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끼에서 사슴으로 -->
정산 이후 각자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민우 일행은 유적 물품 및 정보를 판 뒤 집에 귀가했다.
지현은 데이트(?)를 조금 더 즐기고 싶은 눈치였다. 까닭에 ‘있잖아, 영화 볼래?’ 라는 얘기를 꺼냈지만, 민우는 그저 샷건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죄송합니다, 아직 제대로 쉬질 못해서 피곤하네요. 다음에 같이 봐요.”
민우도 지현이 싫지는 않았다.
소심한 그에게 먼저 다가와 준 것도 마음에 들었고, 틱틱거리지만 싫지 않은 내색을 하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피곤했다.
피로가 가득 쌓여 몸은 걸레요, 마음은 곤죽. 지금 당장 집으로 가서 침대와 한 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 웃기네. 나 지금 거절당한거야? 나도 그냥 시간 조금 남길래, 불쌍한 너랑 놀아줄까 싶었던 거거든!”
자존심을 회복하려 휙 내뱉은 말이었다.
그리고 실수였다.
해도 되는 말이 있고, 안 해도 되는 말이 있었다.
민우는 불쌍하다는 말에 얼굴을 굳혔다.
“피차 잘 됐네요. 그럼 안녕히.”
싸늘한 얼굴을 한 민우가 획 돌아서서 택시를 잡았다.
지현은 화들짝 놀라 자기변호를 했지만, 이미 민우는 절뚝절뚝 제 갈 길 갔을 뿐이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결국 지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빠나 동생이나, 감정 표현이 참 서툰 남매였다.
☆ ☆ ☆
얼마나 피곤했던지, 민우는 택시를 타자마자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귀에 파리 앵앵 거리는 소리마냥 뭔가 울렸다.
- … 님, 일어 … 세요. 손님.
벌떡!
순간 기계라도 다가왔나 싶어 벌떡 일어나며, 허리춤에 있던 손도끼에 손을 가져갔다.
“드디어 일어 나셨네요. 도착했습니다.”
세드에 있는 택시는 택시 강도를 방지하기 위해, 운전석과 손님석이 방탄유리로 막힌 형태였다.
까닭에 건들지 못하고 말만 걸어서 깨웠던 모양이다.
“드디어 일어나셨네요. 도착 했습니다.”
“아… 벌써요?”
“어휴,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세드에서는 보기 드문 친절이었다.
근래에 들어 살기 좋아졌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미터기를 보자 기분이 싹 가라앉았다.
50만 원.
자는 사이 서구 시내를 빙빙 돌았다는 뜻이었다.
‘그럼 그렇지, 썅.’
최근 들어 지훈, 칼콘, 가벡 같은 특이한 인물들과 같이 다녀서 그렇지, 여기는 세드였다.
중범죄도 난무하는 도시였다.
이런 가벼운 경범죄가 적을 리 없었다.
싸늘한 침묵이 계속되자 택시 기사가 안달이 났다.
여기서 사기 친 게 들통 났다가는 여태까지 쓴 기름 값이 더 나올 판이었다.
무조건 속여서 돈 받아내야 했다.
“가디언 차량 통제가 걸려서, 좀 돌아 왔습니다.”
되도 않는 거짓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깽판 부리고 싶었지만 그냥 넘겼다.
어차피 오늘 벌어온 돈만 반올림 4억이다. 굳이 푼돈가지고 감정소모 하고 싶지 않았다.
‘불쌍한 인간. 그냥 적선한다고 생각하자.’
카드를 건네자 택시 기사가 미터기를 확 긁었다.
찌지직 - 찌직, 찍 -
“여기 카드랑 영수증입니다.”
민우는 카드를 받아들며 말했다.
“아저씨, 앞으로 이런 짓 하지 마세요.”
한 마디 내뱉자 택시 기사가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잠시였다. 이미 돈 받았다고 생각한 걸까?
굽실거렸던 택시 기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무슨 소립니까! 차량 통제 걸렸다니까!”
서구는 바둑판형 계획도시였다.
직선으로 10블록 막지 않는 이상 충분히 돌아갈 수 있다.
전쟁이 나지 않는 이상 그렇게 막을 일은 없었다.
‘와, 진짜 이 사람 철면피가….’
그냥 사과하면 조용히 넘어가려 했거늘, 방귀 뀐 놈이 성을 내니 이쪽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이 먹고 부끄럽지도 않아요? 푼돈 가지고.”
나이라는 말에 택시기사가 버럭 화를 냈다.
“뭐, 나이? 너는 부끄러운 거 알아서 나이 많은 사람한테 그렇게 바락바락 대들어!? 어디 애매비도 없어 뵈는 새끼가 어른한테 눈 똑바로 뜨고 쳐다 봐!”
목소리 큰 놈이 이기고, 싸우기 싫은 놈이 져주는 것도 정도껏이었다. 불안전한 치안 속, 가족을 잃을 사람이 태반인 시대에 부모 욕?
살인이 나도 할 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민우는 머리끝까지 화가 올랐어도 일단 참았다.
성격 자체도 버럭 하는 성격이 아니거니와, 일단 분쟁이나 논란이 생기면 피하고 보는 습관 때문이었다.
‘참자, 저런 사람 한 둘이냐. 어차피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 언젠가는 죽일 사람이야….’
가만히 있자, 택시 기사는 더욱 신이 나서 떠들었다.
“거 보니까, 어디 폐품 하나 주워서 돈 잘 번 졸부새끼 같은데. 너 그렇게 살지 마라! 딱 봐도 애매비 없는 거 티 팍팍 내지 말라고, 새끼야!”
다시 한 번 쏟아진 부모 욕에 머리가 핑 돌았다.
만약 예전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손해를 봐도, 더러운 일을 당해도 전부 참아 넘겼을 것이다. 집에서 혼자 씩씩거리며 ‘좋은 게 좋은 거야.’ 라고 분이나 삭히고 있었겠지.
근데 이제는 그러기 싫었다.
답답한 일 뻥뻥 뚫어주는 지훈과 같이 다녀서?
일을 쳐도 뒤를 봐줄 든든한 동료들이 있어서?
헌팅을 하며 격한 일을 자주 겪어서?
전부 아니었다.
이제 민우는 토끼나 쥐가 아니었다.
한 사람 당당한 헌터였고, 정보꾼이자, 길잡이었다.
호랑이까진 아니어도 적어도 사슴 정도는 됐다는 말이다.
그리고 사슴은 초식 동물 중 매우 난폭한 편에 속했다.
우두머리가 아닌 서열 중간에 있는 사슴은 특히 더더욱.
“야이 개 같은 새끼야!”
민우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택시 안 공기가 급변했다.
공수 변경 신호였다.
“뭐, 뭐? 개새끼!?”
택시 기사가 더욱 언성을 높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 우리 부모님 돌아가셨다. 그래서 뭐. 너는 살아남아서 좋겠다? 근데 너 어떻게 살아남았냐? 도망쳤겠지, 그래서 벌레마냥 살아남았겠지, 이 씨발놈아!”
말 그대로 사실이었다.
몬스터 아웃브레이크, 국지전 난무하는 개척 시대, 종족 전쟁. 인류는 세 시기를 넘어오며 엄청난 인구를 잃었다.
그 중에 살아남은 사람?
이겨내고 살아남았거나, 도망쳤거나 둘 중 하나였다.
전자였다면 여기서 비루한 사기나 치고 있지 않는다.
정곡을 찔린 택시 기사가 울컥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애새끼가, 미쳐가지고 못 하는 말이 없네. 이상한 데서 시비나 걸고 말이야. 경찰 불러. 경찰!”
경찰.
각성자가 민간인과 싸울 경우 당연히 각성자에게 불이익이 붙었다. 심하면 가디언이 들러붙어서 가중 처벌까지 받는다.
근데 민우는 일반인이다.
각성 안한 게 좋은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불러, 씨발. 근데 그 전에 네가 내 손에 죽을 걸?”
고민할 것 없이 민우가 손도끼로 방탄유리를 내려쳤다.
총알도 튕겨내는 방탄유리가, B등급 아티펙트에 마치 설탕 공예물 마냥 부서졌다.
와장창!
본디 목줄에 묶인 개가 더 크게 짖는다고 했던가?
방탄유리가 사라지자 택시 기사가 입을 다물었다.
“내가 부모님 안 계시거든. 그래서 부모 있는 놈들이 제일 부럽고 질투 나.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딱 하나 있어.”
택시 기사가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지, 진정 하세요 손님. 저는 그냥….”
“그게 뭔지 알려줄게. 바로 네 새끼들 애비 없는 놈들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거야.”
죽인다는 뜻이었다.
민우는 가방에서 MP5를 꺼내 들었다.
탄창에 탄약은 없었지만, 총 자체로도 비주얼 쇼크였다.
“방금 말실수로 하나로 네 자식새끼들도 부모 없는 놈들이 된 거야. 잘 알아 둬.”
“제, 제발… 목숨만은…!”
택시 기사가 빌었지만, 민우는 방아쇠를 당겼다.
틱!
공이 때리는 소리가 택시에 울려 퍼졌다.
“허억… 허억… 허억….”
택시 기사가 숨을 몰아쉬었다.
“아저씨. 무서워?”
민우가 부르자 바로 반응하는 택시 기사였다.
“어, 어… 뭐?”
총이 없어지자마자 바로 반말로 바뀐다.
그 모습이 고까워서 한 대 때렸다.
뻑!
“악! 왜, 왜 그러세요!”
“말조심하고 다니세요. 그러다 죽어요 진짜.”
“아, 알겠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이제 한국은 포탈이 열리기 전과 같은 국가가 아니었다. 과거 미국이나 필리핀처럼 입을 굉장히 조심해야했다.
이유야 간단했다.
옛날에야 아무리 험한 말 하고 다녀도 주먹다짐이 끝이었지만, 지금은 총 맞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치안도 불안정해서 누가 난사 때리고 도망치면 잡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툭.
민우는 가방에서 뭔가를 던졌다. 돈이었다.
“이, 이건 뭡니까?”
“유리하고 깽값. 가서 애들 닭이나 하나 먹여요. 더럽게 사기 쳤는데, 뭐 벌어가는 거라도 있어야지.”
굉장히 모욕적인 처사였지만, 택시 기사는 군말 없이 돈을 챙겼다. 민우는 그걸 보고는 택시에서 내렸다.
“똑바로 사세요. 부끄러운 줄 알라고.”
부르르르릉 -
내리자마자 택시가 부리나케 도망치듯 떠났다.
민우는 그 모습을 보고 상황이 끝났다고 생각되자, 다리가 미친 듯이 떨려왔다.
‘어… 이, 이거 왜이래.’
이런 감정 처음이었다.
중배와 일을 하며 가끔 사람 죽이는 걸 보긴 했지만, 직접 누군가를 죽인다고 위협한 적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토끼가 사슴이 됐다고 한들 초식 동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고기를 먹으려 하니 속이 불편할 수밖에.
그럼에도 왠지 모르게 속이 시원한 건 왤까?
‘집에 가자. 피곤하다. 쉬고 싶어….’
☆ ☆ ☆
민우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벡에게 수표와 현금으로 이루어진 정산금을 건넸다.
“이게 뭐지?”
“돈. 네 꺼야. 근데 너 또 이상한 짓 안 했지?”
민우가 매의 눈으로 방 안을 훑었다.
저번에 방 한가운데다 똥 싸지르고는, 손으로 밑을 닦아 벽에다 칠한 가벡이었다. 그걸 보고 기겁을 해서 절대 그러면 안 된다며, 배변 훈련(?)을 시켰었다.
“하! 날 어떻게 보는 거지?”
목 아래까지 ‘개새끼’ 하는 말이 올라왔다 내려갔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저기 뜨거워지는 기계랑, 돼지 코 같은 구멍은 절대 건들지 마. 알겠어?”
각각 전기 버너와 콘센트였다.
전자는 집 홀라당 태워먹을 가능성이 있었고, 후자는 젓가락 2개 꽂았다가는 본인을 홀라당 태워먹을 수도 있었다.
“뭐 이렇게 위험한 게 많지? 내가 봤을 때 여기가 가시산맥 보다 위험한 것 같군.”
가벡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낄 법도 했다.
가시 산맥에야 마음에 안 드는 놈 있으면 쥐어 패면 그만이고, 산짐승 만나도 쳐죽이면 그만이었다.
근데 인간의 도시에선 물건 하나, 호기심 하나가 치명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아무 생각 없이 콘센트에 젓가락을 넣는다거나,
길 건널 생각으로 왕복 6차선 도로를 건넌 다거나,
버너를 만지다가 화상 혹은 화재를 내거나,
가볍게 두드려 줄 생각이었는데, 이빨이 뽑힌다거나 등.
산에서 했던 대로 한 것뿐인데도, 모조리 위험했다.
‘아니 저건 진짜 말하는 산짐승도 아니고….’
민우는 그 모습이 그저 답답하게만 보였다.
“그래, 잘했어. 지금 피곤하니까, 나중에 어떻게 쓰는 물건들인지 하나하나 알려줄게. 일단 나 잔다.”
민우는 안대와 귀마개를 끼고 침대에 누웠다.
‘아, 요즘 왜 이렇게 날카롭지. 아파서 그런가?’
잘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잠들기 전, 각성 전에 몇몇 사람들이 특이 행동을 한다는 걸 떠올렸다.
아파서 슬슬 앓는다거나,
감정 제어가 안 된다거나,
키, 몸무게가 급격히 변하거나,
혹은 ‘난폭’해지던가 등이 있었다.
‘에이 설마… 내가 무슨 각성이야. 잠이나 자자.’
민우는 침대에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