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72화 (72/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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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파이로는 그 모습을 영화 보듯 지켜봤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전우애인가?’

비명을 지르는 지훈의 모습이 너무나도 멋져 보였다. 얼마나 감상했을까? 갑자기 몸 주변에서 화염이 솟았다.

- 이능 발동, 위기대비 : 불꽃 방패.

‘총알?’

파이로가 고개를 돌리자, 웬 인간과 버그베어가 놀란 듯 서있었다.

일견에도 상대가 되지 않는 피라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능 발동. 화염 투사.”

굳이 가까이 갈 것 없이 불을 집어던졌다.

맞으면 죽을 테고, 피하면 도망가겠지.

‘중요한 순간에 방해받고 싶지 않아. 너희는 나중에 구워 줄 테니 꺼져버려.'

파이로는 인간과 버그베어에게 신경을 꺼버렸다.

☆ ☆ ☆

한편, 민우와 가벡은…

“어, 어, 어…?”

멍 하니 날아오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처음으로 봤기 때문이었다.

마치 눈앞으로 트럭이 돌진해 오는 기분이랄까?

피해야 되는 걸 알면서도 몸이 굳었다.

“피해!”

그나마 가벡이 먼저 정신을 차리곤, 민우를 들이받았다.

후웅!

쓰러진 둘 위로 화끈한 불덩이가 지나갔다.

민우는 뜨겁게 그을려서야 정신을 차렸다.

“저, 저거 뭐야! 뭐냐고!”

“각성자. 못 이겨. 도망!”

가벡이 민우의 팔을 잡아당겼지만, 민우는 꼼짝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다짐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 앞으로 절대 동료를 버리지 않겠다.

“씨발 동료잖아! 어떻게 버리고 도망쳐!”

민우가 버럭 소리를 들고 MP5를 고쳐 잡았다. 가벡이 그런 민우를….

뻑!

때렸다.

“아… 아?”

민우는 혀로 볼 안쪽을 훑었다.

화끈한 통각과 함께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가면 죽는다. 도망쳐라.”

“미친 새끼야 너도 명예로운 죽음이네 뭐네 지랄했잖아. 근데 왜 나는 안 되는데!”

“오직 전투 중에 죽은 자만 명예로운 죽음이라 할 수 있다. 일방적으로 짓밟히는 건 명예로운 게 아니라 멍청한 거다.”

민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머리로는 상대가 되질 않는다고 알고 있었다.

단지 도망치는 것에 넌더리가 났을 뿐이었다.

너라도 살아남으란 말에 부모를 버리고 도망친 것도,

공부와 경쟁에 지쳐 학비를 핑계로 세드에 도망친 것도,

공포에 질려 칼콘을 버리고 도망치려고 했던 것도,

모조리 넌더리가 났다.

“그럼… 난 어떡하라고….”

“도망쳐라. 살아남아라. 고개를 푹 숙이고 기다려라. 이 전장은 우리가 끼어들 곳이 아니다. 네 차례가 올 때 까지 기다려. 아무도 널 탓하지 않는다.”

민우는 이를 꽉 깨물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죽을 게 뻔히 보이는 곳에 1초 남짓한 시간을 벌자고 달려들 순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씨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그래. 분노해라. 좌절해라. 그리고 수련해라. 그럼 된다.”

가벡은 민우를 다독이곤, 그를 전장에서 끌어냈다.

비겁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원래 약자에겐 약자만의 생존방식이 있는 법이었다.

☆ ☆ ☆

그 사이 파이로는 입맛을 다셨다.

‘이제 그만 죽일까.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짝. 짝. 짝.

파이로가 지훈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박수를 쳤다.

지훈의 고개가 상처 입은 짐승처럼 휙 돌아갔다.

“멋진 얼굴이야. 좀 더 예술적인 비명을 질러 봐. 어서 날 흥분하게 해 줘.”

지훈의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짙은 분노가 흘러나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여주마.”

“아아, 그런 표정 아주 좋아. 부수는 맛이 있거든.”

파이로가 섬뜩한 미소를 드리웠다.

지훈은 그 사이 9x39mm 관통 마력탄을 장전했다.

비록 물리적인 힘과 회전력을 더한 탄이라도 상관없었다. 이렇게라도 화염 방패를 뚫을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여야 했다.

그 다음 왼손에는 폭발 탄환이 장전된 글록을 들었다.

“총이 2개네. 이제 준비 다 된 거야?”

대답할 것도 없었다.

바로 풀 오토로 방아쇠를 당겼다.

표표표표푝!

관통탄 5개가 순식간에 뿜어져 나갔지만, 전부 화염 방패에 막혀버렸다.

“나한테 총알은 안 먹혀. 포기해. 그럼 이제 내 쪽인가?”

- 전방 방출계 이능 발동 감지!

파이로가 불덩이를 집어 던졌다.

시속 170km는 충분히 나올법한 강속구!

절대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속도였지만 상관없었다.

‘이능 발동. 가속.’

가속이 발동되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심박이 가볍게 180을 웃돌며, 온몸에 피를 펌프질했다.

마치 온 몸이 달아오르는 듯 한 착각.

누군가 혈관에 불이라도 붙인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수명을 태워가며 얻는 강력한 힘이었기에… 어찌 보면 실제로 타고 있다고 해도 옳았다.

훅! 타타타탓!

지훈이 불덩이를 가볍게 숙여 피한 뒤, 파이로 주변을 빙글 돌았다.

“어, 어. 이능?”

파이로는 지훈의 움직임에 깜짝 놀란 듯 했다.

순식간에 몸을 옮겨 파이로의 측면을 잡았다.

표표푝!

화르르륵!

측면은 혹시나 했거늘, 역시나 화염 방패에 막혀버렸다.

타타탓!

표표푝!

화르륵!

혹시나 싶어 더 가속해 뒤를 잡아봤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빌어먹을, 절대 방어도 아니고 뭐 이래!’

남은 탄환은 이제 9발. 신중하게 쏴야했다.

타타탓!

어떻게 공격해야 할 지 감이 오질 않았으나, 그럼에도 계속해서 달렸다. 멈추는 순간 파이로의 공격을 당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파이로가 IED를 들고 있었다.

‘어떡하지?’

방출계 이능이 만능으로 보이지만, 사실 모든 이능은 양날의 검이었다.

강화계는 사용자의 육체에 부담을,

마력계는 빠른 마나 소진을,

변이계는 이능 사용 시 극심한 고통을,

방출계는 극심한 피로(탈진)를 가져왔다.

이능을 남발하게 만든다면 저쪽이 먼저 쓰러질 터였다.

결국 시간 싸움이었다.

지훈은 파이로의 이능을 남발하게 한 뒤, 결정적인 한방을 노리기로 다짐했고, 파이로는 지훈이 지치길 기다렸다가 IED로 마무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타타타탓!

지훈은 계속해서 주변을 맴돌며 견제 사격을 날렸다.

그 때 마다 화염이 뿜어져 나와 총알을 모두 녹여버렸다.

‘폭발 탄환은 먹힐까?’

불을 쓰는 상대에게 불로 공격하자니 탐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죽여주길 기다릴 수도 없었다.

지훈은 왼손으로 글록을 뽑고 바로 사격했다.

타앙!

‘제발 먹혀라!’

기도와 달리 탄환은 이번에도 화염에 잡아먹혀 버렸다.

애초에 착탄과 동시에 마법이 발동하는데, 탄두가 모조리 녹아버려서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지루한 공방이 계속됐다.

결국 관통탄은 모조리 파이로에 꼬라박았고, OTN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표표푝!

화륵!

아니. 그나마도 이제 다 떨어졌다. 그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파이로의 불꽃 역시 처음에 비해 많이 옅어졌다.

- 근육 파열. 재생을 시작합니다. 신진대사가 가속됩니다.

- 경고. 가속 이능을 발동 후 4분 경과. 육체 한계치 육박. 혈액 역류 및 심정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닥쳐. 어차피 멈춰봐야 죽어!’

지훈이 이를 꽉 깨물었다. 하지만 그건 파이로 쪽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몸이 무거웠다.

‘심장이 터져야 정상인데 아직도 달리고 있다고?'

이제 파이로가 총알을 막을 수 있는 횟수는 3번 남짓.

그 이후엔 육탄전에 돌입해야 했다.

푝! 푝!

화르륵!

처음에 봤던 방패가 마치 지옥 불같았다면, 지금은 꼭 바람 앞에 놓인 촛불 같아 보였다.

이제 자동 방어 횟수는 단 한 번.

지훈도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죽어라, 이 빌어먹을 새끼야!’

마력 탄환을 발사했다. 그리고 반만 막혔다.

마법진이 훼손된 탓에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파이로의 몸에 탄두가 부딪쳐 크게 휘청거렸다.

‘빌어먹을…. 벌써…!’

처음으로 공격이 성공했다는 기쁨도 잠시.

- 사용자 보호를 위해 이능을 강제 해제합니다.

지훈 역시 이능이 풀려버렸다.

가속이 풀리자 몸이 무거워지는 듯한 착각과 함께, 격통이 휘몰아쳤다. 마치 심장이 터져버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파이로와 지훈의 눈이 마주쳤다.

“허억… 허억….”

“끄어어… 걱….”

상처받은 짐승 둘은 직감으로 승부의 때가 왔음을 느꼈다.

차이로가 IED를 꽉 쥐고 있었다.

당장 던져서 폭파시키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더 이상 이능을 썼다간 의식을 잃는다… 안 돼! 적어도 위기대비를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은 힘을 비축해야 한다!’

지훈 역시 폭발 탄환이 한 발 남아 있었거늘, 쏘지 않았다.

이번에도 막힌다면 이제 남은 무기라곤 여왕의 은혜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이능력 수준으로 보건데 최소 B등급 후반 티어 각성자다. 분명 근접전도 이능만큼 강할 거야.'

근접전으로 들어가면 열 합도 못 넘고 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고 총알부터 꽂아 넣자니 화염이 신경 쓰였다.

‘남은 탄환은 단 한 발. 이 쪽 총알이 다 떨어졌다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

지훈이 파이로 쪽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어갔다.

파이로 역시 지훈 쪽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저벅, 저벅, 저벅.

폐허가 된 평야 위로 둘의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둘의 거리가 10M 남짓 됐을 때….

타타타탓!

지훈이 마지막 힘을 짜내 돌진했다. 이미 무리가 간 심장이 곧 터질 듯 비명을 질렀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칼콘의 복수는 하고 죽는다.’

파이로 역시 지훈에게 돌진했다.

아무리 이능이 얼마 남지 않았다지만, 아직 총알 한 번 막을 정도는 있었다.

방출계 이능 특화 각성자였다지만, 그래도 A등급이다. 웬만한 각성자는 맨손으로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탄약 없는 총잡이 따위 찢어 죽여주마!’

둘이 부딪힐 듯 가까워졌다!

서로의 생명을 건 필사의 일격을 준비하려는 찰나….

지훈이 들고 있던 글록을 겨눴다.

파이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한 번 정도는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죽여주마!’

‘그래, 그렇게 계속 달려와라.’

파이로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높이 쳐들었다.

반면 지훈은 파이로가 아닌 바닥을 겨눴다.

“아…?”

파이로가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급히 이탈하려 했지만… 지훈은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목표는.

파이로가 아닌.

그가 서있는 땅이었다.

“이 개 - 새 - 끼 - 야!”

지훈이 포효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글록의 총구가 불을 뿜으며 폭발 탄환을 뿜어낸다.

푹!

총알이 정확하게 파이로가 밟은 바닥에 꽂혔고…

우으응 - 콰아아앙!

폭발했다.

지근거리 폭발인 만큼, 지훈과 파이로 둘 다 날아올랐다.

지훈은 파이로의 다리가 전부 날아갔으면 했지만, 안타깝게도 둘 다 붙어있었다. 하찮은 운동복으로 보였던 의복이 아티펙트였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정도로 죽을 거라곤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노림수는 파이로를 공중에 띄우는 게 다였다.

제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물리학을 무시할 순 없었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이능 발동. 집중.’

순간이 영원을 탐하며 한 없이 길어진다.

그와 동시에 온몸이 찢어질 것 같은 통각도 영원해진다.

치사량을 웃도는 고통에 뇌가 녹아 버릴 것 같다.

하지만 벌써 정신을 잃을 순 없었다.

지훈이 공중에서 창을 빼들었다.

C등급 아티펙트, 여왕의 은혜였다.

파이로가 지훈의 행동을 훑었다.

그리고 무슨 짓을 할 지 깨달았다.

선명한 희비교차.

등, 어깨, 상완, 하완, 손목.

지훈은 남아있는 힘을 모조리 순서에 따라 전달했다.

이윽고 탄력을 받아 모든 힘이 손가락에 집중됐을 때!

창을 놔버렸다.

훅!

‘이것도 막아봐 이 새끼야!’

있는 힘껏 여왕의 은혜를 투척한다.

빙글.

여왕의 은혜가 한 바퀴 돈다.

순식간에 파이로에게 가까워졌다.

‘아, 안 돼!’

파이로가 급하게 이능을 발동한다.

화륵!

여왕의 은혜에 불이 붙는다.

하지만 녹이기엔 부피가 너무 크다.

빙글.

여왕의 은혜가 한 바퀴 더 돈다.

이미 피할 수 없는 거리가 됐다.

‘젠장… 내가 저따위 이름 없는 각성자한테…!’

파이로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파이로의 배에 창이 틀어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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