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77화 (77/173)

<-- 떨쳐낼 수 없는 동료애 -->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걷고 있으니 핸드폰이 울렸다.

헌팅 나가서 몸을 다칠까 싶은 염려에 뜯어 말리던 시연이 떠올랐다.

‘설명이라도 좀 해둘 걸 그랬나.’

뭐라고 설명하던 반대할 건 알았으나, 그래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리라.

대충 할 말을 정리하고 핸드폰을 들어보니…

‘민우?’

액정에 의외의 인물이 적혀 있었다.

“왜.”

“너 헌팅 나갈 거지?”

대뜸 튀어나온 반말에 이 자식이 낮술이라도 퍼먹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 돌았냐?”

“아니. 돌은 건 네 놈이다. 동료한테 말도 안 하고 혼자서 어딜 갈 생각이지?”

목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니, 민우가 아닌 가벡이었다.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미 다 눈치 챈 녀석에게 거짓말 해 봐야 소용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살숲으로 간다.”

자살숲이라는 말에 수화기 너머로 민우가 난리를 쳤다.

- 자살숲? 아니 씨발, 뭔 자살숲을 가! 말려, 말리라고 가벡 이 미친 새끼야!

- 거기가 뭐 하는 곳인데?

- 그냥 닥치고, 전화기 내놔!

작은 소음과 함께 민우 목소리가 들려왔다.

“혀, 형님. 접니다. 민우에요. 일단 진정을 좀 하시고 저랑 얘기 좀 해요. 네?”

자살숲으로 간다고 했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자살 명소다보니 이상한 오해를 산 모양이다.

민우는 마치 테러리스트와 협상하는 경찰마냥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 거 아니니까 호들갑 떨지 마라.”

“그럼 자살숲에는 왜 가요? 거기 아무도 안 가잖아요.”

“아쵸푸므자와 거래를 했다.”

민우가 버벅거렸다.

“그, 그 이상한 마법사요?”

“그래. 시간 없으니까 이만 끊는다.”

전화기를 떼어내려 했거늘 민우가 급히 붙잡았다.

“형님. 끊지 마세요. 할 얘기 있습니다.”

“뭔 얘기.”

“설마 혼자 가실 생각은 아니죠?”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저번 차원 여행자 때는 보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단순 칼콘 팔 다리 밖에 얻을 수 없는 의뢰였다.

돈을 주지 않으면 사람을 부릴 수 없듯, 보상을 약속할 수도 없는데 따라오라고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번 임무는 아쵸푸므자가 말하지 않았던가.

-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을 텐데?

얼마나 어려울지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적어도 저번보다 힘들 거라고 추측만 할 뿐이었다.

‘칼콘을 살리기 위해서라지만, 너무 위험하다. 민우를 데려가면 분명 부상의 위험이 있다.’

기껏 칼콘을 살리기 위해 유적에 들어갔거늘,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죽거나 큰 부상을 당해서야 의미가 없었다.

‘죽어도 상관없는 용병을 쓴다.’

이번 의외로 받은 돈을 모조리 꼴아 박는다면, 목숨 바칠 녀석들일 몇이나 구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돈에 일하는 녀석들이다 보니 중도 포기 혹은 욕심에 의한 배신 가능성이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지훈이 필요한 건 단지 기록이 다였다.

나머지 돈 되는 물건 따위 전부 줘도 상다.

‘그리고 쓸 대 없는 짓을 하면 이 쪽에서 먼저 죽인다.’

언제 어느 녀석이 배신할지 몰랐기에, 온 몸이 쫄깃한 유적 관광이 될 테지만 상관없었다.

차라리 그 편이 소중한 동료를 보상도 없이 사지로 밀어 넣는 것 보다는 훨씬 좋았기 때문이었다.

“같이 가죠. 거길 어떻게 혼자 갑니까!”

이 쪽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우가 고집을 부렸다.

“돈 못 준다. 이번에는 칼콘 걸고 거래한 거야.”

“지금 돈이 문제입니까? 그딴 거 필요 없어요!”

“안 돼. 너무 위험해.”

거절하자 민우가 거친 숨소리를 냈다.

“씨발, 애 취급하는 거 그만해요! 내가 아직도 허약한 병신 같아 보여요?”

거친 욕설과 함께 고이고이 품어왔던 진심이었다.

“나도 동료라고요! 내가 구하지 못 해서 칼콘이 다쳤는데… 내 탓도 있으니까… 씨발, 좀 돕게 해 줘요!”

거친 욕설 사이에 섞인 뜨거운 진심.

고마운 마음에 가슴이 뭉클거렸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마음만 받으마. 그럼 끊는다.”

끊으려고 하니 이번엔 가벡 목소리가 들려왔다.

- 거 한심한 새끼, 비켜봐. 내가 얘기한다.

“네 놈이 영웅이라도 되는 줄 아는가 보지? 똑똑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죽고 싶어 환장한 병신이었군.”

가벡이 대뜸 시비를 걸어왔다.

“제 3자는 빠져. 우리 일이다.”

“고블린 부랄 까는 소리 하고 앉아있군. 나도 이제 너희와 한 전차를 탔다. 내가 어떻게 제 3자가 될 수 있지?”

“몇 번 같이 싸웠다고 우쭐대지 마라, 버그베어. 난 네 놈을 한 번도 동료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떼어내기 위해 진심 반, 거짓 반 섞어 말했다.

전우애를 굉장히 소중히 여기는 가벡이니, 아마 굉장히 모욕적이게 들렸으리라. 하지만 예상과 달리 가벡은 전화를 끊지 않았다.

“상관없다. 원래 이방인이 동료가 되기 위해선 먼저 믿음을 주는 게 당연하다. 든든한 칼이 되어주지. 한 번 써 봐라. 다음부터는 없으면 허전할 정도일걸?”

쓸 대 없는 곳에서 고집이 센 녀석이었다. 결국 입씨름만 10분 넘게 하다가, 이쪽에서 먼저 백기를 들었다.

“그래서 어쩌자고, 이 새끼들아.”

- 일단 만나서 얘기하죠, 형님. 유적이면 준비할 거 많을 겁니다.

“라는 군. 어디서 기다리면 되지?”

가벡이 민우의 말을 전하며 물었다.

“빌어먹을. 내가 그 쪽으로 가지.”

☆ ☆ ☆

현재 가벡은 민우와 동거하고 있는 상태였으므로, 민우 아파트 앞에서 둘을 만날 수 있었다.

텅!

둘이 벤츠 문을 열고 올라탔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다 뒤져가는 줄 알았는데 말이지. 살아서 만나서 반갑군.”

가벡이 비꼬는 투로 주먹을 내밀었다.

이쪽도 기분이 별로였기에, 진심을 담아 주먹을 휘둘렀다.

뻑 하는 소리와 함께 가벡이 큽 소리를 냈다.

“너희 진짜 또라이 아니냐. 돈 못 준다니까? 너희 지금 공짜로 호랑이 아가리에 대가리 밀어 넣는 거야, 이 새끼들아.”

보상을 받을 수 없는데도 기꺼이 따라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돈 때문에 사람도 죽여 본 적 있는 지훈이었다.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형님이 맨날 그러잖아요. 미친 세계에는….”

“미친놈이 정상인이라고?”

“예, 그거요.”

“됐다, 새끼야. 됐어.”

욕설을 내뱉었음에도 민우는 피식 웃기만 했다.

“제 머리에 총 겨누는 사람이랑 일 같이 할 때부터, 저도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지게 되더라고요. 언제 뒤질지 모르는 인생, 안 미치고 어떻게 배깁니까?”

농까지 건네며 ‘저 죽으러 갈 수 있습니다.’ 하는 모습에 그냥 모든 걸 포기해 버렸다.

뜯어 말린다고 말려질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괜히 버리고 갔다가 혼자 자살숲으로 갔다간 도리어 그게 더 큰 일이었다.

“새끼들… 고맙다.”

“아뇨, 같이 가게 해주셔서 제가 다 고맙죠.”

결국 반강제로 가벡과 민우를 합류시켰다.

“그럼 어떤 일인가 한 번 살펴보죠.”

☆ ☆ ☆

차 안에서 이번 의뢰에 대해서 대충 설명해 줬다.

민우는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았는지 가끔 머리를 긁었고, 가벡은 아예 모르는 내용인 듯 햄버거만 우적우적 씹었다.

“첫 번째 자손이요? 마법사가 그렇게 말했어요?”

단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첫 번째 자손이라고 말했다.

“처음 듣는 말인데… 그거 혹시 퍼스트 세틀러(최초 정착자) 말하는 거 아니에요?”

퍼스트 세틀러(이하 FS)는 고고학적 개념으로, 세드에 널리 퍼져있는 FS 유적들의 주인을 말했다.

대부분 세드의 주민들은 몇몇 종 빼고는 기술 수준이 굉장히 낮았는데, FS만은 달랐다.

단지 유적 몇 개 발견했음에도 현 인류보다 훨씬 더 강력한 과학 기술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지금 인류 기술 발전 방향이 대부분 FS기술 복원 쪽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래요.”

반지도 분명 첫 번째 자손들이 매우 진보된 과학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었다.

아쵸푸므자와 관련 된 것들은 하도 이상한 것들이 많아서 넘어갔거늘, 뜯어보니 뭔가 이상했다.

“잠깐만. 정착자라니? 우리가 처음 아니었어?”

“2~3년 전 까지만 해도 그게 정설이었는데… 이번에 FS 유적에서 벽화 발견되면서 뒤집혔어요. 걔네가 우리보다 먼저라네요? 물론 지금은 모두 죽어서 없어서 확인할 방도는 없지만요.”

호기심은 풀렸지만, 그게 다였다. 처음이든 아니든 어떻단 말인가. 좋으면 좋은 거고, 아니면 아닌 거다.

“그래. 그렇다고 치고, 그 얘기는 왜 꺼낸 건데?”

“만약 첫 번째 자손이 FS를 뜻하는 거면, 그 유적 굉장히 위험한 물건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민우는 귀동냥한 내용이라 정확하지는 않을 수 있다며 설명을 이었다.

“걔네는 인류 문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세드 정착을 끝낸 상태였어요. 과학 기술이 진짜 장난 아니라구요. 아마 무인 정찰기나 터렛이 있을 수도 있어요.”

터렛. 전자동 회전 포탑.

군인들이 간혹 휴대용 터렛을 들고 다니는 건 본적이 있었지만, 그게 유적에 박혀있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

“잠깐만. 그딴 게 유적에 달려있다고?”

“그러니까 위험하죠.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유적이라면서요. 그럼 당연히 전원도 들어가 있을 테고, 터렛도 유지되고 있을 우려가 있겠죠.”

괜히 혼자 열었다가 시체가 될 수도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럼 이번에는 기계나 건조물을 상대해야 한다는 건가.’

머리가 지끈거렸다.

뛰어난 과학 기술을 가지고 있던 녀석들이라고 해서, MES 강화병 비슷한 적을 만날 거라 생각했거늘 큰 오산이었다.

“그럼 위험한 건 대부분 기계류라는 얘기군.”

“아마 만 년 전 유적이니까… 아마 생명체는 없을 거예요.”

생명체가 없다면 소총류는 힘을 쓰기 어려웠다.

관통상은 주로 장기나 육체 일부분을 훼손해 출혈을 동반한 고통을 유발하는 공격이었다.

그렇기에 마법 공학 건조물(골렘 및 기타 창조물)이나, 로봇 같은 적에게는 거의 효과가 없다고 봐야 옳았다.

차량을 생각하면 쉽다.

중요 부위를 맞으면 손상을 받기는 하나, 면적 90% 이상이 총을 맞아도 상관없는 장갑이었다.

실제로 아예 엄폐물로 쓰지도 않던가.

‘뭐가 좋을까.’

제일 좋은 건 고등급 아티펙트를 이용해 썰거나 부숴버리는 거였지만, 어려웠다.

가지고 있던 C등급 아티펙트, 여왕의 은혜는 파이로에게 박힌 채 분실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폭발물은?’

그나마 가능성 있는 방법이었다.

제 아무리 기계하고 한들, 가성비 무시하고 신금속 떡칠하지 않은 이상은 장갑이 어느 정도 하향평준화 되어 있을 터.

폭발을 버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다른 방법을 더 찾아봤지만, 딱히 여타 매력적인 수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폭발물로 정해진 건가.’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슨 과학 연구소 터는 느낌이군.”

“연구 물품 가득한 곳이니까, 반쯤은 맞겠죠.”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막막해 담배를 피우고 있자니, 민우가 씩 웃었다.

“그리고요 형님. FS네 유적은 그 자체로도 연구 물품으로 쓰여요. 아마 보사에 제보하면 돈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공짜로 일 해주는 거 아니에요.”

부담 갖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에 화답하기 위해 이쪽도 평소처럼 웃어줬다.

“그래, 새끼야. 이번에 칼콘도 원래대로 돌려놓고 돈도 잔뜩 벌자.”

“당연하죠.”

둘이 다짐을 굳히고 있자니, 가벡이 물끄러미 쳐다봤다.

“밥 다 먹었다. 너희도 지루한 얘기 끝난 것 같으니 빨리 총 사러 가지. 몸이 근질근질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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