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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의 반지-73화 (73/173)

<-- 이제 내가 빚을 갚을 차례다. -->

지훈과 파이로가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둘 다 한동안 고통 섞인 신음소리만 내뿜었다.

이미 각성자간의 싸움 따위 온데간데없었다.

서로를 가늠하며 어떻게 공격해야 고민해야 할 타이밍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났다. 이제 무슨 수를 써서든 상대를 죽여야 하는 진흙탕 싸움이 됐다.

인간 대 인간의 싸움이 아닌, 짐승 대 짐승이 됐다.

장비도 없고, 몸을 움직일 체력도 없었다.

일어서는 사람이 승자였다.

먼저 일어서 상대방에게 다가가 마무리를 하면 됐다.

파이로는 지훈의 목을 조르면 됐고, 지훈은 파이로의 몸에 박힌 여왕의 은혜를 이용하면 됐다.

서로의 목숨을 걸고 안간힘을 내뿜은 시간은 약 1분.

결국 지훈이 먼저 일어섰다.

“으….”

금방이라도 의식이 끊어질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마무리해야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걸레짝 같은 다리를 움직여 파이로에게 다가갔다.

“황인종 새끼가… 감히….”

대답할 것 없이 코를 밟았다.

기괴한 소리가 나며 코뼈가 부러졌다.

쉽게 죽여 줄 생각은 없었다.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일 생각이었다.

‘칼콘의 복수를 해주마. 칼콘은… 너 따위랑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사람이었다!'

여왕의 은혜에 손을 가져갔다.

☆ ☆ ☆

한편.

관전하던 시체 구덩이 주인의 눈이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파이로가 졌다고?’

미친놈이라 상종하는 사람이 없다곤 하지만, 언더 다크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였다.

상대의 정보를 몰랐기에 방심했고, 또한 2:1 싸움이라는 걸 감안해도 엄청난 결과였다.

‘각성한지 반 년도 안 지났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정말 갖고 싶다. 무조건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주인이 숨을 몰아쉬었다.

스프리건은 그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다 입을 열었다.

“파이로. 죽는다. 일 커진다. 너 막으셔야 한다.”

“아. 그래, 맞아. 파이로가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지.”

파이로가 죽는다면 언더 다크에서 문책이 올 터였다.

이번 공작은 언더 다크와 접점이 없는 피라미들로 이뤄진 작전이었다. 그렇기에 실패해도 큰 타격은 없었으나….

간부가 죽으면 얘기가 달라졌다.

이는 곧 언더다크 전체에 대한 도전이 되기에, 집단 차원에서 보복을 들어갈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분명 시체 구덩이 주인고 큰 문책을 받게 되겠지.

‘일이 그렇게까지 틀어지게 내버려 둘 수도 없지. 안타깝지만 나도 살고. 지훈도 살리기 위해선 파이로도 살려야 해.’

주인은 탄환을 바꿔 꼈다. 비살상용 고무탄이었다.

고무탄이래도 총이 저격총인지라, 민간인은 사망할 수도 있는 위력이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지훈은 각성자였다. 거기에 방탄복까지 입고 있었다.

‘심해봐야 뼈 부러지고 말겠지.’

주인은 심호흡을 하곤 지훈의 허벅지를 겨눴다.

지훈은 딱 창에 손을 가져가고 있었다.

탕!

☆ ☆ ☆

퍽!

뭐에 맞았는지도 모르고 바닥에 엎어졌다. 격통에 비명을 지르고 있자니, 멀찍이서 총 소리가 들려왔다.

… 탕!

피격과 소음이 일치하지 않는 걸 봐선 장거리 저격이었다.

‘저격수가 있었나!?’

일어서려 했지만 뼈가 부러졌는지 말을 듣질 않았다.

“그으으!”

지훈이 고통에 겨워하는 사이, 파이로는 몸을 추슬렀다.

‘포션… 포션을 먹어야 한다.’

파이로는 운동복 상의에서 뭔가 꺼냈다. 각각 회색과 붉은색 액체가 들어있는 앰플이었다.

꿀꺽, 꿀꺽.

파이로는 두 앰플을 동시에 들이켰다. 그러자 무슨 일인지 파이로의 몸이 풍경에 녹아들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투명화 포션이었다.

아이덴티티와 보사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물약으로, 아직 시중에 유통되지 않는 물건이었다.

“저건 또 뭐야….”

다 잡은 파이로가 사라져 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애써 글록과 빈토레즈 방아쇠를 당겨봤지만, 탄약이 없어 ‘틱’ ‘틱’ 하는 소리밖에 나질 않았다.

“씨발…! 씨발!”

지훈이 게거품을 물며 비명을 질렀지만, 다리가 부러진 탓에 쫓아갈 수 없었다.

- 신체 재생을 시작합니다. 신진대사가 가속됩니다.

속으로 빨리되라고 닦달했지만, 재생이 다 완료됐을 땐 이미 파이로가 자취를 감춘 뒤였다.

☆ ☆ ☆

“파이로 살았다. 근데 저기 봐라.”

“또 뭔데?”

“빙글 빙글. 인간들의 강철 새 2마리.”

스프리건이 좌측 창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드드드드드드….

저 멀리서 전투 헬기 2대가 날아오고 있었다.

‘도대체 저 연구 결과가 뭐 길래 헬기까지 동원해?'

주인은 뭔가 큰일에 깽판 놓은 게 아닐까 덜컥 겁이 났지만, 이미 벌어진 일 어쩌랴 하는 심정으로 말았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채울 수 없는 법이었다.

“여기 있는다. 우리 죽으신다. 도망쳐야 한다.”

“안타깝지만 퇴각해야겠네. 투명화 포션 먹어.”

“알겠다. 하지만, 나 돌아간다. 너 고발한다. 이건 명백한 일 안했다, 다.”

주인은 푸핫 웃으며 앰플을 쭉 들이켰다.

둘의 몸이 스르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해 봐. 근데 너도 방조죄로 같이 죽을 걸?”

스프리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말 옳으신다. 나도 죽는다. 나 입 다문다.”

“응. 맞아, 그게 옳아. 어차피 너랑 나는 한 배를 탄 사이거든. 그러니까 조금 더 말랑말랑해 지도록 해.”

스프리건이 목질 같은 입술을 양 옆으로 비볐다.

“너 마음에 안 드신다. 싫다.”

☆ ☆ ☆

지훈은 헬기가 다가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칼콘에게 달려갔다.

“정신 차려, 칼콘. 제발. 무슨 개소리를 하든 욕하지 않을 테니, 아무 말이나 해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단지 조금씩 차가워질 뿐이었다.

지훈이 칼콘을 끌어안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떨어졌다.

뚝. 뚝. 뚜뚝. 뚝.

몇 방울이나 떨어졌을까?

문득 칼콘이 부르르 떨었다.

“칼콘, 칼콘! 정신이 들어!?”

칼콘이 옅은 신음을 내뱉었다.

굉장히 기뻤으나 웃을 틈 따위 없었다.

팔을 지혈해야 했다.

철컥, 철컥.

재빨리 갑옷을 해제한 뒤, 입고 있던 옷을 죽 찢어 칼콘의 상완을 묶었다.

문득 칼콘이 말했다.

“지훈, 나 죽은 거야?”

“닥쳐. 나중에 얘기해.”

“곧 죽을 것 같아….”

“닥치라고, 씨발 새끼야!”

칼콘이 금방이라도 사라질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나 부탁이 하나 있어….”

“뭐든 다 들어줄 테니까, 제발 눈 감지 마라. 응?”

“카즈가쉬 클랜에 가면… 카크라라는 여자가 있어….”

카크라. 만드라고라 때 얼핏 들었던 이름이었다.

“내 방 서랍 안에… 편지가 하나 있어. 그걸 전해줘….”

“다음에 같이 가면 되잖아, 부탁할 필요 없어!”

칼콘이 그 말을 마친 뒤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아 너무나도 무서웠다.

“있잖아… 나 지훈을 만나서 좋았어. 클랜을 떠난 뒤 얼마 못 가 죽을 줄 알았거든… 근데 네가 날 살려….”

지훈의 눈에 헬기가 날아오는 게 보였다.

분명 의무병이나 야전 치료사도 타고 있을 터였다.

칼콘의 의식이 끊어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야 했다.

“그래! 내가 살려줬잖아, 그래서 뭐!”

“인간은… 다 못됐다고 생각…했는데, 고마워….”

칼콘의 숨이 점점 더 희미해져갔다.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직감했다.

“나쁘지 않은 인생이었어… 내 발자국은 여기까지야… 지훈은, 부디 끝까지…“

칼콘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입을 다물었다.

담담히 죽음을 맞이할 생각인 듯 했다.

지훈은 계속해서 말을 걸었지만, 칼콘은 대답하지 않았다.

말이 어느덧 부르짖음이 됐을 때쯤….

문득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으으으으응.

- 권능의 반지에는 사용자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가능이 있습니다.

생각할 여유 따윈 없었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반지를 제거했고, 바로 칼콘의 손가락에 끼웠다.

“그 딴 소리 집어 치워, 칼콘. 난 널 절대로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다. 저승사자, 염라대왕 다 좆까라 그래. 그딴 새끼들 내가 전부 죽여서라도 널 되찾아 오겠다!”

☆ ☆ ☆

이후 많은 일들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전투 헬기에서 의무병이 내려 칼콘을 후송했다.

다행히 민우와 가벡 그리고 교수는 무사한 것 같았다.

이후 계속 칼콘의 상태를 지켜보고 싶었지만….

“우, 우웨엑!”

갑자기 각혈하며 정신을 잃었다.

☆ ☆ ☆

금방 부서질 듯, 낡은 라디오에서 음악 방송이 흘렀다.

평화로운 분위기도 잠시.

음악이 갑자기 뚝 끊겨 버렸다.

- 아… 잠시 만요, 네. 네. 알겠습니다. 청취자님들. 속보가 들어왔네요. 잠시 전해드리고 가겠습니다.

라디오 진행자는 담담한 목소리로 속보를 읽어 나갔다.

- KMS 단독 취재 결과, 개척지 동쪽 농장에서 한국 연구팀이 습격당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사망자가 20명 이상 날 정도로 큰 전투가 벌어졌다고 하며… 현 군부대를 선두로 가디언이… … … … 이상입니다. 흐름이 끊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음 곡은 신데렐라 퍼퓸. '나쁜 남자'입니다.

낡은 라디오의 주인. 석중이 도끼눈을 떴다.

'거… 지후이 쓰애끼 연구팀 호위 한다고 안 했던가.'

세월의 먼지가 잔뜩 껴 녹슬어 버린 기억 속으로, 그랬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 외딴 데서 큰 일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디. 다 뒤져가는 거 내가 핥아가며 키웠고마, 이상한 일로 죽으삐면 나가리디.'

거친 욕과 더러운 뒷골목 쓰레기를 걸치고 사는 석중일지라도, 인간이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들었다.

큰 이익이 따르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싸구려 감정일지라도 말이다.

한 편 보사 연구실.

시연은 TV를 보며 정신이 나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 아… 아….”

손과 눈이 미친 듯이 떨렸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감도 오질 않았다. 단지 퇴근 하겠다는 말도 하지 않고 바로 동구 터미널로 향을 뿐이었다.

분명 차를 타고 갔으니, 차를 타고 돌아올 거라 생각했다.

약 3시간 정도 기다리자, 구급차를 동반한 SUV 3대가 터미널로 들어섰다.

카메라 플래쉬가 미친 듯이 터지는 가운데, 시연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차량 행렬로 뛰어들었다.

“사, 사람을 찾아요! 지훈이, 김지훈 씨 어디 있어요? 다치지 않았죠? 아프지 않죠? 그렇죠?”

“지금 환자들 가득한 거 안 보이쇼!? 소란피지 말고 꺼져!”

용병이 거칠게 밀치자, 시연이 바닥에 쓰러졌다.

눈물, 콧물 범벅으로 애써 지훈을 찾는 시연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지훈, 칼콘 둘 다 찾을 수 없었다.

“아, 안 돼… 지훈아… 지훈아….”

결국 울음을 터트리는 시연이었다.

☆ ☆ ☆

16시간 후.

- … … 괴한들을 심문한 결과, 이번 일의 배후에 레니게이드라는 범죄 조직이 연루되어 있음을 밝혀졌습니다. 이에 정부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 … ….

빗나간 정보였다.

흑막은 언더 다크였거늘, 정부는 레니게이드로 발표했다.

물론 포로 심문 중 언더 다크라는 이름이 나오긴 했지만, 정부는 이 사실을 묵인했다.

이미 범죄 조직 수준이 아닌, 범국가 단체로 성장했기에 전면전을 벌이기에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대신 죄를 뒤집어 쓸 희생양이 필요했다.

그게 바로 개척지 범죄 집단 레니게이드였다.

접점이라고는 언더 다크에 빌린 빚을 갚기 위해 인력을 몇 명 제공한 것뿐인데도, 정부는 그 사실을 극대화시켜 레니게이드를 이번 사건의 흑막으로 몰았다.

☆ ☆ ☆

[전투 결과]

[호위팀]

생존자 총 - 13명

사망자 - 33 명

부상자 - 8 명

실종자 - 1 명 (폭발 탄환 직격 추정)

정상 - 4 명

비고.

지훈 (빈사) -

무리한 가속 이능 사용으로 인한 심근경색,

집중 이능 연속 사용으로 인한 측두엽 미세 손상,

과도한 운동으로 인한 근육 파열,

파이로의 공격에 따른 2도 화상,

여왕의 은혜 손실.

마력 탄환 및 OTN탄 모두 소모.

칼콘 (빈사) -

파이로의 공격에 따른 전신 1도 화상,

폭발에 의한 좌완, 좌각 절단상.

극심한 빈혈.

D등급 갑옷 손상.

현재 권능의 반지를 끼고 있음.

[언더 다크]

총 생존자 - 5명

사망자 - 21 명

부상자 - 3 명

정상 - 2 명

비고.

파이로는 투명 물약을 사용해 전투에서 이탈. 남은 부상자 2명은 포로로 잡힘.

파이로 (빈사) (생존!)

이능 남발으로 인한 탈진 및 극심한 피로.

투창으로 인한 육체 관통

극심한 출혈.

복부 3도 화상. (출혈을 막기 위함)

[보상]

호위 성공으로 인해 전투 참가 인원 전체 1억 원 획득.

지훈 티어 업 4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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