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짜와 시한폭탄 -->
범죄 조직 두목.
연쇄 살인마.
사이코패스.
밀수업자.
저 네 가지 동시에 만족하는 사람?
그게 바로 석중이다.
“하이고, 거 어디 방사능 묻은 개새끼가 똥 묻은 개새끼 나무라는 소리 하고 있니. 거 빨리 뒤지래도 명줄 참 길디.”
“내 소원이 하나 있는데, 죽기 전에 이 가게 앞에 있는 C4로 불꽃놀이 한 번 하는 거 보고 싶네.”
“거 한 번 보지 그르니?”
석중이 기폭기를 주물럭거렸다.
“거 지랄하지 마쇼. 저번에 썼던 거 또 속겠소?”
“겁 없는 거 보니, 새끼 한 번 뒤져봐야겠디.”
석중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버튼을 눌렀다.
펑!
커다란 폭음!
지훈이 자세를 낮추며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뭔가 싶어 살펴보니, 천장에서 폭죽이 터졌다.
“푸하하하, 새끼. 역시 언제 봐도 놀리는 맛이 있디.”
웃어 재끼는 석중을 보니, 속에서 부아가 치밀었다.
탕! 탕! 탕!
화딱지가 나서 글록을 꺼내 카운터를 쏴버렸다.
쩍 소리가 나며 방탄유리에 총알 먹은 흔적이 남았다.
“거 새끼, 날뛰는 거 보라. 무섭디.”
“유리가 너무 얌전하지 않소? 내 예쁜 장식 몇 개 달아준 거니, 고맙게 생각하쇼. 씨발.”
석중이 픽 웃었다.
피차 저 행동이 과격한 장난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 오랜만이다. 뭔 일로 왔니?”
“사람 좀 찾아주쇼.”
“눈데?”
찾아야 할 사람은 2명이었다.
한 쪽은 이름밖에 아는 게 없었고, 다른 한 쪽은 대충 정보는 있는데 이름을 몰랐다.
“하나는 서권곽. 이름 밖에 모르오. 이름 보니 한국 아니면 짱개 같은데, 일단 무덤은 지금 공동묘지에 있소.”
“공동묘지? 뒤졌니?”
살아있을 가능성은 없었다.
지훈이 직접 시체에서 반지를 꺼내지 않았던가.
“그 사람 정보가 필요하오.”
아쵸프무자는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 필멸자는 타 죽기 마련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훈 역시 지금 같이 일하는 상대가 시한폭탄인지, 아니면 단순 괴짜인지 알아야만 했다.
‘네 맘대로 움직일 수 있는 편한 장기짝이 돼 줄 생각은 단 한치도 없다, 아쵸프무자.’
이를 꽉 깨물었다.
“이름 말고 정보는?”
“알 수 없소. 아마 싸움 좀 하던 사람 같소.”
그렇지 않고서야 최상위 관리자를 뚫고 기록을 가져갈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무리 반지가 강하다지만, 배불뚝이 옆집 아저씨를 세계를 구할 영웅으로 만들어 줄 정도는 아니었다.
싸움 깨나 하던 지훈도 만드라고라에게 잡아먹힐 뻔 하지 않았던가?
“알겠디. 다음.”
“최소 B등급 이상 각성자. 불 계통 발현계 이능을 쓰고 있었소. 흑인이었고, 키는 꽤 컸으며, 영어를 쓰고 있었소.”
이후에도 여러 가지를 설명해 줬다.
총알을 자동으로 막는다거나, IED를 던져 멀리서 기폭 시킨다는 것 등이었다.
석중은 얘기를 듣고는 슬쩍 입을 다물었다.
“그거랑 비슷한 아 중에, 내 아는 새끼 하나 있긴 하디.”
“누구?”
지훈의 눈에서 붉은 분노가 흘러내렸다.
“내가 아는 그 새끼 맞는 거면, 니 지금 벌집 쑤시는 거디. 아니지, 벌집이 아니라 포미시드 굴 들어가는 거디.”
벌이고 개미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었다.
그 뭐가 막아서든 죄다 쳐죽일 생각이었다.
“할배, 내 물었잖소. 누구냐고!”
“말 못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내 조사는 해보그마.”
석중이 등을 돌렸다.
지훈은 카운터에 다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장 말하쇼! 누구냐고!”
“내 이제 피곤하디. 니 이제 돌아가라.”
지훈은 한동안 카운터 앞에서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이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촤라라라락!
석중이 카운터 보호 장갑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내가 원하는 정보가 나오길 기대하지. 그럼 다음에 봅시다, 할배.”
석중은 CCTV로 지훈이 멀어지는 걸 살펴봤다.
‘새끼 뭐 한다고 언더 다크랑 엮일라 하니. 그냥 헌터 하면서 쉬운 일 잡아서 편히 돈이나 벌고 여자라 안으라. 날뛰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니 그러지 진짜 뒤진디.’
석중은 한숨을 푹 내뱉었다.
☆ ☆ ☆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다.
집에 가기도, 어디 시간 죽일 곳을 찾기도 애매했기에 그냥 시체구덩이로 향했다.
“오~ 지훈. 오래간만!”
스토커. 아니 주인은 손을 들며 지훈을 반겼다.
비록 한 달 전에는 적으로 만났지만, 지금은 단지 술집 주인과 한 사람의 고객으로 만났기 때문이었다.
물론 주인이 지훈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고, 지훈은 주인이 스토커라는 걸 모르는 이유도 있었다.
만약 주인 = 스토커라는 걸 알았다면 당장 총부터 들이밀며 죽이려 들었겠지.
“골든 하플링 맥주로 한 잔.”
가볍게 손을 들며 말했다.
예전에는 비싸다며 입도 안 대던 물건이었거늘,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주문했다.
꿀걱 - 꿀걱 -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
“다 같이 회포 풀러 온 거야.”
“알겠어. 그럼 괜찮은 기집애들 준비해 놓을게.”
지훈이 얼굴을 팍 굳혔다.
“그 쪽 말고. 술, 새끼야. 술.”
“지훈은 참 이상한대서 착실해. 이렇고 저런 세상인데 그런 건 좀 뒤로 밀어놔도 괜찮지 않아?”
더 이상 잡담하고 싶었기에 그냥 본론을 꺼냈다.
“사람을 찾는다.”
“누구?”
주인 역시 사에서 공으로 태도를 바꾸며 되물었다.
대충 대상을 알려주자, 주인은 슬쩍 웃음을 지었다.
‘미안해, 지훈. 안타깝게도 나는 알려줄 수 없어. 난 네가 자살하러 가게 내버려 둘 수 없어.’
물론 입으로는 거짓을 담았다.
“알겠어. 찾자마자 바로 연락할게.”
이제 볼일은 전부 끝났다.
지훈 혼자 앉아서 맥주를 들이 키고 있자니 칼콘, 민우, 가벡 순으로 도착했다.
“어. 다들 왔냐? 오늘은 미친 듯이 놀자.”
- 오빠 정말 나빠요 ♬
- 어떻게 여자한테 그런 말 할 수 있어요? ♪
- 나도 어디 가서 꿀리는 여자 아닌데 ♬
- 이상하게 오빠 앞에만 서면 약해져 ♪
- 오빠 정말 나빠요, 오빠 나쁜 남자에요 ♬
- 오빠 정말 나빠요, 오빠 나쁜 남자에요 ♬
- 근데 왜 이렇게 두근거릴 까요? ♪
- 나도 내 맘을 몰라. ♬
술을 마시고 있자니 걸그룹 노래가 흘러나왔다.
“어, 이거 신데렐라 퍼퓸 신곡이네요.”
민우가 슬쩍 끼어들며 곡 이름이 ‘나쁜 남자’ 라고 했다.
가사를 들어보니 대충… 못된 남자가 있는데, 지네들이 그 남자가 좋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지랄을 해라, 지랄을.’
자기들 인성이 쓰레기면서, 무슨 자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것 마냥 가사를 쓴 게 고까워 보였다.
‘다시 한 번 뒷골목에 집어 던져져 봐야 정신을 차리지.’
화를 삭이는 지훈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저 가사는 호진(리더)이 직접 쓴 거였고, 저 ‘나쁜 남자’는 지훈이었다.
물론 아무리 좋대봐야 저런 여자들 한 트럭 가져다 줘도 사양이었다.
“저 상자에 나오는 여자들은 창녀들인가?”
가벡은 야한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아리를 보며 말했다.
“연예인이야. 스타.”
“옷 입은 게 꼭 창녀처럼 보이는군. 왜 인간들은 저런 것에 열광하지? 알 수 없군.”
민우가 인간 세계 관광 가이드마냥 설명해줬다.
“쟤네 엄청 유명해. 팬클럽, 일종의 추종자도 있을 걸?”
“팬클럽? 그런걸 뭐 하러 하지? 쫓아다니면 교미라도 해 주나?”
인간 세상에 대한 무지와, 야만인이라는 특성이 겹쳐지자 정말 기절초풍할 대답이 튀어나왔다.
칼콘도 가끔 저런 말을 하긴 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게. 왜 따라다니지? 정말 해주는 거야?”
칼콘이 당장 팬클럽에 들어갈 기세로 물었다.
저 정도는 아니었다고? 정정한다. 틀렸다.
저 놈이나, 이 놈이나. 그 놈이 그 놈이었다.
지훈과 민우는 두 배로 머리가 아파오는 걸 느꼈다.
“됐다, 새끼들아. 그냥 술이나 처먹어.”
결국 납득시켜 주는 걸 포기하고 술이나 진창 먹였다.
얼마나 마셨을까?
문득 민우가 큰 소리를 냈다.
“맞다, 형님. 들어보세요. 가벡이 있잖아요….”
1억을 그대로 변기에 흘렸다는 얘기였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지훈과 칼콘이 웃음을 터트렸다.
“거 봐, 지훈. 쟤가 나보다 심하다니까.”
“인정, 새끼야. 인정. 저거 진짜 상또라이 새끼네.”
“그쵸 형님. 제가 이상한 거 아니죠?”
셋이 본인을 비웃음에도, 가벡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만 갸웃거렸다.
“휴지 한 장 가지고 뭘?”
휴지 한 장에 1억?
금수저도 못할 돈지랄이었다.
돈의 가치를 가르쳐 주기까지 한참 걸릴 것 같았다.
일행은 가벡이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나는 하나도 모르겠다.’ 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가벡을 향해 한 마디씩 했다.
“에라, 병신아.”
“1억이면 집도 구할 수 있어.”
“제발 돈 단위 좀 익히자, 가벡. 응?”
다들 한 마디씩 하자 화가 난 듯 그르렁 거리듯 큰 숨소리를 내는 가벡이었다.
“내버려 둬. 나중에 지가 얼마나 큰돈을 똥 닦는데 썼는지 알면 알아서 피 똥 쌀 거다.”
한 동안 즐거운 잡담이 계속 됐다.
주 화제는 유적 수색에 관한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칼콘이 빠졌던 터라,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었다.
“민우, 어떤 장소였어?”
“기계가 엄청 많았어요. 레이저도 쏘고, 터렛 같은것도 있고. 네비게이션도… 솔직히 저도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살아 나온 게 신기하네요.”
레이저, 터렛, 네비게이션.
칼콘이 전혀 모르는 단어가 나오자 그냥 고개만 까닥였다.
“가벡, 어땠어?”
“어떻긴 뭐가 어때. 그냥 이 곤봉으로 녀석들 골통을 날려줬다. 댕~ 댕~ 울리는 손맛이 일품이더군.”
손맛이 일품은 개똥이 일품이었다.
자랑하고 싶었는지, 어째 최상위 관리자랑 엄청나게 많은 기계군단 얘기는 쏙 빼놓고 얘기하는 가벡이었다.
‘살아 돌아온 게 다행이다.’
만약 아쵸프무자가 1초라도 늦었다면?
나란히 바싹 익은 시체가 됐을 게 분명했다.
보통 일반 헌터들이 방어구를 살 때 신경 쓰는 요인은 2가지였다. 물리 방어력, 방탄 효과.
하지만 최근 들어서 지훈 일행이 파이로, 최상위 관리자 같은 강적들을 만나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방전, 방화. 둘 다 조심해야한다.’
저 녀석들 상대로는 아무리 단단한 갑옷도 쓸모없었다.
만약 불로 갑옷을 가열한다면?
만약 고열 레이저로 갑옷을 절단 한다면?
만약 갑옷 째 전기로 지져 버린다면?
무장해제 혹은 방어 무시 공격의 가능성이 있었다.
‘다음 헌팅 나가기 전에 장비 좀 사야겠군.’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유적 조사에서 살아 돌아온 게 겨우 이틀 전이었다. 당장 머리 싸매고 고민 할 것 없었다.
지금은 잘 쉬어서 체력과 정신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해 놓는 게 훨씬 중요했다.
고개를 돌리니 최상위 관리자에 관한 화제로 뜨거운 얘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칼콘, 잘 들어봐요. 막 두꺼운 레이저 웅~ 쏘는데 다 뒤질 뻔 했어요. 내가 EMP 까서 다 살아 온 거예요!”
“에이, 설마. 거짓말 하는 거지?”
칼콘은 확인하고 싶다는 듯 가벡을 쳐다봤다.
가벡은 조용히 고개를 TV로 돌려버렸다.
“크라토스다. 쓸 데 없는 얘기 그만하고 저거나 봐.”
크라토스라는 말에 칼콘의 눈이 획 돌아갔다.
병원에서 즐겨 봤던 방송인지라 흥미가 돋는 모양이었다.
“인간 방송 중에는 저게 제일 재밌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