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71화 (71/173)

<-- 빚 -->

버스 뒤에 갇혀 죽을 뻔했다는 분노와 복수심에서였을까?

호위팀은 파죽지세처럼 나아갔다.

지훈이 앞서 나간 후 용병들이 일제히 돌격했고, 그 결과 많은 짚단들을 무력화 시킬 수 있었다.

이제 남은 짚단은 단 하나였다.

☆ ☆ ☆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스프리건이 물었다.

“너. 어떻게 하실 거냐. 나. 계속 있으시냐?”

“소모 병력을 보내고 나서 너와 내가 마무리 하려고 했지만, 안되겠어.”

생각 의외로 지훈 일행의 힘이 너무 강력했다.

‘각성했다고는 들었지만, 이정도 일 줄은 몰랐네.’

강해 봐야 E등급 남짓이라고 생각했거늘, 상상 이상이었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D, 높으면 B등급 정도일까?’

현재 지훈은 혼자서 짚단 두 개를 쓸어내는 중이었다.

‘역시 칼콘은 싸움꾼보다는 병사 체질이구나.’

둔하기 때문에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지만, 누군가를 지켜주는 데엔 탁월한 힘을 발휘했다.

‘전직 카즈가쉬 클랜의 가디언답네.’

반면 지훈은 굉장히 날쌨지만 방어에는 취약했다.

오랜 기간 암살자 내지 해결사로 움직였기에 지구력이 필요한 다수전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마 혼자서 움직였다면 금방 지쳐서 사살 당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칼콘이 바싹 달라붙어 방어해 줌으로써 지훈은 계속해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역시 칼콘은 방해만 되는 걸까?'

주인은 총구를 칼콘의 얼굴로 향했다.

방탄모로 방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손가락을 방아쇠에 걸고 이능을 발동하려는 찰나!

총을 거둬버렸다.

‘그만 두자.’

아무리 좋은 식재료라고 한들, 섣불리 조리하면 그 맛을 잃어 인스턴트만도 못해지기 마련이었다.

'칼콘을 죽여 봐야, 지훈이 내 아래로 들어온다는 보장도 없어. 그냥 조금 더 기다리자.'

최상급 재료로 쓰레기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니던가.

“적당히 지켜보다가 돌아갈 거야. 알아 둬.”

“너. 명령 불이행 하셨다. 고발한다.”

“마음대로 해. 난 못 이길 싸움에는 끼기 싫어.”

“아니다. 이길 수 있다. 상부. 비밀요원 넣었다.”

주인이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그거. 무슨 소리?”

“A급 발현계 각성자. 여기 있다.”

A등급 각성자라면 언더 다크에도 몇 없는 간부였다.

주로 요인 암살 혹은 다른 세력을 굴복시킬 때 행동하는 이들로, 엄청난 무력을 바탕으로 상대를 짓밟았다.

“누구!”

“나 잘 모른다. 검은 흑인. 불 다룬다고 했다.”

생각나는 이름이 딱 하나 있었다.

폭파광, 파이로.

☆ ☆ ☆

“씨발, 씨발, 씨발! 어떡하지!”

차례로 격파당한 공포심에서였을까?

소총수 하나가 손톱을 씹었다.

‘언더 다크랑 계약하는 게 아니었어. 돈 많이 준다고 했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전력 차이로 봤을 때 이길 수 있을 가능성은 적었다.

침투조 중 남은 인원은 겨우 다섯.

거기다 각성자는 하나밖에 없었다.

‘이게 전부 저거 때문이야!’

소총수는 느릿느릿 다가오는 가시벽을 쳐다봤다.

가시벽이 나타난 후 일방적이던 공세가 단숨에 기울었다.

‘항복하자! 항복하면 살려줄지도 몰라!’

소총수는 바로 총을 집어 던지고는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짚단 밖으로 걸어 나갔다.

“항복! 항복!”

상대가 정부였기에 항복한 자는 죽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자초지종을 설명할 누군가도 필요하지 않던가?

“지훈, 저거 어떡해? 항복하나 본데?”

“다짜고짜 폭탄 날려놓고 항복? 좆이나 까 잡수라 그래.”

푝!

소총수가 쓰러졌다.

항복하러 갔던 소총수가 쓰러지자 짚단 뒤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건 못 이겨. 난 여기서 죽기 싫어!”

한 돌격병의 이탈을 시작으로, 남은 인원이 모두 도망쳤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운동복을 입고 있던 흑인은, 그런 침투조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Pathetic motherfuckers(한심한 새끼들).”

가시벽 뒤에 실력 좋은 사수가 있어 얼마 못가 총 맞고 죽을 터였지만, 흑인은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Let'em burn(불타라).”

정확하게는 쉽게 죽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Invoke power, flame(이능 발동, 화염).”

화르르르!

흑인, 아니 파이로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손에 시퍼런 화염이 솟아났다.

“Invoke power, throwing flame(이능 발동, 화염 투사).”

이능 발동과 동시에 시퍼런 화염이 침투조에게 달려들었다.

“아아악!”

갑자기 원인 모를 불에 휩싸인 침투조들은 바닥을 굴렀지만, 이상하게도 불이 꺼지질 않았다.

* (이하 편의를 위해 파이로 대사를 한글로 표시합니다.)

“저 새끼들 왜 저래. 쟤네 소이탄도 쏴?”

지훈은 방패 너머로 침투조가 불타는 걸 바라봤다.

헌터와 전쟁 때문에 아무리 무기 관리 개판이 됐다고 한들, 소이탄까지 시중에 막 나돌아 다닐 정도는 아니었다.

그나마 비슷한 걸 구해봐야 해봐야 일반 산탄 탄환인 ‘드래곤 브레스’였다.

해당 탄은 셸 내부에 쇠구슬 대신 인화성 금속 분말을 넣은 탄환인데, 발사 시 불붙은 금속 덩어리들을 내뱉었다.

‘드래곤 브레스라기엔 화력이 너무 강하다. 게다가 색깔로 봐선 화염 방사기도 아냐.’

푸른색 불꽃은 완전 연소시 나타나는 고온의 불꽃이었다.

석유에 타르나 고무 등을 섞는 화염 방사기로는 절대 낼 수 없는 색이었다.

‘뭐지?’

섬뜩한 기시감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 전방 방출계 이능 사용 감지.

- 주의하십시오!

속삭이는 소리와 함께 푸른색 불꽃이 달려들었다!

“전방 불꽃! 막아볼게!”

업화를 연상시키는 푸른 불꽃이 칼콘을 덮쳤다.

화르르륵!

불덩이인 만큼 저지력은 전혀 없었다. 대신 벽에 부딪히자마자 순식간에 퍼져 방패를 통째로 삼켜버렸다.

몸에 닿지 않아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문제는 불이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현재 장비는 금속 기반으로 화염저항 없는 물건!

결국 얼마 지나지 않자 살이 익을 정도로 뜨거워졌다.

“으아아아! 뜨거워!”

“그냥 놔!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 갑옷으로 버텨!”

“지훈은!”

“난 알아서 피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조심해!”

칼콘은 말을 마치자마자 팔과 이어진 방패 연결고리를 풀었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한 방패가 바닥에 고꾸라졌다.

쿵!

“내 불꽃을 막다니. 제법인데?”

파이로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며 웃었다.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전장에 있음에도, 퍽 여유로워 보였다.

태도에서 뭔가 위험한 냄새를 감지한 지훈이 총을 겨눴다.

저쪽에서 먼저 말을 꺼낸 걸로 보아, 대화를 건네면 받아줄 것처럼 보였다.

“뭐하는 새끼냐.”

“곧 죽을 사람이랑 얘기해서 뭐해.”

“맞는 말이다. 시체가 될 놈이랑은 대화할 필요 없지.”

매번 그랬듯, 오래 얘기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파이로가 입을 여는 틈을 기다렸을 뿐이었다.

“당연….”

푝!

빈토레즈 탄환이 파이로의 향해 날아갔다.

심장을 향한 매서운 일격!

- 이능 발동, 위기대비 : 불꽃 방패.

하지만 갑자기 파이로의 몸 주변에 푸른 불꽃이 솟아났다.

화르르륵!

이에 녹는점이 낮은 OTN(오스테나이트)는 너무나도 쉽게 녹아버렸다.

철퍽!

파이로의 가슴엔 녹아내린 오스테나이트가 묻은 게 다였다.

“좋은 시도야. 싸움 좀 할 줄 아는 친군데?”

파이로가 피식 웃으며 농을 던졌지만, 지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조종간을 연사로 놓고 그대로 갈겼을 뿐이었다.

표표표표표표표표표푝!

- 이능 발동, 위기대비 : 불꽃 방패.

풀 오토로 갈겼음에도, 모든 총알이 녹아내려 버렸다.

“동양 친구! 그런 작은 탄환으론 날 건들 수 없어.”

탄두가 닿지도 않는다?

상식을 비트는 압도적인 힘에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마치 뇌가 하얗게 방전된 것 같았다.

그 사이 파이로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뭘 꺼냈다.

갈색 점토처럼 보이는 물건. IED(급조 폭발물)였다.

“미안한데, 내가 좀 바빠. 빨리 끝내자.”

파이로가 폭탄을 집어 던졌다.

굳어있던 머리가 순식간에 비명을 질렀다.

저건 맨 몸으로 막지 못한다.

도망쳐!

“이런 썅!”

화약 덩어리가 포물선을 그리며 지훈에게 날아왔다.

파이로가 작게 웅얼거렸다.

- 이능….

위험하다.

저 화약덩이가 눈앞에서 폭발하는 순간, 압도적인 운동에너지를 이기지 못하고 사지가 뜯겨져 나갈 게 분명했다.

- 발동….

재빨리 가속을 발동해도 미친 듯이 달렸다.

타타타타탓!

- 점화.

날아가던 IED위에 조그마한 불꽃이 일렁이는 듯싶더니….

눈앞에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칼콘!?’

방패를 버린 까닭에 맨몸이었다. 아무리 갑옷을 입은 상태라고 한들 폭발까지 완벽하게 막아낼 순 없을 터.

‘이 미친 새끼가!’

눈이 뽑혀져 나올 정도로 놀랐다.

반면 칼콘은 예상했다는 듯 픽 웃었다.

‘이번엔 절대 소중한 사람이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지훈. 오래 살아 남….”

콰쾅!

칼콘이 거센 화마에 휩싸였다.

☆ ☆ ☆

… … … … 콰 - 쾅!

마지막 짚단을 청소하고 있던 민우가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야, 야. 가벡! 저거 뭐야!”

“나 바쁘다. 말 걸지 마라.”

가벡은 한참 확인사살을 하는 중이었다. 민우는 그런 가벡을 발로 차버렸다.

“지금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저기 봐봐! 지훈 형님 있던 곳 아냐?”

민우는 안경을 다시 써보기도 하고, 눈도 찌푸려 봤지만 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지훈이라는 말에 가벡이 그제야 하던 일을 멈췄다.

“뭐? 지훈?”

가벡이 고개를 휙 돌려 폭발장소를 쳐다봤다.

칼콘과 지훈이 쓰러져 있었다.

타타타탓!

말할 것도 없이 달렸다.

‘아직 살아있다면 구해 와야 한다.’

폭발이 있었다면 후속 공격을 대비해 조심해야 했지만, 가벡은 그런 것 몰랐다. 총알이 날아오면 피하면 된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야, 야! 같이 가!”

민우가 뒤따랐다.

☆ ☆ ☆

귀에서 이명이 들렸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코가 뜨뜻했다. 피가 흘렀다.

“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잠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1초.

2초.

몸이 무겁다는 것을 느낀다.

뭔가에 깔려 있다는 걸 깨달았다.

“칼콘?”

칼콘이다.

얘가 왜 여기 있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 콰쾅!

기억을 훑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떠오른다.

“아, 아아아… 아악!”

믿을 수 없는 일에 비명을 지른다.

애써 일어나 칼콘을 흔든다.

반응이 없다.

죽었나?

부정했다.

있을 수 없다.

함께 수없이 많은 전장을 함께했다.

언제나 죽는 건 적이었다.

아군이 당하는 것 따위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래.

거짓말이다.

잠깐 기절한 거다.

폭발에 휘둘렸는데 어떻게 시체 이렇게 얌전해?

폭탄은 가짜다.

이능도 거짓말이다.

그냥 밀려 난거다.

잠깐….

잠깐 정신을 잃은 거다.

“일어나, 개새끼야. 장난질 그만 치고 일어나라고.”

있는 힘껏 칼콘을 붙들고 흔든다. 이상하게 가벼웠다.

슬쩍 훑으니 왼 팔과 왼 다리가 없다.

세상이 돌았다.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랐다.

지진이라도 난 듯, 시야가 흔들린다.

이윽고…

시야가 하얗게 점멸된다.

- 나는 지훈한테 목숨 2개 빚졌어. 언젠가 갚을 거야.

- 절대로 지훈을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아.

혼란스러운 머리 사이로 칼콘의 모습들이 투영된다.

시야가 흐려졌다.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눈물에 섞여, 붉게 물든 분노도 함께 흘러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