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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의 반지-74화 (74/173)

<4권에서 계속>

4권

<-- 큰 싸움에는 큰 부상이 따른다 -->

많은 매체들은 끊어진 의식이 돌아왔을 때, 보통 눈꺼풀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걸 표현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팠다. 지랄 맞게.

“으… 어…”

고통에 몸부림치며 신음만 내뱉길 잠시.

“괘, 괜찮아? 일어났어?”

문득 시연의 목소리와 함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어디야?”

“병원이야. 부상 심해서 바로 헬기로 후송됐어. 어, 어디 아픈 곳 없어? 간호사 부를까?”

아픈 곳 없냐는 말에 온 몸을 점검했다.

두통이 굉장히 심했다. 누가 드릴을 대고 있는 것 같았다.

심장 통증이 느껴졌다. 이상이 있는 게 분명 했다.

몸을 움직일 때 마다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재생… 재생은?’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단지 재생을 생각하자마자 온 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속을 위해 신진대사를 가속하는 과정이었지만, 반지의 설명이 없…

반지가 없다.

생각이 닿자마자 물었다.

“칼콘은?”

반지를 끼워놓긴 했지만, 팔과 다리가 절단 된 치명상이었다. 아무리 생명 유지 기능이 있다고 한들, 어떻게 됐을 지는 아무도 몰랐다.

시연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살아는… 있어.”

살아 있다.

살아는 있다.

단지 글자 차이였지만, 그 속에 든 뜻은 무거웠다.

가슴 속에 가래라도 낀 듯 답답해졌다.

“확인해 봐야겠어.”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고통과 함께 덕지덕지 붙은 튜브들이 따라왔다.

‘이게 뭔…?’

영양제 및 항생제 그리고 이름 모를 의약품이 동시에 투여되고 있었다.

“움직이면 안 돼!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했단 말이야!”

시연이 화들짝 놀라며 제지했다.

슬쩍 몸을 내려다봤다.

외상은 없었으나, 고통을 볼 때 내장이 상한 것 같았다.

아마 몇 걸음만 걸어도 고통에 짓눌릴게 분명했다. 다 아는 사실이었음에도, 지훈은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칼콘, 절대 죽으면 안 된다.’

시연의 만류와 간호사 및 의사들까지 달려와 말렸음에도, 모두 무시하고 칼콘이 있는 병실로 향했다.

“문 좀 열어 줘.”

손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 시연에게 부탁했다.

“보면 충격 받을 지도 몰라.”

“상관없어.”

드르륵.

문이 열리자 칼콘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날개 꺾인 새 마냥, 공허한 표정이었으나 그는 애써 얼굴에 미소를 드리웠다.

“안녕.”

인사를 하려고 했던 걸까?

무의식중에 칼콘이 좌측 상완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이내 없다는 걸 깨닫고는 오른손으로 대신했다.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우와, 지훈 봐봐. 꼴이 말이 아닌데?”

분위기 환기를 위한 농이었지만, 웃을 수 없었다.

도리어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씨발… 살아서 다행이다, 이 새끼야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진짜 금방이라도 죽을 줄 알고 엄청 놀랐잖아….”

“거짓말 하지 마. 지훈이 내 걱정을 한다고?”

“됐어, 개놈아. 어디 아픈 곳은 없어?”

“하나도 안 아…프진 않고, 상처는 조금 쓰리네. 그러는 지훈은 좀 어때?”

아파서 죽을 것 같았음에도 입에는 거짓을 담았다. 아무리 심해봐야 칼콘만큼은 아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근데 이거 어떡하지. 아직도 빚이 1개 남아있어. 남은 두 쪽도 미리 상납할 테니 퉁 쳐주면 안 돼?”

칼콘은 애써 분위기를 살리려는 듯 농담을 건넸지만, 도리어 분위기만 어두워졌다.

“그딴 거 필요 없어.”

오크 사회에 있어서 장애인은 곧 사망자와 다를 바 없음을 둘 다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고통과 침울함만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둘은 몇 마디 얘기를 주고받고 다시 돌아왔다.

오는 길에는 시연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이동했다.

☆ ☆ ☆

얼마 후 민우, 가벡, 지현이 찾아왔다.

시연의 전화를 받은 것 같았다.

울적한 기분을 살려주기 위해서인지, 과장 된 파티 및 인사치레가 오갔다. 다들 애써 웃으려고 했다.

“오다 잡았다. 이거 먹어라. 아플 때는 고기가 약이다.”

가벡이 수육을 내밀었다. 돈이 없으니 아마 민우 것으로 산 주제 생색은 제가 다 냈다.

“형님, 어울리지 않게 무슨 병원 신세입니까. 빨리 일어나서 드롭킥 차세요.”

민우는 농과 함께 두유 음료를 건넸다.

“꺼져, 인마. 제대로 차면 뼈 부러진다.”

픽 웃으며 욕을 돌려줬다.

“아 씨, 내가 뭐랬어. 괜히 무리하다가 다치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또라이야! 그러다 진짜 뒤진다고!”

“아파! 아프다고, 미친년아! 환자인 거 안 보이냐!”

반면 지현은 지훈을 때렸다.

고통을 참을 수 없어 제지하니, 울음을 터트렸다.

“돈 없어도 되니까 제발 다치지 마… 오빠 없으면 나 이제 완전 혼자란 말이야… 응…?”

그에 전염됐는지, 시연도 조용히 울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에 눈가가 간지러웠지만 꾹 참았다.

“죽긴 누가 죽냐. 미래의 네 남편 놈한테 샷건 갈기기 전까지는 절대 안 죽어. 아니 못 죽어. 그러니까 걱정 마라.”

“다 뒤져가면서 허풍은 진짜… 킁.”

농에 슬픔이 좀 날아간 걸까?

지현이 코를 훌쩍거리며 투덜거렸다.

반면 민우는 샷건이라는 말에 살짝 움찔했다.

이후 시연은 연구실에 가봐야 했기에 지현과 교대했고, 민우와 가벡은 칼콘 쪽을 보러 갔다.

“잠깐. 저번에 보니까 아무도 없던데, 톨퐁은?”

여자 친구라고 무조건 인생 올인하며 남자 친구 병원에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그래도 여태 한 번도 못 봤었기에 물었다.

민우가 살짝 이빨을 드러내며 적의를 표시했다.

“칼콘 다치자마자 바로 도망갔어요. 대신 제가 격일로라도 병간호 하고 있습니다.”

결혼을 한 것도 아닌 단순 연애 관계였다.

씁쓸했지만 뭐라고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빠르게 끊어 주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애 상태가 좀 안 좋더라… 크라토스 같은 것도 좀 보여주고, 산책도 많이 시켜주고 해.”

“네. 요즘 전쟁 하는 보드게임 사서 같이 하고 있어요.”

호전적인 종족이니 그나마 게임으로라도 전쟁을 접하게 해주려는 생각인 듯싶었다.

칼콘 역시 흥미를 보이긴 했다.

하지만 게임을 할 때마다 자기가 장애인이 됐다는 사실이 떠오르는지, 내심 씁쓸한 표정을 짓기 일쑤였다.

“신경써줘서 고맙다.”

“… 아닙니다, 형님.”

민우는 병실에서 나오자마자 주먹을 꽉 쥐었다.

‘내가 그 때 도망치지 않았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데… 씨발… 나는 왜….’

억울했다. 비참했다.

동료를 지키지 못한 본인의 실력이 한심스러웠다.

가벡이 조용히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너보다 강한 자를 지키려고 하는 건 오만이다. 너를 탓할 게 없어. 너 같은 게 나서봐야 개죽음이다.”

“닥쳐! 네가 뭘 알아! 나는… 나는 항상 도망치기만 했어!”

그게 너무나도 싫었다.

앞장서서 일을 처리하고 싶었고 동료를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항상 하는 일이라곤 후방 보조 및 탐색이 다였다.

민우는 그런 자신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가벡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게 더 좋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 ☆ ☆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부상에 대한 침울함도 잠시.

시간에 낫지 못하는 병이 없다는 것처럼, 다들 분위기가 한결 나아졌다. 다들 그런 척을 하는지, 아닌지는 몰랐지만.

“신기하네요, 뇌랑 심장 손상이 심해서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였는데….”

회진을 돌던 의사는 검사 결과를 보곤 입술을 매만졌다.

“혹시 재생이나 강화계통 변이 있으세요?”

몇몇 헌터들은 트롤이나 가고일 같은 몬스터를 사냥하다가 끔찍한 질병에 감염되기도 했다.

일반인 기준 치사율이 90%가 넘어가는 병이었지만, 그 병을 이겨내면 독특한 변이가 생겼으니… 그게 재생이었다.

지훈 경우에는 아쵸푸므자가 변이계통 마나를 강제로 주입해 생긴 변이였지만, 일단은 입 다물고 있었다.

“검사를 해 본적이 있어야 알지.”

의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지라 작게 이죽거렸다.

“일단 정상생활 하셔도 지장 없을 정도로 몸이 나아졌습니다. 약물 치료 때문인지, 자연 재생 때문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으니 일단 검사를 더….”

“어차피 병원에 좀 더 있을 생각이니 알아서들 하고. 볼 일 끝났으면 빨리 가쇼. TV봐야 하니까.”

의사는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고 사라졌다.

“금방 나아서 다행이다… 진짜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시연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팔을 두들겼다.

“내가 몸조심하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진짜 못됐어, 나 너 죽는 줄 알고 전부 내팽개치고 병원에만 틀어박혀 있었단 말이야!”

다치고 싶어서 다친 건 아니었지만, 일단 걱정 끼친 건 맞았기에 조용히 맞아줬다.

몸이 다 나은 탓에 전혀 아프지 않았지만, 반성 차원에서 살짝 아픈 척을 했다.

“이제 거의 다 나았어. 안 와도 된다니까 그러네.”

“싫어. 못 믿어. 퇴원할 때까지 계속 있을 거야.”

가라고 했음에도 시연은 도끼눈만 떴다.

절대 움직이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이었다.

‘말은 안 듣지만, 그래도 고맙네.’

마음을 담아 쓰다듬으니, 시연이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

“나 어디 좀 나갔다 올게.”

“어디 가는데?”

“칼콘한테.”

오늘은 민우와 가벡이 오지 않는 날이었다.

아마 혼자서 외로울 터였다.

“같이 갈까? 나도 칼콘 씨랑 얘기도 좀 하게.”

“아니. 둘이서 좀 할 얘기가 있어.”

시연은 자기가 낄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금방 사과를 깎아서 건네줬다.

“요즘 칼콘 씨 많이 힘들어 보이더라. 힘내라고 전해 줘.”

☆ ☆ ☆

사과 접시를 들고 칼콘 병실을 노크했다.

“들어와.”

평소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가 아닌, 중저음의 쇳소리 잔뜩 들어간 소리가 돌아왔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제일 먼저 TV 소리가 들려왔다.

- 아, 김동환선수! 야마모토를 그대로 찍어 누릅니다! 이대로면 야마모토 선수의 방패가 버티질 못할 텐데요!

쾅! 쾅! 쾅!

크라토스 중계경기였다.

칼콘은 슬픈 표정으로 TV를 보다가, 방문객이 지훈인 걸 확인하곤 재빨리 채널을 돌렸다.

“어, 어? 뭐야. 지훈이었어?”

“뭐 그렇게 깜짝 놀라. 나는 오면 안 돼?”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냥 갑자기 찾아와서….”

평소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지!’ 했을 대답이 돌아왔을 터. 어째 팔 다리가 잘린 후 칼콘이 소심해졌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렇다고 걱정한다는 티 팍팍 내며 불편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이럴 때는 평소처럼 대해 주는 게 예의겠지.

“크라토스 마저 봐. 왜 갑자기 채널 돌려?”

“그냥. 얘기해야 하는데 시끄럽잖아.”

“됐어. 우리가 언제 다정하게 수다 떨었냐?”

“으, 응. 그럴까…”

평소라면 위트 있게 받아 쳤겠지만, 현재의 칼콘은 그저 고개를 푹 숙인채 지훈의 말을 따르기만 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지훈은 가슴이 아려왔다.

“몸은 좀 괜찮아?”

“다행히 치료 받아서 거의 다 나아가.”

“앞으로 어떻게 할 거래?”

“의수 할 거래. 가격 때문에 고민하고 있어.”

“얼만데?”

칼콘은 대답 없이 웃었다. 단지 비싼 녀석은 둘이 합쳐도 감당하지 못할 가격이라고만 답해줬다.

캐물을까 싶었지만, 원치 않는 것 같아 그만뒀다.

“그나저나 신기해. 원래 죽었어야 할 상처인데, 이상하게 치료가 빨랐다고 하더라고.”

반지의 영향이었다.

그 증거로 칼콘의 오른손에는 지훈이 끼워 준 권능의 반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건으로 할 말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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