가벡에게 말없이 끄덕여 줬다.

“흘리면 턱이랑 얼굴이 불붙으니까, 한 번에 원샷해라.”

가벡은 한입에 모조리 털어 넣었다.

도수가 굉장히 센 술이지만, 그만큼 먹는 분위기(?) 하나는 죽이는 술이었다.

“크으으으으!”

“맛있냐?”

“괜찮군! 괜찮아! 인간들은 보리로 만든 오줌술만 잔뜩 먹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수컷냄새 풀풀 나는 진짜 술도 먹을 줄 아는군!”

좋아하는 모습에 몇 잔 더 만들어 줄까 싶다가 그만뒀다.

괜히 취할 때 까지 먹였다가 시트에 오줌이라도 쌌다가는 큰일이 났기 때문이었다.

이후 운전을 하는 칼콘을 제외, 일행은 술과 함께 적당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하루 종일 차에 죄수마냥 갇혀있는 가운데 갖는 아주 사소한 행복이었다.

다들 과하지 않고 적당히 술잔을 기울였기에, 이후 만족스러운 잠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 ☆ ☆

러시아 개척지를 나가 약 12시간 정도 달렸다.

아무래도 중국 쪽으로 가는 도로는 정비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기에, 반쯤은 비포장도로로 봐야 옳았다.

쿵, 쿵쿵, 쿠쿠쿵, 쿵!

분명 벤츠에 타고 있는데, 승차감은 무슨 경운기 위해 앉아있는 것 같았다.

“지훈, 나 피곤하다. 이제 교체해 줘.”

“쩝, 알겠다.”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앉으려는 순간…

“이번엔 내가 하지.”

가벡이 나섰다.

일행의 눈이 전부 초승달을 그렸다.

“너 운전할 줄 알던가?”

“트럭은 몇 번 몰아봤다.”

아마 기본적인 운전은 할 줄 아는 모양이었다.

도심주행은 어려울 것 같았지만, 주변 통행량이 적은 고속도로였기에 그냥 맡기기로 했다.

칼콘, 지훈 둘이 돌아가며 운전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도착하기도 전에 지쳐서 쓰러지면 곤란했다.

☆ ☆ ☆

토할 것 같은 운전 끝에 일행은 중국 개척지에 도착했다.

톨게이트 직원과 가볍게 영어로 대화한 뒤, 통행증을 발권 받았다.

인구 대국이자, 영토 대국 중국.

소위 대륙의 기상이라 불리는 국가답게, 그 개척지 크기도 장난 아니게 컸다.

현재 일행이 도착한 개척지는 ‘베이징 개척지’였다.

중국은 독특하게 국가 내에 포탈이 2개가 열렸는데, 수도인 베이징 주변에 하나, 그리고 상하이 주변에 또 하나가 열렸다. 물론 두 포탈의 목적지는 각기 달랐다.

사실 시간으로 따지자면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으로 이동, 베이징 포탈을 타는 쪽이 더 빨랐지만…

장비를 사느라 다 털어버려서 돈이 없었다.

“여긴 도대체 뭐하는 곳이지? 무슨 벌집 같군.”

중국 개척지는 완벽한 계획지구였다.

현재 중국은 거의 반독재라도 할 수 있는 일당체재로서, 주석의 힘이 굉장히 강력한 국가였다.

까닭에 개척 시대에 주석이 강제 이주 및 노역을 실시, 지금처럼 거대한 개척지를 건설할 수 있었다.

크기만 따지자면 러시아보다는 작았지만, 인구 밀도 및 치안 유지 등 개척지 굴러가는 수준으로 봤을 때 러시아랑 비교 불가 수준으로 잘 나갔다.

‘올 때 마다 느끼지만, 여기에 비하면 한국 개척지는 시골 읍내 수준이다.’

그 정도로 컸다. 아무래도 인구 자체가 엄청나게 차이 났으니 어쩔 수 없었다.

“지훈, 이제 뭐 할 거야?”

칼콘이 피곤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모습에서 ‘설마 바로 헌팅 가자는 말은 안 하겠지? 했다가는 당장 드러누워 버리겠어!’ 라는 속뜻이 얼핏 보였다.

나머지 둘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오늘, 내일은 쉬자. 멀리까지 왔는데 즐겨야지.”

일행이 환호성을 질렀다.

숙소는 대로에서 가까운 호텔로 잡았다.

아무래도 인구가 많은 만큼 좀도둑이 많은 까닭이었다.

각성자였기에 그깟 좀도둑 잡아버리면 그만, 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었지만…

문제는 그 좀도둑 수가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았다.

여기는 중국이었다.

게다가 만약 물건을 분실할 경우, 거대한 뒷골목 및 암시장을 통해 순식간에 사람 손을 4번~5번 이상 타버리고… 결국 추격하기도 전에 국외로 팔려나가 버린다.

개미도 잔뜩 모이면 위협적인 것처럼, 중국의 좀도둑 역시 잔뜩 있었기에 꽤 번거로운 상대였다.

어차피 2박밖에 하지 않을 것이었기에, 방은 4인이서 묵을 수 있는 패밀리 사이즈로 골랐다.

“푸하!”

“끄어!”

“으롸!”

“하아….”

일행은 전부 하나같이 전쟁에서 돌아 온 병사마냥 침대에 철푸덕 엎어졌다. 아무리 벤츠 시트가 고급이라지만, 앉아서 자면 몸이 불편하기 마련이었다.

그 상황에서 침대를 만났으니, 다들 당장 침대와 결혼이라도 할 기세로 몸을 비벼댔다.

“크으… 드르렁….”

결국 민우는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어 버렸다.

지훈은 적당히 남은 보드카를 마시며 TV를 켰다. 하지만 중국어만 잔뜩 나왔기에, 머지않아 꺼버렸다.

조금만 쉬다 ‘장씨’ 라는 사람을 찾으러 가야겠다 싶은 찰나… 칼콘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여기에, 그거 있어?”

“뭐가?”

“그거.”

뭔 개소리 하냐는 듯 쳐다보자, 칼콘이 집게와 엄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반대 손 집게손가락을 그 원 안에 집어 넣…

“…또라이 새끼야. 너는 어째 맨날 발정이 나있냐.”

베개를 집어 던졌다.

☆ ☆ ☆

칼콘, 가벡을 데리고 뒷골목으로 향했다. 민우는 자고 있던 터라, 주의사항을 적은 메모만 남겨놓고 왔다.

시끌벅적하고 활기찬 대로도 잠시.

골목으로 빠져 몇 번 정도 들어가자 뒷골목이 나왔다.

말이 뒷골목이지 밝은 대낮인지라 그렇게 위험해 보이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거리에는 대여섯 쯤 되는 아이들이 공을 차고 놀고 있었고, 젊은 여자는 까트로 보이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딱히 위험해 보이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물론 실상을 까 보면 공을 차는 아이도, 까트를 문 여자도, 옆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아줌마도 모두 권총을 갖고 있었지만, 겉으로만 보이기에는 일단 안전해 보였다.

게다가 지훈 옆에는 떡하니 전투 종족이 둘이나 붙어 있었기에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였기도 했고 말이다.

만약 귀티 나게 입고 왔으면, 5분도 못 가서 강도를 몇 번이나 만났을 터였다.

미로 같은 뒷골목을 돌고, 돌고, 돌았다.

그렇게 30분 정도 이동했을까?

지훈이 한글로 ‘양꼬치’ 라고 적힌 가게에 들어갔다.

“예, 뭐 드릴까요?”

직원이 다가와서 물었다.

어눌한 한국어. 조선족으로 보였다.

“민정흑 안에 있나.”

민정흑이라는 말에 직원이 눈을 갸름하게 떴다.

“누구십니까?”

“김지훈이라 하면 알 거다. 가서 소주나 한 잔 하자고 전해라.”

직원은 꾸벅 인사하고는, 주방 가는 길에 다른 직원에게 뭐라 속닥거렸다.

아마 다른 직원에게 감시를 요청한 모야이었다.

싸늘한 시선 속, 지루함도 잠시.

민정흑이 자리에 나타났다.

거칠어 보이는 털이 잔뜩 붙어있는 코트를 입은 모습이었다. 거기다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잘 씻지 않는지 그을린 것 마냥 드문드문 꺼먼 때가 묻은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하이고, 우리 김지후이. 할배 좆이나 빨며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뭐한다고 여기에 혼자 왔니?”

“거 좆대가리 잘라다 석중 할배 반찬 하라고 젓갈 담기 전에 입 싸 물라, 병신아.”

거친 언어에 직원들이 움찔거렸다.

주방 안에 있던 어떤 덩치는 중국식 식칼(클래버)을 들고 살기등등하게 쳐다봤다.

민정흑은 손만 들어 직원들을 제지했다.

“우리가 그래 좋은 사이도 아닌데, 여기는 왜 왔니. 그 이유나 들어보디.”

“야장공 장씨를 찾는다. 어디 있는지 아나.”

“하하하, 여 뒷골목에서 그 양반 모르는 이 없디. 근데 그 양반 위치를 아는 사람은 마이 없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사이 소주와 양고기로 보이는 고깃덩이가 나왔다.

까득, 까득.

지훈이 소주를 까서 정흑의 잔에 채워줬다.

그리고 일행도 각각 한 잔씩 따랐다.

“뭐, 일단 마시고 얘기하지.”

지훈이 손을 내밀자, 나머지 셋이 잔을 부딪쳤다.

쨍 -

꼴깍. 꼴깍.

우적우적.

“그래서, 그 양반 위치 아는 사람이 적다니 그게 무슨 소린데?”

“그 미친 노인네가 귀찮은 걸 정말 싫어해서 말이다. 말을 하면 사람이 죽어나간다.”

“그래서 너는 아나?”

지훈이 정흑을 쳐다봤다.

싸늘함도, 살기도 그 무엇도 없는 무표정.

그 말은 곧 마음만 먹으면 다른 무언가를 담을 수 있다는 뜻이었기에, 정흑은 살짝 긴장했다.

“니가 보기에는 어떨 것 같니?”

“글쎄. 네놈을 조져보면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있겠지.”

쟈켓 주머니에서 글록을 꺼내 상 위에 올려놨다.

일종의 경고였다.

쿵.

총 올려놓은지 얼마나 됐을까?

방금 얘기했던 직원이 카운터 아래에서 샷건을 꺼내 이쪽을 겨눴다.

“하이고, 그거 내려놔라 새끼야. 니 지금 내 친구한테 총 겨누고 있는 거 알고 있니?”

반면 민정흑은 우습다는 듯 픽 웃으며, 부하에게 총을 치우라고 중얼거렸다.

“됐다, 됐어. 니 죽이는 건 문제도 아인데, 내도 석중 할배랑은 척지기 싫다. 알려주마. 대신 밥이나 먹고 가라.”

이후 녀석은 빌지에 500만 원을 적었다.

정보료 달라는 말이었다.

‘쯧, 잡비로 나가는 것도 무시 못 하겠네.’

내키지 않지만 사고치고 싶지 않았기에 승낙했다.

“지훈, 여기서 밥 먹고 가는 거야?”

“그래. 양껏 먹어라. 양껏. 술도 많이 먹어.”

대신 이쪽은 그 만큼 뽕 뽑을 생각으로 칼콘과 가벡을 투입했다.

셋이서 꼬치 300개, 양고기 여섯 근, 소주 5병을 먹었다.

정흑은 얼굴을 구겼으나, 정보료 명목이 ‘밥’이었기에 딱히 뭐라고 토를 달진 않았다.

밥을 저렇게 밀어 넣는다는 건, 셋 다 각성자라는 걸 깨달은 까닭이었다.

“꺼억 - 잘 먹었다.”

칼콘이 긴 트림을 내뱉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후 일행은 정흑에게 받은 약도를 가지고, ‘장씨’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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