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103화 (103/173)

<-- 그러면 그렇지. -->

실험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우려했던 부작용은 가벼운 신진대사 증가 외에는 전혀 없어 보이는 듯 했다.

‘몸이 가볍다. 현기증도 거의 없군.’

아니, 도리어 랭크가 올라가면서 이능 부작용이 줄었다.

실험이 끝난 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있으니 교수가 환한 미소로 찾아왔다. 손에는 직사각형 형태로 가공 된 AMP가 들려 있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실험이 좋게 끝났습니다.”

“딱히 한 것도 없었으니, 신경 쓰지 마쇼.”

예의상 건네는 인사 후 교수는 슬쩍 본심을 내비췄다.

“이후 실험 말입니다. 만약 저희와 함께 하신다면 그에 합당한 보수를 드리겠습니다.”

살짝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으나 거절했다.

지구에 숙소를 잡기도 귀찮았거니와 이상하게도 저 교수랑만 연관되면 좋지 않은 일이 생겼기에 싫었다.

덤으로 어디에 소속되기 싫기도 했고 말이다.

“됐소. 어디 묶여있는 건 성미에 안 맞아서 말이지.”

지훈은 잘 훈련된 군견보다는, 난폭한 들개들의 우두머리에 가까웠다. 실제로도 별명이 미친 사냥개 아니던가.

어디 편안한 일자리나, 일정한 일자리를 원했다면 진즉 길드나 아이덴티티 혹은 보사 같은 대기업에 들어갔을 터였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칼콘과 함께 할 수 없음은 물론 세세한 부분에서 이래라 저래라 명령받는 게 싫었기 때문이었다.

일이 틀어진다면 과격한 수를 써서라도,

불편한 껀덕지가 있으면 살짝 손해를 보더라도,

우회할 수 있다면 거래를 하거나, 뇌물을 줘서라도,

제 마음대로 하는 게 좋았다.

‘역시 자유로운 게 좋단 말이지.’

어차피 수익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큰 의뢰를 처리하면 길드나 타 기업에서 용병짓 하는 것 보다 더 벌 때도 있었다.

그 상황에서 굳이 힘들여가며 어디에 소속된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교수도 원하는 정보는 대강 뽑아냈는지 끈적이지 않고 바로 섭외를 포기했다.

“여기 AMP입니다. 살에 직접 맞닿지 않으면 효과가 적어지니 주의해 주십시오. 그리고 녹는점은 OTN과 비슷합니다. 원하는 형태로 가공해서 쓰시지요.”

“내 잘 쓰도록 하지.”

AMP를 받아들고는 승강기로 향했다.

가는 도중 경비들이 필요 이상으로 달라붙었다.

‘이건 또 뭔….’

띵 -

문이 열립니다.

안에 타자 경비들도 다 같이 따라 탔다.

뭔가 구린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열림 버튼을 꾹 눌렀다.

“지금 뭐하는 건데?”

“안전하게 밖으로 안내해 드리는 겁니다.”

“좆같은 과잉보호 치워. 애새끼도 아니고, 내가 길이나 잃을 것처럼 보이나?”

“안전하게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경비가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는 손을 떼어내려 다가왔다.

밀쳐내며 상대의 무장을 슥 훑었다.

뒷골목 양아치도 아니고, 정부 사업 하는 주제에 간빼먹고 처리할 강단이 있어 보이는 교수는 아닐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사건은 원래 혹시할 때 터지는 법.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상대의 무장을 훑었다.

경비는 넷.

무장은 K5 자동권총과 삼단봉.

방어구는 내의형 방탄조끼.

K5의 장탄수는 13발.

그 말은 곧 최대 68발의 총알이 날아온다는 얘기다.

MP5 총알을 연달아 20발 정도는 막아냈으니 큰 걱정은 몰랐지만, 지근거리에서 두부 및 안구 피격을 당할 시 무슨 일이 생길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언제든지 이능을 쓰고 달려들 준비를 했다.

침묵 속에 차갑게 내려앉는 분위기.

결국 대장으로 보이는 경비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저만 따라가겠습니다. 다들 내려.”

나머지 셋이 승강기에서 내렸다.

뒤로 돌지도 않고 팔꿈치로 1층을 눌렀다.

띵 - 문이 닫힙니다.

도착까지 약 30초.

눈도 깜빡이지 않고 경비를 응시했다.

“짧게 말하겠습니다. 방금 들으신 정보는 절대로 새어나가선 안 될 정보입니다. 일단 손에 들고 계신 AMP부터 주시지요. 그럼 과격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역시 뒤가 구리다 싶었다.

아마 정부 요원인 경비들은 교수의 실험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연구를 꿀꺽 할 생각인 것 같았다.

“이건 내 물건인데 무슨 개소리를 찍찍 싸나.”

“그럼 강제로 뺏을 수밖에 없습니다.”

“해 봐. 혓바닥만 흔들지 말고.”

살기를 내뿜으며 도발했다.

녀석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몰랐지만, 이쪽은 B급 각성자에 전투 능력치가 전부 D랭크였다.

육체 능력만 쳐도 맹수를 손으로 찢어죽을 수준인데, 거기에 뛰어난 전투감각까지 더해진다?

그건 사람이 아니라 병기다.

“여기서 나가신다고 한들 큰 불이익이 있을 겁니다.”

경비 역시 그 사실을 알았기에 섣불리 덤비지는 않았다. 단지 협박만 내뱉을 뿐이었다.

“좆까, 새끼야.”

그걸 마지막으로 대화는 없었다.

띵 - 1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문이 열리자 경비 다섯이 K5를 겨누고 있었다.

“AMP 내려놓으십시오. 마지막 경고입니다.”

지훈은 그 모습을 보자 어이가 없어서 실소만 나왔다.

‘그럼 그렇지. 정부, 이 씹새끼들이랑 엮이면 좋은 일이 하나도 없어.’

“이게 그렇게 갖고 싶냐? 가져 이 새끼야.”

‘이능 발동. 가속, 집중.’

지훈은 AMP를 밖에 있는 경비에게 줬다.

아주 세게.

쒜애애액!

가속 된 육체가 활처럼 휘며 AMP를 던졌다!

손가락 2개 크기 밖에 안하지만, 애초에 금속덩어리!

동전을 던져서 사과를 뚫는 위력이다.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뻐억!

경비의 머리가 뒤로 훽 젖혀지며 쓰러지기 시작, 채 쓰러지기도 전에 지훈이 바로 옆에 있던 경비의 옆구리에 보디 블로를 꽂았다.

퍽!

고기덩이 때리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펄떡이는 경비!

녀석이 벽에 부딪히게 둘 생각은 없었기에, 날아가는 녀석의 목을 붙잡아 바로 백허그하듯 포박했다.

남은 경비 넷이 당황하며 위협했지만, 무시했다.

“움직이지 마! 쏜다!”

“쏴, 개새끼야.”

안고 있던 경비를 바로 앞으로 밀었다.

아군이 튀어나왔으니 바로 사격을 하진 않을 터다.

인간의 반응 속도는 약 0.3초다.

거기다 급작스러운 상황에 상황 재인식에 약 0.5초.

이에 다시 반응하는 속도 약 0.3초.

총 1.1초의 틈.

숨 한 번 내쉴 시간밖에 되질 않지만 상관없다.

이미 집중과 가속을 몸에 업은 지훈은 타인과는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는 생물체였다.

경비들의 총이 나란히 지훈을 향한다.

사각에 가로막힌 총구 2개, 쓰러진 1개를 제외하면 사격 가능한 총구는 2개.

일반 탄환이라면 맞아줘도 상관없겠지만…

내용물을 모른 체 무식하게 맞아줄 수는 없었다.

슬라이딩 하듯 승강기에서 이탈, 반동으로 몸을 일으키며 맨 좌측 녀석의 고간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또라이 아니고서야 강철 팬티를 입지는 않았을 터.

끔찍한 소리와 함께 일격이 그대로 꽂혔다.

그 사이 밀려난 경비는 우측 두 경비와 함께 넘어졌다.

지금 당장 전투가 가능한 인원은 하나.

바로 옆에 있는 경비다.

“꺼져, 이 새끼야!”

고간 일격과 함께 일으켰던 몸을 다시 반전, 허리를 숙이며 왼 팔꿈치를 녀석의 턱에 꽂아 넣었다.

뼈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축 늘어진다.

탕! 탕!

쓰러졌던 녀석들이 사격을 했지만, 쓰러지며 대충 쐈는지 피격되지는 않았다. 될 수 있으면 총 겨눈 놈은 전부 죽이고 싶었지만, 상대는 정부 요원이었다.

무턱대고 죽였다가는 공권력을 대동한 가디언이 붙을 수 있었기에 죽일 수는 없는 상황.

결국 어쩔 수 없었다.

타탓! 훅!

도움닫기 후 도약!

몸무게를 실은 엘보 드롭을 선사했다.

뻑 소리와 함께 한 녀석이 실신, 나머지 두 녀석은 자세를 바꿔 올라탄 뒤 주먹으로 끝장을 내 줬다.

“정부에서 일하는 새끼들이 양아치마냥 사기를 쳐? 내가 그러라고 정산할 때마다 33%짜리 초특급 세금 때려 박는 줄 아냐?”

화딱지가 나서 기절 내지 실신한 놈들에게 욕을 내뱉었다.

‘젠장, 벌집 쑤셨으니 한동안 숨어 지내야겠네.’

아마 3달 정도는 안전가옥에서 숨만 쉬고 살아야 할 터였다. 안전가옥이야 석중 혹은 시체 구덩이 주인에게 말하면 어디 오지에 하나 마련해 주리라.

과격하게 일을 처리한 게 살짝 후회됐지만,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하는 꼬라지 봤을 때, 함구를 명목으로 AMP를 뺏은 뒤 사살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모르모트로 쓰이고 버려질 바에는, 정부에 빅 엿 하나 먹여주고 잠적하는 쪽이 나았다.

어차피 연구 문제로 지들끼리 치고 박기 바빠서, 지훈 따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잊어버릴 게 분명했다.

- 정당방위에 따라 이블포인트 증감이 없습니다. 현재 포인트는 59입니다.

대충 옷을 털어내고는 땅에 떨어진 AMP를 집었다.

이후 무장이 필요할거라 판단, 쓰러진 경비에게서 K5와 탄창 3개를 챙겼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탕 - !

로비에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통이 없는 걸 봤을 때 맞지는 않은 모양.

눈을 돌려 확인하니 40~50은 되어 보이는 반백의 중년이 총을 겨눈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경찰에 신고했다. 우, 움직이지 마!”

학교 경비로 보였는데, 어째 경찰공무원 용 리볼버를 장비하고 있었다.

‘여기도 치안이 개판인 모양이네.’

그냥 그러려니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이보쇼, 아재. 그거 쏘면 당신 죽소.”

“움직이지 말라니까! 곧 경찰 올 거니까 투항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총구가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훈련만 받았지 이런 상황은 처음인 듯 싶었다.

제압하고 나가는 건 큰 일이 아니었지만 나이 든 사람, 특히 이 일에 관련 없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거 어디 부러지면 뼈도 잘 안 붙을 거 같구만, 쯧.’

결국 말로 해결하기로 했다.

“아재, 잘 생각해 보쇼. 내가 혼자서 이 다섯 명 다 때려눕혔는데, 아재 하나 어떻게 못할 것 같소?”

말을 건네며 뚜벅뚜벅 다가갔다.

“시끄러워! 어, 어서 투항해!”

경비는 겁에 질렸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한 동안 걸음 소리와 고함 소리만 잠시.

결국 지훈이 경비 바로 앞까지 당도했다.

“이런 장난감 막 다루지 마쇼. 알겠소?”

들고 있는 리볼버를 뺏어다 집어 던진 후, 빠르게 움직여 과동 밖으로 나왔다.

‘최대한 빨리 이탈해야 한다. 신고가 들어갔으면 인상착의 정도는 알고 있을 터.’

뒷골목 일을 할 시절 이런 지루한 술래잡기는 이미 여러 번 해봤었다.

빠져나가는 것 따위 식은 죽 먹기다.

타타탓!

밖으로 나오자 마침 커플 하나가 지나가고 있었다.

‘키 170대 후반, 보통 체형. 후드티에 운동복. 딱이군.’

지훈은 쟈켓 주머니에서 K5를 꺼내 커플에게 겨눴다.

“벗어.”

영화에서나 볼 법한 광경에 커플이 얼어붙은 체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아마 너무 현실성이 없어서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리라.

“네, 네? 뭐라….”

“벗으라고.”

언제라도 쏠 수 있다는 듯 K5 슬라이드를 당겼다.

여자가 울먹거리더니,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이, 이러지 마세요… 제발….”

어이가 없어져서 한숨을 내뱉었다.

‘무슨 영화를 봤으면 저딴 반응이 나와.’

“너 말고. 남자.”

“저, 저요?”

남자가 고양이 눈을 뜨고 물었다.

시간이 허비되고 있었기에 한 대 때리려다 말았다.

민간인이라 한 대 맞은걸로도 치명상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스윽, 슥, 스슥.

지훈은 남자의 옷으로 환복한 뒤 후드를 쑥 눌러썼다. 이후 지갑에서 대충 지폐 몇 장을 꺼내서 던졌다.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그걸로 새 옷 사 입어.”

황금빛 지폐가 펄럭이는 것을 배경으로, 지훈이 커플에게서 멀어졌다. 이후 가까운 자전거 거치대로 향해…

탕!

장금 장치를 제거한 뒤 바로 올라탔다.

목적지는 학교 정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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