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76화 (76/173)

<-- 그을음 냄새가 나는 거래 -->

지훈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방법을 갈구했다.

제일 먼저 인터넷을 뒤져봤다.

비록 지훈이 세드에 살며 온갖 신기술을 직, 간접적으로 접했다지만 분명 모르는 정보도 있을 터였다.

‘빌어먹을. 의수가 얼마길래 저래?’

슬쩍 뒤져본 결과 일반 의수는 가격이 저렴했지만, 기계 의수부터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일상생활까지는 단순 기계 의수로도 충분하겠지만, 지훈은 그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예전만큼 자유로운 행동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물론 칼콘 기준 자유로운 행동은 헌팅 혹은 전투였다.

‘전투용 의수 아니면 무조건 마법 공학 쪽이겠군.’

전투용 의수는 최근 군용 MES(Mechanized Exoskeleton Suit, 반자동 외골격 강화복) 연구와 맞물려 등장했다.

아무래도 사람이 탑승하는 형태의 강화복 같은 경우, 그에 대한 훈련비용 및 반응에 대한 딜레이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나온 의견이 하나 있었다.

- 그냥 팔다리 다 잘라내고 기계랑 연결하면 안 돼?

인권은 개나 준 과학 만능 주의적 미친 생각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지구는 종족 전쟁 중이었다.

인권 보다 인류의 존속이 우선시 됐던 상황이었기에, 미국이 저 미친 연구를 실시했고… 완성했다.

지금도 소말리아 혹은 브라질 개척지 같은 전쟁터에선 실제로 MES 강화병이 날뛰고 있었다.

비각성자가 기계와 과학 그리고 훈련을 바탕으로 C~B등급 각성자와 비슷한 힘을 낼 수 있었다.

현재 많은 직업 군인들이 전투를 위해 MES 수술을 받고 있는 실정이었고, 전쟁 중인 정부 역시 이를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또라이 새끼들. 사람이 무슨 전쟁 도구야?’

지훈이 얼굴을 찌푸렸다.

전투용 의수는 MES 연구에서 파생된 개념이었다.

부상당한 병사들이 MES 강화를 거부(멀쩡한 손 발 까지 모조리 잘라내야 했기에.)할 경우, 신체 일부만 ME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원래 군용 기술인지라 민간인은 절대 받을 수 없었지만, 다운그레이드 된 형태로 몇몇 환자들이 시술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가격이 얼마야. 어디 보자….’

웹 페이지를 읽다가 가격 부분에서 짜증이 팍 솟았다.

하나에 50억.

왼 팔, 왼 다리 하면 100억이라는 소리였다.

포기하고 마법 공학 의수도 찾아봤지만, 비슷한 실정이었다.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기에 다른 방향을 물색했다.

‘마법 의학이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팔과 다리가 통째로 날아간 부상이지만, 종족 전쟁과 마법 융합을 거쳐 오며 인간의 의술 역시 발달했다.

마법을 통해 뼈를 재생시킨 뒤, 체내 DNA를 토대로 인공 육성한 살덩이를 이식하는 수술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이쪽도 가격이 100억을 웃돌았다.

“씨발!”

쾅!

키보드를 내려치자, 타자 몇 개가 팝콘처럼 튀어 올랐다.

돈이야 몇 년 정도 고생하면 됐다. 하지만 위의 두 가지 다 제약이 하나 걸려 있었으니… 무조건 부상 후 2달 안에 시술(수술)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2달이라는 시간 안에 100억.

무슨 짓을 해도 불가능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마법 의학을 포기하고 다른 정보를 찾기를 몇 시간.

스치듯 떠오른 게 하나 있었다.

- 뼈살이 꽃? 그게 뭔데?

- 온몸의 뼈를 재생시켜주는 꽃입니다.

바로 민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세요?”

“뼈살이 꽃 기억 나냐?”

익숙한 이름에 민우가 잠시 한숨을 내뱉었다.

“칼콘 때문에 그런 거예요?”

짧게 긍정하자, 민우가 암울한 설명을 해줬다.

뼈살이 꽃은 부러졌거나 가루가 된 뼈는 재생했지만, 아예 절단되거나 떨어져 나간 뼈는 재생할 수 없다고 했다.

“저도 이거저거 알아봤는데, 안 된다고 하더라구요….”

결국 작게 욕을 내뱉으며 전화를 끊었다.

‘찾아야 한다. 분명 내가 모르는 방법이 있을 거다.’

다음으로 찾은 방법은 아쵸푸므자였다.

그녀는 권능의 반지 및 습작 954번을 만들 정도로 강력한 마법사였다. 신체를 재생시킬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근데 어떻게 연락해야 하지?’

여태껏 일방적으로 연락 받기만 했지, 이쪽에서 연락을 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마 반지에게 물어보면 방법을 알 수 있겠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발목을 잡았다.

‘반지… 씨발.’

칼콘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반지에 대한 사실을 숨기고 칼콘을 각성시키지 않은 게, 지금 이 상황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는 연관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만약 칼콘을 각성시켰다면?’

이런 일이 발생되지 않는다고 확답은 못하지만, 분명 조금이나마 가능성은 줄어들었을 게 분명했다.

반지를 쳐다보는 지훈의 눈동자에, 길 잃은 분노, 불신에 대한 죄책감, 그럼에도 머리를 들이미는 욕심 등 여러 감정이 폭풍마냥 뒤섞였다.

결국 지훈이 한숨을 푹 내뱉었다.

‘지금은 이딴 걸로 시간 낭비할 수 없다. 일단 칼콘을 돌려놓는 게 급선무다. 이 문제는 나중에 해결해도 늦지 않아.’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한 번 쯤은 실수를 한다.

중요한 건 실수 여부가 아닌, 그 상황을 어떻게 딛고 일어나는가였다.

좌절과 자괴감에 흔들릴 시간 따위 없었다.

불신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고 해도 괜찮았다.

불신 따위 잊어버릴 수 있을 만큼 더 큰 확신을 주면 됐다.

‘여태껏 믿지 못해서 미안했다, 칼콘. 네가 날 불신하게 됐다고 해도 상관없다. 이제 내가 널 믿어주마.’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선…

반지를 껴야했다.

우으응

- 인식. 적합한 사용자. 증여 파기에 따라 다시 김지훈님을 사용자로 등록하겠습니다. 약간 따끔할 수 있습니다.

온 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고통과 함께, 권능의 반지가 지훈의 손으로 돌아왔다.

약간 따끔하다기엔 정도가 심한 고통이 지나갔다.

‘반지. 내가 아쵸푸므자와 접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우으응

- 제작자님의 차원으로 가기 위한 포탈을 생성하기 위해선 A등급 이상의 마력이 필요합니다.

반지는 안 된다고 말했지만, 정황상 아쵸푸므자는 이 쪽을 지켜보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반지를 얻자마자, 중립 성향이 되자마자, 차원 여행자를 포획하자마자. 언제 어디서든 장소를 불문하고 나타났다.

“보고 있다면 답해라 아쵸푸므자. 너와 할 얘기가 있다!”

절제된 분노를 담아 말했다.

끼익 -

전언에 답하기라도 한 걸까?

화장실 문이 열리며 익숙한 인영이 튀어나왔다.

붉은 색 체크 셔츠에, 스키니 진. 업화의 불꽃을 품은 듯 일그러진 왼쪽 얼굴. 아쵸푸므자였다.

과연 불분명한 정체만큼 기괴한 등장이 아닐 수 없었다.

“들어는 볼게. 말해.”

그녀는 벽에 기대며 말했다.

‘역시 다 보고 있었나. 기분 나쁜 년.’

일단은 우호적인 사이였으나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었다. 지훈은 속으로 짜증을 부렸다.

“속으로라도 욕 하는 건 자제해 줄래? 금 같은 시간을 쪼개서 온 거라고.”

아쵸푸므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부엌으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냉장고 문을 열고 우유를 마시는 모습이, 꼭 제 집인 양 오만해 보였다.

“항상 날 주시하고 있나보지?”

“원래 눈과 귀는 이 세상 어디에든 달려 있는 법이지.”

“그럼 칼콘이 부상당할 때, 내가 죽을 위험에 처했을 때 도대체 너는 뭐하고 있었지.”

“지켜보고 있었어.”

구할 수 있었음에도 구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화가 치밀어 올라 가까이 있는 유선 전화를 집어 던졌다.

순식간에 선이 뽑혀나가며 공중에 날아갔다.

훅!

시속 100km는 될 법한 속도였음에도, 전화기는 마치 물리법칙을 무시한 것처럼 아쵸푸므자 바로 앞에서 멈춰버렸다.

“일 시켜먹을 생각이면 안전도 보장해라. 내 동료가 다치면 네 똥 치워주는 일도 못 한다.”

진심을 담은 협박에 아쵸푸므자는 웃음으로 답했다.

“안 돼. 내가 간섭하는 순간 모든 게 어그러져. 한 번 불었던 풍선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과 비슷해.”

무슨 소리를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딴 거 신경 쓰고 않았다. 어차피 물어봐야 대답해 주지도 않을 걸 알기 때문이었다.

피차 시간낭비 할 것 없이 본론을 꺼냈다.

“너와 거래를 하고 싶다. 어차피 너도 내가 필요할 터. 그 어떤 일을 시키던 처리해 주지.”

“조건은?”

흥미로운 제안이었지, 조건을 물어왔다.

“칼콘의 팔과 다리.”

아쵸푸므자는 잠시 제 머리카락을 꼬았다.

“그 조건이라면 꽤 어려운 일을 맡게 될 텐데?”

“내가 할 수만 있는 일이라면 뭐든 상관없다.”

“네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어. 괜찮아?”

칼콘이 버릇처럼 말하는 가짜 목숨 빚이 아닌, 진짜 목숨 빚을 진 지훈이었다.

이쪽도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해야 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상관없다고 했을 텐데?”

“나쁘지 않은 조건이네. 그 거래 받아줄게. 첫 번째 자손들의 기록을 가져와.”

첫 번째 자손. 기록.

앞 뒤 다 잘려버린 말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게 뭔지 물어보면 대답해 줄 건가?”

“모든 정보는 반지 안에 들어있어. 그걸 이용해. 피차 귀중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잖아?”

어차피 대답해 줄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까짓 거 얼마든지 가져다주지. 대신 꼭 약속을 지켜야 할 거다, 아쵸푸므자.”

“패기 있어서 좋네. 제한 시간은 저번처럼 168시간이야.”

168시간. 일주일 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 인사도 하지 않고 바로 나갈 준비를 했다.

아쵸푸므자는 그 모습을 흥미롭게 쳐다보다 사라졌다.

- Ära oota häid tulemusi (좋은 결과를 기대할게).

☆ ☆ ☆

보통 임무에 따라 장비가 갈리기 마련이었다.

몬스터 퇴치가 필요하다면 공격력이 강한 무기를,

포획이 필요하다면 작살이나 넷 건 같은 무력화 도구를,

마법이 필요하다면 마법 스크롤과 마법서를,

휴머노이드와 싸워야 하면 일반 화기가 필요했다.

사실 강력한 무기 하나면 모두 해결되긴 했으나, 효율성이 낮았다. 사과를 깎는 데 군용 대검을 쓰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이번엔 어떤 개 같은 일을 요구했는지 알아나 보자.’

정보를 요구하자 반지가 부르르 떨렸다.

우으응 -

[정보]

목표 : 첫 번째 자손들의 기록.

이들은 첫 번째 차원 왜곡(퍼스트 플레인 디스톨팅)의 결과로 세드에 정착하게 된 이방인들을 말한다.

약 만 년 전 세드에 도착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얼마 후 자취를 감췄다. 현재 생존한 첫 번째 자손이 있을 가능성은 적다. 단지 세드에 몇몇 유적만 남아있을 뿐이다.

과학 기술이 매우 발달한 문명이었으나, 마법에 소질이 전혀 없고 마법 오염에 매우 취약하다는 특징을 지녔다.

몇몇 개체는 시간을 초탈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됐으나, 영혼 부패 현상으로 인해 광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니 매우 주의.

이번 목표는 유적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유적은 자살 숲에 위치에 했으며, 아직 그 누구도 발견한 적이 없는 상태다. 까닭에 함정 및 위험요소 역시 산재해 있다.

‘유적 탐사인가. 이런 귀찮은 짓을….’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은 임무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게, 세드 내에는 유적 혹은 던전이라 불리는 장소들이 간혹 발견됐다. 죽은 마법사의 공방부터, 잊혀진 신전, 과거 문명의 잔재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했다.

당연히 유적 안에는 고등급 아티펙트는 물론, 아직 발견되지 않은 마법 등 온갖 금은보화가 가득했다.

까닭에 한 번 발견됐다 하면 정부 혹은 길드의 대규모 수색대가 파견됐다. 난이도가 천차만별인 만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유적의 난이도가 관건인가.’

지훈이 아쵸푸므자가 필요하듯, 아쵸푸므자 역시 모종의 이유로 지훈이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분명 계란으로 바위 부딪쳐야 할 의뢰를 주진 않았을 것이다.

‘분명 소규모 인원으로 돌파 가능할 거다.’

뭘 챙겨야 할지 고민하기 앞서, 일단 난이도 및 유형먼저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겁부터 잔뜩 집어먹고 용병이랑 무기 잔뜩 샀다가, 정작 까봤는데 100평짜리 조그마한 유적이면 손해가 막심했다.

‘일단 기본 장비만 사서 출발한다.’

결의를 다지곤 집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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