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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의 반지-68화 (68/173)

<-- 화약 냄새 -->

“겨우 악수에 뭐 그렇게들 긴장해? 나약하구만. 근데 이 녀석 말고 전사는 없나? 난 전사랑 얘기하고 싶다.”

소대장이 슬쩍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서 얘기 좀 해봐요. 총이랑 전차 얘기하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소대장이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그가쉬에게 다가갔다.

그가 받은 명령은 간단했다.

[만약 버그베어들이 비협조적으로 나오거나, 후환이 될 것 같은 경우 처리한 뒤 몬스터 짓으로 꾸미라.]

현재 그가쉬 클랜은 전쟁으로 많은 각성자를 잃은 상황.

반면 이쪽은 용병 포함 각성자 숫자가 15명을 넘었다.

‘몬스터잖아. 어차피 죽여도 상관없을 거야. 아니, 차라리 죽이는 편이 진급에 더 좋을지도.’

애초에 싸워봐야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만약 저쪽에서 명분을 제공한다면 이쪽은 고마운 마음으로 무력을 휘두르면 됐다.

소대장은 일부러 거만한 태도로 그가쉬에게 말했다.

- 아 뭐. 계약금으로 총 줬잖아. 또 뭐가 문젠데.

- 전차가 없다. 씹어 먹을 인간새끼야.

- 아직 광산 짓지도 않았는데 전차를 어떻게 줘. 계약 조건 이행도 안하고 보상부터 달라면 어쩌라고.

- 만약 이대로 사기를 칠 생각이라면….

- 광산 짓고 준다고. 진짜 애새끼도 아니고.

소대장은 그걸 마지막으로 등을 돌렸다. 그가쉬는 소대장의 태도가 못마땅한 듯 이를 드러내고 씩씩댔다.

‘역시 가벡의 말이 맞았다. 인간들은 믿을 게 못 돼. 몸에 털도 없는 더러운 변종 원숭이들.’

그가쉬가 소대장에 등에 소리를 질렀다.

“이봐! 난 너희를 믿을 수 없다. 감시를 붙이겠다.”

“뭐?”

예상치 못한 전개였지만, 딱히 판을 엎을만한 명분이 생길만한 제안은 아니었다.

저쪽에서 먼저 총 겨누지 않는 한 막가파로 거절하고 죄다 쏴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짓을 했다간 정치적, 외교적 문제로 번져 주변 이종족들에게서 고립되는 최악의 경우가 생길 수도 있었다.

소대장은 얼굴을 찌푸렸으나 일단은 제안을 승낙했다.

“마음대로 해.”

어차피 버그베어 측에서 바보짓만 하지 않으면 계약을 이행 할 대한민국 정부였다.

감시가 붙는다고 한들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난 이번 전쟁의 영웅, 가벡을 보내겠다.”

반면 지훈은 예상치 못한 결과에 얼굴을 찌푸렸다.

‘여기서 저 새끼가 왜 나와?’

식상한 말.

나비효과.

될 대로 되라는 투로 내뱉은 한 마디가, 태풍으로 변해 일행을 때린 순간이었다.

- 뭐 차에만 타면 데려다 줄 순 있겠지.

이 말을 들은 가벡은 바로 그가쉬에게 달려갔다.

인간을 믿을 수 없다며 감시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이에 피해망상과 편집증이 있는 그가쉬는 그대로 승낙, 가벡이 원한대로 그를 감시역으로 붙이게 된 것이었다.

‘저 또라이 새끼가….’

칼콘과 민우는 아무것도 모른 채 좋아했지만 지훈은 진실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만약 내 투사가 한 달 내로 돌아오지 않거나, 전차가 도착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린 인간을 적대하겠다.”

상황으로 볼 때 가벡은 그가쉬 클랜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차피 우리가 돌아가는 즉시 광부들이 파견될 거다. 전차는 그 때 받을 수 있을 테니 걱정 마. 너희나 광부나 연구원에게 이상한 짓이나 하지 마라.”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 너희가 계약 조건만 이행한다면 아무런 일도 벌이지지 않을거다.”

그렇게 가벡이 합류했다.

방법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아마 저쪽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리라.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안 나쁜 것은 아니었다.

지훈은 차 안에서 얼굴을 구긴 체 가벡을 쳐다봤다.

“문제 있나?”

듣는 귀가 있기에 차마 대놓고 욕도 못하고, 속만 탔다.

‘미친놈. 막장인거 알았을 때부터 거리를 뒀어야 했다.’

속으로는 짜증이 났으나, 입에는 다른 내용을 담았다.

“딱히. 다시 만나니 좋군.”

“가시 산맥으로 나가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설레는군.”

설레는 가벡과 달리 지훈은 이제 저 혹덩이를 어떻게 떼어내야 하나 고민만 한 가득이었다.

내버려 뒀다간 분명 일주일도 못 갈게 분명했다. 추방 혹은 철창 또는 총살 셋 중 하나겠지.

‘사고 칠 거 뻔히 보이는데 버릴 수도 없고, 환장하겠네.’

몇 분간 고민에 빠졌다. 그 결과 그나마 종족 간 차이가 적은 칼콘과 붙여놓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응할 때 까지만 같이 있는 정도라면 상관없겠지.’

칼콘도 이주 당시 엄청 고생 했으니 측은함을 느낄 터. 아마 안면몰수하고 모른 척 하진 않을 것 같았다.

이제 골치 아픈 문제는 해결됐다.

편한 마음으로 쉬고 있자니 휴식 시간을 틈타 교수가 뒤쪽 트럭으로 옮겨 탔다.

호위 병력들이 깜짝 놀라며 SUV로 돌아가라고 말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무슨 일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왔습니까?”

궁금증을 담아 묻자, 교수가 목소리를 낮췄다.

-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 도대체 어떤 중요한 문제 길래 그러시는 겁니까?

- 이번에 발견 된 신금속 때문입니다.

저번에 구해줬다지만, 그건 이번 호위대에 넣어주는 걸로 전부 청산됐다. 이걸 도대체 왜 나한테 얘기나 싶었다.

- 노벨상 받으시겠군요. 축하드립니다.

- 노벨상 까진 아니겠지만, 그래도 감사합니다. 대외비라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기 때문에 짧게 말하겠습니다.

중요한 말이 나올 것 같아서 귀를 기울였다.

- 엄청나게 비싸질 겁니다.

신금속이 비싼 거야 당연했다.

- 그럼 돈 많이 버시겠군. 축하드립니다.

- 아마 헌팅 물품에 사용될 겁니다. 그러니 나중에 가져오시면 정제해 드리겠습니다.

- 무슨 말씀이십니까?

- 저번에 드린 원석 말입니다.

그제야 감사의 의미로 원석을 받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굳이 쓸 데도 없었기에 책장 위에 장식용으로 올려놓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 학계와 방송 발표가 끝나고 난 뒤 제게 다시 연락해 주십시오. 제 연구를 무사히 끝마치게 해주신 보답을 하겠습니다.

☆ ☆ ☆

교수는 휴식시간이 끝나자 다시 SUV로 돌아갔다.

다시 지루한 풍경만 바라보고 있자니 칼콘이 물었다.

“뭔 얘기한 거야?”

“저번에 받은 원석 기억 나냐?”

“응.”

“나중에 찾아오면 정제해 준대.”

칼콘이 오~ 하는 탄성을 냈다.

“거기서 뽑아봐야 얼마 나오지도 않을 테니까, 팔아다 정산이나 하자.”

원석이래 봐야 사람 머리만한 돌덩이였다. 정제하면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양이 적으면 팔아도 소득이 적다는 얘긴데, 푼돈 가지고 괜히 나중에 말 나오게 하기는 싫었다.

시원한 바람과 끝없는 지평선만 보길 다시 2시간.

원래대로라면 도착하고도 남았어야 할 시간인데도 리뱃은 커녕 사람 그림자도 보이질 않았다.

‘어딜 가는 거야?’

궁금증에 앞쪽에 있는 통신병에게 물었다.

연락을 위해 용병 부대에 붙어있는 군인이었다.

“리뱃으로 가는 거 아냐? 왜 도착을 안 해.”

툭 튀어나온 반말.

통신병은 얼굴을 찌푸렸지만 그러려니 했다. 세드에서 군 생활을 할 정도로 실력이 좋아봐야 어차피 20대 초반이었다.

나이로 따져봐야 지훈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었다.

“잠시 만요.”

통신병은 바로 무전기를 들고 물어봤다.

- 괜찮아. 알려줘.

- 예, 알겠습니다.

“습격 대비해서 진로를 바꿨습니다. 신금속 발견이라, 다른 국가나 기타 어중이떠중이가 습격할 수도 있거든요.”

통신병은 2시간 정도만 더 가면 리뱃에 도착할 거라고 귀띔해 줬다.

‘지루하게 돌아가네.’

한숨을 푹 내쉬고 잠이나 잘까 싶은 순간, 진행방향 쪽에 커다란 밭과 농가가 드문드문 보였다.

‘저건 또 뭔….’

밭과 농가가 있다는 건 곧 누군가가 있다는 얘기였고, 이는 곧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야, 저거 뭐냐?”

지훈이 통신병에게 묻자 피식 웃었다.

“저거 아마 골든 하플링 농가일 겁니다.”

들어 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골든 하플링은 유명한 농업 종족이었다.

키는 약 1M 30cm로 고블린과 비슷했고, 매우 온순해 전쟁보다는 농업을 사랑하는 종족이었다.

보통 평야에 살았는데, 식량이 풍족한 탓인지 폭발적인 인구 성장을 자랑했다.

몇 년 만에 평야를 밭으로 바꿀 정도였다.

“근데 듣던 거랑 다르게 밭이 작네. 그리고 휑하고 뚫려있는데 방어는 어쩌고?”

이 질문에는 칼콘이 대답해줬다.

“쟤네는 그런 거 안 해. 그냥 주변에 큰 종족이나 세력한테 붙어서 곡물을 제공하고, 보호를 받지.”

골든 하플링은 살아남기 위해 날카로운 손톱이나 터질 것 같은 근육을 선택한 타 종족과는 달랐다.

도리어 체구를 작게 만들어 신진대사를 낮춤과 동시에 긴 수명을 얻었고, 땅을 파기 좋은 두꺼운 손과 발을 얻었다.

그렇기에 타 종족은 쉽게 골든 하플링을 정복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고기 말고는 얻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닭을 생각하면 쉬웠다.

닭은 날지도 못했고, 덩치도 작았다.

엄청나게 약한 조건으로 진화했음에도 그들은 오랜 생존경쟁에서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이유는 바로 공존에 있었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암탉을 바로 잡아먹지는 않지.’

주변에서 전쟁이 나든, 패자가 바뀌든 골든 하플링은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주기적으로 질 좋은 곡물과 음식을 제공했을 뿐이었다.

이렇기에 주변 종족은 골든 하플링을 ‘종족’이 아닌 ‘자원’으로 인식했고, 이 자원을 훼손하는 자는 공공의 적이 됐다.

“아마 저기는 더 그럴걸. 듣기로 동쪽 평원에 그레이트 웜 사용해서 농사짓는 골든 하플링 무리가 있다고 들었어.”

그레이트 웜은 길이가 2M에 달하는 토룡이었다.

주식으로 흙을 먹지만, 만약 자기 서식지에 다른 동물이 침범하면 가리지 않고 잡아먹었다.

몸 자체는 아무런 비늘도 없어 연약했지만, 요는 이동속도였다. 땅을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예상치 못한 곳을 습격했기에 까다로운 상대였다.

“위험 대비 얻을 게 없잖아. 아무도 안 건드려.”

칼콘은 설명을 마치곤 픽 웃었다. 그러다 배가 고팠는지, 골든 하플링 작물을 먹고 싶다며 입을 쩝쩝거렸다.

“그래서 결론은 안전하다?”

“응. 걱정할 거 전혀 없어.”

안심하라는 말에도, 지훈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이상하다. 뭐지?’

목젖에 뭐라도 들러붙은 듯 꺼림칙했고,

발바닥은 누가 바늘로 찌르듯 따가웠으며,

지나가는 바람에는 옅은 화약 냄새가 섞인 것 같았다.

기분 탓으로 넘길 수도 있었으나, 화약 냄새라는 대목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평야 한가운데에서 화약 냄새라니?

“잠깐만. 화약 냄새 안 나냐?”

“당연하겠지. 화약 위에 타고 있잖아.”

칼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타고 있는 트럭에는 수천발의 탄약 외에도 수류탄 등 온갖 폭발물이 실려 있었다. 화약 냄새가 나는 게 당연했다.

“그거 말고. 바람에.”

칼콘과 민우가 긴장했다.

여태껏 지훈의 감은 틀린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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