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에서 계속>
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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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민우는 유적 관련으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각성 전 증후군 없었습니까?”
무슨 얘기냐며 되묻자, 연구원은 얼버무려버렸다.
아마 FS 유적에서 가져 온 음식 때문에 전화한 것 같았는데, 각성이라니?
‘에이, 음식 몇 개 집어 먹었다고 각성하겠어?’
병에 걸리면 모를까, 각성은 조금 먼 얘기 같았다.
그 외 연구원은 유적 위치에 대해 자세하게 물었다.
이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안이라 지훈에게 연락할까 고민하기도 잠시. 가벡이 길을 외워뒀다고 말했다.
“내가 안다.”
이로 인해 민우와 가벡은 연구 자문 역으로 다시 한 번 FS 유적을 찾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문, 터렛 그 어느 것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아마 최상위 관리자의 부재 및 기록 전달이 끝난 까닭에 모든 프로토콜이 정지 된 모양이었다.
생각과 다른 전개에 민우는 살짝 당황했다.
안에 있는 물건들 죄다 가져다 판다고 가정하고, 그 가격 1%만 받아도 평생을 놀고먹어도 될 조 단위 돈이 들어온다.
정산 당시 받은 돈 10억은 겨우 ‘계약금’ 명목으로 받은 정보 판매비용 이었다.
“으아아아, 내, 내 돈!”
민우는 그 때 반드시 건설로봇을 타고 나왔어야 했다며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울고불고 보채 보아도 어쩔 수 없었다.
☆ ☆ ☆
BOSA는 무슨 수를 써서든 유적 내로 진입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FS유적이라는 건 분명했기에, 정보료로 받은 10억을 다시 돌려줘야 하거나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 소식에 지훈이 남몰래 반지로 열어보려고 했으나, 역시 승강기는 침묵할 뿐이었다.
‘임무 끝났다고 전원 내려버린 모양이군.’
뭐 어떻게 하겠는가.
많이 아깝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없는 거였다.
아마 현재 인류의 기술로는 무슨 짓을 해도 해당 유적의 입구를 열 수 없을 터였다.
최상위 관리자만 해도 B등급 아티펙트로 때리고, 유탄을 직격으로 먹였는데도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아마 외벽에 핵을 때려 박아도 열리지 않겠지.
‘물건이나 좀 더 챙길 걸 그랬나.’
작은 욕심이 남았지만 흘려버렸다.
1초 차이로 살아남았다.
물건 챙겨봤어야 전부 버렸거나, 시간 못 맞추고 죽기밖에 더 했겠는가.
소화할 수 없는 욕심은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 ☆ ☆
병원에서 보냈던 지루한 생활에 대한 반작용일까?
칼콘은 굉장히 바쁘게 움직였다.
시간이 날 때 마다 판크라테온 체육관을 들락날락거리며 운동 및 스파링을 하는 건 물론, 시체 구덩이 언더 파이팅도 항상 놓치지 않고 참가했다.
지훈은 참가하지 않았기에 그러려니, 하며 즐거운 일상을 즐기기도 잠시. 칼콘이 초대권을 한 장 건넸다.
- 나 이 날 경기해!
표정이 꼭 칭찬 받고 싶어 하는 아이 같았기에, 어쩔 수 없이 참석했다.
“여기에 진짜 칼콘 나와?”
“예, 아마 가벡이랑 같이 메인매치에 나올 거예요.”
“올~ 칼콘 출세했네.”
지현의 물음에 민우가 대답했다.
조금 잔인할 수도 있는 경기인지라 지현은 떼놓고 오려고 했지만, 민우 얘기 듣고 온다고 발광을 한 터라 데려왔다.
당연히 시연은 떼놓고 왔다.
온실 속 화초 같은 여잔데 사람이 진짜로 죽어 나가는 살인 경기를 보여줬다가는 속이 뒤집힐 게 분명했다.
‘아니 둘이 뭐라도 있나, 왜 저렇게 민우에 환장해.’
빨대로 맥주를 쪼옥 들이키며, 눈만 굴려 둘을 훑었다.
민우는 처음 봤을 때 보다 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
헌팅 다니며 격한 운동은 물론, 틈날 때 마다 체육관 끌고 다니며 운동 시켰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슬슬 남자 냄새 나네.’
그래봐야 아직 애송이지만 말이다.
지현과 민우는 마치 소개팅 한지 얼마 안 된 남녀처럼 어색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적극적인 여자와, 수동적인 남자.
TV 시트콤 같아 묘하게 우스웠다.
‘슬슬 샷건 하나 준비해 놓을까.’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며 미소보다는 샷건이 먼저 떠오르는 지훈이었다.
첫 경기는 맹수전이었다.
보통 무투 경기하면 사람과 사람이 싸울 거라는 생각과 달리, 사람과 사람의 싸움은 많지 않았다.
이유야 간단하다.
한 번 싸우면 부상 및 휴식기간이 생기는데, 그걸 무시하고 선수들을 무한 뺑뺑이 돌릴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까닭에 보통 사람과 사람의 싸움은 매인 매치나 들러리 매치로만 제한했다.
그 나머지는 희귀한 동물들로 사파리 및 서커스를 열거나, 전투 연극 및 뮤지컬, 혹은 심지어 개그맨이 나와 만담을 하기도 했다.
전부 무투 경기와는 거리가 먼 쇼였지만, 딱히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했다.
어차피 즐기자고 온 쇼인데, 재미만 있으면 되지 않던가.
역시 지훈 앞에도 여러 흥 달구기용 쇼를 준비하지만, 지훈은 그런 거 관심 없었기에 깔끔하게 자버렸다.
“싸움 시작하면 깨워라.”
“예, 형님.”
민우가 끄덕이자, 지현이 투덜거렸다.
“아니 지가 무슨 왕이야? 왜 이래라 저래라야.”
좋아하는 남자 부려먹자 화가 난 모양이다.
물론 그걸 모르는 지훈 입장에선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 이년아? 밖에 나가고 싶지?”
티켓 값은 당연히 지훈이 냈다.
당장이라도 쫓아 낼 기세로 말하니 지현이 깨갱했다.
“아뇨, 오라버니. 제가 깨워드릴 테니 편히 주무시지요.”
☆ ☆ ☆
- 자자, 오래들 기다리셨습니다! 오늘의 들러리 매치는 바로 맹수전입니다!
와아아아!
사람들의 환성과 함께 청코너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 청코너, 오늘의 베스티아리(맹수잡이)들입니다! 원래는 제각기 사연이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언더 다크에 커다란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이죠!
보통 들러리 매치는 두 가지로 진행됐다.
첫 번째는 언더 다크에 실수를 했거나, 빚을 갚지 못한 사람들을 우겨넣어 죄다 갈아버리는 살육전.
언더 파이팅의 특징은 크라토스와 달리, 진짜 피와 살이 튄다는 데에 있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같은 조건으로 승부하면 언더 파이팅이 크라토스를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양, 질 어느 면으로 비교해도 부족했다.
이에 언더 파이팅은 잔인함으로 승부했다.
사람이 실제로 죽고 나뒹구는 잔인한 경기. 그리고 그 경기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배팅과 도박!
이게 바로 언더 파이팅의 묘미이자, 차별화였다.
당연히 불법이었지만 아무래도 등 뒤에 언더 다크를 업고 있는 터라 정부도 쉽사리 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메인 급 검투사가 되기에는 조금 부족한, 하지만 충분히 쇼가 될 수 있을법한 실력을 갖춘 견습 검투사들의 매치였다.
이 경우 첫 번째보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인기가 좋았다.
본디 싸움 구경도 바보들이 싸워야 재밌지, 너무 강한 녀석들이 싸워봐야 눈으로 쫓기도 힘들었다.
저번에 도와줬던 서곽수가 아마 이 경기를 하는 들러리 검투사로 일을 하고 있으리라.
- 오늘의 홍코너. 아실 분들은 알고, 모르실 분은 모르는 신비의 동물! 다이어 울프입니다!
홍코너의 쇠창살이 열리며 거대한 늑대가 갇힌 우리 3개가 튀어나왔다.
‘미친 새끼들, 다이어 울프라고? 그것도 세 마리?’
다이어 울프는 세드에 사는 강력한 늑대로, 먹이사슬의 최상위권에 위치한 포식자였다.
보통 10마리 이상 무리 생활을 하는데, 지구의 호랑이나 사자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고 민첩했다.
길이 3M에 몸무게 500KG.
크기, 무게로만 보면 페커리와 비슷했지만 괜히 ‘다이어’가 붙은 게 아니었다.
녀석들은 가죽에 두꺼운 천연 장갑이 붙어있었다.
웬만한 맹수의 이빨은 물론, 일반 탄환으로는 절대 뚫지 못할 정도로 두껍고 질겼다.
- 자, 그럼 시작합니다!
철창이 열리자마자 지현을 불렀다.
아무리 왈가닥이라지만, 여자였다.
뒷골목에서 멀찍이 사람 죽는 거 여러 번 봤다지만, 그건 말 그대로 간접적인 경험이다. 실제로 사람 갈려나가는 걸 보면 비위가 상할 수 있었다.
“야, 너 진짜 볼 수 있겠냐? 엄청 잔인할 텐데.”
“그냥 고어 영화 같은 거 아냐? 난 괜찮아.”
민우를 의식했는지 강하게 나오는 지현이었다.
멋지게 보이고 싶기라도 한 걸까?
나발이고 귀찮아졌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뭐라겠는가. 내버려뒀다.
말하는 사이 늑대 짖는 소리가 들렸다.
컹! 그르르르!
고개를 돌려보니, 시작한 지 5초 만에 사람 하나가 늑대 입에 물려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이후 늑대가 도리질을 치자 하반신이 뚝 떨어졌다.
‘아니 무슨 레고도 아니고, 사람이 저렇게….’
현실감 없는 모습이 꼭 영화 같아 보였다.
불쾌한 장면이었으나, 사람들은 그걸 보고 열광했다.
우와아아아아! 죽여라! 죽여!
‘또라이 새끼들.’
유쾌한 장면은 아니었기에, 담배를 물고 관람했다. 병아리 농장에 들어온 족제비를 보는 느낌이었다.
대충 5분쯤 보고 있자니 옆에서 토하는 소리가 났다.
“우어어어억!”
민우였다.
의자에 하나씩 비치 된 비닐봉지에 대고 쏟아내고 있었다.
반면 지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야, 야. 괜찮아?”
“안 괜찮아 보이니까 등이나 두드려, 지지배야.”
턱, 턱, 턱, 턱.
지현이야 사람 죽는 거 본 적이 없으니 그냥 영화려니 하는 모양이었다.
반면 민우는 실제로 사람 죽는 걸 봤으니, 아마 저게 현실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저런 반응이 나온 모양이었다.
경기 결과는 일방적이었다.
30명도 넘던 사람들이 5분도 안돼서 반으로 줄었고, 제한 시간 10분 동안 살아남은 사람은 겨우 3명이었다.
한 명은 육편을 덮고 죽은 척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아티펙트로 보이는 방패와 갑옷으로 농성을,
마지막 한 명은 이능으로 하늘에 올라가 있었다.
- 마지막 생존자는 3명입니다! 의외로 적군요!
다이어 울프 따위를 3마리나 집어 넣어놓고 생존자가 적다고 해설하는 꼴이 우스웠다.
지훈 일행 넷도, 엄폐물 하나 없는 저런 원형 경기장에서 다이어 울프 3마리랑 싸웠다가는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어우… 이런 거 뭐가 재미있다고 봐요?”
민우는 다 게워내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끔 뭔가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진정시킬 때 보겠지. 아니면 배팅으로 한 몫 잡고 싶거나.”
밑바닥 인생을 경험해 본 까닭에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곧 있어 오늘의 메인 매치가 시작됩니다! 파죽지세로 올라오는 칼콘과 가벡. 그리고 언더 파이팅의 악동, 김경훈과 우민석입니다!
해설은 이후 뭐라저라 떠들었다.
그 사이 청소부들이 다가와 열심히 시체를 치웠다.
여전히 바닥 모래가 피로 물들어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는 듯싶었다.
- 선수 소개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청코너, 가벡과 칼콘입니다. 각각 버그베어와, 오크입니다. 보기 드문 몬스터 듀오로군요!
몬스터라는 단어에 지훈이 눈을 찌푸렸다.
‘이종족이라는 좋은 단어 내버려 두고 몬스터가 뭐야, 몬스터가. 쯧. 짐승도 아니고.’
보통 인간과 동맹이 맺어진 종족은 공식적으로 ‘이종족’이라 부르며 존중했다.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가 아닌, 공존을 도모하는 의미에서 붙은 명칭이었다.
몬스터는 그 외 인간에게 적대적인 종족과 짐승들을 싸잡아 부르는 단어였다.
예를 들자면 엘프는 이종족, 포미시드는 몬스터였다.
오크와 버그베어 역시 엘프처럼 현재 대한민국과 종족 동맹이 체결된 상태였다.
물론 그런 거 다 상관없이, 지훈은 단지 제 동료가 ‘몬스터’라고 불린 게 기분 나빴을 뿐이었다.
- 가벡은 저 멀리 가시 산맥에서 온 버그베어 투사입니다! 저번 경기에서 상대방의 두 팔을 잘라버려서 유명해졌죠! 영상 보겠습니다!
전광판에 가벡이 사람 팔 잘라내는 장면이 방송됐다. 관객들은 열광했지만, 반면 민우는 얼굴을 찌푸렸다.
동거인이 사람 조지는 걸 봤다.
마음이 편하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 칼콘은 싸우는 걸 좋아하는 오크입니다. 독특하게 주 무기가 방패로 되어 있군요! 영상 보시겠습니다!
칼콘의 영상은 별 거 없었다.
단순히 막고, 막고, 막고, 또 막았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미친 새끼. 무슨 페커리 돌진을 방패로 막아?’
막는 것들이 다 하나같이 장난이 아니었다.
소총부터 기관총까지 온갖 총기류는 물론이오, 수류탄이나 RPG같은 폭발물, 심지어 페커리 돌진까지 막았다.
드문드문 밀려나거나, 갈아가긴 했지만 딱히 별 피해를 입은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확실히 아군으로 있을 때는 든든하지만, 적으로 만난다고 생각하면 정말 짜증나겠군.’
칼콘의 전투 스타일은 간단했다.
버티기. 오로지 버틴다. 그게 다다.
공격 거리, 공격력 모두 소소했지만, 매우 높은 방어력과 생존력을 바탕으로 전투 내내 서서히 적을 압박한다.
당연히 엄폐물 역할도 하기 때문에 아군이 쉴 동안 막아줌은 물론, 조금씩 적과의 거리를 좁혀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압박했다.
인간들도 가끔 방패를 들긴 했지만, 말 그대로 가끔이었다.
비각성자, 아티펙트 유저 같은 경우 들어봐야 충격 및 우악스러운 운동 에너지를 버틸 수 없었다.
그럼 각성자는 어떨까?
들 수는 있겠지만, 차라리 총이나 무기를 들지 방패는 웬만해선 들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게임만 해도 다들 딜러하지, 탱커는 안 하지 않던가.
실제로 방패를 들면 폭발물 및 마법 공격의 우선순위가 되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기피하는 직종이었다.
‘친구 하나는 잘 뒀군.’
이어서 상대방의 설명이 이어졌다.
관심 없었기에 듣지 않고 시연과 문자를 주고받았다.
- 자기야, 뭐해?
- 칼콘 경기 구경 왔어.
- 나도 보고 싶다! 지금 가면 안 돼?
- 안 돼.
- 왜! 나도 칼콘 씨 좋은데!
온실 속 화초한테 만드라고라가 먹을 육편이랑 정액을 비료로 뿌리는 격이었다.
설명도 해주지 않고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 각 선수 입장합니다! 전광판을 보십시오, 장비 현황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장비 현황]
[가벡, 칼콘]
가벡 (이도류) - 롱소드, 곤봉, 가죽 갑옷으로 무장
칼콘 (방패병) - 가시 방패, 쇠사슬, 갑옷으로 무장.
[김경훈, 우민석]
김경훈 (총꾼) - K2, 군용 대검, 섬광탄, 방검복
우민석 (마법 사용자) - 마법 스태프
- 언더 파이팅에서 자주 볼 수 없는 경기입니다! 특히 가벡, 칼콘 선수 같은 경우 총기류를 아예 사용하지 않습니다!
경기장 넓이만 해도 직경 4km였다.
‘다가가면 이긴다. 하지만 접근 방법이 문제군.’
- 반면 김경훈 선수와 우민석 선수는 원거리 특화입니다. 김경훈 선수는 K2를, 우민석 선수는 마법 사용자거든요!
상성으로만 보자면 칼콘 쪽이 훨씬 불리했다.
총꾼만 있으면 모를까, 마법사도 껴있었다.
정신계나 상태 이상 계통 마법만 써도 강력한데 어떤 마법으로 공격해 올 지 전혀 알 수 없었다.
- 파이트! 앞으로 배팅 마감까지 5분 남았습니다!
경기 시작과 함께 칼콘과 가벡의 모습이 전광판에 들어왔다. 칼콘은 IED에 날아간 갑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는데, 왼팔과 왼 다리 부분만 갑옷이 없었다.
‘저걸 그대로?’
경악스러울 정도였으나 딱히 상관은 없어 보였다.
사실 저 D등급 갑옷보다, 의수로 달은 팔과 다리가 훨씬 단단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B등급 의수 덕분인지, 그 무거운 양손용 가시 방패를 한 손으로 들고 있었다.
‘미친놈. 50Kg짜리 방패를 한 손으로 들었다고?’
저 거대한 방패만 들고 있어도, 거의 완벽한 방어를 할 수 있었다. 근데 저기다 무기까지 든다?
걸어 다니는 전차였다.
- 두 팀, 각자에게 접근합니다!
처음부터 딱히 주목할만한 건 없었다.
칼콘 일행은 당연히 방패 뒤에 숨어서 천천히 전진했다. 피가 끓어서 돌진할 것 같은 가벡 역시, 어이없게 총 맞고 죽고 싶지는 않은지 얌전하게 기다렸다.
타타타타타탕!
K2에서 탄피가 와르르 쏟아져 내렸고, 옆에 있던 마법사는 뭐라 뭐라 마법을 영창했다.
“Terrain variatsioonid(지형 변이)!”
영창이 끝나자마자 칼콘 일행이 서있는 땅이 울렁거렸다.
‘일단 넘어뜨리고 보겠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총과 방패는 상성이 좋지 않았다.
뚫리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운동에너지가 적은 소총으로는 방패를 든 적을 밀어낼 수 없었던 것.
할 수 있는 거라곤 가만히 있다가 죽거나, 도망치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방패를 든 상대를 넘어뜨린다면?
혹은 방패를 돌려 틈을 만든다면?
치명적인 약점이 노출된다.
아니나 다를까 칼콘이 비틀거렸다.
그 사이 총꾼이 탄환을 발사했지만…
팅!
갑옷을 뚫지 못했다. 비싼 돈 주고 산 D등급 갑옷이 제 값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OTN탄인 것 같은데, 안타깝군. 저걸론 못 뚫어.’
뚫을 수 있는 탄환이 있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한 발당 가격이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비쌌다.
총격이 막히자 바로 마법사가 추가 마법을 부렸다.
“Dim(몽롱).”
개인 대상인지, 범위 대상인지 알 수 없었다.
단지 가벡이 비틀거리다 쓰러졌을 뿐이었다.
‘쓸모없는 놈. 저것도 못 버티나.’
지훈이 이죽거렸지만,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인간은 그나마 모든 능력치가 평이해 마법 저항도 평균이었지만, 오크나 버그베어 같은 전투 종족은 아니었다.
거기다 마법 저항 아티펙트까지 없으니, 맞는 족족 풀썩 쓰러질 수밖에.
‘막아. 저대로 쓰러져 있으면 죽는다.’
칼콘 역시 그렇게 생각했는지, 가벡 앞을 막아섰다.
타타타탕!
티티티팅!
칼콘의 방패에서 미친 듯이 불이 튀었다.
“Magic nooled(마법 화살)”
방패를 돌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마법사의 기습 영창!
슈우우우웅 - !
화살 모양을 한 보라색 빛덩이가 칼콘으로 날아갔다.
슝!
그러다 방패에 부딪치기 직전 방향을 틀더니, 방패를 우회해서 칼콘의 머리에 부딪쳤다.
쩡!
커다란 소리가 나며 칼콘이 비틀거렸지만, 절대 방패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가벡도 일어났다.
‘끝났네. 이겼어.’
마법사는 급히 여러 마법을 영창 했지만, 칼콘 일행의 전진을 막을 수 없었다.
촤라라라락!
칼콘이 쇠사슬을 던져 총꾼의 다리를 옭아매고는…
철컹, 철컹, 철컹, 철컹!
그대로 감아 당겼다.
“으아아악!”
총꾼이 바닥에 엎어지더니 칼콘 쪽으로 질질 끌려왔다.
타타타타탕!
티티티티팅!
저항하려 총을 난사했지만, 이미 날개가 잘린 새였다. 결국 총꾼은 방패 바로 앞까지 끌려와…
콰직!
“아아아악!”
방패에 다리를 찍혀 버렸다. 칼콘은 총꾼의 총을 멀리 차버린 뒤 마법사에게 시선을 옮겼다.
“kaitse(보호).”
우으으응 -
마법사의 몸에 반투명한 푸른 막이 생겼다. 물리적인 방어력을 제공하는 보호막이었다. 어떤 마법으로 어떻게 상대해야 할 지 계산할 시간을 벌려는 모양이었다.
가벡이 다가가 두드렸으나 안타깝게도 깰 수 없었다.
- 아, 비겁합니다. 시간 끌기라니요!
‘비겁하긴 뭐가 비겁해. 현명한 선택이구만.’
칼콘과 가벡은 숙련 된 군인이자, 전사였다.
전투 경험이 적은 마법사가 임기응변으로 상대해 봐야 압도적인 경험과 노하우에 짓눌린다. 그럴 바에는 아예 완벽하게 계산해서 한 방에 끝내는 게 나았다.
마법사는 약 2분 정도 보호막을 유지하다 끝냈다.
“그르르….”
“pääs(탈추)….”
이내 거리를 벌리기 위한 단거리 도약 마법을 시전 했으나 가벡은 놓아줄 생각이 없던 모양이었다.
퉤!
침이었다.
가벡이 머금고 있던 가래침이 마법사의 입에 들어갔다.
“…꺽!”
덕분에 마지막 음절이 비틀어져 버렸고, 마법은 실패요, 날아오는 가벡의 곤봉이었다.
뻑!
마법사가 바닥에 쓰러졌다.
- 아, 경기 끝났습니다. 크락과 가벡의 승리입니다! 하지만 숨통을 끊지는 않았네요. 과연 어떻게 할까요!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관객들이 미친 사람들 마냥 죽이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 모습이 피에 굶주린 짐승 같아 묘하게 섬뜩했다.
지훈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칼콘과 가벡을 살펴봤다.
‘칼콘, 적당히 해라. 그런 거 함부로 죽였다가는 이블 포인트 올라서 다시는 반지 못 낀다.’
가벡이야 뭔 짓거리를 하고 다녀도 상관없었지만, 칼콘은 문제가 됐다. 추후 각성 제어를 위해 반지를 몇 번 정도 껴야 할 때가 있을 터였다.
특히 D에서 C등급 올라갈 때, 즉 이능 포인트를 얻을 때가 중요했다. 이능 선택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만약 이블포인트를 잔뜩 올려놓는다면?
이능 선택은 개뿔, 끼자마자 죽을 수도 있었다.
죽여! 죽여! 죽여!
관중들의 고함에 칼콘과 가벡이 뭐라 얘기를 주고받았다.
- 뭐라고 하는 걸까요? 궁금하군요. 어떻게 죽일지를 상의하고 있는 걸가요? 몬스터가 절대로 인간을 살려줄 리가 없을 텐데 말이죠!
가벡과 칼콘이 이내 손을 크게 들었다.
전광판이 그 둘의 손을 클로즈 업 했다.
주먹을 쥐고 가운데 손가락만 핀 모양이… 꼭…
엿이나 먹으라는 것처럼 보였다.
특이한 전개에 진행 요원이 급히 달려와 칼콘과 가벡에게 마이크를 건네줬다.
- 예, 칼콘 선수. 왜 죽이지 않은 겁니까?
- 그냥. 재밌자고 싸웠는데 죽이고 싶지 않았어. 안 죽이면 쟤네랑 또 싸울 수 있잖아. 그리고 숙련 된 전사는 훈련 상대를 죽이지 않아!
우우우우~ 시시하다~
계집애 같은 놈!
관객들의 야우가 쏟아져 내렸다.
해설은 이번에 가벡에게 물었다.
- 가벡 선수는 왜 상대를 죽이지 않았나요?
- 내 힘으로 얻은 목숨이다. 너희들이 뭔데 죽여라 살려라지? 원래 죽일 생각이었지만, 너희가 시키니 하기 싫군. 좆이나 까라, 개새끼들아!
푸하하하! 저 몬스터 봐!
신선한 놈이다!
관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 벌레 같은 놈들, 죽일 가치도 없다! 가서 살 좀 붙이고 오면 그 때 친히 잡아먹어 주마! 꺼져!
가벡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마법사를 발로 퍽 차고는, 대기실로 향했다. 마이크는 다시 칼콘에게 주어졌다.
- 지훈, 보고 있지? 나 이겼다? 내기대로 진짜 소고기 사주는 거다? 소고기!
민우와 지현의 눈이 나란히 이쪽으로 향했다.
“진짜요? 쟤를요? 소고기?”
“대박… 오빠, 저번에 칼콘 고기 먹는 거 못 봤어?”
봤다. 눈앞에서 직접 봤다. 아마 한우로 먹으면 하루 밤 식비로 천만 원 가까이 깨지겠지.
‘아, 또라이 새끼… 좀 조용히 좀 있지.’
부끄러움에 조용히 양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 ☆ ☆
뒤풀이는 약속대로 소고기로 했다.
밥 먹는데 잔인할 건 없었기에 시연도 불러 함께했다.
치이이익 -
문득 고기를 굽고 있자니 칼콘, 가벡, 민우가 앉은 테이블이 시끄러워졌다.
“가벡, 이리 줘. 고기는 원래 우두머리가 굽는 거야.”
“그래서 지금 내가 굽고 있지 않나?”
“풉, 네가 우두머리라고? 재미있다! 그치?”
칼콘이 민우에게 묻자, 가벡도 쳐다봤다.
누가 우두머리인지 대답하라는 강요였다.
그 모습이 꼭 병장 둘이서 이병에게 ‘누가 더 잘생겼냐?’ 라고 묻는 것 같아 묘하게 우스웠다.
“그냥 아무나 우두머리 하고 빨리 고기나 구워.”
관심 없는 민우였다.
“우리 테이블은 자기가 우두머리니까 굽는 거야?”
시연이 싱글벙글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픽 웃음이 나왔다. 딱 지현이 말하기 전까지만.
“아~이고, 당연히 우리 오라방이 우두머리입지요. 그러니 빨리 고기를 구워서 대령해라. 태우면 죽는다?”
“뜨거운 고기로 처맞아봐야 정신 차릴래?”
집게로 한 점 집자, 지현이 바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함돠.”
와구와구,
냠냠냠냠,
벌컥벌컥.
맛 좋은 고기와 함께 맥주를 들이켰다.
“프-하!”
3000cc 쯤 들이 붙자, 가벼운 취기가 올라왔다.
몽롱한 기분으로 일행을 죽 훑으니, 그 모습이 꼭 페커리 고기를 다 같이 구워먹었던 추억이 떠올랐다.
‘앞으로도 계속 이랬으면 좋겠다.’
누구 다치는 사람 없이, 누구 죽는 사람 없이.
나중에 우리 아들이 어떠네, 우리 손녀는 어떠네 하며 서로 제 자식이 잘났다고 멱살잡이라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늙었나, 참 별 생각을 다….’
감상을 날려버리고 맥주를 마시고 있자니, 문득 핸드폰이 울렸다. 진동이 짧은 걸로 봤을 때, 문자다.
‘누구지?’
지훈의 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없다.
누군가 싶어 내용을 확인했다.
- 김지훈님, 정철수 교수입니다. 금속 제련 건으로 연락드렸습니다. 문자로 얘기하기는 긴 얘기가 될 것 같으니, 약속을 잡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