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황 끝. 그리고 탈출. -->
‘빌어먹게도 시끄럽게 싸웠군.’
총 소리가 났음은 물론, 날아가는 과정에서 부딪친 건물은 차에 치인 것 마냥 푹 파여 있었다.
약 3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몸이 완벽하게 재생됐다.
그 와중에 세드에는 없을 친절한 행인이 다가왔다.
괜찮냐고, 구급차를 불러주느냐 물었다.
몸은 괜찮았지만, 119 신고는 당연히 안 괜찮았다.
“필요 없으니 하지마쇼.”
“그래도 세게 부딪치신 것 같은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는 걱정스럽게 묻는다.
원래 성격이었다면 도주 중 마주친 목격자였기에 제거했겠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이블포인트가 신경 쓰이기도 했거니와 굳이 착한 사람인데 죽일 필요까지 있겠냐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CCTV 돌리면 내 신상 다 나올 게 분명하다. 목격자 하나 늘었다고 달라질 건 없겠지.’
친절한 행인을 뒤로하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그나마 전투 전에 내려서 박살나지 않은 게 다행일까?
“이보쇼, 지금 몇 시요?”
“새벽 3시 42분이요.”
전투 및 대화 과정에서 약 10분 정도 흘렀다는 얘기였다.
까닥 인사하고는 바로 페달을 밟았다.
출발까지 남은 시간, 1시간 18분.
대로를 타지 못하고 빙빙 돌아가야 했음은 물론, 순찰차가 보일 때마다 우회하거나 숨어야 했기에 생각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격벽으로 들어가는 건 문제가 없었다.
원칙대로라면 모든 행인의 신분증과 무기를 검사해야 했지만, 하루 유동인구가 십만을 그냥 넘는 장소였다.
상시 대기인력 4명으로는 애초에 검문 자체가 불가능한 얘기였기에, 딱히 수상해 보이는 사람이 아니면 그냥 넘겨주는 게 관례였다.
‘평상시대로 가자.’
너무 빨리 지나쳤다가는 의심을 살 수 있었다.
일반인처럼 대강 속도를 내서 검문소를 지나가려는 찰나…
휘-익!
경비실에 있던 남자가 호루라기를 불었다.
“거기! 잠시만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자전거를 세웠다.
“왜 그러십니까?”
경비가 슬쩍 자세를 낮추며 지훈의 얼굴을 훑었다.
“후드 좀 내려주시겠습니까?”
“그러죠.”
말은 순순히 듣는 척 하면서도, 오른손은 후드 앞주머니에 넣었다.
여차하면 바로 쏠 생각이었다.
경비는 지훈의 얼굴을 대충 슥 훑었다.
“예, 통과하세요. 근래 새벽에 연쇄살인마가 기웃거린다는 얘기가 들려서요. 격벽 근처에 CCTV 적은 곳에는 가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진심으로 보이는 충고가 돌아왔다.
아마 지훈의 정체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감사하다고 인사하고는 다시 출발했다.
주소를 따라 이동하니 점점 더 격벽 구석으로 향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중앙 대로에 새로 세워진 신축 빌딩대신, 몬스터 브레이크 아웃의 흔적이 그대로 남은 빌딩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전부 다 허물고 새로 지었어야 했지만, 자금 사정 및 기타 어른들의 사정으로 방치 된 결과였다.
CCTV와 가로등 그리고 사람 그림자가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마치 유령도시에 온 기분이 들었다.
‘동구에 빌딩 세웠으면 딱 이런 느낌이겠군.’
금방이라도 건달이나 강도가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와는 달리, 아무런 일 없이 토끼 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긴가?’
자전거에 내려서 9층짜리 빌딩을 올려다봤다.
연식이 꽤 됐음은 물론, 박격포라도 한 대 맞았는지 3층 외벽은 아예 뻥 뚫려 있었다.
어째 인기척이 하나도 없어 제대로 온 걸까 싶기도 잠시.
어차피 휴대 전화도 없어 확인해 볼 수도 없었기에 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려고 했다.
뭔가 기묘함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건 또 뭔….’
후욱 - 후욱 - 후욱 -
밖에서는 볼 수 없는 곳.
1층 로비. 입구 쪽 구석에 사람 숨소리가 들렸다.
위치로 보건대 들어가자마자 덮칠 생각으로 보였다.
‘양쪽에 둘씩인가.’
어쩌길 고민하다가 그냥 대화로 해결하기로 했다.
남의 본진이자, 사업장 와서 개판 만들어 놓을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경숙한테 볼 일이 있다.”
김경숙이란 이름이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범죄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5시, 토끼?”
“그래. 나다.”
“들어와.”
범죄자들은 지훈을 빌딩 지하로 안내했다.
안내하는 도중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뒤에서 멀찍이 따라오던 남자 둘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불평을 했다.
빌딩 지하, 제일 깊숙한 곳.
정육점 혹은 싸구려 방석집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홍등을 켜놓은 방. 그곳에 김경숙이 있었다.
“네가 김지훈이라는 애구나?”
다시 한 번 들어도 여전히 불쾌한 음색이었다.
“두 번 볼 거 아닌데, 통성명 집어 치우지.”
“귀여운 애네. 겁도 없고. 근데 명줄은 짧아 보여.”
경숙은 마치 먹잇감을 보는 시선으로 지훈을 슥 훑었다.
지금 본인이 보고 있는 상대가 최상위 포식자에 가까운 맹수라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닥치고 출발 준비나 하지. 늙은 창녀랑 애기하니까 귀가 강간당하는 기분이군.”
“석중만 아니었어도 바로 공업용 파쇄기에 갈아버릴 수 있었는데. 너 같이 야들야들한 애들은 발부터 서서히 갈릴 때 참 예쁜 음색을 내거든. 넌 어떤 소리를 내는지 듣고 싶었는데. 아쉽네, 아쉬워.”
단지 대화 몇 번 했음에도, 둘 사이에 사람 몇 명 진즉 죽어나갔을 것 같은 살기가 흘렀다.
본디 인간이란 존재는 사람과 살면 사람이 되고, 짐승과 살면 짐승이 되는 법이었다. 지훈은 그 사람의 탈을 쓴 짐승들을 잡아 죽이던 사냥꾼이었다.
과거 사냥꾼 시절의 모습을 살짝 내비췄다.
언제라도 총알이 날아올 수 있는 침묵이 이어지자, 결국 경숙이 먼저 꼬리를 말았다.
“출발 전에 석중이 전화 한 통 하자던데, 무슨 일?”
석중이 전화를 요청한다?
수완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저렇다는 건, 분명 뭔가 일이 틀어졌다는 얘기였다.
“나도 모른다. 일단 전화 연결부터 하지.”
김경숙은 제 핸드폰으로 석중에게 전화를 건 뒤, 지훈에게 집어 던졌다.
휘익 - 턱.
“어, 경슥이.”
“그래서 무슨 일이오.”
이상한 사람한테 인사를 건네는 걸 무시하고, 바로 본론을 물었다.
“네 무슨 일 쳤니?”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소. 신금속 연구 임상실험을 했는데, 사실 은폐를 위해 제거하려는 것 같소. 근데 지금 이딴 사정이 왜 필요한 거요?”
석중은 능구렁이 같은 웃음을 지었다.
“크히히히힉.”
“나 지금 진지하니까, 농담할 거면 그만두쇼. 진짜 가서 혓바닥 잘라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진심을 담은 말에도 석중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신고가 없디. 경찰도, 가디언도. 그 어디에도 없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게 무슨 개 소리요?”
정부 요원까지 써서 막으려고 했던 녀석들이다.
거기다 대학에서 나올 때 왔던 경찰은 또 뭐란 말인가?
이 상황이 전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말 그대로 없디. 쫓는 사람이 없다고.”
“하?”
정부에서 비밀리에 처리하려고 하는 걸까?
‘그럴 리 없다.’
제대로 된 인력은 전부 가디언이나 길드로 빠진 시점.
그 상황에 B등급 각성자에, AMP까지 가지고 있는 지훈을 정부 요원으로 비밀리에 제압한다?
차라리 가디언에 의뢰하는 게 효율이 훨씬 좋다.
의뢰자가 정부라면 서로 좋게좋게 끝내려고 비밀유지도 해줄 터였다.
‘근데 신고를 안 넣었다고? 이게 무슨….’
☆ ☆ ☆
실상은 이랬다.
소위 AMP 실험을 담당하는 제일 높으신 분.
이름 모를 정치의원은 정철수가 혼자 일을 처리하는 걸 보고받자 애가 타기 시작했다.
그의 계획이 틀어졌기 때문이었다.
원래 계획은 일부러 안전 운운하며 임상실험을 금지시킨 다음, 차분히 조건을 좋게 제시하는 국가를 알아보려고 했다.
이후 기술을 전부 빼돌려 해당 국가로 망명할 생각이었다.
이에 교수는 안달이 났다. 신기술을 최대한 빨리 상용화함으로써, 돈방석에 앉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임상실험 건으로 날카로운 갑론을박이 몇 번.
정치의원은 생각했다.
‘이 새끼가 뒤통수 때리고 먼저 기술 팔면 어떡하지?’
지금 현 상황으로는 가설 단계고, 입증된 사실이 거의 없기 때문에 기술 자체를 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임상 실험 결과가 나온다면?
증거를 바탕으로 가설은 사실로 변하고, 연구는 그 즉시 가치를 갖게 된다.
한마디로 당장 가져다 팔아도 된다는 애기였다.
정치의원은 겁이 나기 시작했다.
만약 정철수 교수가 먼저 기술을 팔아 버린다면?
만약 조교 중 하나가 연구를 탈취한 뒤 도망간다면?
절대 그렇게 내버려 둬선 안됐다.
그래서 명령했다.
- 혹시 저 녀석이 임상시험을 하거든, 연구 탈취하고 망명 준비해.
경비들은 명령을 받자마자 바로 실행에 옮겼다.
어차피 정부 요원이라 할지라도, 돈에 움직이는 사람.
그깟 애국심보다 정치의원이 약속한 ‘억’소리 나올 돈이 훨씬 더 중요했다.
그 탈취 과정에 지훈 역시 끼어있었다.
아무래도 기술 판매 당시 샘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기에, 조금이라도 더 AMP을 많이 확보해 놓을 생각이었다.
함구?
그딴 거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오늘 밤에 바로 기술 팔아넘기고 망명할 건데, 소문이 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소문이 퍼질 때쯤이면 정치의원과 그 일행은 이미 거래를 끝마치고 조 단위 돈 위에 앉을 수 있었다.
까닭에 정치의원은 경비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와중에 실험을 받던 각성자가 하나 도망갔습니다. 그 녀석은 어떻게 할까요?
- 내버려 둬. 어차피 피라미다. 하지만 경찰이 연루되면 일이 복잡해지니까, 경찰은 내 쪽에서 알아서 무마하지.
- 예, 알겠습니다.
이후 정치의원은 본인의 힘을 이용해 경찰 신고를 무산, 지훈을 쫓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됐다.
결국 사실을 모른 지훈만 혼자 개고생 했다는 얘기였다.
☆ ☆ ☆
다행일지, 불행일지 참 애매한 상황이었다.
“하, 그래서 이제 뭘 어떡하면 되겠소?”
“뭐 하긴, 그냥 포탈타고 건너오라.”
어이가 없어졌기에, 전화를 끊고 담뱃불을 붙였다.
“없었던 일로 합시다. 나 가보겠소.”
이제 토끼굴과는 볼 일 없었기에 등을 돌리려는 찰나, 김경숙이 말로 붙잡았다.
“가긴 어딜 가?”
“나한테 볼일 있소?”
“위약금. 절반.”
1500만 원 달라는 얘기였다.
화딱지가 나서 그냥 뒤집어엎을까 싶었으나, 그만뒀다.
석중이 아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뒤집어엎었다가는 괜히 잔소리 들을 게 분명했다.
☆ ☆ ☆
결국 첫 포탈 타고 세드로 돌아가기로 했다.
‘2시간 정도 남았나.’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버렸다.
뭐 할까 고민하기도 잠시.
지구가 아니면 먹을 수 없는 편의점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인스턴트도 의외로 먹을 만하네.’
햄버거를 씹으며 이것저것 생각에 잠겼다.
아쵸프무자와 ‘그 녀석’.
상황으로 보건대 둘이 대립하는 것 같았다.
‘녀석은 아쵸프무자가 세상을 뒤틀려고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아쵸프무자는 아니라고 말했다.’
골치 아픈 문제였다.
제한된 정보 속, 파편 같은 대화들만으로 진리를 추측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골머리 썩기도 잠시. 이내 포기해 버렸다.
‘어차피 돌아가면 시간이야 많다. 나중에 하자.’
포탈 시간이 거의 다 됐기에 터미널로 향했다.
자전거를 가까운 거치대에 뉘여 놓고 들어가를 찰나…
“우웨에에에엑!”
웬 거대한 인영이 토악질을 해대고 있었다. 그 옆으로 남자 한 명과, 버그베어 한 마리가 등을 두들기고 있…
‘뭐?’
눈 찌푸리고 자세히 살펴봤다.
칼콘은 술을 얼마나 먹었는지 토를 했고,
민우는 그런 칼콘의 등을 박살낼 기세로 두드렸으며,
가벡은 도대체 어디서 샀는지 모를 애니메이션 캐릭터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칼콘의 화이트 스키니진 이후로 제일가는 비주얼 쇼크였다.
뚜벅, 뚜벅.
“에휴, 새끼들아. 뭐하냐?”
한심하다는 듯 부르자 셋의 고개가 훽 돌았다.
“어… 형님. 칼콘이 석류 소주 맛있다고… 20병 넘게 마셔버려가지고….”
20병.
대충 350ML로 넣고 계산해도 7L다.
치사량을 둘째 치고, 도대체 어디로 다 들어갔을 지 알 수 없는 양이었다.
“근데 전화기 꺼져있던데, 무슨 일 있으셨어요?”
한동안 머리 싸고 고민해야 할 초특급 문제가 연달아 2개나 뻥뻥 터져버렸다. 하지만 입으로는 괜찮다고 말했다.
“아니.”
이후 나란히 지구 관광의 마지막 일출을 보며 담배 한 대 피운 뒤 세드로 돌아왔다.
☆ ☆ ☆
그 시각.
파이로는 연락이 없는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새끼! 황인종은 이 놈이고, 저 놈이고 쓸모 있는 녀석이 단 하나도 없나!”
분노와 함께 불꽃이 일렁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죽은 사람이 어떻게 전화를 한단 말인가?
정찰꾼이라는 녀석은 이미 괴물에 의해 사망한 상태였다.
☆ ☆ ☆
[정산]
[지훈]
현금 2600만 원 지출. (왕복 포탈비, 토끼굴 위약금, 잡비)
AMP 주괴 획득.
- 장비 손상 : 시연이 사 준 티셔츠와 면바지, 그리고 아끼는 가죽재킷.
- 부상 : 견갑골 골절, 내장파열, 뇌진탕. (재생 됨)
- 능력 : 저항 +1 (D등급 24)
- 기타 : 반지와 아쵸프무자, 그리고 ‘그 녀석’에 대한 정보를 획득함.
- 기타 2 : AMP 주괴를 활용할 방법을 찾아봐야 함.
☆ ☆ ☆
[아쵸프무자가 말한 ‘다음’까지 318시간 (약 13일)]
[‘그 녀석’ 일행의 다음 등장까지 … ???시간 ]
[파이로 완치까지 3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