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80화 (80/173)

<-- 믿을 수 없는 거래상대. -->

하루를 꼬박 이동했음에도 FS의 유적은 보이질 않았다.

‘생각보다 깊은 곳에 있다.’

거리로는 약 20km 정도였지만 지형 문제 때문에 우회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속도라면 내일 저녁쯤이면 도착할 수 있겠군.’

남은 시간은 약 150시간(6일 남짓).

식량과 식수 역시 돌아올 것을 생각해 넉넉히 챙겼으니 딱히 시간에 쫓길 일은 없었다.

‘저번처럼 바퀴벌레 잡아먹으면서는 못 간다.’

지훈은 신진대사가 빠른 터라 음식이 없으면 남보다 2배 더 빠른 속도로 탈진했고, 민우는 굶주릴 경우 면역력이 약해져서 질병에 걸릴 위험이 있었다.

가벡은 뭐… 농담 조금 섞어서 철 씹어 먹거나, 아군을 잡아먹을 놈이었다.

“곧 해가 질 것 같은데, 어쩔 거지?”

가벡이 슬그머니 물어봤다.

밝는 밤눈을 가진 버그베어와 달리, 밤눈이 어두운 인간을 배려하는 것 같았다.

“야영하기 좋은 위치가 보일 때 까지 이동한다.”

“눈은?”

대답할 것 없이 마법을 시전 했다.

“valgus(빛).”

습작 954번이 작게 진동하는 듯싶더니,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 ☆ ☆

“오늘은 여기서 쉬지.”

일행은 커다란 바위를 야영 장소로 결정했다. 마치 사다리꼴 같은 모양을 한 모양이었다.

바닥이 딱딱해서 좋은 잠자리는 아니었지만, 기어 올라올만한 입구가 하나라 안전해 보였다.

“ilutulestik(불꽃)!”

습기를 머금은 나무가 연기를 뿜어내며 불에 휩싸였다.

숲 한가운데서 불을 피웠다가는 위치가 노출 될 위험할 수도 있었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여기는 자살숲이었다.

강도도 사람인데, 굳이 위험천만한 자살숲 심부까지 들어올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주친다고 해봐야 폐품업자나 야생 짐승이 다였다.

그런 녀석들은 전부 덤벼봐야 이쪽의 압승이다.

“신기하군. 주술인가?”

“마법, 새끼야. 마법. 주술은 또 뭐야?”

“적의 심장을 먹어 수명을 늘리거나, 오줌을 발라 병을 낫게 한다. 우리 부족에도 솜씨 좋은 주술사가 하나 있었지.”

주술사라기 보단 사짜 느낌이 났지만 그러려니 했다.

애초에 마법을 보지 못한 사람이 ‘에이, 그거 다 구라 아니야?’ 하는 것처럼, 세드에서는 사람 상식 구부러지는 게 일상이었다.

실제로 소말리아에서도 오우거들이 맨 몸으로 탱크를 짓밟고 다니는데, 소문만 들어서는 믿지 못할 내용이지 않던가.

“신기는 하지만, 직접 겪어보고 싶지는 않군.”

“너도 아품자인가 뭔가 하는 주술사와 거래를 한 모양이던데?”

“그래. 칼콘의 팔과 다리를 돌려놓으라고 얘기했다.”

가벡이 흥미롭다는 듯 이빨을 매만졌다.

“믿을 수 있는 자인가?”

쉬이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믿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아쵸푸므자는 정체부터 시작해서 시키는 일 까지 모조리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이었다.

공생관계를 구축해 놓는 편이 이익이 되는지라 잡무를 처리해 주고 있지만, 때가 되면 서로 등을 돌려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따라와 준 사람에게 괜한 불안을 심어줄 필요는 없다.

입에 회색 빛 거짓말을 담았다.

“믿을 수 있다.”

아쵸푸므자는 믿을 수 없었지만, 실력은 믿을 수 있다. 실제로 본인 입으로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형님, 솔직히 우리끼리니까 얘기하는 건데 말입니다. 저는 그 년 이상합니다. 무서워요.”

보초를 서던 민우가 갑작스럽게 끼어든 것은, 지훈이 믿을 수 있다는 말을 꺼낸 때였다.

“그 여자, 마법사라면서요. 솔직히 마법사 종자들 전부 다 마음에 안 들지만… 그 년은 특히 더 그래요.”

이상한 언어를 쓰는 것도 그렇고, 그 강력한 차원 여행자가 바로 고개를 조아리며 벌벌 떤 것도 그랬다.

“나도 그 새끼 마음에 안 든다. 네 마음 이해해. 하지만 사정상 어쩔 수 없이 같이하는 것뿐이다.”

“네… 뭐 어차피 저도, 형님이랑 함께해야 하니까 군말 없이 임무는 하지만… 저번에 갔던 거기는 도대체 어디에요?”

주머니 차원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아쵸푸므자가 무슨 마법을 썼는지 아는 지훈과 달리, 민우는 아무것도 모르고 일단 들어가기만 했다.

소인족, 마왕이라 불리는 일반인, 아쵸푸므자 모양을 한 순금상, 일행을 천사라고 부르는 기행.

모조리 이해할 수 없었겠지.

이에 민우는 궁금증이 하나 생겼다.

‘인간이 맞긴 한가?’

현재 인간 중 가장 강력한 마법사는 아이덴티티의 전투 마법사 ‘던칸 가루다‘ 였다.

인도 사람으로, 천부적인 재능으로 단 한 번의 전투도 치루지 않고 재능 하나로 유일무이한 마법 등급 S를 차지한 세기의 천재였다.

“그 사람도 장거리 공간이동은 못 한대요. 아니, 할 수는 있지만 국가 단위로 뛸 수는 없다구요.”

하지만 아쵸푸므자는 했다.

심지어 국가 레벨이 아닌 차원 레벨의 마법을 부렸다.

“지금으로썬 나도 모른다. 말 돌리는 게 아니라 진짜 몰라. 솔직히 나도 그 녀석이 시킨 일 하면서 꺼림직 하다.”

그래서 아쵸푸므자가 관련된 일에는 빠져도 좋다고 얘기했던 지훈이었다.

“언제나 얘기하지만, 내 개인적인 일이다. 돈도 못 주니까 빠져도 좋아. 아니, 어떻게 보면 빠지는 게 당연한 거다.”

다음부터는 알아서 하겠다는 말이었지만, 민우는 못들은 척 ‘그냥 그렇다구요.’ 하고 넘어가 버렸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딱히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

단지 가벡이 잠들기 전 뼈있는 말을 내뱉었을 뿐이었다.

“주술사와 엮이면, 항상 끝이 좋지 않더군. 심장을 먹어 수명을 늘린 녀석은 미쳐버렸고, 오줌을 발라 병을 치료한 녀석은 고자가 됐지.”

왠지 모르게 섬뜩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주술사들의 속은 알 수 없지. 그럼에도 그 안에 독이 있을지, 꿀이 있을지 확인해보고 싶다면, 선택은 언제나 네 몫이다.”

☆ ☆ ☆

평화로운 밤이 지나갔다.

이름 모를 새가 우는 소리와, 크기가 50cm는 될 법한 곤충들이 날개를 비비는 소리만 가득했다.

☆ ☆ ☆

다음 날.

약 6시간 정도 더 이동하자 일행은 숲 사이에 위치한 기묘한 공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미로처럼 얽혀있는 나무들 사이에 위치한 아무 것도 없는 무의 공간은 마치 자연이 뒤틀어진 듯 이질감만 가득했다.

숲과 공간의 경계는 마치 자로 잰 것처럼 깔끔했고,

공간 안에는 풀 한 포기 없는 회색 바닥만 죽 늘어졌으며,

군데군데 백골이 된 시체들만 몇 구 나뒹굴 뿐이었다.

아마 자살하려 들어왔다가 급히 마음을 바꿨으나, 길을 잃고 헤매다 좌절하며 죽은 불쌍한 영혼들이리라.

인공물을 발견한 마음에 일말의 희망을 품었을 것 같지만, 그 희망을 싹 틔우지 못하고 서서 굶어 죽은 것처럼 보였다.

“여길 들어가자고? 난 그 의견 반댄데.”

가벡이 팔짱을 끼곤 킁 하고 콧소리를 내뱉었다.

그도 그럴게, 딱 봐도 발을 들였다가는 곱게 못 나갈 것 같은 광경이었다.

‘어쩌지?’

고민했으나, 말 그대로 잠시였다.

장비 값이나 이런 거 다 때려쳐도 괜찮았으나, 지금 여기서 등을 돌리면 칼콘은 영원히 장애인으로 살아야 했다.

“싫으면 돌아가라. 어차피 하루 밖에 안 지났으니까, 왔던 길로 돌아가면 될 거다.”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계속 강조했듯, 이건 본인과 아쵸푸므자의 거래지 보상을 줄 수 있는 일반적인 의뢰가 아니었다.

대답을 기다렸지만 침묵만 돌아왔다.

같이 간다는 뜻이었다.

“곰 대가리에 좆 들이미는 느낌이다.”

가벡은 인중을 들어 올리며 공간 안으로 발을 올렸고,

“의뢰 나갈 때 마다 죽을 위기 2번씩 넘기는데 뭘 또….”

민우는 농을 내뱉으며 공간 안으로 발을 옮겼다.

구구구국…

셋 다 공간 안으로 들어가자, 작은 진동과 함께 바닥이 작게 일렁거렸다.

뭐가 튀어나올지 몰랐기에 M33을 꽉 쥐었다.

기대와 달리 큰 변화는 없었다. 단지 매끈했던 바닥에 룬어와 함께 온갖 이상한 그림들이 나타났을 뿐이었다.

- Me ei suutnud kohaneda. Kuid jättes lõpliku rekord latecomers. (우리는 적응에 실패했다. 하지만 다음 희생자들을 위해 마지막 기록을 남긴다.)

- Ees rada ja me oleme elanud, namgyeotgo tõendeid kohustuse rikkumise. Lõpuks, pärast seda, kui on haaranud tõeline ostja ei tohiks kunagi teha. (그 내용으로 우리들이 살아온 흔적이자, 개척의 증거를 남겼고. 마지막으로 다음 희생자들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실수를 담았다)

- Aga me oleme valinud, kui teil on pidu, ei ole lihtsalt võimalik teada, kas röövlid. Nii oleme valmis väike test. (하지만 우리는 그 기록을 누구에게나 열람하게 할 순 없었다. 인과율을 뒤틀어 버릴 수 있는 강력한 기록이었기에, 도굴꾼들을 대비해 약간의 시험을 준비했다.)

- Lõpuks hoiatus. Kui oled ise valinud ja soovid minna tagasi kohe. Ees ei ole maa tapja veeta.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당신 혹은 당신 종족이 파멸의 지식을 얻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되돌아가기를 권장한다.)

난데없이 룬어가 튀어나오자 당황스러웠다.

‘룬어는 마법사들의 언어일 텐데, 왜 고대종의 유적에 룬어가 보이는 거지?’

마도학이나 고고학에 관심이 없던 터라 정확한 지식은 알 수 없었음에도,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항상 이랬다.

아쵸푸므자의 일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알려고 해봐야 이해할 수도 없거니와, 물어도 대답해 주지 않았기에 모르는 게 나을 거라 몇 번 이나 되뇌었음에도… 항상 이런 식으로 뭔가 찜찜한 꼬리를 남겼다.

점점 더 늪에 빠지는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혼자서 정리하고 있자니 민우가 끼어들었다.

“올라가자마자 발동하네요. 그림 같은 것도 그려져 있네.”

룬어 옆에 문맹을 위한 설명으로 보이는 그림이 있었다.

사람 모양을 한 존재가 초원에 서있는 그림이나, 집을 짓는 그림부터 뭔가 폭발하는 그림도 보였다.

폭발 이후 그들은 지하로 들어가 생활을 한 것 같았다. 마치 개미 같은 단면도가 보였고, 많은 존재들이 뭔가 열심히 작업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거 왠지 세드 고고학계에 엄청난 돌풍을 몰고 올 수도 있는 발견을 한 것 같은 기분인데요…?”

민우가 그림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게, 엄청나게 긴 문서 외에도 FS들의 생활을 자세히 묘사한 그림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아마 보사나 연구 기관에 제보한다면 엄청난 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도리어 위험하다는 뜻 같은데.”

학문적으로 접근한 민우와 달리, 가벡은 경고를 의미하는 그림을 유심히 살펴봤다.

도굴꾼과 대비에 관련 된 내용 바로 옆이었다.

그림에는 도굴꾼으로 보이는 생명체가 이름 모를 기계장치에 꿰뚫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함정이 있는 모양이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유적 안에 들어가면 조심들 해.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직경 100M는 되어 보이는 허허 벌판에서 뭐가 튀어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 입구만 찾으면 될 것 같다.”

“형님, 저기 바닥에서 뭐 올라… 오네요?”

민우가 2시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돌아보자 바닥면이 상승하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타원형의 기계장치가 이쪽으로 빙글 돌고 있었다.

위-이-이-이-잉!

쒝!

타원형 기계 장치가 팬 돌아가는 것 같은 소음과 함께 붉은 색 뭔가를 뱉어냈다.

퍽!

맞았다.

복부가 관통됐다.

‘이런 씨발…!’

짙은 고통과 함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그 와중에 관통됐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틀어박혔다면, 운동 에너지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을 게 분명했다.

- 신체를 재생합니다. 신진대사가 가속됩니다.

순간 정신을 잃을 뻔 했지만, 애써 진정하고는 외쳤다.

“엎드려!”

가벡과 민우의 자세가 낮아지는 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투웅 -

M33의 방아쇠를 당겼다.

40mm 고폭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타원형 기계 주변에 정확히…

콰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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