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웅 짓 할 거면 번지수 잘못 짚었어, 새끼야. -->
자유낙하.
최상위 관리자는 중력에 모든 걸 맡기고 떨어졌다.
분명 떨어지고 있음에도, 바닥에 닿으면 온 장갑이 산산이 부질 게 분명했음에도, 이상하게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기계가 꿈이라니?
최상위 관리자는 웃기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분명 뭔가에 맞은 것 같았는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논리 회로와 연산 회로가 반 쯤 타버린 것 같았다.
‘회로 재구성. 복원 시점 AW(After Waiting) 96,245,390시간. 전력 소모를 위해 모든 기능 전전 상태 돌입.’
최상위 관리자는 남은 시간을 계산해 봤다.
정확히 1.59시간 이었다.
…
모든 기능이 정지된 무의식 속.
아니 정확하게는 기계 덩이에 들어있는 유약한 영혼 속으로, 기억의 편린들이 스쳐 지나갔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정확한 시점은 몰랐다.
약 43,800,000시간. 인간의 시간으로 5000년 쯤 기다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았다. 기계로 이식하는 과정에서 거세됐을 정신이 되살아났다.
생각하지 못한 치명적인 오류였다.
고치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동족이 단 한 명도 남지 않는 상황이었다. 최상위 관리자는 오로지 기록 보관실 관리와 기다림, 그리고 ‘전달’에만 특화 된 존재였다.
예상 범위를 크게 벗어난 오류에 대응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기다렸다.
미칠듯한 외로움 속에서, 그냥 기다렸다.
그렇게 5000년이 지났다.
첫 사도가 도착했다.
물고기마냥 온 몸에 비늘이 가득한 종족이었다.
미칠 듯이 기뻤다.
본연의 임무인 ‘전달’을 마친 뒤 최상위 관리자는 모든 전력을 차단한 뒤 달콤한 죽음을 기다렸다.
전력이 서서히 떨어져 머지않아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음을 알자 온 몸이 쾌락으로 몸부림쳤다.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다시 깨어났다.
분명 제 손으로 차단했을 전력은 다시 켜져 있었고, 전달했을 기록 또한 그대로였다. 믿을 수 없었다.
분명 제 손으로 직접 기록을 건네줬다.
‘꿈?’
그럴 리 없었다. 육체가 없는 몸이었다. 뇌가 기억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꿈을 꿀 리가 없었다.
잘못 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취를 취했지만, 바꿀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게 다시 5000년이 지났다.
두 번째 사도가 도착했다.
첫 번째 사도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첫 번째 사도가 어류 같은 모습이었다면, 두 번째 사도는 파충류 같아 보였다.
뭔가 어그러졌음을 느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본인의 임무는 그저 기록을 ‘전달’ 하는 것뿐이었다.
같은 오류가 반복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발생할 수 없는 오류였다.
천운이 맞아 떨어져 생긴 불가항력이라 생각했다.
다시 한 번 임무를 마친 최상위 관리자는 이번에도 모든 전력을 차단한 뒤 달콤한 죽음을 기다렸다.
혹시나 전력이 켜져 있던 게 아닐까 싶어 몇 번이나 다시 점검했다.
‘이번에야 말로 죽을 수 있을 것이다.’
제발 그럴 수 있기를 기도하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죽지 못했다.
다시 눈을 떴다.
시간을 확인했다. AW43,800,000시간.
절망했다.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다시 한 번 5000년을 기다렸다.
세 번째 사도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기계 종족이었다.
비슷한 종을 찾았기 때문일까?
세 번째 사도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쵸프무자가 여태껏 무슨 짓을 했는지.
왜 전원이 꺼져 있음에도 다시 일어났는지.
어째서 자신이 15,000년 동안 기다렸어야 했는지.
처음엔 어째서 이 기록실이 시간 왜곡에 저항할 수 있게끔 만들어 진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결국 모든 게 의도된 거였다.
아쵸프무자가 일부러 이렇게 되게끔 만든 거였다.
분노했다.
원통했다.
이 무한한 기다림 끝에 얻은 거라곤, 공허와 외로움 그리고 좌절밖에 없었다.
최상위 관리자는 생각했다.
아쵸푸므자가 정확히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이 시설이 필요해지지 않는다면?
사도가 이 장소로 오지 않게 된다면?
사도가 이 장소에서 모조리 죽는다면?
그로써 계획을 방해할 수 있다면?
분명 아쵸푸므자 본인이 직접 나설 거였다.
최상위 관리자가 죽든, 이 유적을 만들었던 사건 자체가 없어지든 상관없었다.
단지 이 끝없는 고통이 끝나기만을 기도했다.
쉬고 싶었다.
그래서 마음먹었다.
사도를 죽이기로.
세 번째 사도를 기습했다.
매우 강력한 상대였지만, 유적 속에서는 무한히 재생할 수 있었던 터라 이길 수 있었다.
이후 전원을 파괴하고 눈을 감았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날 죽이러 와 주소서, 위대하신 그 분이여.’
하지만 죽을 수 없었다.
다시 눈을 떴다.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절망했다.
‘와 저를 죽이지 않으시나이까. 어째서 영혼이 썩고, 마음이 병든 저를 내버려 두시나이까!’
아무리 불러도 아쵸푸므자는 나타지 않았다.
또 5000년을 기다렸다.
네 번째 사도가 찾아왔다.
영장류 암컷으로 보였다. 상관없었다.
보자마자 설명도 해주지 않고 죽였다.
다시 눈을 떴다.
다시 5000년을 기다렸다.
다섯 번째 사도가 찾아왔다.
죽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 녀석은 강력했다.
다시 눈을 떴다.
다시 5000년을 기다렸다.
이미 정신은 파괴됐고, 영혼은 부패했다.
기나 긴 기다림 속에 남은 감정은 분노밖에 없었다.
- 부디 위대하신 그 분과, 그분의 사도님께 저희들의 기록을 넘겨주십시오. 후발 주자는 저희처럼 실패하게 내버려 둬선 안 됩니다. 더 이상 우리 같은 희생자가 생기지 않게 해주십시오. 당신은… 순례자로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처음엔 무한한 영광이었던 ‘순례자’ 라는 이름.
하지만 이제 그 영광은 땅에 떨어졌고, 무한한 기다림 속에 모조리 썩어버렸다.
그렇게 최상위 관리자는 타락한 순례자가 됐다.
[재가동 완료. 논리 회로와 연산 회로 복구.]
최상위 관리자가 정신을 차렸다.
☆ ☆ ☆
그 시각.
일행은 빠른 걸음으로 입구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허억, 헉… 헉….”
말이 금방이지 4일이나 걸려서 도착한 기록실이었다.
걸어가도 하루는 꼬박 걸렸고, 달려도 반나절은 가야했다.
“후… 민우, 괜찮냐?”
심호흡을 하며 묻자, 민우가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평소 같은 밉상 가득한 얼굴이 아니었다. 정말 금방이라도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허억, 허억….”
말조차 버거운지 민우는 고개만 좌우로 저었다. 호흡 관성이 깨졌다간 그대로 질식할 것 같아 보였다.
‘쉬었다 가야하나?’
지훈은 아직 더 이동할 수 있었지만, 민우와 가벡이 문제였다. 민우는 일반인이고 가벡은 20kg이 넘는 쇳덩이를 짊어지고 이동했다.
체력 소모가 지훈과 같을 리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모두 지쳐 쓰러질 수도 있었다.
결국 잠시 멈췄다 가기로 마음먹었다.
“멈춰. 5분만 쉰다.”
다들 대답도 없이 그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셋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숨만 골랐고, 건조한 화분처럼 물만 빨아들였다.
삐비빅, 삐비빅, 삐비빅!
약속했던 5분이 지나자 시계에서 알람이 울렸다.
“조금만… 더 쉬면 안돼요?”
민우가 말했다. 이미 작살날 대로 작살이 난 무릎을 질질 끌며 1시간 반이나 걸었다.
쉬이 대답할 수 없었다.
‘만약 최상위 관리자가 쫓아오고 있으면 어떡하지?’
말할 것도 없었다.
잡히면 죽는다.
하지만 만약 EMP 수류탄을 맞고 그대로 박살났다면?
C4로 천장이 무너졌고, 문이 막혀 기록실에 갇혔다면?
괜히 겁에 질려 도망가고 있는 꼴이 됐다.
이대로 계속 채찍질을 했다간, 민우가 다시는 달릴 수 없을 수도 있었다.
사람의 몸은 의외로 약해서, 한 번이라도 제대로 작살이 나면 재생하지 못하는 게 부지기수였다.
민우는 나머지 둘과 달랐다. 전투 종족도 아니었고, 각성도 하지 못했으며, 이능도 없었다.
말 그대로 일반인이었다. 초인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동료를 치료해 주기 위해 온 유적이다. 그 과정에서 다른 동료가 부서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5분만 더 쉬자. 경계는 내가 하지.”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민우가 고개를 푹 숙이고 이를 꽉 깨물었다.
짐이 될 수밖에 없는 자신을 원망하는 것 같았다.
“죄송할 거 없어. 너 잘못한 거 하나도 없다. 저 새끼가 말도 안 되게 센 걸 어쩌라고. 잘못이 있으면 우리 셋 다 약한 게 잘못이다. 네 잘못 아니니까 고개 들어.”
민우는 잠시 지훈을 보는가 싶더니, 다시 고개를 숙였다.
뚝, 뚜둑, 뚝.
그런 민우가 말 없이 조용히 눈물만 토해냈다.
지훈은 그 모습을 3초 정도 지켜보다 눈을 돌렸다.
☆ ☆ ☆
“이제 다시 출발하지.”
다들 몸을 일으켰다. 민우는 일어나는 것조차 버거운지, 일어나며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괜찮아?”
“네… 걸을 수 있어요.”
위태위태한 모습이 꼭 갓 태어난 망아지 같았다.
결국 민우는 몇 걸음 걷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휙!
쓰러지려는 걸 붙잡았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이 새끼야.”
“잠깐 어지러워서 그랬어요. 정말 괜찮아요.”
10분이나 쉬었는데도 어지럽다면 그건 내장 중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였다. 아마 그랬다면 앉아서 쉬지도 못하고 끙끙대며 누워 있었으리라.
한 마디로 거짓말이란 얘기였다.
“좆까. 너 지금 가방 안에 뭐 들어있어.”
현재 일행은 유적 탐사를 위해 각자 하나씩 짐을 들고 있는 상태였다.
가벡은 송배근이 잔뜩 발달한 종족 특성으로 인해, 무거운 짐을 잔뜩 들고 있었다. 아마 가방 안에 40mm 유탄이 가득 들어있을 터였다.
지훈은 여차할 때 가속 이능을 쓰고 튀어나가야 했기에 가벼운 백팩에 침낭 하나와 유탄 몇 개만 넣어뒀다.
남은 물건은 음식과 식수였다. 그나마도 거의 다 먹었다.
“MRE 2봉이랑, 물 2L, 그리고 창고에서 챙긴 식량들 들어있어요….”
필수품들이었다.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버릴 수 없었다.
이 유적에서 나간다고 한들 자살숲에서 2일 동안 체류해야 했다. 밥을 굶으며 갈 수는 없었다.
“내놔.”
“예?”
“가방 내놓으라고.”
민우의 가방에서 식료품을 빼서 나머지 둘 가방에 나눠 넣었다. 유탄을 잔뜩 썼다고 해도 자리가 부족했기에, 침낭 2개를 버렸다.
툭.
빈 가방이 힘없이 떨어졌다.
“MP5에 총알 몇 발 남았냐.”
“19발요….”
“그것도 내놔.”
민우는 총을 꼭 붙잡고 거절했다.
짐이 되기 싫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겨우 총 하나에요.”
“족히 3kg 나가는 쇳덩이다. 그냥 닥치고 내놔.”
끈질기게 거절하는 민우였지만, 억지로 뺏었다.
“잘 들어 새끼야. 여기서 더 이상 느려지면 버리고 가야 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최대한 가볍게 만들라고!”
“네….”
결국 민우에게는 EMP 수류탄 하나만 남겨 놨다.
방탄복도 벗길까 싶었지만, 너무 위험할 것 같아 그만뒀다.
“다시 출발하자. 갈 길 멀다.”
그렇게 일행을 다독이고 출발하려는 순간…
드드드…
… … … 콰 - - 앙.
작은 진동에 섞여 폭발음이 들려왔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못 들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음에도, 듣자마자 온 몸의 털이 곤두섰다.
“… 이봐, 들었나?”
가벡이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당연히 들었다. 대답할 필요도 없었다.
“달려 씨발!”
일행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5분 정도 달렸을까?
휘청 - 퍽!
“아아악!”
민우가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너무 무리한 까닭에 무릎 연골이 작살이 난 거였다.
“괜찮아!?”
급히 다가가 물었지만, 민우는 비명만 질렀다.
“… 형님, 저는 여기까진 것 같아요.”
“무슨 개소리야, 미친 새끼야!”
“가벡, C4 줘. 나를 미끼로 최상위 관리자를 유인한 뒤 터트리면,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야.”
가벡은 아무 말 없이 가방을 뒤적거렸다.
C4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집어 치워, 네가 미끼를 왜 해, 새끼야!”
“형님이 그러셨잖아요… 버리고 가야 할 수도 있다고요. 버리세요, 저 사실 짐만 되잖아요. 셋 다 죽을 바에는 하나만 죽자고요. 네?”
민우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아마 무섭겠지. 죽고 싶지 않겠지.
이대로 가다간 자기 때문에 셋 다 죽을 걸 알았기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했으리라.
짝!
하지만 그딴 거 상관없었다.
따귀를 맞은 민우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아…?”
“좆까, 시발 놈아. 똥하고 된장하고 구분 못하냐? 네가 무슨 생각 하는지는 알겠다만, 그딴 짓 할 거면 내가한다. 왜 능력도 안 되면서 나대냐.”
“하지만 저는 다리가….”
휙!
지훈이 민우를 그대로 들쳐 업었다.
“다리가 작살났냐? 씨발, 내가 하나 달아주마. 그러니까 이제 닥치고 M33 들어. 앞에 뭐 보이면 그냥 갈겨라.”
질문이 아니었다.
양해도 아니었다.
명령이었다.
“영웅 노릇 하고 싶었다면 번지수 잘못 짚었어, 개새끼야. 나나 너나, 우리 팀에 있는 새끼들은 전부 병신, 쓰레기 같은 놈들인데 뭔 영웅 짓이야. 네 살 궁리나 해 병신아!”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앞으로 달렸다.
지훈이 앞으로 튀어나가자, 가벡도 꺼냈던 C4를 허리춤에 끼운 채로 앞으로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