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탄과 EMP -->
벤츠를 몰며 필요한 물건들을 대충 정리해 봤다.
‘일반 탄환이나 관통탄 같은 건 쓸모없다. 폭발물 위주로 구입해야 돼. 혹시 전원계통이 전기라면 EMP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제일 먼저 향한 곳은 각성자 물품 거래소였다.
페커리 이후로 한 번도 찾아본 적 없던 까닭인지, 정말 오래간만에 찾은 느낌이 들었다.
“아파트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쓸 데 없이 크군. 이래서야 주인이 건물에 사는 게 아니라, 건물이 주인을 내려다보는 꼴이지 않는가?”
가시 산맥 밖으로는 나가본 적 없는 가벡이었다. 아직 인간 사회에 적응이 덜 된 모양이리라.
오크나 고블린, 코블트까지는 인간들 사이에 그럭저럭 섞여 지냈지만, 버그베어는 볼 일이 적었던 이유에서였을까?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이쪽으로 모였다.
가벡은 불편했는지, 눈을 마주치는 사람마다 이를 드러내며 가볍게 으르렁 거렸다.
“얌전히 있어라, 괜히 가디언 들러붙으면 귀찮다. 너 거주권도 없잖아?”
괜한 시비 붙었다가 불시검문이라도 당했다간 추방당할 우려가 있었다.
“내가 이길 수 있다. 그딴 녀석들 전부 때려 눕혀주지.”
“테이저 맞고 오줌 지려봐야 그딴 말 안 하지. 쯧.”
테이저가 뭐냐고 묻는 가벡이었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느긋하게 쇼핑할 시간 따위 없었기에, 바로 총기 전문점으로 향했다.
“어서오십쇼, 뭘 드릴까요?”
“유탄 발사기 하나 구입하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헌팅은 소총 몇 정과 수류탄 몇 개. 심해봐야 크레모아나 C4 정도 쓰는 게 다였다. 유탄 발사기는 대형 몬스터 사냥 외에는 잘 쓰이지 않는 물품이었다.
주인이 물었다.
“어떤 용도로 쓰시려고 하십니까?”
“기계 박살낼 때 쓸 거. 장갑차도 씹어 먹을 수 있는 녀석으로 부탁하고 싶은데.”
기계라는 말에 주인의 눈이 초승달을 그렸다. 전쟁도 아닌데 유탄 발사기를 기계에 쏜다?
강도질에 이용 될까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물론 걸리지만 않는다면야 전혀 상관없었지만, 본인 가게 물품으로 강도질 하다 걸리면 최소 영업정지에서 심하면 징역을 살아야 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일행에 버그베어까지 끼어있었기에 의심 사기 딱 좋은 그림이긴 했다.
“각성자 등록증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지갑을 꺼내 등록증을 보여줬다.
- F등급 각성자. 김지훈.
바쁜 생활에 갱신을 안 해서 F등급이라 적혀있었다.
“못 팝니다. 다른 곳 가보세요.”
고등급 각성자라면 강도짓 해봐야 남는 게 없으니 안심하고 팔아도 됐다. 하지만 저등급이면 강도질 할 가능성이 농후했으니 저런 반응이 나온 거였다.
“갱신 안 해서 그러니, 감지기 찍어 보쇼.”
주인은 영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감지기를 들었다.
삐빅.
- C등급 7티어.
물론 그 의심스럽다는 표정은 감지기가 작동됨과 동시에 날아갔지만 말이다.
C등급 7 티어면 전문 헌팅 길드에서 대형 몬스터를 사냥 다녀도 될 레벨이었다. 그런 사람이 가디언에게 쫓길 위협을 무릅쓰고 강도짓이나 하고 다닌다?
굴착기로 흙장난 치는 꼴이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중화기는 좀 신경 쓰여서요.”
주인은 가볍게 사과하고는 이거 저거 물건을 소개해줬다.
- M80
“베트남 전 때 개발된 무기입니다. 단발이긴 한데, 유탄발사기 치고 명중률도 그럭저럭이고 사거리도 300~400 정도 나옵니다. 지금도 제식 무기로 쓰이고 있어요.”
장점과 단점이 극명한 유탄 발사기였다.
장점으로는 굉장히 싼 가격이 있었지만, 싼 게 비지떡이라고 단점도 극명하게 갈렸다.
첫 번째로 개발 당시의 기술 문제로 최소 사거리가 20M 이상이었다. 근접전에 들어갈 경우 사용할 수 없었다.
두 번째로 장탄수가 한 발이었다. 그럼 한 발 쏘고 재장전을 해야 한다는 얘긴데, 한 발로 적을 제압하지 못하면 이쪽이 당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총으로 쏘는 수류탄이라. 재밌겠군. 나 저거 갖고 싶다.”
가벡은 저런 사실을 몰랐기에 흥미를 보였다.
“돈 있냐?”
“아니.”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사 줘.”
“꺼져, 새끼야.”
“그럼 뺏으면 되겠군?”
상점 주인이 카운터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다.
금방이라도 샷건을 꺼낼 태세에, 지훈이 차갑게 웃었다.
“야만인이라 그렇습니다. 제가 잘 관리할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 M204
“총에 액세서리로 달 수 있는 유탄 발사기입니다. 단발이지만, 휴대성이 아주 뛰어나죠. 쓸 만한 무기입니다.”
설명이 딱 맞았지만, 역시 단발이라는 단점이 있었다.
게다가 이번 임무에는 소총을 사용할 일이 적었는데, 굳이 액세서리로 다는 형태를 살 필요도 없었다.
“좀 화력 좋은 물건 없소? 골렘 같은 거랑 싸워야 할지도 모르는데. 저런 물건 어디다 쓰나.”
“아, 던전 워커셨습니까. 진작 말씀하시지.”
주인은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사라지더니, 이내 수레에 박스 하나를 들고 왔다.
- M33
“미군이 이라크 전쟁에서, M80 쏴재끼다가, 요술봉에 털리고 만든 물건입니다. 무려 유탄이 6발이나 들어갑죠. 거기다 더블 액션이라 방아쇠만 당기만 연발로 나갑니다!”
화력 하나는 끝내주게 좋은 물건이었다.
RPG나 기타 유탄 발사기가 한 발 쏘고 장전하고 있을 때, 선 자리에서 6발이나 드르륵 뽑아내니 강력할 수밖에.
“1초에 2발씩 나가는데, 대장갑 열화탄, 대전차 고폭탄, 점착유탄 심지어는 연막탄이랑 섬광탄도 나갑니다!”
주인은 이 물건을 꺼낼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듯, 신이 나서 설명을 이어갔다.
대충 정리하자면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화기 중 화력 하나는 단연 으뜸이라는 얘기였다.
“그래. 남자라면 화력이지! 좋아, 저 물건이다! 당장 저걸 사라!”
가벡은 당장이라도 귀를 팔랑거리며 날아갈 기세로 말했다.
“저거 사도 네 손에 들어갈 일은 없으니까, 입 다물어라.”
저렇게 위험한 물건을 전투광 손에 쥐어줬다간 아군이고 적군이고 나발이고 없이, 나란히 요단강 건널 게 분명했다.
“저거 하나 주쇼.”
“손님, 근데 저거 가격이 좀 많이… 쎕니다.”
“얼만데?”
“5장 조금 넘습니다.”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5천만 원이면 C등급 아티펙트에 버금가는 돈이었다.
“아니 뭐한다고 그렇게 비싼데?”
“중화기에는 세금이 좀 세게 붙어서요. 아시잖습니까.”
세금이 붙는다면 석중에게 가면 조금 더 싸게 살 수도 있는 말이었다.
“잠시 전화 좀 하고 오지. 민우, 너 가벡하고 물건 좀 고르고 있어.”
대충 가게에서 떨어져서 석중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배, 난데. 거 혹시 M33 구할 수 있소?”
“미친 새끼, 화력덕후나 쓰는 물건을 네가 왜 필요하니? 그딴 물건 들고 다니다 발화 맞으면 유탄 터져서 훅 간디.”
“거 쓸 데 없는 걱정일랑 제발 좀 치우쇼. 나 뒤져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인간이, 꼭 혓바닥은 무슨 내 마누라 마냥 놀리네.”
“씹-쓰애끼. 말 하는 꼬라지 하고는. 쯧쯧. 구하려면 3~4일 정도 걸린디. 구해주랴?”
전쟁에도 쓸 수 있는 유탄 발사기 유통까지 4일.
과연 엄청난 수완이 아닐 수 없었으나, 시간제한이 있는 지금으로써는 돈 아끼자고 기다릴 수는 없었다.
“됐소. 거 이따가 EMP 폭탄 사러 갈 테니, 그거나 좀 준비해 두쇼.”
“EMP 뭔 귀신 볍씨 까먹는….”
석중이 뭐라 지껄였지만, 들을 일 없이 바로 끊어버렸다.
“M33 주쇼. 대금은 계좌로 쏴드리지.”
“어이쿠, 감사합니다. 유탄은 어떻게 드릴까요?”
“대전차 고폭탄으로 30발.”
그 외에도 일행은 몇 가지 물건을 더 구입했다.
- M33 및 40mm 대전차 고폭탄 30발.
- 혹시 모를 근접전을 위한 D등급 단검. (60cm)
- 9mm 폭발탄환 60발.
- 폭발을 막기 위한 F등급 방패.
지훈은 M33과 D등급 단검을 구입해 총 7300만 원을 지출했고, 민우는 폭발 탄환과 F등급 방패를 구입해 2000만 원을 지출했다.
“가벡이 쓸 방패는 왜 네가 사?”
“…얘 돈이 없대요. 다음 헌팅 때 까려고요.”
“받을 자신 있냐?”
민우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글쎄요 집에서 나가라고 들들 볶아도 안 나가는데, 돈은 오죽할까요. 그냥 반쯤은 포기했어요. 어차피 돈도 조금 남고….”
그러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벡은 방패를 쳐다보며 자기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며 투덜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벡은 탁월한 전투 감각을 이용한 빠른 근접전을 선호하는 투사였다.
백병전이라면 방패를 안 써도 되겠지만, 이번에는 유탄과 폭발이 빗발치는 전장이었다.
맨 몸으로 움직였다가는 폭발에 휩쓸릴 위험이 있었다.
“살고 싶으면 그냥 닥치고 들고 다녀.”
☆ ☆ ☆
그 다음으로는 석중의 가게로 향했다.
여전히 화약 냄새 사이로, 곰팡이 냄새가 났다.
얼핏 맡으면 뭔가 썩은 내가 나는 게, 시체라도 한 구 푹 숙성되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미친 새끼, 전화 그렇게 팍팍 끊을 거면 앞으로 내한테 전화질 하지 마라. 알간?”
“시간 없으니까, 오늘은 생략합시다.”
지훈이 정색하며 일축하자, 석중이 별 희한한 일 다 보겠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
“EMP는 와?”
“이번에 FS 유적 털러 가는데, 혹시 몰라서.”
“그게 뭐니?”
“아 됐고. EMP 있소, 없소?”
EMP. 전자 충격파의 약자로써, 전자 기기를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장비를 말했다.
단순히 전원을 꺼버리는 수준이 아닌 회로 폭주로 기기 자체를 망가뜨림은 물론, 안에 있는 데이터까지 전부 날려버리는 무서운 물건이었다.
원래는 핵폭발 외에는 보기 힘든 현상이었으나, 그것도 전부 옛날 얘기였다.
개척 시대에 각 국가끼리 국지전에 자주 일어났기에, 중국 정부에서 휴대용 EMP를 개발한 것.
인간 대 인간의 전쟁.
특히 군대가 끼는 전투에는 무조건 이용됐지만, 간혹 민간에 나돌기도 했다.
“없다.”
“개구라 치지 말고, 빨리 꺼내 보쇼.”
말이 나돈다지, 당연히 불법이었다.
어떤 미친 양반이 은행 본사에다가 EMP를 꽂았다고 생각해 보자. 은행이 가지고 있던 저금, 대출 관련 자료가 전부 백지가 된다.
대충 가깝게 얘기하자면, 자고 일어났더니 열심히 적금 들어놓은 통장 잔고가 0으로 변했다는 얘기였다.
더 나아가면 기업이 가진 돈이 0원이 돼서 줄도산이 남은 물론, 심하면 국가 경제에도 타격이 온다.
국가 경제체제 전복은 당연하고 폭동에 심하면 내전까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요즘에는 전부 백업한다지만, 그래도 교체 시간 동안 손실이 생긴다는 건 변함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보쇼, 할배. 누가 C4에 원격제어 걸어서 기폭 시키면 그냥 훅 가는 건데. 그런 양반이 EMP를 안 갖고 있다고? 지랄하네.”
“그래, 있다. 쓰애끼야. 거 누가 미친개 아니랄까봐 냄새 하나는 오지게 잘 맡는디.”
석중이 카운터 위로 파랑색 수류탄을 올려놨다. 생긴 게 꼭 훈련용 점토 수류탄처럼 보였다.
“이게 뭐요?”
“EMP. 까 던지면 5M 내에 전자 기기 죄다 박살난디.”
개당 750만 원에 2개 계산했다.
아무래도 상대가 상대인지라, 저번 의뢰로 받은 1억 원이 거의 다 장비 값으로 깨져 버렸다.
“근데 돼지새끼 어딨니. 걔 뒤졌니?”
민감한 내용에 민우가 덜컥거렸다.
지훈과 석중이 싸우기라도 할까 싶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지훈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말했다.
“말조심하쇼. 잘 있으니까.”
“뭔 일 있나?”
“없소. 아니, 곧 없어질 거요. 내가 전부 없었던 일로 만들 거거든.”
석중은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지만, 무시했다.
“가자. 갈 길이 멀다.”
일행을 이끌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바로 대만 개척지로 갈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