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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드드드드드….
멀리서 기계들이 다가오는 소리에 땅이 울렸다.
하지만 귀는 마치 먹어버린 양 아무것도 들리질 않았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마치 심장에 머리에 달리기라도 한 것 마냥, 심장 박동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 어… 게… 해.
- 신체를 재생합니다. 신진대사가 가속됩니다.
무슨 소리가 들렸던 것 같았지만, 들을 수 없었다. 반지의 알림만 들렸을 뿐이었다.
‘숫자… 숫자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딱 봐도 스물은 넘어 보였다.
남은 유탄은 아무리 많아봐야 스무 발.
하나 당 하나를 죽인다고 해도 부족했다.
이이이잉 -
- 정신 … 려.
무슨 소리가 들렸지만,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소리가 꼭 이명이 섞인 것처럼 희미하게 들렸다.
‘유탄으로 최대한 많이 없애고, 나머지는 육탄전이다.’
그렇게 하면 됐다.
이능을 때려 박고 몸이 걸레조각이 될 때 까지 싸운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방탄 코트가 잘려나간 까닭에 방탄 능력을 상실했다.
‘방어는?’
무조건 가벡 뒤에 딱 달라붙어서 이동해야 했다.
이이이잉 -
- 빌 … 먹 … 하필 이 … 때 …
‘피라미 기계들이야 그렇게 한다지만, 최상위 관리자는?’
핑 하고 돌던 머리가 덜컥 멈췄다.
유탄, 아티펙트 어느 하나 먹히질 않는 적이었다.
유일한 제압 수단은 EMP인데, 그나마도 지금 2개 다 쓴 상태 아니던가.
이이이잉 -
- 명령… … … 면, 나 혼자 … … … 간 … !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상대였다.
인간이 아직 문명을 이룩하지도 못했을 때, 이 유적을 만든 종족이 FS다. 아마 장기 보관을 위해 온갖 기술을 때려 박아 만들었겠지.
‘이길 수 없다. 상대해봐야 져.’
싸움만이 능사가 아니었다.
어차피 이쪽은 이미 원하는 바를 모두 얻었다.
도망치기만 하면 된다.
‘회복… 회복 시간 내에 모조리 끝내야 한다.’
시계를 확인했다.
남은 시간, 4분 30초.
방향을 정하는 사이 30초나 흘러 버렸다.
일단 시계를 조작해 관리자 회복 알람을 맞췄다.
이이이잉 -
다시 한 번 커다란 이명이 들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정신 차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어서 알려달라고!”
가벡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녀석은 방패를 앞세운 채 총알을 막고 있는 중이었다.
티티티팅!
멍하던 지훈의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오자, 가벡이 다시 한 번 의견을 피력했다.
“우회! 따돌려! 돌아와! 어때?”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최상위 관리자가 마비 된 사이에 숨으면 어디에 숨었는지 모를 수도 있었다.
분명 탐색을 위해 기계들을 분산시킬 테고, 그렇다면 각개격파하며 승강기로 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게 하나 있었다.
최상위 관리자의 이동 속도는 아득할 정도로 빨랐다.
1시간 30분이나 먼저 이동했음에도, 30분도 되지 않아 따라잡혔다. 그런 녀석을 따돌린다고?
같잖은 소리였다.
“아니. 돌파.”
진심을 담아 말하며, 어깨를 쫙 폈다.
신체가 재생되며, 안에 박혀있던 탄환들이 뽑혀져 나왔다.
이물질이 빠져나가며 느껴진 고통이, 다시 한 번 현실감을 되살려줬다.
“어떻게! 숫자!”
“아, 아무것도 안 보여요! 얼마나 많길래 그래요!”
“몰라, 그냥 많아!”
가벡이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다.
약간의 설명이 필요해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valgus(빛).”
마법을 마치자 지훈 손이 반짝반짝 빛났다. 이로써 어둠이 어느 정도 걷혀 앞을 볼 수 있게 됐다.
‘거리 약 3km. 금방 부딪히겠군.’
“가벡, 나 믿나?”
“무슨 소리!”
“닥치고 대답해라. 설명할 시간 없다.”
“인간 치고는 꽤나 강한 투사라고 생각한다.”
“그래. 그럼 C4 나한테 넘기고 돌진해.”
가벡은 살짝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으나, 녀석도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순순히 건네줬다.
“민우. 얼마나 달릴 수 있겠냐.”
“조금 느리게 뛰면 아직 견딜만해요.”
“방탄모 없으니까 대가리 숙이고 쫓아와라.”
“아, 알겠습니다!”
“앞에 무슨 소리가 나든 그냥 달려. 쳐다보지도 마.”
민우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약했지만 언제나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밥값을 하는 놈이었다.
방금도 민우가 EMP를 맞추지 못했다면, 지훈은 지금 쯤 시체가 됐을 터였다.
- 고맙다.
작게 속삭이자, 민우가 동공을 부풀리며 쳐다봤다.
“잘 들어. 오늘 우리 셋 중 누구도 죽지 않는다.”
민우와 가벡을 번갈아 쳐다봤다. 둘의 표정에서 굳은 다짐이 떠올랐다.
“빨리 가자. 끝내고 밥 먹어야지, 새끼들아. 언제까지 썩은 기계냄새 맡으면서 있을래?”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박수를 쳤다. 합의하지 않았음에도 일행 모두 그 소리가 출발 신호라는 걸 알았다.
팡!
박수 소리가 나자마자, 셋의 몸이 스프링처럼 튀어나갔다.
드드드드드….
투다다다다….
생명체와 기계.
둘 중 누구 하나 부서지기 전 까지는 멈추지 않을 치킨 레이스가 시작됐다!
“무슨 생각이지! 내가 아무리 세다지만, 저 많은 기계들을 전부 날려버릴 순 없다!”
“지랄하네. 네가 세긴 뭐가 세.”
“빌어먹을 놈. 나가서 방패로 후려쳐 주마.”
“할 수 있으면 해 봐, 새끼야.”
거친 말이었지만, 저 말의 전제에는 ‘살아서 나간다’ 가 깔려 있었다. 지훈은 픽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손을 휘둘러 적과의 거리를 파악했다.
남은 거리는 약 1km.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할 차례였다.
“나 믿는다고 했지?”
“그래. 믿는다!”
“앞이 보이지 않던, 적에 막히던 일단 무조건 밀면서 전진해. 나머지는 내가 전부 알아서 처리하지.”
가벡이 ‘어떻게!’라고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 쯤 이면 충분하겠군. 가속 이능 발동.’
온 몸의 피가 엄청난 속도로 회전했다. 전력 질주 하던 발이 훨씬 더 빨라졌고, 그 상태 그대로 몸을 비틀었다.
‘집중 이능 발동.’
시간이 느려지기 시작하는 가운데, 이 세상에서 오로지 지훈 혼자만 정상 속도로 움직였다.
웬만하면 두 이능을 동시에 쓰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정밀한 육체 조작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 잘난 폐부 깊숙이 폭탄을 박아 넣어 주마.’
제일 먼저 허리를 쭉 비틀었다.
이후 C4를 들고 있는 오른손을 뒤로 빼고,
잘 던질 수 있게 팔꿈치를 반 정도 잡았다.
으드드!
엄청난 속도와 힘을 순식간에 뽑아내기 위해,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손상이 갈 것 같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전부 재생시키면 그만이다. 느리게나마 심장과 뇌까지 재생하는 능력이다. 그까짓 근육,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재생시켜 주마!’
밑 준비는 끝났다. 이제 던지기만 하면 된다.
“후!”
숨을 내쉼과 동시에, 온 몸에 근육을 조절했다.
처음엔 허리를 비틀었던 허리를 되돌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다음 어깨를 앞으로 당겨 던질 토대를 만들었으며,
접었던 팔꿈치를 쭉 피며 그 힘을 모조리 전달해…
한 점. 손목과 손끝에 모았다.
“야이, 개 - 새 - 끼 들아!”
손목을 아래로 쭉 꺾으며, 손가락으로 C4를 쭈욱 밀었다!
C4가 마치 총알처럼 하늘을 날았다.
마치 유탄을 쏜 것 마냥 엄청난 속도!
이후 기계들의 중앙까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왼손에 들고 있던 기폭기를 꾹 눌렀다.
콰앙!
유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폭발이었다.
어두웠던 복도가 폭발로 인한 화염으로 빛났다.
그것도 잠시. 후폭풍과 함께 짙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이걸로 만족할 생각 따위 없었다.
바로 매고 있던 M33를 꺼내 연사했다.
투웅 - 투웅 - 투웅 - 투웅 - 틱. 틱.
콰콰콰콰쾅!
연기 사이로 노란 불꽃이 번쩍 번쩍 튀었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극한 상황!
유폭 혹은 기습에 대한 두려움으로 멈칫거릴 수도 있었지만, 그 누구 하나도 달음박질을 멈추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타타타타탕!
티티티티팅!
거리가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기계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봐야 전부 가벡의 방패에 박혀버렸다.
“씨-이-발!”
가벡이 욕설과 함께 연기 안으로 들어갔다.
쿵! 쾅! 쿵! 쾅!
마치 성난 황소 같았다. 녀석은 쓰러진 기계들은 모조리 짓밟았고, 막는 서는 녀석들은 전부 으깨버렸다.
그 뒤로 지훈이 따라붙었다.
‘모조리 작살을 내주마!’
M33는 이미 거추장스러워서 던져버렸다. 대신 창고에서 가져온 아티펙트를 들었다. 손잡이도 없는 곡도였지만, 날 하나는 끝장나게 잘 드는 물건이었다.
훅!
제일 먼저 좌측에 처 박혀 있는 기계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검을 휘두르는 순간에도 절대 멈추지 않았다.
자세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부족한 힘은 속도로 커버하면 됐다.
다음으로는 바닥에 꿈틀거리는 기계가 보였다.
고민할 것도 없이 그대로 발로 차버렸다.
거미형 기계가 거칠게 벽에 부딪치더니, 바닥에 축 늘어졌다.
가속과 집중.
두 이능을 같이 쓴 지훈은 말 그대로 악귀 같았다.
가는 길마다 보이는 모든 걸 베었고, 바닥에 있는 건 철저하게 짓밟았다.
“크와아!”
삐비빅, 삐비빅, 삐비빅!
약 10기 정도 베었을까?
시계에서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최상위 관리자가 회로 복구를 완료했다.
- Rotid, nagu need kutid, ma saan lahti minu enda kätes. (야비한 원숭이 놈들, 내 손으로 직접 없애주마.)
“가벡, 뒤로 와. 레이저 막아!”
소리를 지르자, 앞에 가던 가벡이 바로 멈춰 섰다.
그런 가벡을 지나며, 녀석을 노리던 기계를 베어 넘겼다.
폭발에 휩쓸린 기계가 10기.
지훈이 베어버린 기계가 12기
가벡 가벡이 부숴버린 기계가 8기.
이제 남은 기계는 약 셋.
셋만 잡으면 이쪽의 승리였다.
“달려라, 민우. 내 등에 딱 달라붙어!”
가벡은 민우를 잡아다 휙 끌고는, 방패를 바닥에 내려놓고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주웅 -
붉은 레이저가 엑스자 모양으로 복도를 슥 훑었고…
“지훈, 엎드려!”
지훈 역시 가벡의 말을 듣자마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바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즞!
눈에 선명히 보일 정도로 짙은 빛의 파동!
레이저는 마치 채찍처럼 가벡의 방패를 후려 친 뒤…
파스스스!
숙이고 있는 지훈의 머리카락 몇 올을 스치며 지나갔다.
감탄할 틈도 없었다.
레이저가 지나간 걸 확인하자마자 바로 남은 기계 두 마리를 처리했다. 그리고 마침내…
“올텅!”
“예.”
“문 열어, 씨발!”
- Administraatori õigused, lift kontrolli. (최상위 관리자 권한, 승강기 제어.)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던 걸까?
지훈의 명령과 최상위 관리자의 명령이 교차됐다.
올텅은 잠시 버벅거렸으나 이내…
“수행 거절. 이해할 수 없는 명령. 일족의 소망에 따라 선택 받은 자님의 명령을 우선시 합니다.”
지훈의 손을 들어줬다.
타락한 왕은 더 이상 왕이 아니라 폭군인 것처럼, 타락한 순례자 역시 우선순위에서 밀려 버렸다.
위이이잉 -
승강기가 고속으로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자, 최상위 관리자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 mitte kunagi! Või oodanud juba aasta jooksul. palju kauem maa peal!
(절대, 절대 안 돼! 이미 3만년이나 기다렸다. 도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가!)
- 전력 제어, 집중화. 폭주 준비.
최상위 관리자가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유적의 전력을 끌어 모으고 있는지, 주변에 스파크가 튀었어.
“씨발, 승강기 내려오는데 얼마나 걸려!”
“5초 남았습니다.”
가벡은 이번 일격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민우와 함께 이쪽으로 달려오는 중이었다.
- 충전 완료. 발사.
“가벡, 방패 하늘로 던져!”
이윽고 최상위 관리자가 전류를 뿜어냈다.
인간 따위는 한 순간에 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강력한 전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가벡이 지훈의 말을 듣고 바로 방패를 하늘로 집어 던졌다.
파-칭!
전기가 방패에 틀어박혔다.
신금속을 무식하게 박아 두께와 넓이를 키운 방패였다.
이는 곧 뭔가 대신 맞아주는 데 특화되어 있는 물건이라는 말이었다.
게다가 전기 역시 질량이 없었기에 관통력이나 저지력 따위 있을 수도 없었다.
결국 방패가 모든 전기를 흡수하고 그대로 녹아버렸다.
- Teine juhtum ettevalmistamisel. Viivitus 3 sekundit. (제 2격, 준비. 딜레이 3초.)
3초.
가벡이 승강기 앞에 도착했다.
2초.
이제 남은 방어구는 없었다.
맞느면 죽는다.
1초.
승강기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아쵸푸므자가 타고 있었다.
일행의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