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래잡기 -->
우으으으응 -
최상위 관리자는 빠르게 앞으로 날아가며 코드를 입력했다.
[프로토콜 변경. 침입자 발견. 대기상태 해제. 배제하라.]
기본적으로 기록 보관실은 선택 받은 자의 방문을 위해 모든 기계가 지정된 공간만 순찰하는 중이었다.
최상위 관리자는 그 대기 상태를 방어로 바꿔버렸다.
[공격로 변경. 고유 번호 30번부터 50번 까지는 모든 대상을 무시하고 승강기로 이동 후 대기. 그 외 모든 기기는 생체 반응이 느껴지는 곳으로 이동.]
유적 밖으로 나가려면 무조건 승강기를 이용해야 했다.
최상위 관리자는 그 점을 생각하고, 유일한 입구이자 출구인 승강기에 많은 기계를 배치했다.
☆ ☆ ☆
타타타탓!
일행이 복도를 질주했다.
아무리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페이스 조절하며 달린다고 해도 둘 다 각성자였다.
일반인 기준 전력질주라도 봐도 옳을 정도의 속도였다.
“앞에 거미 2마리!”
“쏠게요!”
지훈 위에 매달려 있던 민우가 M33을 쐈다.
투웅 -
콰쾅!
커다란 폭발과 함께 시야가 앞을 가렸지만, 멈출 여유 따위 없었다.
“달려! 살아 있으면 그냥 방패로 들이 받아!”
위잉 -
초록색 레이저가 연기를 뚫고 일행을 훑었다.
이후…
타타타타탕!
티티티팅!
총알이 쏟아져 나왔지만, 모두 가벡의 방패에 막혀버렸다.
적이 살아있다는 뜻이었기에 멈칫거릴 법도 했지만, 가벡은 용맹하게 달렸다.
“전장! 전장! 전장! 신들이 나와 함께하신다!”
그 모습이 꼭 전투에 미친 광신도 같아 보였다.
앞장서던 가벡이 먼저 연기 안으로 들어갔다.
쿵! 깡!
시야가 가려져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몰랐다.
소리로 보건데 아마 한 놈은 방패로 들이 받고, 나머지 하나는 둔기로 후려 친 것 같았다.
“하나 남았다!”
유탄이 명중하지 않고 땅에 박힌 모양이었다. 비포장도로 달리는 것 마냥 흔들렸으니 어쩔 수 없었겠지.
가벡이 멈추지 않고 연기 밖으로 이탈했다.
기계에게 등이 드러났으니 공격 받으면 당장 죽을 위기였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로 뒤에 믿음직한 동료가 있기 때문이었다.
‘저건가!’
“꽉 붙잡고 버텨!”
민우에게 경고한 뒤 연기 속으로 들어갔다.
연기 사이로 벽에 붙어 있는 기계의 실루엣이 보였다.
“으롸!”
들고 있던 아티펙트를 휘둘렀다. 식별 당시 D등급 단검이 박살났으니, 분명 C등급 이상이라는 얘기였다.
훅!
바람이 비명 지르는 소리와 함께 검이 횡으로 날았다.
각성자의 힘에 돌진까지 더한 일격이었다.
쑥!
기계였기에 반만 들어가도 다행이라고 생각했거늘, 생각 외로 아주 말끔하게 잘려나갔다.
‘C등급 아니었나? 도대체 이게 뭔….’
깜짝 놀랐지만 발음 멈추지 않았다.
최상위 관리자의 이동 속도에 상관없이, 최대한 빨리 이탈해야만 했다.
“유탄 몇 발 남았어!”
“네 발요!”
“가방 안에 유탄 있다. 장전해! 몇 개 놓쳐도 되니까, 최대한 빨리 해라!”
민우가 유탄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리다 갑자기 멈췄다.
“혀, 형님. 뒤… 뒤에 개 모양 기계 쫓아와요!”
퉁! 투퉁! 퉁! 투퉁!
‘이런 씨발… 뒤에서도! 혹시 기계들 상태가 바뀐 건가?’
이상했다. 기록실에 들어가기 전 까지만 해도, 기계들은 수동적으로 순찰만 하는 것처럼 보였다.
피하기 위해서 도망가면 쫓아오지도 않았고, 방 안에 들어가도 기다리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어차피 음식이 필요하지 않으니 시간 끌어봐야 무조건 유리한데 일부러 자리를 비켜줬다.’
반면 지금은 달랐다.
멀리서 아주 자그맣게만 보여도, 모든 기계들이 득달처럼 달려들었다.
‘잠시라도 멈추면 금방 다른 녀석이 들러붙을 거다. 더 속도를 올려야 돼!’
이동 속도로 치면 개 모양 기계 쪽이 이쪽보다 훨씬 빨랐다. 무조건 처리해야 했다.
“쏘지 마, 내가 처리한다!”
들고 있던 검을 하늘 위로 던진 뒤, 가속 이능을 발동했다.
이후 몸을 돌리며 매고 있던 MP5를 잡은 뒤, 회전하는 상태 그대로…
타타탕!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서커스에서나 나올 법한 트릭 샷!
집중 이능까지 겹쳐 사용했다면 정밀 사격이 가능했지만, 그딴 짓 했다가는 몸이 작살이 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콰, 콰, 쾅!
복도 벽, 바닥, 개 기계 순으로 폭발.
명중이었다!
기계는 폭발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다리에 맞았으니 더 이상 추격이 불가능해 보였다.
‘이능 해제.’
가벼운 가슴 통증과 함께 다시 몸을 돌렸다.
하늘에 던졌던 검을 다시 붙잡고는, 앞으로 달렸다.
타타타탓!
앞으로 몇 번 이나 저런 걸 할 수 있을지 가늠도 할 수 없었다. 몸이 망가지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졌지만, 꾹 참았다.
‘이능 부작용으로 죽으나, 여기서 기계들한테 죽으나 똑같다. 어차피 이능 부작용 따위 재생하면 그만이다.’
가벡과 거리가 벌어진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가속 이능을 발동했다.
…
적은 총 셋.
거미 모양이 2개, 사람 모양이 하나.
“으아아아! 발쿠할! 발쿠할! 발쿠할!”
가벡은 신들의 전장을 뜻하는 말을 외치며 돌진했다.
주웅 -
인간형 기계 머리에서 붉은색 레이저가 튀어나왔다. 십자 모양으로 슥 훑는 게, 제대로 요격할 생각 같아 보였다.
아마 양산형 레이저라 최상위 관리자 것 보다는 약할 테지만, 그래도 위협적이기는 똑같았다.
“크아아! 썅! 레이저! 엎드려!”
가벡이야 방패로 막으면 됐지만, 뒤에 떨어져 있던 둘은 무조건 맞아야 했다.
‘젠장!’
어쩔 수 없이 달리던 그대로 슬라이딩 하듯 죽 미끄러졌다.
그 과정에서 민우가 바닥에 쓸려 고통을 내뿜었다.
“갈겨!”
살짝 못미더웠으나, 민우는 명령대로 유탄을 발사했다.
투웅 -
가벡에게 맞을까 싶은 염려와 달리, 제대로 날아가 기계들이 서있는 천장을 때렸다.
콰콰쾅!
직격하지 않았으니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기계들의 전열을 망가뜨리기엔 충분했다.
충격으로 인해 벽 같은 방어에 틈이 생겼고, 가벡은 바로 그 틈으로 끼어들어갔다.
“피가 끓는구나!”
깡! 깡!
저번과 같은 공격이었다.
방패로 들이받고, 둔기를 휘둘렀다.
기계 두 기가 쓰러졌다.
“미친 새끼야. 싸울 때는 좀 닥쳐!”
어느새 다가온 걸까?
지훈이 엄청난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가벡이 맞지 않게끔 세로로 벤 일격이었다.
훅 소리와 함께 거미 몸통에 검이 틀어박혔다.
일도양단했던 저번과는 사뭇 다른 결과였다.
‘저번 일격은 돌격이 있어서 그랬던 건가.’
기본적으로 강도와 탄도가 충분하니 날이 나가거나 도신이 구부러질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 힘이 부족했거나, 기술이 부족했거나 둘 중 하나리라.
하지만 반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박살내기엔 충분했다.
중앙 회로가 반으로 잘린 거미가 풀썩 쓰러졌다.
“허억… 헉….”
기계들을 다 처리한 뒤 이능을 해제했다.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 두근거렸다.
“괜찮나? 네가 나보다 먼저 발쿠할으로 갈 것 같다.”
“허억… 닥쳐… 헉… 어디 재수 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전투가 끝났기에 다시 민우를 짊어졌다.
“얼마나 남았어요?”
“이제 저 코너만 돌아서 쭉 직진하면 된다.”
녀석을 들어올리고, 몸을 돌리려는 찰나…
주우우웅 -
저 멀리서 뭔가 굵은 붉은색 빛이 일렁였다.
복도를 세로로 슥 훑었다.
‘아…?’
인식보다 본능이 빨랐다.
벽으로 당장 달라붙으며 가벡을 강하게 밀쳤다.
퍽!
쿵!
“뭐하….”
그리고 그 순간.
그즈즈즈즈즈즈즈즈즞!
인간형 기계가 쐈던 것보다 3배는 두꺼워 보이는 레이저가 복도를 긁고 지나갔다.
‘이런 미친…!’
최상위 관리자였다.
첫 대면에 저딴 게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고 생각하니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깜짝 놀랄 틈도 없었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탕!
일행 위로 탄막이 펼쳐졌다.
“씨-이-발!”
가벡은 급히 방패를 돌렸지만, 민우는 무방비 상태였다. 두르고 있는 것도 D등급 경량 방탄복이었다.
실질적인 방어력은 E등급이니 무조건 관통됐다.
짊어지고 있던 민우를 그대로 바닥에 내다 꽂고는, 그대로 감싸 안았다.
쿵!
D등급 코트로 최상위 관리자의 탄막을 막을 수 있을지는 몰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맞는다면 차라리 재생 기능이 있는 이쪽이 맞는 게 나았다.
티티티티팅!
퍽! 퍽!
총알 튀는 소리 가운데 섬뜩한 소리가 섞였다.
뜨거운 인두로 살을 지지는 것 같은 고통!
어깨와 등에 각각 한 발씩 총알이 틀어박혔다.
‘도망가야 한다….’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최상위 관리자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 Ärge arvake, et te ei pääse. Sa pead surema siinsed inimesed. (도망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마라. 넌 여기서 죽어야만 한다.)
- Ei murda, et Ärritav kest. (그 귀찮은 외피부터 부숴주지.)
주웅 - 주웅 -
붉은색 레이저가 엎드려 있는 지훈을 X자로 긁었다.
지훈은 그걸 보고는 끝이 가까워졌음을 깨달았다.
그즈즈즈즞!
“끄아아아악!”
엄청난 고통과 함께 D등급 코트가 잘려나갔다.
이제 총알을 방어할 수 있는 방어구 따위 없었다.
- surema(죽어라).
위-이-이-이-잉!
최상위 관리자가 익숙한 소음을 내며 부르르 떨었다.
입구에서 터렛이 탄환을 쏘기 전에 내뿜은 소음이었다.
‘젠장, 여기까진가….’
죽음을 직감하고 눈을 감으려는 순간…
“EMP 갑니다!”
민우가 지훈의 품을 벗어나며 뭔가를 집어 던졌다!
휙!
- Sama kehtib ka ei saa. (똑같은 수에는 안 걸린다.)
쒝!
최상위 관리자가 방향을 틀어 날아가던 물건을 쏴버렸다.
최후의 수단이 무력화 됐음에도, 민우는 절망하지 않았다. 도리어 미소를 지었다.
‘예상대로다.’
민우가 다시 한 번 뭔가를 집어 던졌다.
진짜 EMP였다.
- Kurat seda? (함정?)
최상위 관리자가 맞춘 건 민우가 쓰고 있던 방탄모였다. 그리고 진짜 EMP는 안전하게 하늘을 날았다.
주웅 -
최상위 관리자가 급히 레이저를 뿜었지만…
그것보다 EMP가 더 빨랐다.
퐁 -
콰라라라라라!
최상위 관리자가 엄청난 전자기 폭풍에 휩쓸렸다.
쿵.
EMP를 맞은 최상위 관리자는 다시 한 번 바닥에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다. 그리고 그에 이어, 이번에는 가벡이 녀석을 둔기로 후려쳤다.
깡!
장갑이 얼마나 단단한지, 가벡의 둔기로도 흠집하나 나지 않는 최상위 관리자였다. 하지만 후려치는 힘까지 저항하진 못했기에, 휙 날아가 데굴데굴 굴렀다.
“움직일 수 있나? 총에 맞은 것 같은데.”
가벡이 다가와서 물었다.
어깨와 등. 다리와는 상관없는 부위였지만, 움직일 때 마다 격통이 몰아쳤다.
“괜찮다, 움직일 수 있어.”
몸에 균열이 나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지만, 꾹 참고 일어섰다. 고지가 멀지 않았다.
재생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민우, 이제 걸어서 이동해라. 가자.”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코너를 돌았다. 그러자 시야 끝에서 작은 뭔가가 벌레무리처럼 꿈틀거렸다.
‘저게 뭔…?’
눈을 찌푸리자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기계 무리였다. 이쪽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이런 씨발!”
- Muutuvad protokoll. Kõigil võimu taastamise circuit. Eeldatav aeg. 5 min. (프로토콜 변경. 모든 전력을 회로 복구에 투입. 예상 시간. 5분.)
덤으로 뒤쪽에서는 최상위 관리자의 복구를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띠, 띠디딩… 팅!
복도의 광원이 사라지며 어둠이 들이닥쳤다.
제한시간 5분. 죽음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무조건 승강기로 가서 아쵸푸므자를 불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