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극과 희극, 한 블록 차이 -->
드르렁 - 드르렁 -
안대, 귀마개로 무장한 채 코를 고는 민우였다. 가벡은 그 모습을 보다 조용히 화장실로 향했다.
저번에 바닥에 쌌다가 호되게 한 소리 들은 탓이었다.
“끄으!”
무슨 몸에 맞은 총알 빼내듯, 우렁찬 신음이었다.
그리고 그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뿌 - 웅 - !
몸에서 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육식을 선호하는 식습관에, 생고기도 가리지 않고 먹는 식습관 탓에 냄새가 정말 끝내줬다.
토악질 몇 번 했을 냄새지만, 가벡은 웃었다.
“냄새 좋군! 전사답다!”
개뿔은 나발이 전사다.
무슨 코에 붙이면 코걸이, 귀에 붙이면 귀걸이도 아니고 이상한 곳에는 죄다 전사, 투사 소리 붙이는 가벡이었다.
“참 신기하군. 인간들은 왜 이런 걸 만들었지?”
신기하다는 물건의 정체는 변기였다.
항상 땅에다 볼 일을 보고 파묻거나, 푸세식 화장실만 이용하던 가벡이었다. 수세식을 보자 너무 신기했다.
게다가 비대까지 달려있으니, 과연 문화 충격이었다.
삑 -
졸졸졸 -
우악스런 손가락으로 세정을 누르자 물이 튀어나왔다.
“오~ 오오… 오! 오~”
무슨 노래를 부르는 것 마냥 이상한 소리였다.
가벡은 한참이나 세르가즘(?)을 느낀 뒤 손을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다 말았다.
‘손으로 닦지 말고 종이로 닦으라고 했던가.’
고개를 돌렸다. 휴지를 봤다. 없다.
‘어떡하지?’
닦을만한 종이를 찾았지만, 딱히 마땅한 게 없었다.
한참동안 고민하길 잠시. 가벡의 머리에 떠오른 게 있었다.
바로 돈이었다.
현금 뭉치는 무겁기에 밖에 있었고, 지금 주머니에 있는 종이는 1억짜리 수표 3장.
‘그래. 이걸로 닦으면 되겠다.’
돈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었다면 게거품 물며 말렸겠지만, 그 가치를 모르는 가벡으로서는 그냥 종이로만 보였다.
애초에 숫자를 1000이상 몰랐으니 어쩔 수 없었다.
벅벅 ~
비적 - 비적.
수표로 물기를 다 닦고는 그대로 변기에 놨다.
‘휴지는 변기에. 그리고 볼 일 다 봤으면….’
스위치를 눌러서 변기를 작동시켰다.
솨아아아아아 -
개고생 해서 번 돈 중 1억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 ☆ ☆
5시간 뒤 민우가 이 소리를 듣고는 미친 사람처럼 날뛰었지만, 가벡은 그저 갸웃거리기만 했다.
“여기 노란색 많다. 뭐가 문제지?”
5만 원과 1억 원을 동일선상에 놓는 가벡이었다.
더 이상 요행을 봤다가는 화병으로 죽을 것 같았다.
까닭에 민우는 결심했다.
“나가, 이 새끼야!”
그렇게 1억은 변기로, 가벡은 밖으로 쫓겨났다.
☆ ☆ ☆
지훈은 소파에 앉아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시연 때문에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헌팅이 끝난 후, 칼콘 나들이 중, 집에 돌아와 하루 푹 쉬며 틈틈이 문자를 보냈지만 답장이 하나도 오질 않았다.
‘화 많이 났나?’
전화라도 걸어볼까 싶었지만 역효과가 날 것 같아 그만뒀다. 내버려 두는 게 좋을 거라 판단됐기 때문이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화날 만 한 사건이었다.
지훈이 연구원이고, 시연이 헌터라고 생각해 보자.
근데 헌팅 다녀와서 일주일 간 골골거린 사람이, 병원 나오자마자 다시 헌팅을 나간 뒤 10일간 연락이 끊긴다?
당연히 속이 뒤집어진다.
‘나중에 꼭 미안하다고 얘기해야겠다.’
지금은 하고 싶어도 받아주질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연락이 닿질 않아 굉장히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하루 종일 시든 꽃 마냥 우울하게 있을 필요는 없었다.
연인 사이는 서먹해졌지만, 친구의 몸이 회복됐다.
울 땐 울더라도, 웃을 땐 웃어야 하지 않던가.
어떻게 할 수단이 없는 시연은 조금 뒤로 밀어두고, 지금은 휴식 및 기쁨을 만끽하는 데 집중했다.
방금 죽을 고비 넘어왔는데, 바로 머리 아픈 문제 붙잡고 고생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 정도는 더 쉬어도 되겠지.’
바로 칼콘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 뚜르르 -
“으응, 여보세요?”
어째 방금 일어났는지 목소리가 퀭하다.
“나다.”
“응, 너야.”
전화기 너머로 여자가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너 톨퐁이랑 헤어지지 않았냐?”
“헤어졌지.”
잠시 눈알 굴리며 칼콘이 원래 카사노바 끼가 있던가나 고민했지만, 털어냈다.
저건 카사노바라기 보단 욕망의 화신에 가까웠다.
“그럼 여자소리 뭔데?”
“그냥 하룻밤 아는 여자.”
하룻밤 아는 여자라는 말에 전화기 너머로 여자가 투덜댔지만, 칼콘은 짧게 ‘저리 가.’ 라고 일축했다.
“근데 무슨 일로 전화한 거야?”
“네 일 잘 풀린 거 축하해야지. 술 먹자, 새끼야.”
“좋지! 오늘은 양 옆에 여자 끼고 먹을까?”
아니 감옥에 들어갔다 나왔기라도 했나?
성욕이 넘치다 못해 말투에까지 묻어났다.
“됐어, 인마. 여자는 무슨 여자야. 우리 먹을 술도 부족한데, 왜 돈 내가며 이상한 여자한테 술을 먹여 주냐.”
“술도 먹고! 고기도 먹고! 여자도….”
뒤에 괴상한 동사가 붙을 것 같아서 말을 끊었다.
실제로 간혹 식인을 하는 오크인지라, 칼콘이 저런 말 내뱉으면 어감이 이상했다.
“됐어. 그런 자리는 나중에 네 돈 내고 실컷 즐기고, 지금은 그냥 시체 구덩이에서 술이나 한 잔 하자.”
“알겠어! 몇 시?”
대충 시간을 훑었다.
오후 5시였다.
“저녁 먹고 7시 쯤 나와라.”
“그때 봐~ 지훈.”
뚝.
이후 민우와 가벡도 시체 구덩이로 불러냈다.
다 같이 고생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 때 까지 나와.”
“예, 형님… 저 병원 좀 들렸다 가도 돼요?”
다쳤던 걸 깜빡했던 지훈이었다.
“아, 그렇네. 몸 좀 괜찮냐?”
“좀 쉬면 나아지던데, 이번엔 통증 좀 있네요. 그냥 치료사 찾아가 보려고요.”
병원과 달리 간단한 치료 마법으로도 돈 몇 백 빠졌지만, 벌이가 벌이인지라 아깝지 않은 민우였다.
“늦게 오거나, 아프면 안 와도 되니까 무리하지 마라.”
“네… 그건 문제가 아닌데 가벡이….”
“가벡이 또 왜?”
“에휴, 아닙니다 형님. 가서 말씀 드릴게요.”
민우는 왠지 모르게 힘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딱히 묻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자 그럼 약속시간 전에 생각해 뒀던 일 좀 해볼까.’
드레스 룸으로 향해 간만에 멋을 좀 내봤다.
적당히 달라붙어 다리가 길어 보이는 검은 면바지에, 무지 브이넥 티셔츠, 자주 애용하는 갈색 재킷을 걸쳤다.
‘괜찮네. 역시 옷걸이가 받쳐줘서 그런가?’
잘 생겼다기 보다는 한 마리 잘 빠진 고양잇과 맹수 냄새 풀풀 풍겨 보이는 외모였다.
하지만 남자들이 자주 하는 착각이 있었다.
나 정도면 중상은 하지 않나? 잘 생겼다.
수컷 DNA속에 박혀있는 본능이니 어쩌랴.
옷을 차려입은 이후에는 홀스터에 일반 9mm 탄환을 장전한 글록을, 허리에는 일반 단검을 하나 찼다.
도시라서 중무장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워낙 척 진 사람이 많아서 조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 어디 좀 다녀온다. 늦을지도 모르니까 일찍 자라.”
“엉~”
지현은 소파에 누워 이쪽도 보지 않고 대충 인사했다. 그 모습이 TV에 당장이라도 들어갈 것 같아 보였다.
한 마디 할까 하려다 그만두고 현관문을 열었다.
☆ ☆ ☆
이제는 애마가 된 벤츠를 몰고 뒷골목으로 향했다.
편안한 승차감을 느끼고 있자니 시연 생각이 났다.
슬쩍 씁쓸해져, 시야를 아래로 내렸다.
차, 옷, 핸드폰, 머리스타일, 방향제.
그 어느 하나 시연의 손이 닿지 않은 물건이 없었다.
- 아직도 화났어?
문자를 보내봤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너무 까칠하게 보내는 것 같아 한 발자국 양보해 볼까 싶었지만, 이내 그만뒀다.
어색했거니와, 방법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 ☆ ☆
가까운 공영 주차장에서 내려 뒷골목으로 향했다.
굳이 먼 곳에서 내린 건 차도둑을 염려한 까닭이었다.
누가 훔쳐간다고 해도 삼일 안에 잡아다 조질 수는 있었지만, 그 과정이 너무 귀찮았다.
‘이쪽에서 발 뗐는데, 뭘 또 엮여. 내가 조심하고 말지.’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는 한, 될 수 있으면 피해가려고 마음먹는 지훈이었다.
익숙한 걸음으로 뒷골목에 들어갔다.
초저녁부터 문을 연 홍등가를 지나, 양아치들 이 까트를 피는 골목길을 가로질러, 뒷골목 중앙에 있는 가게에 도착했다.
- 잡화. 아티펙트도 취급.
사람도 취급하는 주제에 잡화점이라니 우스웠다.
아니, 사람도 잡화 취급 한다고 봐도 옳다는 점에서 도리어 섬뜩해 해야 할까?
알 수 없었다.
뚜벅, 뚜벅.
코끝을 자극하는 화약 냄새와, 퀴퀴한 곰팡이 냄새는 언제 맡아도 익숙해지질 않았다.
아마 익숙해지는 그 순간이 사람이 아닌 뒷골목의 괴물이 되는 순간이리라.
계단을 내려가는 내내 낡은 라디오 소리가 났다.
- 안녕하십니까, 5시 뉴스의 김식권입니다. 요즘 들어 커다란 사건이 자주 터지는군요. … … … 정철수 교수가 오늘 공식으로 신금속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 … … 해당 금속은 강도는 C등급 정도지만, 이능을 조금이나마 강화 … … … 이상입니다.
정철수.
그가쉬 클랜 일로 도와준 것은 물론, 저번 호위 임무에서도 지훈이 직접 목숨을 살려준 인물이었다.
동시에 칼콘의 팔과 다리를 날려먹은 놈을 만나게 한 원인이기도 했고 말이다.
‘결국 저 빌어먹을 신금속 연구 끝냈나보군.’
교수는 신금속 연구가 끝난 뒤 원석을 가져오면 정제해 주겠다고 했지만, 딱히 달갑지는 않았다.
아직 칼콘 부상 건으로 앙금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 빌어먹을 흑인 새끼. 다음에 보면 절대 살아서 도망가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
직접 씹어 먹지 않으면 속이 시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를 벅벅 갈며 가게 문을 열자, 지훈 말고도 다른 손님이 먼저 와있었다.
딱 봐도 뒷골목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 둘이 월급쟁이로 보이는 사람을 꿇어앉혀 놨다.
상황이 좀 과격해 보였기에 그냥 지켜봤다.
“석중 할아버지. 그게 원래 주식이라는 게 오를 수도 있고, 내릴 수도….”
“거 시끄럽디. 뭐 변명이 그래 많니?”
“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쇼! 제가 반드시….”
“내 제일 싫은 놈이 있으이, 귀 열고 잘 들으라.”
석중은 카운터 너머로 손톱을 손질하며 말을 이었다.
“니 같이 쩐 갖고 혀 놀림 하는 놈들이 제일 싫디. 와. 나한테 와서 한 번만 기회 달라 하므, 다른 놈들이 그르듯 아이고 한 븐 드 하세요~ 할 것 같았니?”
“시, 실수입니다. 이건 온전히 제 실수….”
“맞디. 그러니까 갚으라.”
“뭐, 뭐 해서 말입니까?”
석중은 손톱을 들어 후~ 불었다.
앞에 있는 남자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였다.
“요즘 각토… 뭐? 그 손톱 길쭉한 곰 비슷한 두발 괴물 있디. 그거 잡으려면 생사람을 미끼로 써야 한다 하드마. 너 거 해라. 살아 돌아오면 없던 일로 해준디.”
칵톨레므.
이유는 모르겠지만 주변에 인간이 있을 시 최우선으로 공격하는 괴상한 짐승이었다. 손톱이 C등급 아티펙트 재료로 이용되는지라 인기가 많은 헌팅 대상이었다.
주로 인간을 미끼로 사용해 유인해서 잡았다.
원래대로라면 미끼가 제일 위헌한 만큼 큰 몫을 받는 게 정상이었지만… 대부분은 그냥 일회용으로 쓰고 버렸다.
미끼를 철창에 묶어 놓으면 칵톨레므가 알아서 뜯어먹다 생포 당하는데, 굳이 뭐 하러 미끼한테 몫을 준단 말인가.
긴 말 할 거 없이, 그냥 죽으라는 얘기였다.
“빨리 이 더러운 거 내 앞에서 치우라.”
뒷골목 남자 둘이, 월급쟁이를 질질 끌고 갔다.
지훈은 셋이 사라지자마자 석중에게 이죽거렸다.
“거 대부분 나이 들면 동정심도 좀 늘고 감수성도 풍부해 지지 않소? 거 내가 싸이코 새끼들 여럿 봤는데, 그 중 할배가 단연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