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99화 (99/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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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정철수 교수가 준 금속 덩어리는 TV 아래에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놓인 상태였다. 얼마나 관심 없이 내버려 뒀는지 위에는 뽀얀 먼지가 올라와 있었다.

호위 임무 이후 병원에 있으랴, 아쵸프무자와의 거래로 유적 다녀오랴, 근 20일간 신경도 쓰지 못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틈틈이 TV볼 때 마다 보이긴 했지만, 그냥 머리 내에서 쭈~욱 밀어버렸다.

- 발표 끝난 뒤 상용화 시작되면 정련해 드리겠습니다.

솔직히 저 ‘상용화’가 언제 시작될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국가 연구는 기본 1~3년 까지 질질 끄는 게 보통이었다.

BOSA야 사기업이니 돈 때려 박아서 빨리 연구해 보고 상품성 혹은 보관가치 없으면 바로 그만둔다.

하지만 국가는 일단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방향으로든 써먹을 일이 생기기에 느긋느긋 연구를 하는 편이었다.

까닭에 연구가 2년 쯤 걸릴 거라고 예상했다.

근데 빗나갔다. 이렇게 빨리 끝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거 장식 아니었어? 누르딩딩한 게 예쁘잖아.”

“예쁘다는 년이 먼지 쌓이게 그냥 내버려뒀냐?”

청소 및 가사는 모두 지현의 몫이었다.

아무래도 외출을 잘 하지 않고 TV 혹은 인터넷만 가지고 노는 집순이인지라 가사를 모두 맡겨버린 것.

전업주부 혹은 가사도우미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봐줄 만했다. 도리어 가사도우미 고용했다가 귀중품 혹은 아티펙트라도 들고 덜컥 도망가면 그게 더 큰일이었다.

“아이고~ 그런 건 모르겠고, 빨리 비켜. TV 안 보여.”

“에라이 썅년아.”

지현은 모르겠다는 듯 거드름을 피웠다.

어차피 사소한 거 가지고 뭐라고 할 생각도 없었기에, 픽 웃고 말았다.

원석을 집어 들었다.

윙 -

두근, 두근, 두근.

기이한 이명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

동시에 심박이 아주 조금 빨라졌다.

TV 노이즈인가 싶어 고개를 돌려봤지만, 아니었다.

‘이 금속 때문인가?’

라디오로 얼핏 듣기에 어떤 효과가 있다고 했었다. 아마 그 이유에서리라.

호기심이 생겼지만 넣어뒀다.

어차피 교수에게 가면 모두 알 수 있을 터였다.

“맞다. 나 지구로 갈 건데 같이 갈 생각 있냐?”

“뭐, 지구!?”

TV를 보던 지현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운 고향 땅이자, 떠나온 지 한참 된 모성이었다.

당연히 가고 싶을 수밖에 없다.

사실 지구에 가는 것 자체는 엄청나게 쉬웠다. 그냥 포탈을 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포탈 통과 가격이 오라질 나게 비쌌다.

몬스터 아웃브레이크 이후 정부는 모든 포탈을 국유화해 버렸다. 까닭에 처음에는 군이 관리했기 때문에 이동 자체가 매우 어려운 행동이었다.

이후 개척시대에 들어서는 자원한 개척자들(지훈과 지현도 이 때 이주했다.)만이 간간히 포탈을 넘었고, 종족 전쟁이 터지자마자 포탈은 다시 군이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족 전쟁이 지나간 지금.

몇 년 정도 평화가 지속되자 정부는 포탈을 민영화했다.

- 이제부터 원하는 이는 누구나 포탈을 건널 수 있습니다! 더 좋은 서비스, 안전한 이동을 할 수 있게 된 거죠!

맞는 말이었다.

단지 서비스가 개미만큼 좋아지고, 이용규제가 손톱만큼 풀린 대신 가격이 집채만큼 올랐을 뿐이었다.

이후 포탈에 대한 권리를 가진 회사는 통행인과 그 짐의 무게, 부피에 따라 살인적인 가격을 매겼고, 이에 더해 국가는 세금 명목으로 일정량을 더 떼어갔다.

미친 폭리였다.

정부가 앞장서서 민영화를 추진한 뒤, 어느 기업을 꼭두각시로 엄청난 돈을 끌어 모으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당시 포탈의 권리를 가진 기업이 당시 유명 정치인의 사촌이라는 걸 봤을 때, 소문이라기보다는 거의 확실한 얘기였지만 이용자들은 딱히 별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강력한 언론 규제 때문이다.

뉴스에서는 매일 영화, 스포츠, 섹스 등 온갖 자극적인 매체가 쏟아졌기 때문에 저런 얘기는 신문에도 오르지 않았다.

대중은 단지 가격이 비싸졌거니 하고 말았을 뿐이다.

물론 지훈 역시 저 사실을 몰랐다.

관심도 없었고.

“나, 나! 갈래! 나도 브입스 가서 고기 썰어 볼래!”

브입스.

TV에서 광고하는 유명한 음식 체인이었다.

세드에 사는 만큼, 윤택한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TV만 보며 입맛을 다셨겠지.

그 모습이 불쌍했지만…

“싫은데?”

거절했다. 애초에 데려 갈 생각도 없었다.

그냥 심심해서 놀려보려고 떡밥을 던진 것뿐이었다.

물론 지현은 발광했다.

“으아아아! 미친놈아, 왜 물어봤어!”

소파에 올려놓은 쿠션이 날아왔기에, 가볍게 받아다 되돌려줬다.

퍽!

지현 얼굴에 쿠션이 틀어박혔다.

“아아악!”

공격이 먹히지 않자 미쳐 날뛰는 지현이었지만, 그저 고소하기만 했다.

“달달하지? 나 다녀올 동안 엿이나 많이 까 잡수고 계셔.”

☆ ☆ ☆

이후 시연, 칼콘, 민우에게 차례로 연락했다.

- 잘 다녀와!

어째 시연 반응이 시큰둥했다.

부모님 만난다고 격달로 한 번씩 지구를 들락날락 거리는 시연이었기에 그러려니 하는 모양이다.

워낙 세드가 막장이라 그렇지, 서울은 여전히 치안이 안정 된 장소였다.

위험할 게 없으니 걱정할 것도 없겠지.

사실 지구에서 세드 수준으로 위험한 장소는 딱 3곳밖에 없었다.

소말리아 및 북 아프리카 주변.

강대국 공해에서 먼 바다.

공항 주변을 제외한 모든 대류권.

소말리아는 현재 몬스터들의 국가 드 휼라에게 점령 된 상태였다. 그렇지 않아도 무정부 상태였던 소말리아에 포탈이 열리면서, 순식간에 나라를 뺏겼다.

이후 몬스터들은 바로 이집트를 침공, 핵무기를 얻었고…

이스라엘 및 기타 주변국에 바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여기까지가 몬스터 브레이크 아웃 터지고 딱 7일 걸렸다.

소위 헬레이저(지옥 면도날)라고 불리는 오우거 강습부대의 힘이었다. 모두 각성자로 이루어진 헬레이저는 그렇지 않아도 강력한 종족을 살육병기로 만들었다.

전차 포탄을 피격 전에 손으로 잡아버리고 핵이 떨어지면 대동한 주술사 부대를 통해 방어했다.

거기다 인간들의 자동차 및 기차 같은 이동수단까지 노획해 버리니 말 그대로 소말리아 주변은 헬게이트가 열렸고, 그 주변은 24시간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주변국은 동맹 및 휴전제의를 했지만, 모두 무시했다.

- 우리는 약한 녀석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결국 모조리 때려죽인다는 말이었다.

다음으로 하늘과 바다였다.

인간이 육지생물은 만큼 거주 공간(영토)은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었지만, 바다와 하늘은 예외였다.

공룡을 닮은 온갖 괴생명체와, 크라켄을 필두로 한 거대 해양 생물은 인간들의 물류를 마비시켰다.

게다가 포탈은 하늘 및 깊은 바다에서도 열렸기 때문에, 처음부터 인간이 손도 댈 수 없었다.

실제로 배 한 번 띄우려면 전투함과 온갖 수중 전투가 가능한 이종족 용병들을 고용해야했다.

그러기엔 수지가 맞지 않으니 당연히 선박 산업과 항공 산업은 개박살이 났고, 세계 경제도 동시에 작살이 났다.

덤으로 하늘에서 열린 포탈의 경우, 수위 ‘시체들의 산’ 이라는 지형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도대체 왜 저런 현상이 발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몇몇 포탈은 세드의 지상과 지구의 공중이 연결되어 있었다.

까닭에 세드에서 살던 육지 생물이 포탈을 넘는 순간…

… … …퍽!

거의 하루에 하나 꼴로 뭔가가 떨어지니 포탈 아래에 시체들의 산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공중 포탈으로는 영국 제 3포탈이 있었다.

당연히 주변은 사람 살 수 없는 황무지로 변했고, 이에 영국은 아예 거대한 돔 형태의 방어벽을 건설해 해당 포탈을 봉쇄해 버렸다.

저 세 곳을 제외하고는 사람 사는 곳은 대부분 세드보다는 안전했다.

다음으로 민우에게 연락했다.

“여보세요?”

“나다.”

“예, 형님.”

“지구 갈 건데 볼일 있냐?”

“지구요?”

민우는 잠시 생각하듯 말을 멈췄다.

“저 자퇴신청 해야 됐는데 잘 됐네요. 같이 가요.”

- 뭐야, 지구? 이방인의 땅 말인가? 나도! 간다!

뒤에서 가벡이 끼어들었다.

세드에서만 살던지라, 인간들의 본진인 지구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될 수 있으면 똥개는 놓고 와라. 거기는 이종족 보기 힘들어서 사고치는 순간 바로 즉결처분 될 수도 있다.”

“어… 될 수 있으면 안 데려가긴 할 텐데, 만약 데려가게 되면 목줄 잘 채워다 데려갈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 뭐? 목줄? 짐승이라도 하나 살 생각인가?

제 얘기 하는지도 모르고 가벡이 신나게 떠들었다.

이에 민우는 ‘아냐, 그냥 하는 말이야.’ 했다.

대충 약속시간을 잡고 끊었다.

칼콘에게 전화했다.

“헉, 헉… 여보세요!”

“어, 나다.”

“응, 헉… 너야!”

전화기 너머로 여자 신음소리 비슷한 게 들렸다.

“뭐야, 야한 거 보냐?”

“아니!”

“에라이 또라이 새끼야… 너는 어째 종일 발정이 나있냐.”

매체를 통한 소리가 아니었다면, 답은 하나였기에 그냥 바로 욕부터 싸질렀다.

“술, 섹스, 전투! 이 세 개가 오크의 삶이라구! 하나라도 빼 놓을 수 없어!”

“물어보지도 않은 거 질질 싸재끼지 말고, 나 지구 갈 건데 볼 일 있냐?”

“거기 가면 뭐가 좋아?”

다 필요 없고 일단 성매매는 불법이었다.

세드야 어차피 잡지도 못하니 반 포기하는 심정으로 놔버린 거지, 서울 및 한국 영토 전체는 전부 법으로 금지해 놓은 상태였다.

“일단 여자는 없다. 그냥 구경 정도. 뭐 지구에서 나는 음식 정도는 먹어볼 수 있겠네.”

“응! 갈래! 언제 어디로 가면 돼?”

헉헉 거리는 배경음이 좋지 않았기에, 빠르게 약속 장소를 전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저 새끼는 어째 아프고 나서 더 저러는 것 같냐. 무슨 고간에 아티펙트라도 처박았나.’

실없는 생각. 푸르게 번쩍이는 칼콘의 고간이 상상됐다.

비위가 상했다.

☆ ☆ ☆

다음날 새벽 4시.

일행은 포탈 터미널로 향했다. 아무래도 지구와 세드, 둘은 다른 행성인 탓에 약간의 시차가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들어가면 대충 오전 8시인가.’

그나마 서울 개척지는 시차가 심하지 않았지만, 기타 몇몇 개척지들은 시차가 12시간씩 나는 곳도 심심찮게 있었다.

“이방인의 땅은 처음이야. 설렌다!”

지구의 또 다른 이름. 이방인의 땅.

세드 주민들은 지구를 ‘이방인의 땅’이라 불렀다.

“가봐야 머리 검은 인간들만 가득하겠지. 흥.”

가벡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기분은 좋은 듯 짝다리를 집은 체 다리를 연신 떨어대고 있었다.

터미널 안은 의외로 한적했다.

보부상, 사업차 왔다가 돌아오는 샐러리맨, 기타 관광객들 정도밖에 보이질 않았다.

- 이봐, 자네들. 물건 운송 도와줄 생각 없어? 포탈 대금을 우리가 내 주지! 그냥 들고 지나만 가면 돼!

물론 개중에는 위험한 물건을 운반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훈은 짧게 찌푸린 뒤 말했다.

“꺼져.”

“흥, 자네들 실수하는 거야. 큰 돈 벌이를 날리는 거라고.”

으슥한 곳이라면 머리에 글록을 들이밀었을 테지만, 지금은 비무장인지라 그냥 말로만 밀어냈다.

약 5분 정도 기다리자 방송이 나왔다.

- 포탈이 활성화 됩니다. 잠시 진동 및 이명이 있을 수 있으니 당황하지 마시고 기다려 주십시오.

드드드드드…. 위이이이 - 잉!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 마냥 주변이 작게 떨리더니, 이내 작은 이명이 지나갔다. 포탈이 작동되는 소리였다.

소리가 끝나자 눈앞에 커다란 빛 덩어리가 나타났다.

원래대로라면 건물 3층 높이 만큼 큰 타원형이었지만, 지근거리에 있는 일행에게는 그냥 크게 밖에 보이질 않았다.

- 달리지 마시고 차례대로 천천히 이동해 주십시오. 광원에 민감한 분들은 시력에 손상이 갈 수도 있으니, 눈을 감아 주십시오. 이동시 가벼운 메스꺼움을 동반한 현기증이 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안심해 주십시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저벅, 저벅.

방송이 끝나자마자 일행은 포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래간만에 가는 고향이군.’

기쁘거나, 들뜨지는 않았다.

도리어 별 생각이 안 났다고 하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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