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강남대로. -->
위이이이이잉 -
커다란 이명과 함께 눈꺼풀을 뚫어버릴 정도로 밝은 빛이 일행을 감쌌다. 1분 이상 있다가는 시, 청각 모두 박살나 버릴 것 같을 정도로 지독했다.
그 가운데 온 몸이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온 몸이 분해됐다가 재조립 되는 것 같은 기분도 잠시.
눈을 뜨고 나니 지구에 도착해 있었다.
- 서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방송이 끝남과 동시에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 펼쳐졌다.
서구 중심가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인파와 더불어, 깨끗하고 안전해 보이는 외관이 특징이었다.
“뭐지, 무장한 인간들이 많다. 불안하군.”
물론 이방인인 가벡과 칼콘 입장에서는, 무장경비가 잔뜩 있으니 그 모습이 도리어 불안한 모양이었다.
“힘 풀어, 새끼야. 네가 사고만 안치면 부딪칠 일 없다.”
잔뜩 힘이 들어간 가벡의 어깨를 두드렸다.
승모근이 긴장으로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터미널 수속은 별 거 없었다.
일단 차례로 금속 탐지기를 지나, 신원 확인 후 터미널 밖으로 나가면 끝이었다.
가벡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민우가 같이 왔으니 단단히 언질을 해 뒀으리라 생각했다.
‘안심해도 되겠지.’
- 목줄 잘 채워다 데려갈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안심은 개뿔.
마음 놓은 지 5분 만에 사건이 터져버렸다.
삐삐삐삐삐삐!
가벡이 금속 탐지기를 지나자 커다란 소리가 울린 것
그와 동시에 초긴장 상태였던 가벡이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벨트에서 손바닥만 한 단도를 하나 꺼내 들었다.
“크워! 뭐지, 적습인가!”
“꺄아아악! 모, 몬스터다!”
바로 옆에 있던 여성이 기겁을 하고 도망가기 시작했고, 동시에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이런 미친…!’
이대로 뒀다가는 경비에게 실탄 내지는 테이저 맞을 것 같았기에 바로 행동을 취했다.
“이 미친 새끼야. 적습은 지랄이 적습이야!”
빠악!
온 힘을 다해 뒤통수를 때렸다.
가벡이 거의 폴더 인사하듯 허리를 푹 숙였다.
“꺽!?”
이후 주변을 진정시켰다.
“이 친구가 지구는 처음이라서요. 사과해, 새끼야.”
민우와 가벡을 차례로 쳐다보자, ‘내가(저는) 왜?’ 라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뭘!”
이에 한 대씩 더 때렸다.
빡, 빡!
“소동, 새끼야. 소동! 그냥 하라면 해!”
몇 대 쥐어박자 가벡은 못이기는 척 사과했다.
“미안하다.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벡이 양 손바닥을 보여주며 적의가 없다는 걸 표시했다. 빠른 대처를 한 까닭에 소동이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저거 괜찮은 거 맞습니까?”
경비가 K2와 테이저를 이쪽으로 겨누며 물었다.
“금속 물품 가져오지 말라고 언질 했는데도, 애가 불안했나 보오. 별 문제 없으니 그거부터 치우쇼.”
이후 가벡 옆에는 경비가 찰싹 달라붙었다.
가벡은 불편한 듯 지훈을 쳐다봤으나 자업자득이었다.
“뭘 봐, 새끼야.”
“불편하다. 꼭 개라도 된 기분이군.”
목 언저리까지 ‘개? 개소리 하네. 넌 개보다 훨씬 위험한 놈이야, 새끼야.’라는 말이 올라왔다 내려갔다.
이후 도끼눈으로 민우를 쳐다보자, 녀석이 깨갱했다.
“잘못한 건 알아?”
“어… 네, 네?”
“목줄, 새끼야. 목줄!”
빡!
민우의 등짝을 때리자 민우가 찔끔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며 칼콘이 잔뜩 비웃었지만, 녀석도 불법 거주 때문에 신원 수속 절차에서 걸려버렸다.
“거주증 없으시네요?”
“아… 어, 그게… 집에 두고 왔어. 진짜 있어. 그러니까 그, 그냥 가면 안 돼? 나 위험한 오크 아니야!”
딴다고 한 게 언젠데 어떻게 아직까지 없단 말인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부시맨들을 데리고 온 기분이었다.
한숨을 쉬며 양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 ☆ ☆
결국 인당 500만 원이라는 거금 내고 일일 거주권을 발급했다. 그나마도 옆에 보호자(지훈 혹은 민우)가 없으면 강제 구급되는 반쪽짜리 거주권이었다.
“이 개 또라이 새끼들아. 개척지 온 게 언젠데 아직까지 거주권이 없어?”
칼콘과 가벡을 날카롭게 쳐다봤다.
“헤헤, 그게… 자꾸 까먹네.”
“너 떡만 안쳤어도 세 번은 발급했겠다, 이 새끼야.”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칼콘은 헤실헤실 웃으며 넘어가려 했다. 물론 지훈은 거기다 가래를 뱉어줬다.
“너 그러다 알몸으로 쫓겨나 봐야 정신 차릴래?”
“날 쫓아내기 전에 그 녀석들이 죽을걸.”
가벡은 아직 정신 못 차린 듯 으스대고 있었다.
말로 해서 들을 놈 같지가 않았기에, 간단하게 가까운 경비를 불렀다.
“거 경비양반. 저기 저 놈 테이저 한 방만 꽂아줘.”
“예? 버그베어는 동맹이 맺어져 있는….”
“저 새끼가 내 이빨을 뽑는다고 하더군?”
당연히 거짓말이다. 가벡이 어이가 없다는 듯, 공격적인 제스쳐를 취하며 경비를 쳐다봤다.
“뭐, 어디 인간 새끼가 감히 날 그렇게 쳐다보는 거지!”
“경고합니다. 물러서세요.”
“싫다! 내가 왜 네 명령을 들어야 하지?”
경비는 두 번째 경고 없이 바로 테이저를 꽂았다.
푝!
파지지지지직!
“으거거거거거거걱!”
가벡이 덜덜 떨다가 바닥에 엎어졌다.
약 테이저로 10초 정도 지지고 있기에 끼어들었다.
“사실 동료야, 그만 해.”
“예? 동료요? 방금 때리려고 했다고….”
경비는 별 이상한 놈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말 안 듣는 개는 말보다는 매가 약이지. 거 매 대신 너 쓴 거니까,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고. 이거 받고 친구들이랑 술이나 한 잔 해.”
지훈은 경비의 등을 두들기고는, 지갑에서 10만 원 짜리 수표를 두 장 건네줬다.
본디 서울에서는 뇌물을 잘 건네지 않았지만, 세드에 있던 터라 뇌물에 익숙해진 지훈이었다.
돈이 들어가자 경비 얼굴에 불만이 싹 사라졌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더라도, 20만 원 이면 적당히 좋게좋게 넘어 갈 정도는 됐나보다.
“수고하십쇼.”
“그래, 너도 수고.”
경비를 보내고 나니 가벡이 부들거리며 일어섰다.
“이 망할 놈이! 지금 네가 날 엿 먹인 건가!”
가벡이 지훈에게 달려들 태세를 하자, 지훈이 박수를 두 번 쳤다.
짝, 짝.
경비가 뒤로 돌아 이쪽을 쳐다봤다.
가벡이 사색이 됐다.
“짜릿하니 쾌감이 죽여주지? 한 번 더 갈까?”
“뭐… 내가 잘못한 것 같기도 하고….”
효과 직빵이었다.
“알면 됐다. 가자.”
지훈은 정철수 교수를 만나야 했기에 바로 관악구 낙삼대학교로 가야했다.
반면 나머지 셋은 교육 및 연구기관에 가봐야 할 것 하나도 없었기에 서로 떨어지기로 했다.
“형님, 저 혼자 둘 다 보라고요?”
“감당 못 할 거면 데려오지 말라고 했냐, 안 했냐.”
민우가 울상을 지었지만 무시했다.
“고기 먹으러 가자, 고기!”
“어디 싸울 곳 없나? 인간을 보니 피가 끓는 군!”
결국 민우는 커다란 개 두 마리한테 끌려 다니는 어린 아이마냥 질질 끌려갔다.
☆ ☆ ☆
혼자 남자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태어나고 자란 땅. 하지만 동시에 상처만 남겨준 땅.
‘많이 변했군.’
처음 세드로 넘어왔을 때만 해도 포탈 주변, 특히 강남 일대는 거의 쑥대밭이 된 상태였다.
커다란 빌딩들은 전부 이가 상한 과일처럼 어디 하나 망가져 있었고, 도로 위에는 채 치우지 못한 차량과 바리케이드가 가득했었다. 디스토피아 영화에서나 볼 법한 환경이랄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터미널에서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건, 빌딩 숲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격벽이었다.
높이 20M, 두께 2M짜리 거대한 방벽.
그 방벽은 제 2의 몬스터 아웃 브레이크, 혹은 그에 준하는 사태가 생길 시 얼마든지 포탈 주변을 봉쇄할 수 있음을 뜻했다.
그 모습에서 세드 냄새가 살짝 났으나, 그게 다였다.
제앙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 마냥 강남에는 다시 거대한 빌딩들이 지어졌고 온갖 사람들이 모였다.
격벽만 제외하면 모든 게 포탈이 열리기 전과 똑같았다.
‘적응이 되질 않는다.’
세드에선 누가 언제 습격해도 반응할 수 있게끔 항상 무기를 휴대함은 물론 경계를 늦추지 않고 다녔다.
하지만 서울 내에서 헌팅용 장비로 등록하지 않으면 그 어떤 무기류도 들고 다닐 수 없었다.
그 만큼 안전하다는 뜻이었지만, 지훈은 아마 온 몸이 곤두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종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였다. 하지만 심각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심호흡과 함께 모조리 털어버렸다.
‘오래간만에 빌어먹을 고향에 왔는데, 이렇게 좌불안석하며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지. 기분은 더럽지만, 온 이상 즐겁게 놀다 가자.’
가벼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남대로.
과거 경제 중심지구로 차와 직장인들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제일 먼저 차가 거의 보이질 않았다.
아무래도 바다가 막히면서 해양 시추선들이 죄다 작살이 난 터라, 기름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기 때문이다. 까닭에 돈 좀 번다하는 사람 말고는 차를 몰지 않았다.
물론 대체 에너지로 에탄올과 가스차가 유행을 타긴 했지만, 비싸기는 매한가지였다. 물론 세드보다는 아니었지만.
그 외에는 바로 행인들이었다.
예전에는 직장인과 쇼핑객으로 가득했다면, 지금은 나돌아 다니는 사람의 1/3 이상이 헌팅 혹은 각성 관련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변했다.
그도 그럴 게 서울의 각성자 물품 거래소 및 식별소, 아이덴티티 가맹 아티펙트 상점은 죄다 관악구에 몰려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터벅, 터벅.
턱!
택시를 잡아탔다.
“어서 오십쇼.”
세드와 달리 방탄유리가 없다.
이게 정상인데도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
“낙삼대, 금속공학과.”
택시가 출발했다.
동시에 미터기 속 말도 신나게 달렸다.
창밖으로 개척지와는 다른 본토의 풍경이 지나갔다.
안전 걱정 없이 편하게 나돌아 다니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무장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간혹 보이는 가디언 및 경찰들만 권총류로 무장을 했을 뿐이었다.
문득 지나가다 닭 염통 꼬치를 파는 노점이 보였다.
“기사양반, 잠깐만.”
“예.”
“미터기 켜놓고 조금만 멈췄다 갑시다.”
내리자마자 바로 닭 염통 꼬치를 여러 개 주문했다.
‘어렸을 때 참 많이 먹었는데 말이지’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학교 앞 분식집에서 천 원 한 장만 있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떡볶이, 오뎅, 떡꼬치, 닭 염통, 핫도그.
매일 뭘 먹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졌던 기억이 났다.
치이이익 - 치직…
닭꼬치가 전기스토브 위에서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향긋한 냄새를 내뿜었다.
세드에 닭꼬치가 없던 건 아니었지만, 맛이 달랐다.
척박한 땅에서 뭘 먹여 기르든 생존할 수 있어야 했기에, 고기가 연하고 얌전한 종 보다는 사납고 억척스러운 품종을 키웠다.
까닭에 고기가 질겨서 무슨 고무 씹는 느낌이었다.
물론 맛도 별로였다.
“여기 있습니다. 일단 이거 먼저 드시죠. 나머지는 익는 대로 바로 드리겠습니다.”
택시 기사가 멀찍이서 담배만 태우고 있었기에, 불러서 같이 먹자고 권했다.
“아이고, 고기라 두 사람이 먹으면 꽤 비쌀 텐데… 같이 먹어도 되겠습니까?”
“서서 혼자 먹기도 그러네. 맘껏 드쇼.”
택시 기사는 가볍게 목례하고는 닭꼬치를 집었다.
지훈 닭꼬치를 들어 슥 당기며 냄새를 맡았다.
맛있게 잘 배인 불 냄새와, 적당한 기름. 그리고 간장, 소금, 설탕, 고춧가루 등으로 이루어진 톡 쏘는 냄새가 났다.
각성의 여파로 날카로워진 후각이, 마치 냄새를 혀로 핥기라도 하는 것 마냥 풍성한 즐거움을 전달해줬다.
뇌 깊숙이까지 향이 퍼지는 느낌.
기분이 좋아져서 한 입 물었다.
텁!
이빨과 잇몸, 입술로 고기를 고정하고, 머리를 살짝 뒤로 빼며 팔을 당겼다.
쑥 하고 파, 고기 등 맛있는 것들이 입 안에 쏟아졌다.
오물, 오물, 오물.
친구들과 술 마시고 하나 뜯는 닭꼬치의 맛.
학교 끝나고 천 원 한 장 쥐고 뜯은 닭꼬치의 맛.
점심시간에 몰래 튀어나와, 닭 물고 도망가는 족제비마냥 허겁지겁 먹어치운 닭꼬치의 맛.
천하 일미처럼 맛있지는 않지만, 억척스러운 개척민 출신인 지훈에게는 그 어느 것보다 맛있을 수밖에 없는 맛.
소위 말하는 거리의 쌈마이한 맛이었다.
거기에 추억이라는 향신료가 더해지자 더 좋았다.
텁, 텁.
오물오물.
그렇게 닭꼬치만 약 20개 정도 먹어 치웠다.
원래 후불이던 계산도, 양이 많아지자 무전취식이 걱정스러웠는지 주인이 선불을 요구했다.
“20개, 30만 원입니다.”
개당 만 오천 원이라는 정신 나간 가격이었지만, 지훈은 되려 싸다고 생각했다. 세드에 오는 물품은 포탈 세금이 붙는지라 배는 비쌌기 때문이었다.
“많이 파쇼.”
식사를 마친 지훈은 다시 택시에 올랐다.
부르르릉 -
거리와 풍경이 빠른 속도로 멀어졌다.
지훈은 그걸 지켜보며, 포만감과 함께 옛 추억에 잠겼다.
낙삼대학교까지 약 20분 남짓한 짧은 추억이겠지만, 그래도 불만은 없었다.
어차피 부모님이 돌아가신 빌어먹을 땅이었고, 이미 친지도 정도 남아있지 않은 낯선 고향이었다.
‘딱 이 정도가 적당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