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110화 (110/173)

<-- 헌팅은 좋지만, 이동은 지루하다. -->

준비는 충분했다.

이제 AMP 및 폐품을 처리할 차례였다.

지현 및 시현에게 중국 개척지를 다녀온다고 말하고는, 동료들을 모았다.

“…이런 이유로 중국 개척지 좀 다녀와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왕복만 거의 일주일이 걸리는 거리다 보니 다들 생각이 깊은 모양이었다.

“지훈, 폐품일 보수는 얼마야?”

“오 천.”

칼콘은 작게 ‘음….’ 소리를 내다 물었다.

“그냥 그 아티펙트 찾아다 암시장에 팔면 안 돼?”

C등급 아티펙트 하나가 기본 5000이었다.

굳이 돌려주지 않고 팔아버린다?

당연히 할 법한 생각이었다.

저 아티펙트의 주인이 석중이라는 것만 빼면 말이다.

“GPS 달려있어. 삥땅 쳐봐야 다 알 거다. 그리고 석중 할배를 적으로 돌려봐야 좋을 것 없을 텐데?”

과거 사이가 좋기도 좋았거니와, 이쪽이 B등급 각성자다 보니 직접적인 암살을 보내오진 않을 터였다.

단지 뒷골목 거래 및 이용이 전혀 불가능해진다는 점, 가족이 위험해진다는 점 등을 신경 써야 한다.

푼돈을 위해 얄팍한 너구리를 적으로 돌리는 격이었다.

“아마 보수 오천에, 칵톨레므 손톱을 팔면 그럭저럭 돈은 나올 거예요. 게다가 칼날 정글에는 희귀한 약초랑 연구용 식물도 있어서 부가 수입도 짭짤하고요.”

민우는 찬성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놈 센가?”

가벡이 물었다.

“네가 1:1로 붙으면 진다.”

당연한 얘기였다.

칼톨레므의 양 손에 C등급 아티펙트가 4개씩 달려있는데, 그걸 상쇄 가능한 가벡의 무기는 몽둥이 하나였다.

게다가 칵톨레므는 은밀 행동과 기습에 완벽하게 특화 된 상위 포식자였다. 아마 1:1 상황이라면 마주쳤다면 시간을 질질 끌며 치명적인 틈이 나올 때 까지 장기전으로 갈 것이다.

12시간, 24시간 단위로 시달리다 보면 피곤해 질 테고…

잠깐 멍 한 사이 칵톨레므의 손톱이 꽂힌다.

“거짓말 치는군. 그깟 짐승이 나보다 강하다고?”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가벡은 믿을 수 없었다.

“그래, 새끼야. 상대도 안 돼. 나도 똑같아.”

“재밌겠군! 나도 간다!”

이번 임무 역시 셋 다 참가하기로 했다.

☆ ☆ ☆

- 잘 다녀와!

새로 산 핸드폰으로 시연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동구 터미널을 통과했다. 통행증을 뽑고 있자니 톨게이트 직원이 말했다.

“러시아 북쪽 고속도로를 조심하세요. 요즘 관리 부실이라 몬스터가 나온다는 얘기가 있어요.”

일단 중요한 정보였기에 고맙다고 인사했다.

벤츠의 엑셀을 밟았다.

부릉 -

러시아 개척지까지 서쪽으로 하루.

이후 중국 개척지까지 북쪽으로 다시 이틀.

기나 긴 지루함의 시작이었다.

☆ ☆ ☆

2시간 째.

장시간 동안 차량을 타본 적 없는 가벡은 얼마 가지도 못해 토할 것 같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마침 슬슬 화장실이 가고 싶었기에 정차했다.

이번 휴게소는 리뱃.

공업촌으로 그가쉬 클랜을 갈 때 한 번 들렀던 곳이었다.

“우웨에에에엑!”

가벡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길바닥에 토악질을 했다.

칼콘이 그런 가벡을 비웃었다.

“푸히히! 전사라며, 전사라며! 차도 못 탄대요!”

아무래도 칼콘은 카즈가쉬 클랜의 군인이었던 만큼, 장갑차나 트럭에는 자주 타 본 모양이었다.

“나를 모욕하지 마라, 칼콘!”

“얼레리 꼴레리, 계집애래요! 차도 못 탄데요!”

결국 가벡이 몽둥이를 들고 달려들었지만…

깡!

칼콘이 왼손으로 막아버렸다.

“미친놈들아 장비 상한다. 그만하고 와서 밥이나 처먹어.”

이번 메뉴는 그냥 간단한 라면으로 했다.

가벡은 속이 좋지 않았기에 가볍게 죽을 먹였다.

식사를 끝마치고 다시 차에 올라가려는 순간.

문득 총포상에서 버그베어 무리가 튀어나왔다.

차를 타고 왔는지, 총포상 주변에 AMP 채굴권과 교환한 걸로 보이는 두돈반 트럭이 한 대 주차되어 있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출발하려는 순간…

“가벡? 저게 가벡 아니야?”

버그베어 한 녀석이 가벡을 가리켰다.

귀찮은 문제가 생길 것 같았기에 무시하고 출발했다.

뒤에서 ‘배신자! 배신자!’ 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다들 아무 말 않고 조용히 창밖만 쳐다봤다.

그저 가벡만 조용히 있다 한 마디 했을 뿐이었다.

“배신자? 웃기는 소리 하는군. 전사와 전쟁의 명예에 먹칠한 너희들이야 말로 배신자다.”

굳건한 말투였다.

☆ ☆ ☆

아무 일 없이 운전을 한다는 건 굉장히 고된 작업이었다.

기름 값이 눈 튀어나오게 비싼지라, 고속도로에 달리는 차도 거의 없었다.

가끔씩 보여 봐야 밴이나 버스 정도가 다였을까?

까닭에 지훈은 거의 평균 시속 200km로 달렸다.

수우우우우웅 -

잠을 자던 민우가 바람 소리에 깼는지 눈을 떴다.

“창문… 열어 놨어요?”

“아니.”

“이거 무슨 소리에요?”

현재 민우는 조수석에 앉은 상태.

녀석은 눈을 부비적거리더니 안경을 썼다. 그리고는 얼굴이 허예졌다.

“혀, 형님, 지금 도대체….”

반 이상 넘을 일 거의 없는 속도 표시계가 거의 끝에 달라붙어 있었다.

민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비볐지만, 계기판 중앙에 적혀있는 디지털 사인에는 정확하게 ‘243km/h’ 라고 적혀 있었다.

“어, 어… 어어어…! 소, 속도 줄여야 되지 않아요?”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최고속도는 120km/h.

거의 두 배는 되는 속도였다.

굳이 법 말고도, 삐끗하면 세상 하직하는 속도였다.

민우 제외한 나머지 셋은 저항 수치가 적당히 높으니 어찌 될지 몰랐으나, 적어도 민우는 무조건 요단강이었다.

“어차피 차도 없다. 걱정하지 마라.”

보통 고속버스는 전용 차선으로만 다니고, 자가용 모는 사람들도 150km/h는 밟는 게 일상이었다.

앞에서 뭐가 나타날 리 없었다.

나와 봐야 집중 이능 키고 피하면 그만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 그래도 이건 좀….”

민우가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장난기가 생겼다.

‘앞에 뭐 있나?’

없다.

수평선 너머까지 단 한 대도 없다.

1분 동안 눈을 감고 운전해도 될 정도였다.

‘장난쳐도 괜찮겠네.’

마침 졸리던 차에, 잘 됐다 싶었다.

엑셀에 발을 떼고 적당히 감속한 뒤…

민우에게 양 손바닥을 보여줬다.

곧 핸들에서 손을 뗐다는 얘기였다.

“으아아! 뭐, 뭐해요! 빨리 핸들! 핸들!”

민우가 미친 사람처럼 희번덕거렸다.

“싫은데?”

“으아아아아아!”

조용히 5초 정도 비명을 감상하다가 다시 핸들을 잡았다.

“어떠냐, 재밌지?”

어째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삐졌나 싶어 슬쩍 눈을 돌려보니…

“그르르… 걱….”

민우가 거품을 문 체 기절해 있었다.

“어, 야…! 야! 이 새끼야!”

깜작 놀라 갓길에 차를 세운 뒤 민우를 깨웠다.

다행히 기절만 한 듯, 건강에는 이상이 없었다.

물론… 차에 대한 트라우마는 ‘조금’ 생겼겠지만 말이다.

☆ ☆ ☆

이동 6시간 째.

러시아 쪽에서 만든 휴게소인 소베츠카반에 정차했다.

짧은 영어, 서투른 러시아를 섞어 껌과 커피를 구입했다.

무역 동결 때문에 커피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그래도 운전한다는 기분을 내고 싶어서 샀다.

홀짝, 홀짝.

“그거 뭐야?”

커피를 먹고 있는 게 신기한지 칼콘이 물었다.

“음료. 마셔볼래?”

“응.”

어차피 운전을 교대할 참이었기에 흔쾌한 건네줬다.

꿀꺽, 꿀꺽.

뜨거운 커피였음에도 벌컥벌컥 잘도 마시는 칼콘이었다.

“잘 먹네. 맛있냐?”

칼콘은 커피를 반 쯤 마시고는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 똥 맛 나.”

똥 맛 난다면서 도대체 왜 그렇게 잔뜩 마신 걸까?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그냥 그러기로 했다.

맛이 있든 없든, 일단 음식이라면 죄다 밀어 넣는 모습을 간혹 봤기 때문이었다.

바로 출발하려고 했지만 좀 더 휴게소에 머물렀다.

가벡과 민우가 죽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아, 저번에도 타봤는데… 왜 이렇게 힘들죠?”

“아마 이 짓거리를 3일 동안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몸이 먼저 질려버리는 걸 거다.”

지훈은 예전에 많이 겪어봤던 지루함이었다.

뒷골목 용병 시절 러시아에서 무기 거래를 하거나, 중국에서 몇몇 물건을 들여오기 위해 이런 장거리 이동도 많이 해봤었다.

심지어는 러시아 개척지에서 남쪽으로 7일 이상 가야지 도착할 수 있는 일본 개척지에도 가봤었다.

‘뭐… 지금은 폐허밖에 남아있질 않지만 말이지.’

여기에는 긴 사정이 있지만, 짧게 요약하자면 이랬다.

1 - 일본 본토에 강한 지진으로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

2 - 복구를 하지 못한 채 몬스터 브레이크 아웃.

3 - 다른 원전들이 연달아 폭발.

4 - 방사능에 면역인 ‘톨킥’ 종족이 원전 수복을 방해.

5 - 엄청난 방사능이 일본 열도를 뒤덮기 시작.

8 - 중국, 일본의 요청 수락. 열도에 핵미사일과 전투 마법사 지원.

10 - 정리는 끝냈으나 이미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은 적음.

11 - 국민들을 세드로 강제 이주하기 시작.

12 - 근데 하필 포탈 주변에 강력한 리자드맨 마법사의 공방이 있었음.

26 - 개척 분쟁 시작.

27 - 리자드맨 마법사가 사망 직전, 도시위에 지울 수 없는 독구름을 생성.

40 - 개척 전쟁 시작. 러시아와 영토 분쟁.

41 - 러시아, 일본 개척지에 핵미사일 발사.

42 - 방어 실패, 일본 정부 항복 선언.

43 - 러시아 측 항복 선언 무시.

60 - 러시아, 일본 개척지를 식민지로 삼음.

71 - 주변에 있던 리자드맨 부족, 러시아 식민지에 대규모 침공.

93 - 러시아, 일본 개척지 철수 선언.

94 - 당시 남은 일본 인구. 약 100만 명.

참담한 결과였다.

한국, 러시아, 중국.

세 국가 다 세드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큰 불협화음을 내긴 했지만, 일본만큼은 아니었다.

‘한국도 자칫 잘못하면, 부산이랑 울산 쪽 원전 터지면서 개판 날 뻔 했지.’

그나마 다행인 건 부산에 인구가 많아서 각성자와 군인도 그만큼 많았다는 것 정도였을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일본과 같은 꼴이 날지도 몰랐다.

과거 UN과 평화 유지군이 제 기능을 할 때야 어떻게 세계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나마도 몬스터 브레이크 아웃이 터지면서 개판이 됐다.

국가 간 약육강식의 논리가 활개 치기 시작하면서, 국가들의 탐욕이 전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중 하나가 바로 일본 개척지였다.

폐허.

방사능과, 마법 오염으로 인해 사람이 살 수 없는 땅.

현재 남은 일본인들은 중국 개척지에 정착해 ‘일본인 자치구’를 형성해서 살아남은 상태였다.

그나마도 인구도 서서히 줄고 있는 까닭이었다. 아마 다음세대쯤 되면 ‘일본’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해 지리라.

“형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별 거 아니다. 신경 쓰지 마라.”

적당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일본 얘기가 씁쓸하긴 해도 어쩌겠는가?

이미 세상은 미쳤고, 강자가 모든 걸 가지는 시대였다.

그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알량한 동정심 따위는 쓰레기통에 버려야 했다.

그게 새 시대의 법칙이었고, 새로운 생존방식이었다.

“이제 출발하자.”

출발하자는 말에 가벡과 민우가 인상을 썼다.

“벌써요?”

“좀 쉬고 싶군.”

“좆까, 새끼들아. 운전도 안 하면서 쉬고 싶다는 말이 나오냐, 나와?”

퍽, 퍽!

등짝을 한 대씩 때리고는 차에 우겨넣었다.

이번 운전대는 칼콘이 잡았다.

“이거 트럭 아니니까, 살살 몰아.”

“응. 알겠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엑셀을 거칠게 밟는 칼콘이었다.

끼이이이익 -

부르르르루 -

제로백 4초를 그대로 보여주며 튀어나가는 벤츠였다.

조용히 지켜보며 한 마디 할까 싶었지만, 그만뒀다.

‘아, 몰라. 졸리다. 알아서 잘 하겠지.’

조수석에 앉아 눈을 감으니 피로가 몰려왔다.

눈을 뜨면 러시아 개척지에 도착해 있을까?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러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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