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
낙삼대학교는 관악산 중턱에 위치한 대학교였다.
본디 몬스터 아웃브레이크와 함께 산악지대라는 이유로 주요 방어 지점으로 선정, 이에 따라 대규모 몬스터 침공에 의해 쑥대밭이 됐었지만…
지금은 서울에 3개 밖에 없는 대학 및 연구단지로서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지훈은 택시에서 내려 대학교 주변을 슥 둘러봤다.
만약 차원 왜곡이 몬스터 브레이크 아웃이 없었다면?
아마 지훈 역시 고등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이나 하며 이 학교에 올 꿈을 꿨으리라.
‘그래봐야 모두 지난 얘기지.’
초가을 바람에 부서지듯 흩어지는 담배 연기와 함께, 쓸 대 없는 감상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이제는 다시 헌터이자, 세드의 주민으로 돌아 올 때였다.
담배를 끄자 멀리서 검은 양복 한 명이 다가왔다.
“김지훈 씨?”
누군가 제 이름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경계부터 하는 지훈이었다.
“그렇게 묻는 당신은 누구고, 뭐하는 놈인데?”
딱 봐도 사설 경비로 보이는 복장에, 무장은 소총과 아티펙트로 보이는 삼단봉, 그리고 정장 아래에 얇은 조끼형 방탄복을 입고 있었다.
“NM연구 경비 2팀 소속, 송지훈입니다.”
이름이 똑같았다.
흔한 이름이니 그러려니 했다.
“가시죠, 정교수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차하면 방아쇠 당길 것 같은 놈하고 딱히 하하호호 잡담이나 나눌 일 없었기에, 이동 중에는 침묵했다.
위이이이잉 -
승강기 전 까지 4명, 내려서 5명을 더 지나서야 교수와 조교를 만날 수 있었다. 구출한 조교는 3명인데, 어째 보이는 얼굴은 하나다.
‘골골거렸던 남자 놈인가. 여자 둘은 어디 갔어?’
“반갑습니다, 교수님. 어찌 잘 계셨습니까? 근데 다른 분들은 아닌가, 아는 얼굴 둘이 없네.”
교수는 활짝 인사하다 살짝 머뭇거렸다.
“저번 습격 때… 뭐, 좋은 날에 이런 얘기 하자고 만난 건 아니잖습니까.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지훈님.”
교수가 손을 내밀었기에, 대강 잡고 손만 휘적거렸다.
“낯 뜨거운 인사 그만하고, 본론만 합시다.”
진심이었다.
아무리 교수가 호의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지훈은 저 교수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항상 이상한 일을 엮어왔기 때문이다.
그가쉬 클랜에서 빌어먹을 새끼랑 어이없는 거래를 한 것도 그렇고, 괴상망측한 놈들한테 습격당한 것도 그랬다.
특히 칼콘 부상 건은 더더욱.
“예, 귀중한 시간을 낭비할 순 없죠.”
반면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활짝 웃었다.
의뢰 받을 때부터 고압적인 자세는 물론, 딱 봐도 성격 모나 보일 법한 언행을 많이 보였으니 그러려니 하는 모양이다.
옆에 있던 조교가 살짝 목례하며 손을 내밀었다.
원석을 건네주자 너무 무거웠던지 휘청거렸다.
금속 연구실에서 나가 교수의 개인 공간으로 이동했다.
딱 봐도 졸려 보이는 두꺼운 책들이 잔뜩 꽂혀 있음은 물론, 군데군데 온갖 이상한 원석들이 장식물처럼 놓여있었다.
“아, 그거 말입니까? 오스테나이트입니다. 총알로 많이 쏴보셔서 아마 익숙한 금속일 것 같군요.”
“아아.”
대충 고개만 까닥여 아는 척을 했다. 그러자 교수는 제 전공 얘기에 신이 났는지, OTN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대충 요약하자면 어떤 치과 의사가 관광 중 발견했는데, 대충 보니 임플란트로 쓰기 좋을 것 같아서 실존하는 금속인 오스테나이트라는 이름을 그대로 붙였다고 했다.
“그 사람 지금은 돈 잔뜩 벌고 은퇴해서 즐거운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하더군요. 하하.”
교수는 곧 자기도 그렇게 될 거라는 듯 해죽 웃어보였다.
“좋겠군요. 그래서 금속 뽑아내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제련 말씀하시는 거군요. 뭐 이 경우에는 추출이라고 해야 할지, 어쨌든 금방이면 됩니다. 커피라도 한 잔?”
고개를 까닥였다.
원두로 만든 커피를 홀짝이고 있자니, 교수가 그제야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라디오 방송에서 들으셔서 알겠지만, 저 금속. 현재 제가 명명한 앰플리파이어, AMP는 각성자들의 이능을 증폭시키는 기능이 있습니다.”
이능의 증폭.
달콤해 보이는 말이었지만 딱히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본디 이능은 양날의 검이었다.
마력계 이능은 마나 소모 가속 및 증발을,
방출계 이능은 극심한 신진대사 가속을,
강화계 이능은 신체에 커다란 부담을,
변이계 이능은 큰 고통을 가져온다.
이능이 약하다면 저 부작용 역시 무시할 수 있지만, 보통 위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부작용도 같이 커진다.
몇몇 독특한 이능은 등급에 따라 부작용이 적어지는 것도 있었지만, 그 숫자가 적었다.
지금도 불안전한 힘을 인위적인 물건으로 증폭한다?
영 신통치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임상실험도 통과되지 않은 상태 아니던가.
과거 모 과학자도 본인이 인간의 병을 완치할 수 있는 줄기세포를 발견했다며,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쳤었다.
입증되지 않은 과학.
사기 치기 딱 좋은 소재 아니던가.
켕기는 게 많을 수밖에 없었다.
“임상실험은 끝내고 뉴스 발표한 거요?”
교수는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입니다. 하지만 안전합니다. 단지 자금 지원 문제로 발표를 먼저 했을 뿐이죠.”
돈 때문에 성과를 부풀렸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문득 노벨상을 탐하던 교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구린 냄새가 나는군.’
“여기까지 오는 데 교통비만 600 정도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 시간도 많이 잡아먹었지. 날 가지고 장난질 치려는 생각이면, 아-주 재미있는 선물로 보답하겠다고 약속하지.”
교통비 600만 원.
푼돈 이었지만, 저기엔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었다.
정부 지원 사업인데 교통비 지원이 안 된다.
물론 교수 개인적인 일으로 볼 수도 있었지만, 지금 상황으로 보건데 임상실험을 같이 할 생각으로 보였다.
그 상황에서 지원금이 안 나왔다?
어디 덜컥 막힌 구석이 있다는 얘기였다.
교수는 대답하지 않고 쓴웃음만 지었다.
“예, 날카로우시군요.”
아무리 교수고, 중요 연구 담당자라고 해봐야 책상머리에 앉아있던 사람이었다. 뒷골목에서 목숨 걸고 외줄타기 딜을 하던 지훈의 감을 피해갈 수 있을 리 없었다.
“같잖은 예의 집어 치우고, 빠르게 갑시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뭔데?”
“정부 사업이라, 임상실험 단계에서 부딪쳤습니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안전성을 확보하라는 군요.”
보통 이런 경우 임상실험에 앞서 동물 실험을 먼저 했지만, 중요한 건 저 금속이 ‘이능을 증폭’ 한다는 거였다.
당연히 지구에 이능을 쓰는 동물이 있을 리 없었다.
세드에는 칵톨레므, 점멸견, 흉내쟁이 등 몇몇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동물들이 있긴 했으나, 아직 그 녀석들이 ‘이능’을 쓴다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실제로도 이능력자와 마법사 둘 다 불꽃을 만들 수 있지만, 그 힘의 근원은 다르지 않던가.
결국 써보지도 않고 안정성을 연구하라는 얘기였는데, 그게 가능할 리 없었다. 현장 일을 모르는 소위 높으신 분이 ‘까라면 까.’ 마인드가 만든 폐해였다.
‘고민되는 군.’
지금 이 원석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쓸 수 있을 때 까지 최소 2년 길게는 4년까지 기다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만약 교수의 확신대로 안전하다면?
이능 증폭이라는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사용할 때 오는 반작용을 커지겠지만, 단기간 동안은 확실하게 힘을 강화할 수 있었다.
선택의 순간이었다.
현상유지를 할 수 있지만, 기회를 포기하는 것과
이상이 생길 수 있는 확률을 감수하고 도전하는 것.
‘어차피 재생 이능 있는데, 별 거 있겠나.’
가속 이능을 쓰다가 심장에 무리가 오면, 느리게나마 재생하면 됐다. 아마 심정지가 온다고 한들 대동한 의료진이 제세동기를 이용하겠지.
그렇다면 어차피 잃을 것도 얼마 없었다.
‘얻는 게 크고, 잃을 건 없는 배팅이다. 가자.’
슬쩍 고민하는 척 턱을 쓸어내렸다.
교수가 애가 타는 듯 설명을 이었다.
“정말 안전합니다.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해 보쇼.”
교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네?”
“하라고. 시간 아까우니까 일단 이동부터 합시다. 어째 똥구덩이에 있으니 냄새를 참을 수가 없네.”
대놓고 비꼬았지만, 알아듣지 못한 듯 고개만 갸웃거리는 교수였다.
아마 본인이 똑똑한 줄 알지만, 다른 사람 역시 그만큼은 똑똑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았다.
추출실로 향하며 한 마디 했다.
“장난질은 딱 여기까지만 치쇼. 좋게 넘어가 주는 것도 한 번이오.”
“하하….”
교수는 머쓱하게 웃기만 했다.
추출실에 도착하니 마법사로 보이는 사람 몇 몇이 마법으로 원석에서 금속을 추출해 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말 그대로 ‘뽑는’ 것 같아 교수가 제련이라는 말 대신 추출이라는 단어를 쓴 모양이다.
우우우우웅 - 콰직!
이내 사람 머리통만한 원석에서 모든 금속이 추출됐다. 그 양이 대충 사람 손가락 2개 정도였다.
“실험은 저희 측 물건으로 하겠습니다. 실험이 끝난 뒤 저 금속은 원하는 형태로 가공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시던가.”
자기들도 제대로 된 정보를 원한다면 금속에 장난질을 치지는 않을 터.
고개만 까닥여 긍정했다.
“실험에 앞서서, 정밀 상태 검사를 해도 되겠습니까?”
아마 정확한 데이터를 위해 각성 등급, 능력치, 이능과 변이 상태까지 모조리 기록하려는 생각으로 보였다.
병원에서나 보던 각성자 정밀 검사 기계가 보였다.
“약물 쭉 들이키시고, 기계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검사원이 건넨 물약을 입에 털어놓고 그대로 삼켰다.
말로 형용하기 힘든 괴상한 맛이 났다. 마법이 관련 된 약은 아니었는지, 저항하겠냐는 말은 들려오질 않았다.
터벅, 터벅.
검사기 위로 맨 몸으로 올라갔다.
등에 느껴지는 차가운 느낌에 도마 위의 생선이 된 것 같아 불쾌감이 스쳤다.
위이이잉 - 잉 - 위이이잉 - 잉 -
기계가 위아래로 왕복하길 몇 분.
검사기에서 내려오자 속이 매슥거렸다.
‘두 번 할 건 못 되네.’
벗어뒀던 옷을 입고 기다리니 검사 직원이 A4용지를 몇 장 들고 다가왔다.
[정보]
등급 : B 등급 2티어
근력 : D 등급 (23)
민첩 : D 등급 (20)
저항 : D 등급 (23)
마력 : E 등급 (16)
이능 : F 등급 (15)
잠재 : S 등급 (?)
신체 변이 - 약한 재생, 화염 속성, 날카로운 감각
이능력 - 집중 F등급, 가속 E등급
“이야… 등급이 B등급 이시군요. 게다가 신체 변이가 3개나 있으시네요. 근데 잠재 등급이… 이거 오류 아닙니까?”
어차피 반지를 통해 매일 확인하던 내용이라 넘겼…
“정상이니까 내버려 두… 잠깐, 신체 변이가 3개라고?”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반지를 통해 확인 한 변이는 2개였고, 남아있는 이능 포인트 역시 2개였다.
이능 포인트는 뭘 찍을까 고민됐기에 남겨뒀지만, 신체 변이는 금시초문이었다.
포탈을 넘으며 변이하기라도 한 걸가?
절대 그럴 리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반지가 먼저 알아챘겠지.
“예. 약한 재생, 화염 속성, 그리고 날카로운 감각이요.”
“그거 잠깐 줘 보쇼.”
개소린가 싶어 뺏어봤지만, 진짜 그렇게 적혀 있었다.
신체 변이 - 날카로운 감각.
위험을 예측하는 능력. 평상시에는 발동하지 않지만, 위험 상황 혹은 정신 집중 시 감각이 날카로워 진다.
아직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거의 제 6의 감각 수준으로 예지에 가까운 위험 회피 능력을 가진 사람도 종종 발견.
‘뭐라고?’
어이가 없어서 반지를 통해 확인해 봤지만, 역시나 날카로운 감각 변이에 대한 건 적혀있질 않았다.
사실은 저건 변이가 아니라, 생사를 넘나드는 지훈의 경험이 만든 일종의 초감각이다. 당연히 반지에는 잡히질 않지만, 검사에는 저게 신체 변이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실제로도 몇몇 상황에서 위험을 미리 예측하거나, 단순 감각만으로도 위험 및 공격을 회피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역시 위험한 곳에 많이 다니시는군요. 그나저나 B등급이라니, 예상하질 못했습니다….”
지훈이야 잠재 능력이 S등급인지라 별 감흥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의뢰 하나 완수할 때 마다 매번 크게는 5, 작게는 1씩 등급이 올랐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자면 B등급은 거의 국가 수준의 인력이었다.
국가 및 군대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데려가려고 함은 물론, 아이덴티티나 보사 측도 경호 및 사설 병력으로 확보하려 했으며, 대형 길드에서도 엄청난 연봉을 제시했다.
하지만 지훈은 반지를 얻고 반년 만에 비각성자에서 B등급 각성자가 됐다. 당연히 현실성 없을 수밖에.
“등급도 높고, 이능도 두 개나 있으니 훨씬 더 훌륭한 실험을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바로 이동하지요!”
교수는 신이 나서 지훈을 이끌었다.
지훈 역시 제 3 변이에만 계속 신경을 쓰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순순히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