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S유적 수색 -->
누구 할 것 없이 바로 몸을 일으켜 전투 준비를 했다.
“쏘지 마. 최상위 관리자일 수도 있다.”
방패에 몸을 엄폐하고 총을 겨누고 있기를 잠시.
시야에 쇠로 만든 것 같은 거대 거미가 나타났다.
- Identification. (식별 중)
거대 거미는 붉은 레이저로 일행을 훑었다.
“저거 뭐야. 이상한 거 나오잖아! 위험한 거 아냐?”
가벡이 불안한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기다려. 아직 이다. 신호하면 바로 쏴.”
아직까지는 식별 중이라는 말만 나왔을 뿐, 그 어떤 전투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들어봐야 했다.
- Vastuolud andmetes. Eem… (식별. 데이터 불일치. 제거…)
기대와 달리 최상위 관리자가 아닌 것 같았다. 기계가 8개의 다리를 한 곳에 모아 점프할 준비를 했다.
명백한 공격 의사였다.
“갈겨!”
투웅 -
타타타타탕!
40mm 유탄과 9mm 폭발 탄환이 순식간에 뿜어져 나갔다.
콰콰콰콰쾅!
거대한 폭발이 복도를 가득 채웠다.
화끈한 열기와 함께 기계 파편이 날아왔지만, 대부분 가벡의 방패에 가로막혔다.
화끈한 열기와 함께 매캐한 연기가 뿜어져 나와 속이 메스꺼웠다. 그럼에도 적이 아직 무력화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기에 총을 겨누고 있었다.
머지않아 연기 사이로 몸통이 푹 파인 기계가 드러났다.
“죽은 걸까요?”
“애초에 살아있지도 않았어. 가벡, 가서 확인해 봐.”
가벡에게 D등급 단검을 건네줬다.
슬금, 슬금.
조심스럽게 게걸음을 치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 누구도 웃지 않았다.
가벡은 거미 앞에 도착하자마자 발로 기계를 툭 밀었다.
텅 - 도르르르…
몸통 부분이 그대로 쓰러지더니 복도를 굴렀다.
더 확인할 것도 없이, 기능 정지가 확실해 보였다.
“죽었다.”
가벡이 아티펙트를 돌려주려 했지만, 어차피 M33으로도 벅찼기에 잠시 빌려주기로 했다.
이후 같은 방법으로 전진했다.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자, 갈림길이 튀어나왔다.
앞으로 쭉 갈 수 있는 직진과, 곡선으로 꺾인 갈림길이 두 개였다.
‘네비게이션을 발동해 볼까.’
마치 손가락만한 캡슐처럼 생긴 기계였다. 얼핏 보기엔 철로 만든 알약처럼 보이기도 했다.
딱 봐도 전원으로 보이는 스위치를 누르자, 초록색 광선이 초속 100m는 되어 보일법한 속도로 주변을 훑었다.
주웅 -
이후 초록 광선이 오른쪽 갈림길을 3초 정도 비추다 사라졌다. 한 번 키면 계속 유지되는 형태는 아닌 것 같았다.
“믿을 수 있을까요?”
민우는 올텅이 백골의 치아에 칼로리 바를 문대던 걸 떠올렸다. 영 못마땅해 보였다.
“믿어 봐야지. 안 믿어봐야 여기서 헤매기밖에 더 하겠냐. 게다가 거짓말 할 녀석으로 보이지도 않았잖아?”
올텅은 지훈을 ‘선택받은 자‘라고 말했다.
FS들이 어떤 녀석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랬다저랬다 하며 사람 엿 먹일 족속들 같아 보이진 않았다.
과학 기술이 발전한 필요한 필수 요소가 바로 논리였다.
복도를 어느 정도 걷자 우측에 방이 하나 나타났다.
- Liftid ja kaitsepoliitika protokoll kontrolli tuba (승강기 및 방어 프로토콜 제어실)
문은 여닫이가 아닌 미닫이 형식이었고, 손잡이 대신 버튼식 개폐기가 달려 있었다.
“어… 여기는 뭐죠?”
“승강기랑 방어 시스템 제어하는 곳 같다.”
대답해 주자 민우가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어떻게 아세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진실을 말해주는 게 제일 좋았지만, 칼콘의 전과를 봤을 때 감정적인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일단 지금은 말고 나중에 설명하자.’
“그냥 딱 보기에 그래 보인다는 얘기지.”
둘러대자 민우도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었다.
한동안 이 문을 열지 말지를 놓고 의견이 오갔다.
가벡은 문을 열면 기습을 당할 우려가 있으니 그냥 지나가자는 의견을 꺼냈지만,
반면 민우는 안에 가져갈만한 보물이 있을지도 모르니 확인만 하자고 얘기했다.
‘어쩔까….’
승강기 및 방어 프로토콜 제어실.
분명 승강기가 반지에 이끌려 작동을 한 것인지, 아니면 안에서 작동을 시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만약 후자라면 안에 뭔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기계라면 괜히 사서 고생하는 꼴이 될 테지만 만약 그게 ‘최상위 관리자‘라면, 대화로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확인하고 간다.”
열기에 앞서 잠시 고민했다.
‘만약 방이 작다면 유탄 후폭풍에 휘말릴 수도 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폭발 반경보다 방이 작다면 당연히 밖으로 새어나왔다. 직격은 아닌지라 힘이 반감된다고 한들 일반인에게는 충분히 위험했다.
“민우, 너는 물러서 있어. 위험할 수도 있다.”
각성자인 지훈과 가벡은 그 정도 충격은 견딜 수 있었기에 문 앞에서 대기했다.
“이 안에 있는 녀석은 대화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선공하지 마라. 위험한 녀석일 수도 있다.”
방어 프로토콜 관리자인 만큼, 괜히 시비 걸었다가 방어 단계가 올라가는 꼴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의 칼까지 부숴먹을 순 없지. 알겠다.”
준비를 다 마쳤기에 가벡에게 명령했다.
“버튼 눌러.”
가벡이 위험한 물건 만지듯, 방패로 버튼을 때렸다.
쿵! 소리와 함께 쉬이익 하고 문이 열렸다.
방 안에는 인영이 하나 앉아있었다.
전체적으로 올텅과 비슷해 보였지만, 차이점이 있었다.
올텅이 완벽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면, 해당 기계는 단순 사람의 실루엣만 흉내 냈을 뿐, 피부나 머리카락이 단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피부 대신 차가운 금속이, 눈 대신 센서가 달려 있었다.
센서가 휙 움직이더니 레이저를 뿜어냈다.
가벡이 거대 거미 전과를 생각하며 물었다.
“안 좋은 느낌이 드는데. 먼저 쏘는 게 어때?”
“헛소리 집어 치우고, 일단 기다려.”
- See koht on piiratud ala. Kui sa murda see võib olla kahjuks. Palun sammu tagasi. (해당 구역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침입할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러서 주십시오)
사람 모양 기계는 그 말만 내뱉었을 뿐,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아마 먼저 공격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어쩔까?’
고민됐다.
만약 저 녀석을 제거하고 프로토콜을 만질 수만 있다면, 기계나 함정 걱정 없이 편하게 전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죽였는데 프로토콜을 만질 수 없다면?
셋 다 나란히 입구에 있던 백골 꼴 난다.
‘내버려 두자. 괜히 망가뜨렸다가 피 볼 수도 있겠다.’
목숨 걸린 일이었기에, 얌전히 물러나기로 했다.
“버튼 눌러서 문 닫아. 굳이 싸울 필요 없어 보인다.”
가벡은 방패를 내리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버튼을 눌렀다.
쉬이익, 쿵.
제어실을 뒤로하고 계속 전진했지만, 딱히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8시간 정도 더 전진하다가 적당한 자리를 잡고 야영했다.
“엄청 크네요. 러시아 하수도 느낌 나는데요.”
민우가 MRE를 데우며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게 처음에야 속도가 느렸지, 3시간 째 정도부터는 걷는 속도와 거의 비슷하게 전진했다.
대충 시속 3km로 따지자면 20km는 족히 이동했다는 뜻이었다. 그간 발견한 거라곤 제어실 하나와 거미 모양 기계가 다였다.
“얼마나 더 가야하지? 여기서 굶어 죽을 수도 있다.”
가벡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전쟁 중 죽어야만 신들의 전장으로 갈 수 있다고 믿는 종족이니, 아사는 명예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거리는 알 수 없어. 방향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슬쩍 남은 식량을 점검했다. 아껴 먹으며 전진했기에, 칼로리 바 포함 남은 식량은 5일 분이었다.
이틀 정도 굶는다고 치면 7일 정도 버틸 수 있었다.
‘빠듯하군. 조심해야겠어.’
생명체가 하나도 없었기에, 식량 관리에 주의해야했다.
하수구는 그나마 쥐나 바퀴벌레라도 잡아먹을 수 있었지만, 여긴 개미새끼 한 마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슬슬 자 둬. 불침번은 내가 먼저 서지.”
자처해서 불침번으로 나섰고, 남은 둘은 침낭 안으로 들어갔다. 모닥불은 없었지만, 실내인 까닭에 온도는 적당했다.
지루한 시간 속, 생각을 정리했다.
칼콘에 대한 것, 시연과의 관계, 민우와 가벡에게 반지에 대해 어떻게 얘기할지에 대한 것 등 많은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딱히 이렇다 할 명쾌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단지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 ☆ ☆
유적 진입 2일째.
전진 속도를 높이기 위해, 앞으로는 적이 나타나자마자 요격하기로 결정했다.
“앞에 사람 형태 기계가 나왔다.”
“형님, 어떡할까요?”
“쏴.”
“최상위 관리자면 어떡하려고요?”
대답 할 거 없이 그냥 방아쇠를 당겼다.
탄약을 아끼기 위해 한 발만 쐈다.
투웅 -
콰광!
“시간 없다. 그딴 거 좆이나 까라 그래.”
폭발에 의한 연기가 사라질 때 까지 기다리자, 팔 한 쪽이 날아간 기계가 보였다. 확인 사살을 위해 다가가니, 망가진 기계음으로 뭐라 뭐라 지껄였다.
가벡이 기계 머리에 D등급 아피텍트를 쑥 집어넣었다.
그제야 조용해졌다.
남은 시간. 102시간 (약 4일)
☆ ☆ ☆
유적 진입 3일째.
이동, 요격, 휴식만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고요한 가운데 민우만 홀로 실없는 농을 던지기만 몇 번.
그나마도 없어지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다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었기에, 서로 말 조심하는 듯싶었다.
“멈춰.”
가벡이 갑자기 일행을 멈춰 세웠다.
대답 없는 추궁의 시선이 가벡에게 향했다.
“함정이 있다.”
“무슨 개소리야.”
가벡이 덫과 함정에 뛰어난 소질을 가진 사냥꾼이라고 한들, 여기는 FS유적이었다. 함정이 있다 해도 분명 기술 수준에 맞는 기상천외한 함정이 있을 터였다.
‘설마 눈에 다 보이게끔 설치해 놨을 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하자, 가벡이 허공을 가리켰다.
“저기 안 보이나?”
말 그대로 허공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벡, 우리 피곤해. 괜한 걸로 멈추지 말자.”
민우가 투덜거렸다.
가벡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갸웃거렸다.
“보이지 않는 건가. 좋다, 뒤로 물러나라.”
말 대로 3M 정도 물러나자, 가벡이 하의 가죽을 한 움큼 찢어 돌돌 뭉쳤다.
휙!
허공에, 정확히는 함정이 있다고 말한 곳에 집어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가죽을 보며, 지훈과 민우는 별 일 있겠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는…
위잉 - !
갑자기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굵은 레이저가 튀어나오며 가죽이 두 동강이 났다.
만약 그대로 전진했다면, 일행 전부 두 동강이 날 뻔 했다!
늘어져 있던 정신이 팽팽하게 날카로워 졌다.
“이런 미친….”
“그물 모양으로 미세한 빛이 보였다. 아마 지나가면 발동할 것 같더군.”
“해제할 수 있나?”
가벡은 어깨를 들어 보임으로 부정했다.
“당연히 못 한다. 하지만 이제 그 빛이 보이지 않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지.”
가벡이 다시 한 번 가죽을 던졌으나 이번에는 함정이 발동하지 않았다. 아마 일회성인 것 같았다.
“안전해 보이는군. 내가 앞장서지.”
다행히 아무런 피해도 없이 함정을 건널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후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남은 시간 약 68시간 (3일)
☆ ☆ ☆
유적 진입 4일째.
햇빛을 보지 못하고, 바람을 느끼지 못한 지 벌써 4일이나 흘렀다. 지금이 오전인지, 오후인지도 몰랐다.
단지 걷고, 찾고, 부술 뿐이었다.
탐색 도중 창고로 보이는 장소를 찾았다.
- Kotid kogumine(2번 창고)
위험해 보이는 이름은 아니었기에 들렸다 가기로 했다.
만약 운이 좋다면 아티펙트를 얻을 수 있을 테고, 연구 물품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잡화만 챙겨도 돈이 됐다.
현재 제일 우선순위 높은 일이 칼콘의 회복이라 할지라도, 그것만 보고 달려갈 수는 없었다.
이번 일에 든 장비 값 정도는 벌어가야 했다.
“큰 방이다. 천장도 높아.”
가벡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찌푸렸다. 아마 그의 눈으로도 천장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빛 마법으로 비춰보자, 대충 30M는 되어 보였다.
“쭉 늘어서 있는 게 무슨 도서관 같네요. 여기가 보관실일까요?”
“아닐걸. 얘네 정도 과학기술이면, 정보는 대부분 메모리 형태로 저장해 놨을 거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보통 데이터 저장은 컴퓨터와 책 두 종류 동시에 진행했다. EMP 혹은 태양광 전자기 폭풍 때문에 기계가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해당 창고에는 책으로 보이는 물건은 없었지만.
대부분 기록 보관소를 만들 때 사용하고 남은 걸로 보이는 건축 자제였고, 식량과 무기가 약간 보였다.
- Toit (식량).
눈앞에 형광등 같은 얇은 통이 보였다.
내용물로는 희끄무레 죽죽한 반액체가 들어 있었는데, 그 모습이 퍽 식감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상태가 나빠진 건지, 아니면 원래 이런 건지 알 수 없군.’
음식이라기보다는 기름 같았다. 꼭 올텅같은 기계 생명체가 전원 대신 먹으면 딱 어울릴 것 같은 조합이랄까.
민우는 FS들의 식량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다가, 가방에 몇 개 집어넣었다. 챙겨갈 요량인가보다.
“이건 뭐지?”
가벡이 흰색 레고 블록 같은 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음식이라고 적힌 표지판 아래 있으니 당연히 음식이겠지. 하지만 먹었다가는 배탈 정도로 끝나지 않아 보이는 비주얼이 압권이었다.
“식량일지도?”
반 농담으로 던지자, 가벡이 냄새를 맡았다.
와작.
가벡의 톱니 이빨에 블록이 사탕마냥 쉽게 부러졌다.
조용히 씹는 걸 쳐다봤다.
“먹어봐야 죽기밖에 더 하겠나.”
“맛있냐?”
질문에 가벡은 음미하듯 천천히 블록을 씹었다.
“짐승 뼈 같다. 맛은 없지만 포만감은 있군.”
아마 보관을 위해 맛을 포기하고 오로지 영양소만 우겨넣은 모양이었다. 설마 싶어 먹어보자, 가벡의 말이 딱 맞았다.
개 사료 맛이 났다.
‘만 년 이상 방치됐을 텐데?’
시체가 백골이 돼 있는 걸 봤을 때, 공기 중에 부패를 방지하는 물질이 함유된 것 같지는 않았다.
단순 과학기술만으로 음식을 만 년 이상 보관하다니?
과연 엄청난 기술이 아닐 수 없었다.
감탄하고 있는 지훈과 달리, 민우는 한 입 맛보더니 퉤 하고 바닥에 뱉어버렸다.
“칼로리 바가 10배 더 맛있겠네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가방에 하나 챙겨 넣는 민우였다.
다음으로는 무기 쪽을 살펴봤다.
- relvad (무기)
무기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뉘어져 있었다.
총알 혹은 레이저를 뿜을 것 같은 원거리형 무기와,
딱 봐도 알 수 있는 검과 둔기 같은 근거리 무기,
마지막으로 공구로 보이는 물건들이 있었다.
제일 먼저 원거리형 무기를 살펴봤지만, 이내 그만뒀다.
‘도대체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방아쇠만 당기면 되는 인간의 무기와 달리, FS의 원거리 무기에는 방아쇠로 보이는 물건 자체가 없었다.
게다가 위력조차 가늠할 수 없었기에, 괜히 위험을 자처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원거리 무기는 포기했다.
다음으로 근거리 무기 쪽을 살펴봤다.
저번 파이로와의 전투에서 C등급 아티펙트를 분실했던 까닭에, 새로운 근거리 무기가 필요하던 참이었다.
‘어디 한 번 볼까.’
가장 무난해 보이는 검으로 손을 뻗었다.
길이는 손잡이 포함 70cm 정도로 짧았는데, 아마 부무장 정도로 사용됐던 것 같았다. 그랬을 수밖에 없는 게, FS역시 인간처럼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성장한 종족이었다.
위험을 자처하며 검을 휘두르지 않아도 기계들이 대부분 일을 처리해 줬을 거다. 굳이 앞에 나설 필요가 없었겠지.
훅!
허공에 휘두르자, 바람이 위혐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외날 도신에 손목 보호대도 없다. 검을 주고받기 보다는 기습 혹은 일격에 특화된 무기다. 이거 들고 시간 끌어봐야 좋을 게 없겠군.’
그를 증명하듯, 모양 역시 뽑기 좋은 곡선이었다.
‘하나 챙겨갈까.’
무게 역시 감량 마법이라도 걸린 듯 매우 가벼웠기에, 가져가기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벨트에 검을 장착했다.
“흠, 이거는 몇 등급일지 궁금하군.”
검을 집은 지훈과 달리, 가벡은 얇은 사다리꼴 모양 몽둥이를 들고 붕붕 휘두르고 있었다.
“한 번 부딪쳐 보던가.”
“네 검인데 그래도 되겠나?”
어차피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구입한 물건이었다.
애정 같은 거 있을 리 없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시험해 볼까.”
결재 떨어지자마자 가벡이 두 무기를 부딪쳤다.
깡!
그 결과 D등급 아티펙트가 박살났다.
곤봉에 작은 흠짓이 생기기는 했지만, 그게 다였다.
“이거 좋은 물건이군.”
생긴 건 그냥 쇳덩어리처럼 생긴 곤봉이었지만, 얼마나 단단한지 C등급 이상 되어 보였다.
‘아니 무슨… 창고에 C등급 아티펙트가 널려있어?’
이왕 부러진 김에 검도 한 번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이미 반쪽 난 D등급 아티펙트를 검에 내려쳤다.
깡!
결과는 이번에도 똑같았다.
D등급 아티펙트가 몽당연필 마냥 짧아졌다.
‘여왕의 은혜 대용품으로 쓰면 되겠군.’
검이기에 던지는 데에 쓰기는 불가능할 것 같았지만, 참격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뭐 그래봐야 총기류가 주 무장인 지훈에게 있어 부 무장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너는 뭐 챙길 거 없냐?”
모처럼 무기고에 도착했는데, 맨 손으로 갈 순 없었다.
민우는 근거리 전투를 전혀 하지 않았지만, 일단 C등급 이상 되는 아티펙트라는 설명에 아무거나 하나 집었다.
30cm 남짓한 손도끼였다.
그나마 방해가 덜 된다는 이유로 선택한 것 같았다.
일행은 추가로 더 가져갈게 있나 잠시 고민했다. C등급 아티펙트가 눈앞에 10개 이상 널려있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하지만 섣불리 무기를 챙기는 사람은 없었다.
무게도 무게지만, 부피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일 처리하고 느긋느긋 챙겨도 된다. 포기해.”
그 외에 특별한 건 보이지 않았다.
건축 당시 사용했던 걸로 보이는 건설 기계가 있었지만, 이미 기능 정지된 상태였다.
“이거 온전한 상태잖아요. 아마 전원 스위치만 올리면 바로 작동할 것 같은데요.”
“그걸 켜서 뭐해?”
“켤 필요는 없죠. 근데 온전한 상태니까 들고 나가면 떼돈 벌걸요?”
여태 만난 로봇들은 전부 들고 가기 애매한 녀석들이었다.
먼저 공격해 왔기에 작살을 내놓은 터렛과 경비 로봇은 당연했고, 올텅이나 제어실 로봇 같은 경우 함부로 만지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반면 건설 기계는 그저 전원이 꺼져있을 뿐이었다.
“지랄을 해라, 지랄을. 딱 봐도 3M는 되어 보이는데 저걸 어떻게 들고 가.”
“켜서 타고 다니면….”
“벌레마냥 밟히지만 않으면 다행이겠다, 이 새끼야.”
“그, 그렇죠. 그냥 농담이나 해봤어요.”
결국 건설 기계를 포기하고 등을 돌렸다.
굳이 들고나가지 않아도, 추후 연구기관에 제보하면 어차피 전부 다 발견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4일째 야영은 제 2번 창고 안에서 했다.
오랜 시간 머물렀음에도 경비 로봇이나 함정 같은 게 보이지 않았기에, 일행은 오래간만에 편한 마음으로 쉬었다.
“이봐, 이거 술인데?”
그 와중에 가벡이 포식하겠다고 보관 식량을 이거저거 집어 먹었는데, 그 중 술을 발견했다.
독특하게도 주먹만 한 약병 같은 용기에 담겨 있었는데, 맛이 쓰지도 달지도 않아 오묘했다.
술 같지도 않으면서도, 술 같다고 할까?
취하는지도 모르고 훅 갈 것 같았기에 몇 모금만 마시고 그만뒀다. 반면 가벡은 계속해서 술을 들이부었고, 머지않아 시체마냥 풀썩 쓰러졌다.
말릴까 싶기도 했지만, 다들 정신적으로 지친 상태였기에 내버려 뒀다.
“저런 거 따라하지 마라. 위험한데서 취하면 그냥 죽는 거다. 그러니까 이제 술잔 내려놔라. 적당히 먹었잖아.”
민우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술잔을 내려놨다.
“맛있네요.”
“원하면 몇 병 챙겨. 애주가들한테 팔면 프리미엄 잔뜩 붙여서 팔 수 있을 거다. 부피도 작으니 챙기기도 용이해 보이네.”
발렌티노 18년산, 임펠리카 24년산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FS 주류 10,000년산 이었다. 돈 좀 있는 애주가라면 천만금을 주고라도 한 모금 마셔보려고 달려들겠지.
귀한 물건이라 생각하니 순간 입에 침이 돌았으나, 이내 떨쳐버렸다.
아무리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만, 본디 산에서 술을 과하게 먹으면 실족하기 좋은 법이었다.
☆ ☆ ☆
편안한 마음으로 셋 다 만족스러운 잠자리를 가졌다.
창고에 식수가 많았던 터라, 다들 대충이나 물로 몸과 머리를 헹궜다.
단지 차가운 물로 몸을 닦았을 뿐인데도, 일행 사이에 훈훈한 분위기가 흘렀다.
남은 시간. 44시간 (약 2일)
‘조금은 서두를까.’
☆ ☆ ☆
유적 진입 5일차.
창고 약 8시간 이상 푹 휴식하고 밖으로 나왔다. 편안한 마음도 잠시. 얼마 이동하지 않아 바로 전투가 벌어졌다.
“앞에 거미형태 하나, 개 형태 하나!”
가벡이 말하자마자 지훈이 바로 거미 형태 기계에게 유탄을 날렸다.
투웅 -
콰과광!
마음 같아서는 와장창 쏟아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M33의 연사속도는 초당 2발이었다.
게다가 후폭풍으로 시야까지 제한된 상태라 탄약 낭비 우려가 있어 함부로 쏘지도 못했다.
“민우, 개 형태가 튀어나오면 바로 갈겨! 어느 정도 폭발은 가벡이 막아줄 거다!”
각성자가 둘이나 있었기에 가능한 무식한 방법이었다.
사실 이 상태라면 후퇴하는 게 옳았지만, 가벡과 지훈 정도의 힘이라면 근접전을 벌여도 상관없었다.
“알겠습니다!”
텅텅텅텅!
말이 끝나자마자 개가 연기를 뚫고 튀어나왔다.
민우는 그걸 확인하자마자 MP5를 연사로 갈겼다.
콰콰콰콰쾅!
겨우 9mm짜리 소형 폭발 마력탄이라지만, 그걸 비슷한 위치에 3~5발 연속으로 맞으면 얘기가 달랐다.
초탄은 살짝 밀어내는 정도에 그쳤지만, 두 번째 발부터는 연약한 장갑을 뜯어내고 회로 위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혔다.
결국 개 모양 기계가 바닥에 긴 궤적을 그리며 쓰러졌다.
‘끝났나?’
안심하기도 잠시.
티티티티팅!
팅!
가벡과 지훈의 외투에 총알이 박혔다.
아마 거미 기계가 아직 제압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행히 입구에서 쐈던 것만큼 강력한 건 아닌지, 모두 막아낼 수 있었다.
“쏴!”
아직 시야가 흐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M33와 MP5에서 순식간에 유탄과 마력 탄환이 쏟아졌다.
투웅 -
타탕!
콰콰쾅!
연이은 폭음과 함께 화끈한 열기가 전해져왔다.
‘빌어먹을 기계새끼. 이 정도면 확실하게 끝났겠지.’
예상대로 추가 공격은 없었다.
이후 1시간 정도 더 걷자, 휘황찬란한 복도가 나타났다.
마치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복도 벽에는 벽화가 잔뜩 그려져 있었으며, 함정 같은 것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FS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그림들을 훑으며 전진했다. 그리고… 유적 진입 102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 panipaik (기록실)
설명에 따르면 도굴꾼을 거르기 위해 함정을 설치했다고 했다. 아마 여기까지 왔다면 더 이상 위험할 건 없으리라.
안전할거라는 확신을 하고 문을 열었다.
쉬이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