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조, 역행, 재생, 선택. -->
피가 잔뜩 묻어있고, 옷마저 넝마가 되어있기 때문일까?
칼콘은 적잖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 이게 무슨….”
칼콘은 왼 발에 후크 선장 같은 의족을 끼고 있었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나무가 아닌 강화 합금이라는 것 정도?
아마 유적에 가있는 10일 동안 재활을 받은 모양이었다.
저걸 달고도 생존에는 문제가 없겠지마는, 전투 생활처럼 하는 오크로서는 엄청난 치욕일 게 분명했다.
게다가 손은 저런 물건으로는 대체될 수 없었고 말이다.
“지훈, 괜찮아!? 이게 무슨 일이야!”
턱, 톡, 턱, 톡!
다리와 의족이 땅에 닿을 때 마다 다른 소리를 냈다.
자기 때문에 저렇게 됐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피잖아! 어디 다쳤어? 의사 부를게!”
“아니, 필요 없어. 이미 전부 재생됐다.”
칼콘은 얼굴을 찌푸리곤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도대체 왜 이 차림으로 여기까지 온 거야?”
“아쵸프무자와 거래했다.”
“마법쟁이잖아. 그 녀석과 무슨 얘기를 한 건데?”
“직접 얘기하는 게 빠를 것 같군. 아쵸프무자!”
불렀지만 그 어디에서도 아쵸프무자가 나타나질 않았다.
1초, 2초, 3초, … 7초.
침묵이 길어지자 칼콘이 엄니를 긁적거렸다.
“지훈, 어디 아프지? 그래, 그런 것 같아. 옷차림도 그렇고… 잠시만, 간호사 호출할게.”
“아니, 그게….”
멍 하니 있는 사이 칼콘이 호출벨을 눌렀다.
병실 문이 드르륵 열리며 간호사가 들어왔다.
외국인인지 불꽃처럼 붉은 머리카락에, 일그러진 왼쪽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아쵸프무자였다.
‘저건 또 뭔…’
얼굴 찌푸리고 있자니, 아쵸프무자가 투덜거렸다.
“이런 개방된 장소는 조금 불편해. 보는 눈이 많잖아?”
아쵸프무자는 칼콘을 배려해서인지, 한글로 얘기했다.
도대체 간호복은 어디서 얻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딱히 물어 볼 필요 없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언제 어디서든 부르면 나타나는 녀석인데, 복장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반면 칼콘은 경계하듯 자세를 낮췄다.
현재로써는 아군일지라 하더라도, 종족 특성상 위험한 존재를 보면 본능적으로 경계하게 되는 것 같았다.
“저 여자가 왜 여기 있어?”
“얘기했잖아, 거래 했다고.”
칼콘의 눈이 지훈의 몰골을 살피곤 쓰린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까지 하면서….”
뭉클 거리는 감동의 순간이나, 고마움의 눈물 따위는 익숙하지 않았다.
단지 이 쪽 방식대로 누구보다 거칠고 과격하지만, 속은 따뜻한 말을 건넸을 뿐이었다.
“씨발, 친구 돕는데 이유가 어디 있어. 그냥 하는 거지.”
그 말은 들은 칼콘은 큽 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였다.
“질질 짜지 마, 새끼야.”
“누가 운다고 그래? 전사는 눈물을 흘리지 않아.”
“등치는 산만한 오크 새끼가 울면 석중 할배가 당장 달려와서 부랄 떼어갈 거다.”
“하…! 내가 그 늙은이 부랄을 떼는 게 빠를걸?”
칼콘 역시 지훈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애써 감정을 추스르고 웃는 얼굴을 지었다.
아쵸프무자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 말했다.
“쟤 반지 꼈었나 봐?”
분위기가 일순간 굳었다.
아쵸프무자의 말도 안 돼는 무력을 눈앞에서 직접 봤기 때문일까?
왠지 모르게 조금 위축됐다.
‘반지를 공유한 게 문제가 될까?’
최악의 상황을 대비했지만 딱히 별 일은 생기지 않았다.
“부작용 심했을 텐데, 둘 다 운이 좋네. 축하해.”
단지 픽 웃으면서 축하해 줬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뒤에 조심스러운 말을 남겼다.
“하지만 남용하지는 마. 어이없는 배신으로 네가 죽어버리면 나도 곤란해.”
말 속에 있던 가시가 당장이라도 눈을 파고 들어갈 듯 따갑게 느껴졌다.
“주의하도록 하지.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 칼콘을 원래대로 돌려줄 생각이지?”
가볍게 긍정하며 화제를 돌려버렸다.
반지 얘기를 더 해봐야 좋을 거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잠깐만, 내 몸을 원래대로 돌려준다고?”
이번엔 칼콘이 훌쩍 끼어들었다. 녀석은 그런 일 때문에 위험한 일을 했냐고 따졌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진짜 목숨 빚은 이쪽이 졌다.
이 정도라도 해서 갚아야 마당했다.
“어디보자, 선택지는 많아. 너희가 직접 선택해.”
아쵸프무자가 제안한 선택지는 다음과 같았다.
1 - 마법 의수.
“아는 골초 안경잡이 계집애가 준 물건이 하나 있어.”
의수라는 말에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리 뛰어난 의수라고 해봐야, 제 몸이 아닌 이상 가짜였다.
“내 목숨 값은 비싸다, 아쵸프무자. 그딴 가짜로 내 목숨 값을 폄하하지 마라.”
“글쎄. 나도 그렇게 생각 하지만 그 여자가 그러더라. 완벽한 가짜가 아니면 취급하지 않는다고. DNA 검사로도 판별되지 않는 가짜라면, 과연 그걸 가짜라고 할 수 있을까?”
대체할 수 없는 불안한 진짜.
대체할 수 있는 완벽한 가짜.
만약 둘의 성능이 같다면? 혹은 가짜가 진짜의 기능을 모두 계승함은 물론, 더 나아가 성능까지 훨씬 좋다면?
남은 건 오리지날리티에 대한 인식 차이밖에 없었다.
이럴 경우 지훈이라면 당연히 효율성을 중시했다.
‘물론 선택은 칼콘의 몫이다.’
이쪽이 이렇다 저렇다 해봐야 조언 그 이상을 넘을 수는 없었다.
칼콘의 몸이었다.
“한 번 보고 싶어.”
“원하는 대로. Kutse(소환).”
아쵸프무자의 손 위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인형 토막 같아 보이는 작은 팔 하나를 토해냈다.
“그걸 내 몸에 다는 거야?”
“맞아. 감각도 느낄 수 있고, 한 번 달면 나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뺄 수도 없어. 게다가 등급으로 따지자면 B등급 정도라 쓸 만할 걸?”
B등급이라는 말이 뭔 소린가 싶었다.
궁금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아쵸프무자가 단검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는…
깡!
단검이 부러져서 하늘을 날았다.
등급은 알 수 없었다. 단지 아쵸푸므자가 꺼냈다는 이유로 최소 C등급 이상이겠거니 싶었다.
“근력은 네 능력을 따라가. 강도나 탄도는 B등급 고정.”
일종의 마개조였다.
저 정도 의수라면 굳이 건틀렛을 낄 필요도 없었고, 왼쪽 한정 맨손, 맨발로도 사람을 찢어발길 수 있었다.
“알겠어. 다른 건 또 뭐가 있어?”
칼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음 선택지를 물었다.
2 - 신체 시간 역행.
“말 그대로 네 몸의 시간을 과거로 돌리는 거야. 팔과 다리가 날아가기 전으로 돌리면, 그 팔과 다리도 다시 돋아나.”
유적 내에서 아쵸프무자가 전기를 멈췄던 게 생각났다. 단순히 멈추는 것 외에도, 과거로도 돌릴 수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단점이 하나 있어. 아예 시간을 돌리는 거라서 기억은 물론 경험과 능력까지 모조리 사라져.”
이물질을 대지 않고 재생할 수 있다는 면에서는 좋았다.
하지만 그랬다간 병원에서 나눴던 서로의 깊은 감정 교류와 새롭게 쌓인 신뢰는 물론, 반지를 통해 각성했던 사실도 사라지게 된다.
“나는 이쪽이 제일 추천해. 시간을 돌린 만큼 수명을 더 얻을 수 있거든. 물론 내가 제일 잘하는 분야기도 하고.”
칼콘은 묻기라도 하는 것처럼 지훈을 쳐다봤다.
“어떡할까?”
“네가 결정해. 난 지켜만 볼 거야.”
항상 지훈의 의견에만 따라만 오던 칼콘이었다. 아마 여기서 가벼운 귀띔만 주더라도 그대로 선택하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본인 육체다. 이번에는 칼콘의 의지를 존중하고 싶었다.
“이건 싫어. 다쳐본 것도 경험이고, 지훈과 나눴던 대화도 잊고 싶지 않아. 나한테는 전부 소중해.”
“그래, 알겠어.”
아쵸프무자는 가볍게 끄덕이고는 다음 안을 내놓았다.
3 - 신체 재생
말 그대로 몸을 다시 돋아나게 하는 선택지였다.
현재 인간의 기술로도 시행할 수 있었지만, 가격이 비싸서 포기했던 바로 그 마법이었다.
“나 정도라면 네 몸을 온전히 복원할 수 있어. 하지만 내 재생은 마법과 조금 달라서 단점이 하나 있어. 그 과정이 조금 많이 아파.”
조금 ‘많이’ 아프다.
지훈은 ‘조금’ 아픈 걸로 사진으로도 못 봤던 고조부님 존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얼핏이나마 보고 왔다.
그거보다 심하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
“그건 완벽한 내 팔이야?”
“맞아. 도마뱀 꼬리처럼 다시 자라난다고 생각하면 돼. 뭐 예전에 생겼던 흉터나 이런 건 당연히 없어지겠지만.”
칼콘은 고민스럽다는 듯 얼굴을 굳혔다.
경험을 잃기 싫다고 했으니, 분명 시간 역행을 선택할 것 같지는 않았다. 남은 선택지는 둘.
의수와 재생이었다.
만약 전자를 선택한다면, 팔과 다리 한정 B등급 영구 귀속 아티펙트를 획득하는 꼴이었다.
B등급 아티펙트.
눈 튀어나올 정도로 비싼 가격을 제외하고도, 그 자체로 굉장히 희귀하면서도 강력한 물건이었다. 그딴 게 육체에 직접 붙어있다면 분명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신체결손에 대한 불안감과 이물질에 대한 불쾌함이 평생 쫓아다닐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인간이든 오크든 상관없었다.
모든 생명체는 100%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이 효율을 생각해서 개사료나 칼로리 블록만 먹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후자는 본인의 신체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만족감은 얻을 수 있었지만, 육체 강화는 포기해야했다.
말로만 들으면 굉장한 악조건으로 보였지만, 생명체인 이상 제 몸에 애착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성능이 좋다고 한들, 가짜는 가짜였다.
실제로 독일에서 마법공학을 통해 인간과 완전히 똑같은 ‘로봇’을 연구한 사례가 있었다.
거의 완성 단계까지 갔지만, 독일은 이 연구를 파기했다.
- 만약 우리가 인간과 똑같은 로봇을 만든다면, 이것은 로봇인가 사람인가?
최근 급격한 과학, 기술의 진보로 인해 교육과정에 새로 추가된 필수 교과가 있었다.
바로 ‘도덕’과 ‘철학’이었다.
불안전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은 얼마든지 문명인의 탈을 쓴 야만인이 될 수 있었다.
그런 세상에서 누군가는 본인들이 문명인이며, ‘인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고민할 시간을 줄 수 있어?”
“오래는 안 돼. 시간이 부족해.”
칼콘은 결국 1분 정도 고민하고 말했다.
“의수로 할게.”
아쵸프무자는 고개를 끄덕이곤 이식 작업을 시작했다.
“맞다. 까먹은 게 있었어. 이식 작업도 무통은 아니야. 신경다발을 이어야 해서, 아마 살짝 따끔할 거야.”
지훈이 슬쩍 얼굴을 굳혔다.
‘살짝’, ‘따끔’ 두 단어 전부 한 번씩 겪어봤지만, 전부 정신이 아득해 질 정도로 아팠다. 하지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칼콘은 그러려니 하는 표정으로 왼 팔을 내밀었다.
“잠깐, 제대로 설명을 해 주는 게 좋….”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쵸프무자가 영창했다.
“Ühendus(연결).”
비명이 울려 퍼졌다.
“끄아아아아악!”
그간 함께하며 칼콘이 저렇게 비명을 지리는 걸 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런 미친…!’
그 소리가 우렁차, 누군가 올 것 같아 문을 열고 주변을 훑었지만 그 누구도 다가오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복도에 그 누구도 보이질 않았다.
수상한 광경이었지만 이제는 이해하는 걸 포기해 버렸다.
…
“끄, 끝났어?
칼콘이 애걸하듯 물었다.
“응. 손은.”
“아, 다행이다….”
마치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군인 같은 표정도 잠시.
아쵸프무자의 입이 절망을 담았다.
“아직 한 발 남았다.”
“어? 으아아아!”
“Ühendus(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