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덩치 큰 상대에 대한 대비. -->
중국 개척지로 떠나기 전 점검할 게 몇 개 있었다.
바로 ‘그 녀석’의 하수인이자 정체불명의 변이, 전이계 능력자에 대한 준비였다.
아쵸프무자가 직접 나서서 바싹 구웠으니 한동안은 나타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손발 뻗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저번처럼 손쉽게 당해줄 생각은 없다.’
덩치가 아닌 다른 녀석이 온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각성 시작하고 나서부터 계속 앓아 왔으나, 저번 덩치와의 싸움으로 크게 불거진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넉백(밀려남)이었다.
아무리 근밀도가 높아졌다고 한들 지훈의 종족은 ‘인간’이었고, 그 크기는 겨우 170 후반밖에 되질 않았다.
아무리 근밀도가 높아 보통 체형인데도 무게가 90kg 정도 나갔지만, 그래도 0.1T도 되지 않았다.
반면 그 괴물은 어땠던가?
키가 3M에 몸무게는 200대 후반은 거뜬해 보였다.
같은 힘으로 부딪친다고 해도, 무게 차이 때문에 지훈 쪽이 손쉽게 날아갔다.
이는 칼콘과의 연습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그건 바로 검을 들고 있는 힘껏 내리면, 그 반작용으로 몸이 떠오른다는 사실이었다.
‘제대로 때리고, 제대로 맞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공중에 뜨거나 저 멀리 날아가 버리면 답이 없었다.
지훈은 그 답을 ‘거대 종족’에게서 찾기로 했다.
시체 구덩이.
보통 인간들만 찾는 술집에 어울리지 않는 손님이 하나 앉아 있었다. 의자가 아닌 바닥에 앉아 있는데도 사람과 비슷할 정도로 거대한 종족.
바로 오우거였다.
웅성웅성.
주변 사람들이 오우거를 보고 웅성거렸다.
아무래도 소말리아 건도 있거니와, 인간과 사이가 퍽 좋지 못한 종족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싸워서 이길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호전성 둘째가면 서러 종족, 오우거에게 시비를 건다?
일반인이면 파리 마냥 손바닥에 찍 눌려 죽고, 각성자는 가디언 및 다른 이유 때문에 그냥 내버려 뒀다.
굳이 도시 안에서 사고 쳐봐야 좋을 것도 없고, 사서 고생해 봐야 좋을 것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지훈은 그런 오우거를 곁눈질로 훑으며 주인에게 다가갔다.
“저거냐?”
“응, 지훈. 데려오느라 힘들었다구. 관광차 왔다는 걸 술 준다고 붙들어 놓은 참이야.”
“고맙군.”
지훈이 까닥 인사하자 주인이 계산서를 하나 내밀었다. 약 400만 원 하는 메뉴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아마 오우거 술 + 안주 값인 듯 싶었다.
‘도대체 얼마나 먹은 거야.’
살펴보니 맥주는 컵 대신 3000CC 피처를 들고 오크통에서 직접 퍼마시고 있었고, 음식은 아예 그릇째로 들고 입안에 털어 넣었다.
돼지 갈비를 뼈째로 씹어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꼭 비료용 음식 파쇄기를 보는 것 같았다.
“이걸로 긁어. 소개비도 포함해서.”
“에이, 됐어. 우리 사이에 무슨 소개비야.”
주인은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을 짓고는 카드를 긁었다.
지훈은 오우거가 있는 테이블의 건너편에 앉았다.
오우거는 지훈을 흘긋 쳐다보고는 마저 음식을 먹었다.
이런 일에 익숙한 건지, 아니면 소형 종족 따위는 뭘 해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없었다.
아마 양자 둘 다 같았다.
지훈은 조용히 오우거가 음식을 다 먹기를 기다렸다.
‘키는 대충 3.5M, 무게는 대충 300은 나가겠군.’
단순 외적인 요인으로는 오우거가 저번에 싸웠던 괴물보다 더 강해 보였다.
각성 및 변이 보너스를 더하면 당연히 괴물이 압도적으로 강할 테지만, 그럼에도 연습용으로는 딱 좋아 보였다.
‘딱 좋은 녀석으로 골라왔군.’
미소를 짓고 있으니, 그에 맞춰 음식이 똑 떨어졌다.
“여기! 더!”
가슴을 두드리며 추가 주문을 시키는 오우거. 그러자 주인이 다가와 슬쩍 언질을 해줬다.
“사실 저기 저 녀석이 네 음식을 전부 시켜 준거야. 더 먹고 싶으면 얘기를 해 보는 게 어때?”
오우거의 붉은 눈동자가 지훈을 내려다봤다.
매우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더 줘.”
목표가 미끼를 물었다.
“더 먹고 싶나? 그럼 일을 해라.”
☆ ☆ ☆
시체구덩이 뒷마당.
지훈과 오우거가 대치하고 있었고, 주인은 멀찍이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진짜? 너? 괜찮아?”
오우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신고나 그런 거 전혀 안 할 테니까 걱정마라.”
“얘? 죽여도? 음식 줘?”
오우거가 주인을 쳐다봤고, 주인은 다시 지훈을 쳐다봤다.
- 어떡해?
어깨를 으쓱여 몸짓으로 묻는 주인.
“내가 죽거나 다쳐도, 내 카드로 얘 맘껏 먹여.”
오우거는 어디 모자라 보이게 해죽 웃었다.
그 모습이 마치 어린 아이처럼 보였으나, 한편으로는 섬뜩해 보이기도 했다. 본디 순수한 존재는, 죽음과 폭력에 있어서도 순수하기 마련이다.
“간다? 진짜 간다?”
오우거가 주먹을 꽉 쥐었다.
고개만 까닥여 허락했다.
‘체인 셔츠에 고공 점프 부츠까지 낀 상태다. 제대로 막거나, 피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일단 막는 연습부터 하기로 했다.
부웅!
오우거가 마치 파리 잡듯 손바닥을 찍어 내렸다.
느리지만 묵직하다!
일반인이면 두더지 사라지듯 머리가 쑥 내려앉을 일격이었지만, 지훈은 각성자였다.
바로 두 다리를 벌리고 양 팔뚝을 위로 올려 막았다.
쫘악!
거기 터지는 소리가 아닌, 살과 살이 맞닿는 소리가 났다.
그 얘기는 곧 성공적으로 막았다는 얘기였다.
‘비각성자인가. 생각보다 공격이 가볍다.’
생각보다 가볍다는 얘기지, 약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었다. 그 증거로 지훈이 서있던 흙바닥이 3cm는 눌려있었다.
“계속? 해?”
“아아. 그래, 있는 힘껏 덤벼라.”
오우거는 헤실헤실 웃으며 발을 휘둘렀다.
소위 말하는 싸커킥이나 로우킥과 달랐다.
말 그대로 아이가 공을 차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부웅 -
오우거의 굵은 다리가 아래로부터 날아왔다.
일격 자체는 맞아도 별 피해는 없을 정도로 약했으나, 문제는 바로 밀려나거나 넘어진다는 거였다.
‘얼마나 밀려나는지 막아볼까.’
서있는 상태에서 막거나 맞았다간 그대로 붕 뜰 터!
자세를 낮추고 피격지점에 가드를 올렸다.
뻐억!
부웅 -
분영 일부러 자세를 낮췄음에도, 무지막지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붕 떠올랐다가 떨어졌다.
체공시간은 약 2초.
겨우 2초라지만 강한 상대로는 치명적인 틈이었다.
‘올려치는 일격은 무조건 피해야 하는 건가.’
아무리 강해져도 물리 법칙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공격은 상쇄시킬 수 있었지만, 압도적인 무게와 힘으로 밀어내는 건 저항할 수 없었다.
벽을 등지고 싸우면 밀려나는 걸 방지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잘 뛰어 보겠다고 잘 달려있는 날개 잘라내는 꼴이었다.
‘결국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말이다.’
머리가 아파졌다.
AMP 강화 기준 가속 최대 지속 시간은 약 5분.
그 안에 올려치는 일격을 모두 피하며 상대를 제압?
힘든 얘기였다.
‘끙….’
고민하고 있는 사이 오우거가 달려들었다.
진심으로 덤비는 것 같았다.
돌진을 담은 라이트 훅!
피격 지점이 높다.
고개만 숙여도 가볍게 피할 수 있겠지.
근데 그러지 않았다.
‘발동, 날개 깃털.’
시동어를 읊자 워커 깔창이 작게 진동했다. 이후 가볍게 뜀박질을 치자…
부웅 !
스프링마냥 하늘로 솟았다.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 오우거의 뒤통수와 등이 훤히 드러났다.
‘이 상태로 사격을 하면 되겠군.’
연습인지라 총도, 총알도 없다.
하지만 만약 실전이었다면, 지금 오우거의 뒤통수와 등짝은 벌집이 되어 있을 터였다.
탁!
나비처럼 내려앉자 오우거가 홱 돌아섰다.
“어? 어? 왜 거기? 있어?”
머리를 긁적거리는 모습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것 같았다. 설명해 줄 것 없이 손가락을 까닥였다.
“덤벼.”
이후에도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피하는 연습을 했다.
내려찍는 일격은 피해를 감수하고 막고,
옆으로 후려치는 일격은 상황에 따라 다르며,
앞으로 밀거나, 위로 띄우는 일격은 무조건 피했다.
약 20번 정도 반복하니 대충 감이 잡혔다.
‘이런 식으로 하는 건가.’
지훈이 싸운 상대는 여태껏 중형종(인간, 오크 및 기타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대부분. 고블린은 소형종.)이 대부분.
저번 싸움은 여태껏 대형 휴머노이드를 상대해 본 적이 없었기에 실수가 너무 많았었다.
‘애초에 정면으로 힘 싸움을 해서는 이길 수 없다.’
원숭이와 물고기가 수영 시합을 하는 꼴이었다.
“끄으으어! 너 치사해! 왜 그렇게 도망가?”
오우거는 공격이 모두 빗나가자,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퍽! 퍽!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가슴을 때리기도 잠시.
순박해보이던 오우거의 얼굴이 급속도로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일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여태까지 훈련을 명목으로 벌레잡이를 했다면, 이제부터는 진짜 적으로 인식하고 싸운다는 듯 싶었다.
포식에 익숙한 대형종 특유의 알싸한 살기가 풍겼다.
“죽일 거야! 죽여 버릴 거야!”
주인은 그 모습을 보고 모신나강을 만지작거렸다.
제 1차 세계대전(1914년)에 만들어진 총으로 굉장히 오래됐지만, 여전히 사람 죽이기에는 충분한 총이었다.
“있잖아, 지훈. 저거 날뛰면 죽을지도 몰라.”
죽여줄까? 라는 물음이었다.
현재 모신나강에 장전되어 있는 탄환은 MN(메가 나이트) 탄환이었다. B등급 아티펙트까지 꿰뚫는 물건.
지훈에게 쏘면 C등급 갑옷, D등급 살갗에 막혀 효과가 적겠지만, 오우거의 가죽 따위 손쉽게 관통했다.
“한 방이면 되는데.”
낮은 목소리에서 얼핏 스토커로써의 면모가 드러났다.
하지만 지훈은 오우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터라,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부정의 뜻만 내비췄다.
“신경 쓰지 마. 내가 알아서 한다.”
눈을 부릅뜨고 오우거를 쳐다봤다.
화가 났으니 다음 일격은 분명 최선을 다할 터.
‘이번엔 피하지 않고 받아낸다.’
상대 오우거는 비각성자였다.
근력만 비교하면 엇비슷한 수준이리라.
“와라, 이 새끼야!”
그 말을 신호로 오우거가 돌진했다.
쿵, 쿵, 쿵, 쿵.
약300kg짜리 거구의 돌진.
보고 있으니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 처럼 시야가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받아 낼 수 있을까?’
막아도 1M는 주욱 밀려나는 무식한 일격이었다.
잘못 받아냈다가는 온몸의 뼈가 그대로 작살난다.
불확신 속 가벼운 불안이 싹튼다.
그리고 그 싹을 짓밟았다.
‘내가 저딴 놈한테 질까보냐!’
타타탓!
돌진!
오우거가 지훈을 보고 주먹을 휘둘렀다.
땅으로 박아버릴 듯 육중한 사선 일격!
그 주먹을 보고도 피하지 않았다.
지훈은 도리어 상쇄시키듯 주먹을 내질렀다.
후욱!
후욱!
주먹과 주먹이 서로를 박살내 버릴 듯 내질러지고…
이내…
콰앙!
사람 머리통만한 주먹과,
그에 비해 계란 같은 지훈의 주먹이 부딪쳤다!
찌릿!
피격점인 주먹을 시작으로, 손목, 하완, 상완, 어깨, 등, 허리,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그리고 발바닥까지 충격이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이후 온 몸의 뼈가 삐끗한 것 같은 고통이 몰아쳤다.
“크으으윽!”
지훈이 온몸을 비틀며 쥐난 사람처럼 신음을 내뱉었다.
반면 오우거는 어떻게 됐을까?
“끄어어어엉! 아파! 아파!”
주먹이 작살이 난 듯, 손목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지훈은 그 모습을 보고 씩 미소를 지었다.
승리에 기뻐서?
아니었다.
사실 승부는 정해져 있었거니와, 따 놓은 당상이었다.
‘밀려나지 않았다.’
저 사실 하나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몸무게가 약해서 적의 일격에 밀려난다면?
그 해답은 간단했다.
‘힘으로 상쇄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