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적 진입 -->
연기가 지나나자 너덜너덜해진 기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행히 한 발로 끝난 건가.’
혹시 폭발에 저항이 있을까 걱정했거늘, 다행이었다.
이후 추가 공격이 있을까 주변을 경계했지만, 다행히 다른 기계가 나타날 기색은 보이질 않았다.
“형님, 괜찮으세요!?”
민우가 급히 다가와 지훈의 상태를 물었다. 가방을 뒤지는 모습이 구급약을 찾는 모양이었다.
“어. 괜찮아. 약 집어넣어 둬.”
민간인으로 치면 빈사에 해당하는 관통상이었다. 반면 재생을 가지고 있는 지훈은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슬러그 탄 같은 걸 맞았다간 내장이나 뼈가 걸레가 되지만 관통상은 상처 부위가 적었기 때문이다.
“아니 총에 맞았는데 어떻게….”
민우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설명할 것 없이 그냥 손만 휘적거려 물렀다.
그래도 혹시 몰라 약을 꺼내 기다리는 민우였지만, 다행히 그 약을 사용할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약 2분 정도 지나자 출혈이 멈췄고, 10분 쯤 지나자 새살이 돋아났다.
“강화계 능력인 모양이지?”
가벡은 재생 능력을 겪어봤는지, 시큰둥하게 물었다.
“아아.”
거짓말 할 생각은 없었기에, 긍정도 부정도 아닌 회색빛 감탄사를 내뱉었다. 가벡은 그걸 긍정으로 인식했다.
“한 번 상대해 봤는데 정말 까다로운 녀석이었지. 멀리서 아무리 총을 쏴재껴도 죽지를 않더군.”
이후 ‘그래서 입안에 수류탄을 박아 넣었어. 그제야 죽더군.’ 하고 가벡이 반쯤은 자랑하듯 말했다.
“이제 괜찮아. 다시 출발한다. 사주 경계하며 걸어. 뭐 이상한 거 보이면 바로 쏴라.”
삼각형 대형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선두에는 지훈이 섰고 좌측 날개에 가벡, 우측 날개에 민우가 뒤따랐다.
입구가 어디 있는지 몰랐기에 원 모양을 그리며 바깥 둘레부터 훑으며 움직였다.
“이거 굶어 죽은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이동 중 민우가 시체를 발로 휘적거리며 말했다.
짐이 하나도 없는 걸 봤을 때 자살하러 온 미아로 보였으나, 특이하게도 옷에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었다.
아마 원통형 기계, 터렛에 의해 사살된 모양이리라.
“여차하면 우리도 저 꼴 된다. 조심해.”
유적의 입구는 공간 맨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다.
다른 발판과는 고저 차이는 없었지만, 양각으로 벙커 같은 표시가 되어 있었기에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어떻게 열지?’
문제는 그 입구를 열 방법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힘으로 열려도 해봐도 지레를 넣을만한 틈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C4를 사용하려는 찰나, 반지가 작게 진동했다.
우으응
- 반지를 유적 입구에 가져다 대 주십시오.
순순히 가져다 대자 발판이 반응했다.
쿠구구구구구….
소리로 보건데 발판 아래에서 뭔가 솟아오르는 것 같았기에, 일행은 5M 정도 뒤로 물러났다.
혹시 터렛이 나올지도 몰랐기에, 무기를 들고 경계했다.
다행히 그런 일 없이 사람 열댓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승강기가 나타났다.
“들어… 가야겠죠?”
민우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하지. 따라와.”
모두 올라타자, 승강기가 자연스럽게 하강했다.
쿠구구구구구…
낡아서 추락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잠시.
승강기는 만년이나 방치됐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게 내려갔다. 게다가 승강기 안에 인공적인 빛이 있는 걸 봤을 때, 전원도 완벽한 것 같았다.
“거의 다 온 것 같다. 가벡, 방패로 막아.”
문이 열리자마자 공격당할 수 있었기에 선택한 방법이었다.
“만약 적이 지근거리에 있으면 절대 쏘지 마라. 후폭풍 때문에 우리가 죽는다.”
좁디좁은 승강기 안에 셋이 몰려있는 상황이었다. 나란히 어깨동무 하고 폭사할 수 있었다.
대신 적이 지근거리에 있으면 방패로 밀어낸 뒤, 지훈과 가벡이 아티펙트로 처리하기로 했다.
띵.
도착했다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와 함께 갓 성인이 됐을 법한 여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뭔…!’
순간 당황한 지훈과 달리, 가벡은 명령받은 대로 전혀 망설임 없이 방패로 여자를 후려쳤다.
각성자가 온 힘을 담아서 휘두른 일격이었다.
방패에 가시가 박혀있지 않다지만, 일반인이라면 사망할 수도 있는 강력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텅!
방패는 금속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막혀버렸다.
가벡은 당황하지 않고 바로 E등급 아티펙트로 여자의 목을 찔렀으나, 그나마도 ‘텅‘ 소리와 함께 막혀버렸다.
“Tere. Ma olteong Clerk vastutab rekord panipaik kirjelduse. (어서오십시오. 저는 기록보관실 안내를 맡고 있는 올텅입니다.)“
반격이 올 거라는 예상과 달리, 여자는 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잠깐, 멈….”
대화가 가능할 것 같아 가벡을 제지했지만, 가벡은 이미 팔을 휘두른 후였다.
이번에는 아티펙트가 여자의 입 속으로 들어갔고…
깡!
깨져버렸다.
“어?”
애병이 박살나자 가벡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멈춰. 적의가 없어 보인다.”
어차피 무기가 없어져 싸울 수도 없는 상태였기에, 가벡은 순순히 뒤로 물러섰다.
“Analüüs keeles. Valmis. (언어 분석 중. 완료.)“
올텅이 이번에는 한글로 다시 한 번 인사했다.
“저는 해당 기관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매우 단단하게 설계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파괴하려 할 시 제한적 관리자 권한으로 방문자님을 배제하겠습니다.”
감정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무덤덤한 경고가 떨어졌다.
일단 당장 싸울 필요는 없어 보였기에, 지훈은 싸울 생각이 없음을 보여줬다.
그제야 서기관, 올텅은 다시 감정을 보이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방문자님.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들어오지 말라며 터렛까지 설치해 놓은 주제에, 승강기에서 내리자마자 안내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일단은 올텅의 말에 대답했다.
“첫 번째 자손들의 기록을 찾고 있다.”
기록이라는 말에 올텅의 입에서 작은 기계음이 흘렀다. 뭔가 사고 회로에 변화가 생긴 것 같았다.
“반갑습니다, 선택받은 자님. 기록실 위치가 저장된 내비게이션을 전송하겠습니다.”
올텅의 손바닥이 갈라지며 작은 기계가 튀어나왔다.
사람 모습을 하고 있던 탓에, 생살이 갈라지는 모습이 연출 되서 조금은 그로테스크해 보였다.
기계를 집어 들자 올텅은 그제야 승강기에서 비켜섰다.
“기록실로 향하는 길은 내비게이션 안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외 질문사항이 있으면 여쭤봐 주십시오.”
일단 당장 급한 건 없었기에 승강기 밖으로 나왔다.
마치 SF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깔끔한 복도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 모습이 ‘유적‘이라는 단어와는 영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다행히 지금 당장은 외길로 보였기에, 길을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눈에 거슬리는 게 하나 있었으니…
복도에 백골이 하나 누워 있었다.
“저건 뭐지?”
“방문자입니다. 현재 전원이 고갈된 상태입니다.”
올텅은 마치 백골이 기계라도 되는 것 마냥 얘기했다.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몰랐으나, 아마 밖에 나갈 방법을 찾지 못하고 굶어 죽은 것처럼 보였다.
2초짜리 싸구려 동정을 던져줬다.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나?”
“도굴꾼을 막기 위한 함정 및 방어 프로세스가 가동 중입니다.”
안내역이 있어서 편하게 가져올 수 있겠거니 했거늘,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네 권한으로 제거할 수는 없나?”
“최상위 관리자 권한이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현재 최상위 관리자님께선 기록 보관소 내를 배회하고 계십니다.”
배회?
이상했다.
보통 사망하거나, 죽은 사람에게는 ‘배회‘라는 단어를 쓰지 않기 때문이었다.
“최상위 관리자도 혹시 기계인가?”
“아닙니다. 그 분의 육체는 딱딱한 기계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영혼이 깃들어 있습니다.”
얼핏 듣기로, 첫 번째 자손 중 몇몇은 시간을 초탈할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었다. 아마 그런 존재겠지.
‘아마 그 관리자 녀석을 만나면 일을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쵸푸므자가 보낸 지훈이 ‘선택받는 자’가 맞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큰 상관은 없었다.
수틀리면 협박해서 권한을 뺏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 관리자라는 녀석도 배회하고 있다고 하니,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시간이 많다면 조금 우회하더라도 관리자를 찾는 쪽이 안전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식량과 식수도 제한되어 있거니와, 아쵸푸므자와의 거래 기간도 신경 써야 했다.
결국 강행돌파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는 이동했다.
아니, 이동하려고 했다. 올텅이 붙잡지만 않았으면.
“부탁이 있습니다.”
올텅은 일행에게 음식이 있냐고 물었다. 있기야 했지만, 도대체 그게 왜 필요할까 싶어 되물었다.
“제 친구의 전원을 복구시켜야 합니다.”
올텅이 백골을 내려다봤다.
아마 생명체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일어난 사고 오류 같았으나, 굳이 정정해 줄 생각은 없었다.
가끔은 지독한 꿈이라 할지라도, 지옥 같은 현실보단 나을 때도 있기 때문이었다.
“민우, 칼로리 바 하나 줘.”
민우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가방에서 칼로리 바를 꺼내 올텅에게 건네줬다.
“아…?”
올텅이 멍 하나 바라만 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물건이라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모르는 것 같았다.
결국 민우가 어떻게 먹는 건지 설명해 주고 나서야, 올텅은 백골 치아 주변에 칼로리 바를 문댔다.
“감사합니다, 선택받은 자 님. 부디 안전한 발굴되시길 바랍니다.”
올텅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가지. 뭐가 나올지 모르니까 주의해라.”
일행은 그렇게 올텅을 내버려 두고 기록실로 향했다.
위에서 입구를 찾을 때와 대열을 조금 바꿨다.
이번에는 방패를 든 가벡이 선두에 섰고 좌측 날개에 지훈, 우측 날개에 민우가 섰다.
“여기서 부상당하면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무조건 몸 사려라. 알간?”
“걱정마라.”
“예, 형님.”
입구에서 갑자기 터렛이 솟은 경험을 했기 때문일까?
일행 모두 긴장 상태를 늦추지 않았다. 고요한 유적 복도 사이로 셋의 걸음 소리만 울렸다.
온 몸이 쫄깃해지는 아찔한 시간이 약 30분.
경계하며 걸은 탓에 금방 지쳐버렸다.
“빌어먹을,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고요해. 여기에 뭐가 있긴 한 건가?”
가벡이 방패를 매만지며 투덜거렸다. 투사인 그로써는 아마 이 긴장감이 미칠 만큼 싫었던 모양이다.
“아무 일 없는데도 생각보다 너무 빨리 지치네요.”
그럴 수밖에 없었다.
3kg이 넘는 쇳덩이를 들고 어디서 뭐가 튀어나와도 반응할 수 있게 집중력을 끌어 올려야 하는 게 경계였다.
평소 걷는 것과 몇 배는 더 힘들게 당연했다.
“이러고 이동하는 게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군.”
투덜거리고 있던 찰나…
텅, 텅, 텅…
복도 건너편에서 쇳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