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장비를 구입하다. -->
대장장이라는 말에 석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야장공은 와? 니 뭐 수리할 물건 있니.”
“알 거 없고. 있소, 없소?”
“콤퓨타 검색하라. 거 많을 텐데 왜 여 와서 묻니.”
인터넷 검색.
대장장이 라고 검색을 하면 결과가 나오긴 할 테지만, 지훈은 그 정보들을 믿지 않았다.
정보의 홍수가 터지면서 알짜배기 정보는 거의 다 수면 밑으로 가라앉고 쓰레기 같은 광고들만 떠다녔기 때문이다.
결국 제대로 된 실력자를 찾으려면 직접 발로 뛰어다니는 수밖에 없었고, 이런 알음알음 아날로그 방면에서 제일 믿음직한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는 석중이었다.
“거 물으면 그냥 재깍재깍 답 좀 해주면 안 되겠소? 늙어서 그렇게 질척거리니 보기 안 좋네.”
“쓰애끼, 말하는 꼬라지 보라.”
“내 할배한테 직접 배운 말버릇인데, 불만 있소?”
석중은 끙 소리를 낼 뿐 대답하지 못했다.
단지 ‘호랑이를 키웠구나.’ 하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내 양지는 모르고, 음지쪽으로 최고를 찾는 거면 만 리는 가야한디.”
만 리.
약 4000km.
직선으로 이으면 서울에서 태국까지 갈 거리였다.
“그게 누구요?”
“이름은 모르고, 그냥 장씨라고 불린디. 중국 개척지 뒷골목 암시장에 있디.”
중국 개척지.
동쪽으로 있는 힘껏 밟아, 러시아 개척지를 통과해 북쪽으로 이틀 더 가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단순 북동쪽으로 가면 하루 반이면 갈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칼날 정글이 막고 있어 어쩔 수 없었다.
“정보 고맙소. 여기 정보료 받으쇼.”
대충 백만원은 되어 보일법한 돈을 카운터로 밀었지만, 무슨 일인지 석중은 받질 않았다.
“거 갈거니?”
“문제라도?”
석중이 씩 미소을 지었다.
“가는 김에 칼날 정글서 폐품 좀 주어오라.”
칼날 정글이라면 칵톨레므 포함, 온갖 위험한 생명체가 사는 장소였다.
“아니 무슨 폐품인데 거기까지 가서 가져와?”
“어디보자… 니 홍궈 아니?”
뒷골목 별명 홍궈.
안면 홍조 때문에 얼굴이 붉고, 이름 역시 홍권승인지라 다들 짧게 홍궈라고 부르는 사람이었다.
딱히 범죄에 관련 된 일은 하지 않지만 가끔 뒷골목에 짐꾼 내지는 총꾼을 구하러 오는 헌터기에 알고 있었다.
‘본인은 C등급 각성자고, 팀원은 대충 대여섯. D등급 각성자도 있었던가.’
“알다마다. 그 사람이 왜?”
“갸가 내 물건 대여해갔는데, 거서 죽어버렸디. 가져오라.”
얼굴을 찌푸렸다.
저번에 석중과 트러블이 났던 중배와 달리, 홍궈는 제대로 된 헌팅 팀이자, 아티펙트 헌터였다.
“걔네 죽었다고? 생존자 하나도 없이?”
“있었으면 내 너 붙잡고 이런 얘기 하고 있겠니?”
“아니 도대체 뭐 하다 다 뒤졌는데?”
“내도 모른디. 반납 기일 지난거랑, 아티펙트들이 오체분시 된 것 마냥 주르륵 흩어졌기에 그러려니 하고 있디.”
칵톨레므는 C등급 손톱을 가졌고, 은밀 행동에 능한 맹수였다.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일반 짐승과 똑같았다.
‘그냥 당했다고 보기엔 뭔가 찜찜하다.’
지훈이야 위험이고 나발이고 죄다 무시하고 때려 부수는 스타일이었지만, 보통 헌터들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홍궈 역시 마찬가지였을 터.
규칙적으로 헌팅을 나가던 녀석이었던 만큼 위험한 목표는 정하지도 않고, 목숨이 위험할 상황에 직면하면 바로 도망쳤을 가능성이 높았다.
근데 죽었다.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이.
“걔네 칵톨레므 사냥 처음이었소?”
“그렇디. 이제 페커리 단맛 쪽 떨어지니, 멀리 가서라도 한 탕 할 거라고 큰소리 쳤다 카드만.”
저 말을 들으니 대충 이해가 갔다.
아마 너무 큰 욕심을 부렸다가 소화하지 못한 모양이다.
“미끼는 뭐 썼는데?”
석중은 말없이 탐욕스러운 웃음을 보였다.
상황 보니 대충 저번에 주식쟁이를 갈아 넣었나 보다.
“그래서, 뭐 가져 오라고?”
주요 물건으로는 심박 감지기 외에도 C등급 아티펙트가 2개, D등급 아티펙트가 5개였다.
그 외 온갖 총, 폭탄류, 차량, 신금속으로 만든 포획 우리 등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런 건 되찾아 오기 불가능했다.
“걔네 일행 전부 GPS 달고 다니니까, 여 감지기 갖고 가서 하나씩 찾아오라.”
“돈은?”
“오 천 준디.”
“지랄 똥 싸는 소리 하네. 치매가 오다 못해 이제 벽에 똥칠까지 하나보오? 겨우 그 돈 가지고 칼날 정글에 들어가라고?”
석중은 피식 웃어보였다.
“대신 칼톨레므 손톱 하나 500 쳐준디.”
현 시세는 성체 손톱 하나 당 400만 원. 그걸 각성자 거래소에서 정산하면 33% 떼서 270만 원이다.
그 말은 곧 정가의 2배가량 쳐준다는 얘기와 같았다.
‘쏠쏠한데?’
마침 고등급 장비는 필요한데, 잔고는 고만고만하던 참.
돈이 많이 준다는 얘기가 나오니 상황이 달라졌다.
폐품 주워오는 길에 칵톨레므 한 마리만 잡아도 보수 포함 9,000만 원을 벌 수 있었다.
“GPS 감시지 내놓으쇼. 다 가져올 수는 없으니 참고하고.”
결국 승낙하기로 했다.
석중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GPS 감지기를 건넸다.
“그래, 그래. 알겠디. 수고하라. 가서 디지지 말고.”
낄낄거리는 석중을 뒤로하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 ☆ ☆
다음으로 각성자 물품 거래소로 향했다.
가격은 석중에게 사는 게 더 쌌지만, 종류 및 다양성 면에서는 각성자 물품 거래소가 월등히 많기 때문이었다.
‘흐음, 어디보자….’
집에서도 결정했듯, 지금 당장 필요한 물건은 몸에 걸칠 방어구와 신발 그리고 헬멧이었다.
무기는 필요 없었기에 방어구 전문점으로 향했다.
‘3층인가.’
각성자 거래소는 총 7층으로 이뤄진 건물이었다.
1층에는 정산소를 포함, 푸드 코트, 안내실 같은 기본적인 기능 및 저등급 아티펙트를 취급하는 상점들이 모여 있었다.
지훈이 갔었던 곳은 딱 1층 까지였다.
2층부터는 아예 종류별로 나누어져 있었다.
무기면 무기, 방어구면 방어구. 악세사리면 악세사리,
이런 분류가 5층까지 이어졌고, 6층에는 아이덴티티의 마법 및 아티펙트 상점. 그리고 7층에는 VIP 라운지가 있었다.
무기는 필요 없었기에 2, 3층을 건너뛰고 4층으로 향했다.
- 띠잉. 문이 열립니다.
문이 열리자 1층과는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1층은 정산소 외에도 저등급 헌터가 많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시장 바닥 같은 분위기였다. 반면 가격 문제 고등급 헌터만 출입하는 고층은 퍽 한산해 보였다.
‘전세라도 낸 느낌이군.’
층에 있는 손님을 다 합쳐봐야 약 10명 내외.
도리어 상점에서 대기하고 있는 직원의 숫자가 더 많았다.
뚜벅, 뚜벅, 뚜벅.
느긋하게 걸어 층을 한 바퀴 획 돌았다.
TV 광고 혹은 소문으로만 들었던 유명 아티펙트 브랜드가 눈에 휙휙 돌아왔다.
- 콜드 스틸. 당신의 몸이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합니다.
콜드 스틸은 미국의 유명 방어구 업체였다.
모델로 어린 아이를 썼는데, 그 아이 아빠가 제 아들에게 칼을 휘두르는 광고가 굉장히 유명했다.
‘무슨 광고를 저렇게 하나. 돈 주면 제 아들도 고기 방패로 팔아먹을 또라이 새끼.’
위 행동으로만 보면 굉장히 정신 나간 것 같은 광고가 아닐 수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는 상처 하나 없고 도리어 F등급 검이 박살나 버린다.
제 아이에게 검을 휘두를 정도로 단단하다는 뜻이었지만, 지훈은 저 광고가 불쾌하기만 했다.
하지만 저 자극적인 광고는 대박을 쳤고, 돈 좀 있다 하는 일반인은 콜드 스틸 아머를 잔뜩 구입했다.
- 프리 무브먼트. 가볍게, 하지만 단단하게.
과거 유명한 의류업체였으나, 현재는 마법가공 공정 혹은 몬스터 거미가 뿜어내는 실로 만든 천 방어구를 만들어 파는 회사가 됐다.
주로 미는 제품은 활동성 좋은 운동복으로, 안전에 민감한 일반인 혹은 거추장 거리는 방어구를 싫어하는 헌터들을 위한 활동복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파이로가 입었던 운동복이 있었다.
- 알케로스.
별 다른 광고 문구가 없는 게 특징인 회사였다.
마케팅 비용을 낮춘 대신, 그 비용을 전부 연구개발과 제품에 쏟는다는 의미였다.
‘여기 들어가 볼까.’
한 바퀴 다 돌아도 마음에 드는 가게가 없었기에, 슬슬 구경이나 해 볼 생각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조용하게, 과묵하게. 오로지 고객님의 안전만을 신경 쓰는….”
“그냥 구경하러 온 거니까, 부담스러운 인사 그만두쇼.”
외워 둔 인사를 읊는 점원의 말을 끊고는, 방어구를 둘러봤다. 대분류로 등급, 소분류로 재질을 나눠놓은 듯 했다.
‘가격부터 볼까.’
F등급부터 D등급 까지는 아예 있지도 않았다.
C등급부터 있었는데, 가격이 최소 1억이었다. 무기와 비교했을 때 굉장히 비싼 가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브랜드 가치를 제쳐 두고도, 방어구는 무기에 비해 들어가는 재료와 노력의 수준이 차원을 달랐다.
까닭에 방어구는 동급 무기 대비 2배~4배 정도 비싼 게 보통이었다.
‘B등급은 최소 5억부터 시작인가.’
돈 좀 벌었다고 생각했거늘, 아직 B등급 방어구는 살 수도 없을 정도였다. 결국 어쩔 수 없이 C등급 아티펙트를 하나 구입했다.
바로 사슬 갑옷이었다.
아무래도 빠른 움직임을 이용해 싸우다보니, 칼콘같은 무거운 판금 갑옷은 입을 수 없었다.
까닭에 방어력과 이동력 둘을 비교한 결과, 그 중간에 있는 사슬 갑옷이 결정 된 거였다.
“OTN(F등급)탄은 대구경까지 막을 수 있고, VGC(벤전스, D등급)은 대구경 빼고 전부 막을 수 있습니다. 아마 뚫릴만한 소재로는… MN(메가나이트, B등급)나 CRN(크릴나이트, A등급) 정도가 있을 겁니다.”
보통 헌터 및 군인들이 헌팅 및 대인전이 사용하는 탄환은 OTN이었다. OTN탄만 쏴도 거의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거니와, 그 이상으로는 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었다.
가격은 다음과 같았다.
5.56mm 기준. 가격은 환율에 따라 변동
D등급을 관통하는 VGC탄은 발당 20만 원.
B등급을 관통하는 MN탄은 발당 200만 원.
A등급을 관통하는 CRN탄은 발당 2000만 원이 넘는다.
게다가 B등급부터는 요인 및 상대 국가(길드)의 고등급 각성자 암살을 우려해 잘 유통되지도 않는 실정이었다.
암시장에 나돌긴 했지만, 가격이 기본 2배부터 5배까지 비쌌다. 곧 총알 하나에 1억이 넘을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CRN탄으로 쐈으면 최상위 관리자가 뚫렸을까?’
B등급 아티펙트로 있는 힘껏 때려도 기스도 나지 않았던 녀석이다. 장담할 수 없었다.
이렇듯 가격대비 효율이 좋지 않으니, 보통 좀 날고 긴다 하는 녀석들이 VGC탄, 고등급 저격수 및 암살자들이 아주 낮은 확률로 MN탄을 들고 다녔다.
‘한 마디로 엄청난 놈 만나지만 않으면 방탄 쪽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군.’
“방화력은 어떻소?”
“저 갑옷에 쓰인 소재는 BOSA에서 개발한 B시리즈 329번입니다. 아마 4000도씨 까지는 버틸 겁니다.”
4000도. 그 정도면 충분했다. 지속적인 화염 공격을 받는 게 아니면 모를까, 4000도면 믿음직했다.
일단 제품 성능으로만 봐서는 만족이었다.
부츠는 딱히 만족스러운 게 없었다.
아이덴티티 매장 쪽으로 이동했다.
‘몇몇 물건은 마법을 발동할 수 있다고 들었었다.’
물론 체내에 마력을 가진 사람 한정에, 가격 대비 효율이 좋지 않아 인기는 없는 물건이긴 했지만, 일단 있기는 있었다.
“마법 발동할 수 있는 물건 찾는데. 신발으로.”
직원은 감지기로 지훈을 훑었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 발동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행동이리라.
- 삑
마력 : E 등급 (16)
“수준급 마력이네요. 이쪽으로 오시죠.”
아이덴티티 매장 직원은 지훈을 안내했다.
보통 매장과 달리 신발 몇 종류와, 사용할 수 있는 마법 그리고 등급만 딱 적혀있는 심플한 매대가 보였다.
원하는 신발을 선택하면, 마법을 직접 입력해서 주는 시스템 같았다.
일단 마법 쪽을 살펴봤다.
- 미끄럼 방지.
- 접착.
- 타격용 순간 강화.
- 낙하 방지.
- 고공 점프.
아무래도 신발인 만큼, 공격마법이 아닌 상황별 대처를 할 수 있는 마법이 가득했다.
‘그나마 쓸 만 한 건 고공 점프인가.’
접착과 낙하 방지도 매력적이었지만, 사용할 수 있는 순간이 한정적이었다. 반면 고공 점프는 얘기가 달랐다.
총기를 주로 사용하는 지훈의 경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다는 건 곧 수월한 전투 승리를 의미했다.
야전에서도 높이 점프한 뒤 사격을 할 수 있었고, 시가전의 경우 이동 시간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게다가 이용 여부에 따라서 내가 돌진하거나, 상대방의 돌진 도 막을 수 있다.’
더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고공 점프로 결정했다.
마음 같아서는 낙하 방지까지 넣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물품 당 마법은 1개가 최대였다.
우응 -
직원이 마법을 영창하자, 워커가 작게 반짝였다.
“E등급, 고공 점프 워커입니다. 1억 5천만 원입니다.”
과연 마법 물품.
E등급 주제에 가격이 C등급 방어구 보다 비쌌다.
가격을 들으니 속이 아려왔지만, 안전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물건이었기에 바로 지불했다.
‘이제 남은 돈은 대충 1억 가량인가.’
분명 엄청나게 많은 돈임에도, 이상하게 부족해 보였다.
‘나도 어지간히 씀씀이가 커졌구만. 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