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69화 (69/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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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분 전.

골든 하플링 농장.

“어, 언더 다크가 왜… 이미 이번 달 상납은 전부….”

“아냐, 그게 아냐. 지금은 그 일로 온 게 아니라고.”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세월의 연륜이 묻어있는 얼굴에 말쑥한 차림새의 대머리. 그리고 특유의 능글능글한 웃음이 어울리는 사람.

시체 구덩이 주인이었다.

매일 가게에만 박혀있던 사람이 밖에 나와 있는 모습은, 마치 이상한 물건이 옳지 않는 장소에 있는 것 같은 뒤틀린 분위기를 자아냈다.

“오늘 크게 한 탕 해야 할 일이 있어. 자리 좀 빌려줘.”

골든 하플링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렸다.

오늘은 한국 정부에서 통과 협조가 들어온 날이었다. 협조까지 들어올 정도라면 분명 중요한 사람이 지나갈 터.

문제가 생기면 한국 정부에서 보복이 들어올 게 뻔했다.

“제, 제발… 그것만은 안 됩니다… 살려 주십쇼!”

“어머, 그런 거 아냐. 단지 아무것도 모른다고 눈감아 주기만 하면 돼.”

“한국 정부에서 협조가 들어왔단 말입니다!”

골든 하플링이 시체 구덩이 주인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저거 건드리면 우리 다 죽습니다. 제발! 상납량을 올리겠습니다.”

“우리 못 믿는 거야? 언더 다크의 가호라는 건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냐.”

“그런 문제가 아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는지, 골든 하플링은 주인의 가슴께를 붙잡았다. 아니, 붙잡으려 했다. 스프리건 호위가 오금을 때리지만 않았다면.

퍽!

“어걱!”

스프리건은 쓰러진 골든 하플링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댔다.

“더 다가간다. 너 죽는다.”

골든 하플링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했는지, 서러움과 함께 눈물을 토해냈다.

“그만해. 우리는 부탁을 하러 온 거야. 협박을 하러 온 게 아니라구. 품위 없게 뭐하는 짓?”

주인이 손짓하자 스프리건이 바로 떨어졌다.

이후 골든 하플링들은 주인의 안내에 따라 모두 지하실에 모였다.

“문은 잠그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나오면 휩쓸릴지도 모르니까, 하루 정도는 거기 숨어있어.”

일부 골든 하플링은 욕을 내뱉었지만, 주인은 웃기만 했다.

“그냥 하루 쉰다고 생각하고 이해 좀 해줘. 그래도 누구 다치는 사람은 없잖아?”

다시 농가 1층.

주인은 모여 있는 병력을 슥 훑었다.

평소의 실실 웃는 표정과는 달리 날카로운 모습이었다.

“준비는?”

“폭약 매설 끝났습니다.”

주인은 손으로 턱과 인중을 차례로 쓸었다. 까끌까끌하게 난 수염이 집중력을 높여줬다.

“잘 들어. 우리 목표는 교수야. 만약 교전 중에 교수가 죽으면 조교라도 좋아. 무조건 연구팀 중 하나는 잡아와.”

“예, 알겠습니다!”

“다들 모인 이유가 다른 건 알아. 돈, 계급, 티어, 계약, 빚. 하지만 목표는 같잖아. 그러니 일 잘 처리하자. 알겠지?”

주인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습격 계획을 점검했다.

[언더 다크 측 브리핑]

목표 : 연구 탈취를 위한 연구진 납치.

습격 인원 : 26명 (인간 25, 스프리건 1)

보직 구성 : 소총수 (15 명)

기관총 사수 (2 명)

돌격병 (3 명)

각성자들 (5명) (F~D 등급?)

저격수 (1 명) (주인)

스프리건 (1 개체)

장비 구성 :

소총수 : 각자 개인이 지참한 총기류(AK, K2, SO80 등)

5.56mm ~ 7.76mm OTN 탄 (F급 아티펙트 관통)

파쇄 수류탄

돌격병 : SPAS-12 샷건 (반자동)

슬러그탄 (일반)

섬광탄

저격수 : 모신나강 (고배율 스코프, 열감지 스코프)

7.62×54mm (일반)

기관총 사수 : 페체네그 (PKM, 러시아 제식 기관총)

7.62 × 54 mm (폭발탄환 20발, 일반탄 500발)

스프리건 : 왼손 (우지건 기관단총), 오른손 (USP 권총)

왼손 (9mm OTN탄), 오른손 (9mm 파쇄 마력탄)

각성자 : 각자 지참한 무기.

[작전 사안]

1 - 폭발물을 미리 매설해 놓는다.

2 - 내부 조력자가 신호를 주면 폭발물을 폭파.

3 - 기관총 사수가 마력탄환으로 차량 제압 후 지원사격.

4 - 지원사격을 바탕으로 소총수, 돌격병, 각성자 돌입.

4-1 - 호위병력 제거 후 목표 탈취

5 - 잔존 병력 제거 후 나머지 차량 폭파

“그리고 한 가지 주의 사항이 있어.”

설명을 마친 주인은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화면에 지훈의 사진이 떠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야. 언더 다크랑 연관 됐던 사람이니까 될 수 있으면 죽이지 말고 데려와. 옆에 붙어있는 오크랑 인간은… 죽이든 말든 마음대로 해.”

얘기를 하고 있자니 망을 보던 소총수가 외쳤다.

“하늘에 켄코 보입니다! 목표 등장!”

주인은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그리곤, 옆에 있던 모신나강을 집어 들었다.

“얘들아 목표 왔다, 일 하러 가자. 빨리 끝내고 맥주 한 잔 해야지?”

☆ ☆ ☆

초조하고 불편했다.

폐 안에 조그마한 돌멩이가 들어가 빠지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안 나는데, 진짜 화약 냄새 나?”

칼콘은 킁킁거리며 연신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분명 바람에 섞여 비릿한 화약향이 났다.

“그래.”

“어떻게 할 거야?”

말 해봐야 믿지 못할 건 알았지만,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당장 통신병에게 다가갔다.

“멈춰. 화약 냄새 난다.”

“뭐라고요?”

화약 밭에 있으니 당연히 화약 냄새가 나지, 도대체 뭔 냄새가 나냐는 표정을 짓는 통신병이었다.

“미친 새끼야, IED(급조 폭발물) 냄새 난다고!”

“달리는 차 안에서 폭탄 냄새라뇨, 그게 뭔….”

고민할 것 없었다. 당장 차를 세워야 했다.

만약 차 세워서 폭발물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그냥 욕 한 번 시원하게 먹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만약 실제로 있다면?

자칫 잘못하면 차량 째로 폭사할 수도 있었다.

“당장 차 세워, 이 개새끼야!”

통신병의 멱살을 붙잡고 들어올렸다.

엄청난 힘에 통신병이 공중에서 버둥거렸다.

“아, 알겠습니다! 세우라고 할 테니까, 이것 좀 놔 봐요!”

치직.

- 여기는 풍뎅이 2호, 용병이 폭탄 있는 것 같다고 차 세우랍니다!

- 뭐? 폭탄? 무슨 소리야?

치직.

- 모르겠습니다! 막무가내입니다.

- 그 새끼 등급 뭔데?

- 알 수 없습니다!

- 안 돼. 개소리하지 말라고 해.

결국 소대장은 멈추라는 말을 무시했다.

대신 하늘에 있는 켄코에게 주변 정찰을 지시했다.

- 여기는 독수리, 여기는 독수리. 딱히 이상은 없다.

- 알겠다. 계획대로 진행한다.

멈추지 않겠다는 말에 지훈이 이를 꽉 깨물었다.

“뭐래?”

“그냥 간단다.”

멈추라는 말이 무시됐다는 소식에 가벡, 민우, 칼콘 모두 염려하는 듯 했다.

“에이, 그냥 잘못 맡은 거겠지. 위에서 다 정찰하고 있는데, 뭔 일 있겠어?”

지훈도 꼭 그러길 기도했다.

☆ ☆ ☆

주인은 농가 2층 창문에서 엎드려 켄코를 겨누고 있었다.

손가락 한 번에 전쟁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묘한 흥분감이 들러붙었다.

치직.

- 내가 켄코 쏘면 10초 후에 폭파해.

- 알겠습니다. C4 폭파 준비 완료.

주인은 하늘을 쳐다봤다.

바람이 드센지, 구름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주인과 켄코와의 거리는 약 1.5km.

현재 켄코의 이동속도 시속 50km.

관측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저격이었다. 그럼에도 주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능 발동.’

그의 손가락이 작게 진동했다.

시간이 느려지거나, 집중력이 강해지거나 하진 않았다.

‘여기면 정확하겠군.’

- 탕!

대신 총알이 바람과 중력을 무시하고 직선으로 날아갔다.

☆ ☆ ☆

상공 20M 지점.

켄코는 주변을 둘러봤다.

무전 때문에 퍽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공중에서 횡으로 한 바퀴 돌며 주변 360도를 둘러봤다.

그러다 문득 농가 2층에서 뭔가 반짝이는 걸 발견했다.

‘스코프?’

켄코는 무전기를 들어 저격수의 존재를 알리려 했지만…

퍽!

☆ ☆ ☆

지훈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며 앉아있었다.

‘그냥 기우인가?’

괜한 시체 구덩이 주인 말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 졌으려니했다. 집에 가면 편히 쉬어야겠다, 라고 생각한 순간…

타 - - - 앙!

“총성?”

“씨발, 어떤 새끼야!”

트럭 안이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퍽!

좌측면에 하늘에 있어야 할 켄코가 바닥에 처박혔으며,

“씨발! 이거 뭐야! 밟아! 빨리 밟아!”

콰아아아아앙!

정신 추스르기도 전에 엄청난 폭음과 함께 군인들이 탄 선두차량이 폭발했다.

“아아아악!”

칼콘과 가벡은 다른 용병들처럼 어떻게 해야 고민하는 눈치였고, 민우는 바닥에 엎드려 비명을 질렀다.

“뛰어 내려! 2차 폭발이 있을 수 있다!”

“응!”

“알겠다.”

칼콘과 가벡은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반면 민우는 공포에 질렸는지, 바닥에서 오들오들 떨었다.

“뛰, 뛰어 내리라고요? 여기서?”

시속 70km 이상 밟는 차에서 뛰어내릴 경우, 재수가 없다면 뼈가 부러질 수도 있었다.

다리만 부러진다면 다행이지만, 낙법 잘못 쳤다간 구르는 와중에 사지의 뼈가 조각나거나 죽을 지도 몰랐다.

“일어나 새끼야!”

공포에 질린 상대에게 설명을 해봐야 먹힐 리 만무했다.

결국 지훈은 대답을 듣지도 않고 민우를 그대로 안고 트럭 밖으로 몸을 날렸다.

잠시 하늘에 붕 떠올라,

쿵! 하고 떨어져 대굴대굴 굴렀다.

하늘과 땅을 믹서기에 넣고 돌린 것 마냥 시야가 여러 번 돌았다. 그리고 그 사이로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 ☆ ☆

언더 다크의 일방적인 공세가 이어졌다.

시체 구덩이 주인의 켄코 저격을 시작으로, 이어 C4 격발로 앞쪽 트럭이 전복됐다. 이제 마무리만 하면 됐다.

언더 다크 측 기관총 사수가 방아쇠를 당겼다.

“크하하하! 죽어라!”

페체네그(PKM)가 불을 뿜으며 폭발 탄환을 토해냈다.

콰콰콰콰콰콰쾅!

융단폭격이라도 뿌린 듯 차량이 연이은 폭발에 휩싸였다.

10초도 안 돼는 시간 안에 두 기관총 사수는 40발의 마력 탄환을 모두 뿜어냈다.

발당 100만원을 호가하는 기관총용 탄환이니, 10초 만에 4000만원을 갈아버린 순간이었다.

치직

- 폭발 탄환 소모 완료. 엄호 사격 개시. 돌진하라.

무전과 동시에 언더 다크 강습대가 달려 나갔다.

☆ ☆ ☆

몇 바퀴나 굴렀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온몸을 사포로 문댄 것 같은 고통과 함께 토할 것 같은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콰콰콰콰쾅!

그리고 얼마 못 가 트럭이 연이은 폭발을 맞아 휘청거리다 풀썩 쓰러졌다.

쿵!

‘타고 있었으면 죽을 뻔 했다.’

계속 바닥에 누워 있을 수도 없었기에 재빨리 일어나 민우를 챙겼다.

“괜찮냐!?”

“죽은 것 같진 … 않 … 요.”

타타 - 탕탕타탕 - 탕타탕!

민우가 뭐라 중얼거렸지만, 소음에 묻혀 들을 수 없었다.

“달려 새끼야!”

엉거주춤 일어난 민우의 손목을 잡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고개를 돌리니 농가 쪽에서 인간들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시발, 저건 또 뭐하는 새끼들이야.’

통일된 의복 없이 들쭉날쭉한 옷을 입고 있는 걸 봤을 때 군대는 아니었다.

‘뭐하는 새끼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날 바닥에 구르게 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현재 지훈과 민우는 평야에 몸이 노출 된 상태.

엄폐할 수 있는 트럭과는 거리가 꽤 있었다.

슉, 슈슈슈슉 슉!

미친 듯이 달리자 상대방도 지훈과 민우를 인식하고 총알을 갈기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어, 어떡해요!”

“멈추면 뒤진다. 달려!”

현재 적과의 거리는 약 500M 내외.

사람이 손톱처럼 보일 거리였다. 거기다 달리기까지 한다면, 명사수가 아니고서야 맞출 수 없는 게 정상이었다.

슉!

눈앞으로 총알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위험하다고 느낄 시간도 없었다. 단지 멈추면 맞는다는 생각밖에 나질 않았다.

민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릎이 깨질듯이 아파왔지만, 지금 여기서 멈췄다간 죽을 것 같아 이를 악 물고 참았다.

그렇게 엄폐물로 쓸 수 있는 트럭을 약 50M 정도 남겨뒀을 때….

슈-욱

퍽!

지훈의 몸이 휘청거리더니 풀썩 쓰러졌다.

“혀, 형님!”

민우는 지훈이 총알에 맞은 걸 확인하고 바로 달려왔다.

“아아악, 이 개새끼들아!”

타타타타타타탕!

머리 위로 뜨거운 탄피가 쏟아져 내리는 걸 느껴졌다.

‘뭐지?’

욱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다.

단지 배 왼편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총알에 맞은 것 같았다.

다행히 OTN 탄인지라 지훈의 방탄 코트를 뚫지는 못했지만, 그 운동에너지 까지 상쇄하진 못했다.

일반인이었다면 늑골이 나갈 중상이었지만, 저항을 올려놓은 까닭에 뼈가 부러지진 않은 것 같았다.

상황 파악이 완료되자 지훈은 그제야 민우가 자기를 막고 서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미친 새끼!’

가만히 서서 총을 난사하다니?

와서 지켜준 건 고마웠지만, 저렇게 서있어서야 과녁밖에 되질 않는다.

“엎드려 새끼야!”

설명할 것도 없이 바로 민우의 오금을 팔꿈치로 때렸다.

그러자 민우가 억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었다. 지훈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민우의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너 뭐하는 거야!”

“혀, 형님이 쓰러지셔서….”

“뒤지기 싫으면 이딴 짓 하지 마! 살리는 것도 능력돼야 살리지, 나란히 요단강 건널 일 있어!?”

다행히 상대방은 이쪽이 사살됐다고 판단했는지, 더 이상 총알이 날아오진 않았다.

“형님, 이제 어떡해요?”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 어차피 딴 놈들 많아서 우리 신경 안 쓴다.”

머리 위로 총알이 오가는 전쟁터 속.

둘은 느린 속도로 엄폐물 까지 기어갔다.

“씨발, 저 새끼들 뭐야!”

“나도 몰라! 갈겨!”

트럭 뒤에 도착하자 용병들이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몇몇은 폭발에 휩쓸렸는지, 이미 시체가 된 이도 보였다.

“여, 여기는 풍댕이 2호. 대답하라 풍댕이 1호, 독수리!”

통신병은 무전기에 대고 끊임없이 소리치고 있었다. 지훈은 민우를 안전한 곳에 옮겨놓곤, 통신병에게 달려갔다.

“지원 요청해!”

“아…?”

통신병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지훈을 올려다봤다.

“지원 요청 하라고 병신아!”

“소, 소대장님의 허가가 있어야….”

“다 뒤졌어. 앞차 걸레짝 된 거 보면 몰라!?”

통신병의 얼굴에 짙은 좌절과 함께 공포가 드리웠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 때 차 세웠어야 했는데… 저 때문에… 내가 전부 죽였어… 내가….”

어린 나이인지라 정신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았지만, 총알 날아오는 상황에서 달래주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 씨발 새끼가 진짜!”

개머리 판으로 통신병의 방탄모를 후려쳤다.

뻑!

지훈은 이후 통신병에게 총을 겨눴다.

“아… 아?”

“뒤지기 싫으면 빨리 지원 요청해! 헬기 띄우라고!”

“여, 여기는 장수풍댕이. 지금 공격받고 있다. 위치는 골든 하플링 농가!”

일을 하는 통신병을 뒤로하곤 칼콘과 가벡을 찾았다.

‘빌어먹을 새끼들은 또 어디 있는 거야!‘

진행 방향 쪽 차량 살펴보자, SUV 3대가 차례로 너부러져 있었다. 이번에는 반대쪽을 살펴봤다.

저 멀리 커다란 방패를 들고 있는 인영이 보였다.

“칼콘!”

☆ ☆ ☆

팅! 티티티팅! 팅!

칼콘은 커다란 방패로 온 몸을 엄폐한 상태였다.

이를 발견한 언더 다크 소총수가 사격을 실시했으나, D등급 방패를 뚫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지금 칼콘의 방패는 무게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금속 죄다 때려 박아 만든 무식한 물건이었다.

동급 갑옷보다 훨씬 두껍기에 OTN 소총탄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나오자마자 전투라니, 피가 끓는구나!”

가벡은 방패로 엄폐한 칼콘 뒤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가벡은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미친놈아! 곧 죽을 판국에 끓긴 뭐가 끓어!”

칼콘은 그런 가벡 때문에 화가 들끓었다.

몇 번 정도 총알을 막아내자, 더 이상의 사격은 없었다.

이에 가벡이 궁금했는지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그리고 기관총 총구가 이쪽으로 향하는 걸 발견했다.

“야, 야. 칼콘. 큰 총이다. 큰 총 온다!”

“미친놈아, 뭐라는 거야!”

“자세! 자세! 자세!”

방패에 시야가 전부 가로막힌 터라 칼콘은 가벡이 뭘 봤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 농담 던질 가벡이 아니었기에, 일단은 말에 따랐다.

칼콘이 움직임을 멈추곤 방패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뭐가 날아와도 버틸 수 있게, 몸과 어깨로 지탱했다.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방패가 바닥에 들러붙었다.

그 모습이 꼭 벽이 생겨난 것 같았다.

“근데 큰 총이 뭐야?”

“누워서 쏘는 거 있다. 그거.”

“기관….”

총 이라고 말하려는 찰나 엄청난 굉음이 휘몰아쳤다.

티티티티티티팅!

티티티티티티티티팅!

티티티티팅!

7.62mm짜리 탄두들이 미친 듯이 방패에 틀어박혔다.

“끄아아아아아!”

비록 지름 1cm도 안 돼는 작은 납덩이라고 한들, 1초에 10발 이상씩 날아오면 얘기가 달랐다.

칼콘은 온 몸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자세 잡아. 쓰러지면 둘 다 죽어!”

“못 버티겠어!”

“내가 뒤에서 밀어준다. 걱정하지 마라!”

“젠장!”

칼콘이 양 손을 가드하듯 올리고, 오른 발은 뒤로 쭉 빼서 버티기 시작했다. 이에 가벡은 조금 물러나 칼콘의 어깨를 세게 밀었다.

칼콘 혼자서 감당할 때는 너무나도 힘들었던 충격이 가벡이 합류하자 버틸만한 수준으로 줄었다.

티티티티팅!

티티티팅!

팅!

대충 90발 이상 받아내고 나서야 총격이 멈췄다.

“재장전 하나 봐! 움직인다!”

칼콘은 바로 알아채곤 방패를 들어 올렸다.

몇몇 소총탄이 날아와서 박혔지만, 움직임을 방해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총알을 막아가며 게걸음질 치길 5분.

칼콘과 가벡도 트럭 뒤로 도착할 수 있었다.

“칼콘, 가벡! 무사하냐?”

트럭 너머로 사격을 하던 지훈이 칼콘을 발견하고 외쳤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근데 도대체 무슨 일이야?”

“화력 수준 봐서는 그냥 강도는 아니다.”

습격을 받는 와중에도 적의 정체를 모르니 답답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교수는?’

만약 교수가 죽는다면 의뢰비를 받을 수 없었다.

이딴 개고생 하고 돈까지 못 받는다?

절대 안 됐다.

다행히 교수는 장갑 처리된 SUV 뒤에서 주저앉아 있었다.

그냥 둬도 될까 싶었지만, 옆에 보디가드가 둘이나 붙어 있었기에 내버려 둬도 무방해 보였다.

‘좋아… 그럼 일단 저 또라이 새끼들부터 처리하자.’

지훈은 바닥에 엎드린 뒤 대굴대굴 굴러 평야로 나갔다.

만약 일반적인 옷을 입고 있었다면 훤히 보였을 행동. 하지만 지금 입고 있는 방탄 코트는 위장 도색이 된 상태였다.

멀리서는 바람에 풀이 흔들린 것으로 밖에 보이질 않겠지.

은폐를 완료한 빈토레즈를 꺼내 들었다.

유효사거리 600M.

E등급 아티펙트까지 관통하는 9X39mm OTN 아음속탄.

명중률을 엄청나게 향상시켜주는 집중 이능.

위급시 도망칠 수 있는 가속 이능.

이 모두가 합쳐져 지훈에게 엄청난 힘을 선사했다.

‘역공의 순간이다.’

퓩!

지훈이 방아쇠를 당긴 그 순간!

공수가 변경됐다.

☆ ☆ ☆

[현재 상황]

언더 다크는 폭발물을 다 사용한 뒤 전면전을 개시.

호위 일행은 쓰러진 차량을 엄폐물로 삼아 반격 중.

호위 일행 생존자 : 19명 (26명 사망)

사망 명단 : 켄코 포함 풍댕호 1호 전원(19명) 사망.

퐁댕호 2호에 타고 있던 용병 5명 사망.

SUV 호위 2명 사망.

각성자 현황 : 지훈, 가벡 외 4명

연구팀 생존자 : 교수 생존. 나머지는 알 수 없음.

언더 다크 생존자 : 24명 (2명 사망)

사망 명단 : 소총수 2 명

각성자 현황 : 시체 구덩이 주인 외 5명

현재 전력 : 호위팀 19 : 언더 다크 24.

정정.

사망자 발생.

언더 다크측 생존자 23명.

☆ ☆ ☆

퓩!

빈토레즈 총알이 순식간에 평원을 가로질렀다.

아음속이기에 바람을 찢는 소리 따윈 나지도 않았다.

매우 조용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상대방의 숨통을 끊을 뿐이었다.

“하하하 죽어라!”

상대는 소총수였다.

AK로 보이는 물건을 난사하고 있었다.

‘언더 다크도 나쁘지 않은데!?’

현재 그는 언더 다크에 돈을 빌렸다가, 막대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상태였다. 언더 다크는 빚 변제를 조건으로 습격에 그를 끌어들였다.

처음에는 위험한 냄새가 나서 꺼려졌지만,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상황이 되자 기쁘기만 했다.

‘그래. 솔직히 정부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 좆이나 까라 그래!’

하지만 그것도 잠시.

퍽!

뭐에 맞았는지도 모른 채 바닥에 픽 쓰러졌다.

“형씨. 저거 뒤졌는데?”

“병신, 내가 방탄모 쓰라고 몇 번을 얘기했는데.”

“멋 부리다 훅 갔나보네.”

동료가 죽었음에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애초에 같은 팀도 아니었고, 각자 다른 이유로 뭉친 녀석들이었다. 전우애 따위 있을 리 없었다.

방탄모를 쓴 소총수가 엄폐물 밖으로 총을 겨눴다.

지훈은 방금 쓰러진 녀석 옆으로 다른 놈이 고개를 내미는 걸 확인했다. 튀어나온 머리의 반 이상이 방탄모로 덮여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방탄모 째로 뚫어주마.’

굉장히 먼 거리라 스코프로 봐도 손톱만큼 작게 보였다.

조금만 실수해도 맞지 않는 거리.

하지만 못 맞출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집중 이능 따위 필요도 없었다.

‘바람 동풍. 세기 약함. 거리 500.’

목표보다 조금 더 상단 우측을 겨냥한 뒤….

퓩!

1초, 2초, 반.

방탄모를 쓰고 있던 남자가 그대로 나무토막처럼 쓰러졌다.

‘자 다음은 누구냐.’

☆ ☆ ☆

주인은 그저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너 안 쏘신다. 나 이유 모른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스프리건이 입을 열었다.

“그냥. 아는 사람을 지켜보고 있어.”

“왜 죽이지 않으신다?”

“그냥. 난 저 녀석이 좋거든.”

어차피 주인은 습격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돈을 받을 수 있었기에, 이 싸움에 큰 관심이 없었다.

어느 정도 열심히 했다는 모습만 보여주면 됐다.

“나 언제 나가면 되시냐?”

스프리건이 나지막이 물었다.

“기다려. 이제 곧 지루한 탄막전이 끝날걸. 그럼 돌격병이랑 각성자들이 흙탕물 싸움을 시작할거야.”

“잘 아시겠다.”

주인은 다시 스코프로 눈을 옮겼다.

빈토레즈로 저격하는 지훈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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