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95화 (95/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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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객은 당황하며 재장전을 하려고 했다.

물론 기다려 줄 생각은 없었다.

총알이 없다는 건 곧 위험할 거 없다는 뜻.

바로 달려들었다!

발가락에 온 힘을 집중해서 땅을 부서 버릴 듯 밀었다.

온 몸이 중력을 무시하고 튀어나갔다.

표범 같은 날쌘 움직임!

타타타탓!

가속 이능으로 1.5배 이상 빨라진 육체가 엄청난 속도로 취객에게 가까워졌다.

이내 사정거리 내에 들어왔고, 지훈은 손날로 취객의 목을 내려 칠 준비를 했다.

짧은 찰나 생각 하나가 스쳤다.

이블 포인트.

지훈의 근력과 민첩 능력치는 차례로 23, 20으로 둘 다 D등급 이었다. 만약 상대가 일반인 혹은 저등급 각성자라면 맞는 순간 사망 혹은 전신마비였다.

술로 인한 단순 시비였다.

과연 이게 사람 조질 만큼 나쁜 일일까?

‘술이 무슨 면죄부도 아니고, 좆이나 까라지.’

어차피 단순 시비로 총 난사하려던 놈이었다.

이블 포인트 올라봐야 1~3 이었다.

그 정도야 올라도 상관없으니, 저 죽어 마땅한 놈을 조지는 게 먼저였다.

손날이 무슨 칼처럼 날아가 취객의 목이 틀어박혔다.

퍽 하는 소리에 뼈 작살나는 소리가 섞였다.

털썩.

총을 든 취객이 나무토막마냥 바닥에 쓰러졌다.

아마 정신을 차려도 다시는 몸을 일으킬 수 없으리라.

제 주제도 모르고 아무한테나 시비를 건 놈의 최후였다.

‘오만한데 겁까지 없는 놈은 죽어야지.’

탕!

타탕, 탕!

탕!

하나를 처리해 놓으니 등 뒤에서 총 소리가 들렸다.

민우와 권총을 든 취객이 서로에게 총을 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민우는 나무로 만든 술 박스 뒤에 엄폐하고 있었고, 취객은 교묘하게 움직이며 칼콘을 사선에 뒀다.

‘하, 저 새끼가 감히 칼콘을 방패로 써?’

그렇지 않아도 칼콘 다쳐서 개고생 한 게 방금이었다.

화가 버럭 났기에 바로 달려가서 드롭킥으로 응징했다.

투다다다다, 휙!

뻐 - 억!

말을 드롭킥이라고 하니 어감이 웃기지만, 가속 이능 쓰고 전속력으로 달려서 틀어박는 발차기였다.

소형차가 시속 60km로 들이 받은 거랑 비슷했다.

그 증거로 남자가 바닥에 쑥 꺼지듯 넘어지더니, 역동적으로 다시 튀어 올라 3바퀴 정도 데굴데굴 굴렀다.

민우에게 눈짓해서 마무리 하라는 사인을 보냈지만, 민우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 죽이라고요? 단순 시비인데?

하는 것 같았다.

“에라 병신아, 그러는 쟤는 너 안 죽이려고 총 쐈냐? 너는 씨발 총 살살 맞으면 안 뒈져?”

당연히 아니었다.

저 쪽도 민우를 죽일 생각으로 총을 쐈다.

탕! 탕!

탕, 탕, 탕!

민우가 넘어진 취객에게 총알을 박아 넣었다.

권총 사격에 익숙하질 않은지라 처음 몇 발은 빗나갔지만, 이내 3발 연속으로 명중시켰다.

이제 남은 적은 둘이었다.

단검을 든 녀석과 쇠파이프를 든 녀석. 각각 가벡과 칼콘이 상대하고 있었다.

훅! 훅!

챙!

가벡은 오른손에는 오류기기 파괴용 곤봉을 들고 있었고, 왼손은 단검을 들고 있었다. 왼손으로 공격을 흘린 뒤 오른손으로 마무리 하는 스타일인 것 같았다.

가벡의 단검과 취객의 식칼이 부딪치자마자 단검이 수수깡 부러지듯 쨍 하고 깨져버렸다.

“하, 어디 각성자한테 개겨! 죽어라 이 몬스터 새끼야!”

취객은 기고만장해서 곤봉도 잘라버릴 듯 단검을 휘둘렀다. 가벡 역시 이를 피하지 않고 받아줬다.

쨍!

이번에는 취객의 단검이 박살났다. 당연한 결과였다.

곤봉, 소위 말하는 몽둥이였다.

사람들은 보통 날붙이로는 도끼나 검, 둔기로는 메이스나 모닝스타를 쓰는 게 보통이었다.

곤봉 아티펙트는 흔하지 않기에 당연히 일반 물품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 아니 어떻게….”

대답 대신 곤봉이 날아들었다.

훅!

뻑 하는 소리와 함께 취객의 어깨에 곤봉에 쑥 들어갔다.

“아, 아악! 내, 내가 잘못…! 잠…!”

훅!

잘못을 빌었지만 가벡은 듣지 않았다. 애초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항상 밟으며 살아온 녀석이었다.

용서, 자비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가벡은 취객의 양 어깨를 작살낸 뒤 팔과 다리의 뼈를 모조리 부숴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죽이고 싶은 것처럼 보였으나, 이 쪽 눈치를 봐서 일단은 살려둔 것 같았다.

- 인간 세상에 있다는 걸 잊지 마라, 가벡.

아마 저 말을 염두에 뒀던 모양이다.

“그냥 죽여.”

“그래도 괜찮나?”

가벡이 되물었지만 가볍게 긍정했다.

저 정도 부상이면 재생 마법이라도 받지 않는 한은 평생 개고생하며 살아야 했다.

가격만 1억이었다. 그럴 돈 있어 보이지 않으니, 그냥 죽여주는 게 더 깔끔해 보였다.

본인은 살고 싶어서 몸부림을 칠 테지만 알 바 뭘까.

저런 쓰레기 살려둬 봐야 좋을 거 하나 없거니와, 저 녀석 가족도 뒷바라지 하느라 개고생 할 게 분명했다.

고기 터지는 소리가 나며 시야 구석에 빨간 게 튀었다.

‘칼콘은 잘 하고 있나?’

몸을 고친 뒤 겪는 첫 전투였다.

겨우 20일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매일매일 단련을 하던 칼콘이었기에 아마 그 공백이 좀 클 것 같았다.

깡!

물론 그건 착각이었다.

“어, 어… 어…!”

취객이 들고 있는 쇠파이프는 구부러지다 못해 이미 소용돌이 모양으로 둘둘 말리고 있었다.

“다 했어? 어서 더 쳐봐! 어서! 나랑 놀자!”

칼콘이 오른손으로 제 가슴을 팡팡 때렸다. 도발이었다.

“으아아아!”

취객이 겁에 질려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하지만 칼콘은 씩 웃으며 왼손으로 방어할 뿐이었다.

깡!

쇠파이프가 다시 한 번 구부러졌다.

이미 길이가 반 이상 짧아졌다. 더 이상은 쇠파이프가 아닌 기괴한 금속 공예물처럼 보였다.

“이제 내 차례네! 크롸!”

칼콘이 소리를 지르며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그대로 왼발로 취객을 걷어찼는데, 힘이 얼마나 셌는지 그냥 말 그대로 발이 취객의 다리를 먹어버렸다.

마지막 취객이 쓰러졌다.

일행의 승리였다.

- 과도한 정당방위입니다. 이블 포인트가 1 올랐습니다.

- 현재 이블 포인트는 59입니다.

예상했던 바였기에 딱히 별 타격은 없었다.

저번에 5포인트 깎인 탓에, 현재 이블 포인트는 59로 매우 낮은 수치였다.

“칼콘, 마무리 안 할 거면 내가 해도 되나?”

가벡이 어느새 다가와 허공에 곤봉을 휘둘렀다.

피가 훅 하고 떨어져 나갔고, 취객이 비명을 질렀다.

“마음대로 해. 난 죽이는 건 관심 없거든.”

“고맙다. 아직 분이 풀리질 않았거든.”

가벡이 곤봉을 휘두르려는 찰나, 주인이 제지했다.

“한 놈은 살려두는 게 어때? 저기 너희 막내가 엄폐물로 쓴 술 박스 다 깨졌잖아. 그거 변상하게 내버려둬야지. 죽이면 지훈이 변상해야 한다고?”

갑자기 본인 이름이 나오자 얼척 없는 지훈이었다.

“깬 건 저 새끼가 깼는데, 그걸 내가 왜 갚아?”

“죽은 사람한테는 돈 못 받잖아. 게다가 난 너 네 막내보다는, 지훈이 더 좋은 걸?”

“꺼져, 새끼야. 꺼져!”

말로 엉겨 붙는 주인을 떼어냈다.

대신 가벡이 물었다.

“저건 얼마지?”

“어디보자… 일반 맥주로 5박스니까 한 120만 원?”

5박스 맞았다지만, 개 중 깨진 건 얼마 되지도 않을 텐데 죄다 손해배상에 넣는 주인이었다.

가벡은 이후 민우에게 120만 원의 가치를 물었고, 이에 민우가 별 거 아닌 가격이라 대답해 줬다.

“내가 대신 갚지. 그럼 이 녀석 죽여도 되나?”

지훈, 칼콘, 주인 순서대로 슥 훑는 가벡이었다.

“꼴리는 대로 해라. 누가 야만인 아니랄까봐, 에휴.”

고기 다지는 소리를 배경으로 담배를 한 대 태웠다.

“술 맛 떨어지네, 쯧.”

이제 뭐 할까 싶은 찰나 주인이 붙들어 맸다.

“아, 맞다. 나 깜빡하고 말 안 한 거 있어.”

“뭔데?”

주인이 헤죽 웃었다.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쟤네 사실 내 격투장에서 일하는 애들이거든? 근데 방금 지훈 일행이 죄다 죽여 버려서 자리가 비네?”

대신 와서 일하라는 얘기였다.

“아이, 씨발. 그걸 왜 지금 말 해!”

“누구 하나 죽일 기세로 살기등등하게 서있는데, 오줌 지릴 것 같아서 얘기 못 했지~”

능글맞은 개소리였다.

“개좆같은 소리 집어치워. 우리가 그걸 왜 해.”

돈을 안 주거나 하진 않을 테고, 안면이 있는 사이였으니 죽을 경기에 억지로 밀어 넣지도 않을 건 알았다.

단지 귀찮았을 뿐이었다.

그깟 파이팅 머니 몇 번 받는 거 보다 쉬운 일거리 찾아서 헌팅 나가는 쪽이 경험, 돈 어느 쪽이든 월등했다.

하지만 칼콘에게는 아니었는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그거, 크라토스 같은 거야?”

주인이 얼쑤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정확해. 규모는 좀 작지만, 우리도 각자의 룰을 정해놓고 싸우지!”

시체 구덩이 언더 파이팅 룰은 간단했다.

무슨 수를 써도 상관없으니, 상대방을 쓰러뜨려라.

그 과정에서 상대방이 병신이 되던, 죽어 나가던 아무것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훈, 나 저거 하고 싶어!”

“그냥 크라토스 나가지 그래?”

“내가 알아 봤는데, 이종족은 어느 국가에 망명한 거 아니면 받아주질 않는대.”

그 말은 곧 국적이 없다면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현재 가벡, 칼콘은 거주증도 없는 불법거주 상태.

당연히 양지 격투인 크라토스에 참가할 수 없었다.

“지훈, 응?”

칼콘이 과자 사달라고 조르는 것 마냥 눈을 빛냈다.

‘말려봐야 할 눈치다.’

결국 손을 들었다.

“맘대로 해. 대신 나는 안 한다. 너희도 똑같아, 가벡, 민우 너희도 하고 싶으면 해라.”

될 수 있으면 민우는 끄집어 넣고라도 싶었다. 조금 위험할 수도 있었지만, 전투 경험이 너무 부족한 민우였다.

주인에게 살짝 귀띔을 줘서 안전한 경기만 할 수 있다면 아마 대인전투 경험을 쌓을 수 있겠지.

“좋아! 나는 할 거야!”

칼콘은 바로 주인의 제안을 승낙했다.

“흠… 경기 중 상대를 죽여도 되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경기도 있어.”

“그거 참 재미있는 소리군. 좋군, 나도 한다.”

가벡 역시 헌팅보다는 전투 쪽이 마음에 드는지 제안을 덜컥 승낙했다.

“저는… 그냥 안 할게요. 운동이나 하죠.”

반면 민우는 살짝 뒤로 뺐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쟤가 짐승도 아니고, 본인이 싫다는 데 어떻게 강요한단 말인가?

“그래.”

가벡과 칼콘은 주인과 가벼운 얘기를 나눈 뒤 돌아왔다. 아마 언더 파이팅에 대한 얘기를 나눈 것 같았다.

두 팀 간 시비 붙었다가 한 팀만 돌아왔기 때문일까?

이후 아무도 지훈 일행을 건드리지 않았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술을 들이킬 수 있었다.

☆ ☆ ☆

칼콘은 병원이 아닌 집으로,

가벡은 민우와 다시 동거를 시작했는지 민우와 함께,

민우는 개 산책 시키는 심정으로 걸어서 아파트로,

지훈은 술이 기분 좋게 올라 터덜터덜 걸어왔다.

집에 도착해서 가볍게 씻은 뒤 거울을 쳐다봤다. 수염이 생각보다 길게 자라 있었다. 최근 들어 저항이 올라가면서 생긴 애로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면도였다.

저항 능력치는 편리한 물건이 아니었다.

총, 칼만 막아주는 게 아니라 등급이 높아질수록 손톱, 발톱, 심지어 털 까지 단단해졌다.

손톱깎이야 질 좋은 녀석으로 하나 마련하면 오래 쓴다지만, 문제는 바로 면도기였다.

일주일 마다 날이 나가버렸다.

‘그냥 기를까.’

조금 더 고민했지만, 이내 죄다 밀어버렸다.

침대에 누우니 편안함이 몰려왔다.

아마 취객을 상대로 몸을 움직인 까닭이리라.

대충 시간을 확인하고 잘 생각으로 핸드폰을 열었다.

- 새로운 메시지 1통.

- 내일 우리 얘기 좀 해.

시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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