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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의 반지-64화 (64/173)

<-- 인연은 항상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엮인다. -->

위험과는 거리가 먼 일상에 파묻혀 지냈다.

운동, 마법 수련, 사격 등 이미 반쯤은 취미 생활이 된 훈련도 이제는 습관이 됐고, 틈틈이 대인관계도 쌓았다.

그렇게 이주일 정도 흐르자 민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이번에 재밌는 일 있던데, 들어 보셨어요?”

“뭐.”

“저희가 구출해 준 연구팀 있잖아요. 신금속 발견했대요.”

아마 그가쉬 클랜에서 구출해 온 사람들을 말하는 듯 했다.

“잘 됐네. 근데 그게 뭐?”

걔네가 신금속 발견한 건 한 거고, 우리는 우리다.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재밌는 소문이 돌아요. 보니까 금속이 꽤 좋은 건가본데, 정부가 그가쉬 클랜에게 광업권을 따려고 한대요. 듣기로는 지금 거의 딜 끝났다고 해요.”

신금속 발견이야 먼 얘기니 관심 없었지만, 광업권이 붙는다면 또 달랐다. 국가 간 거래에는 금 묻은 콩고물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자세를 고쳐 잡고 물었다.

“그래서?”

“연구팀이랑 수송팀 보호할 사람 모집하고 있대요. 전쟁 끝났으니 위험할 건 없을 테고… 그냥 명목상으로 붙이는 것 같아요.”

분명 가시적인 위험요소가 없으니, 뽑히기만 하면 정말 좋은 조건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근데 제일 대박인건, 담당자가 저번에 그 교수에요.”

용병일 했을 때 그 의뢰인을 말하는 듯 했다.

“너 뭐 중요한 약속 있냐?”

“아뇨.”

“일단 시간 비워놔. 내가 나중에 다시 전화한다.”

더 들어볼 것도 없이 잡아야 하는 의뢰였다.

저번에 신데렐라 퍼퓸 때 일을 하다 그만뒀기에, 이번에는 제대로 된 일거리를 잡아야 했다.

'칼콘은 어차피 돈 부족하다고 했다. 물어볼 필요 없다.'

TV 주변 서랍을 뒤적여 교수 명함을 찾아냈다. 다시 볼 일 없을 것 같아 방치한 탓인지 먼지를 머금고 있었다.

'인원 차기 전에 최대한 빨리 움직이는 게 좋다.'

뚜르르 - 뚜르르 -

안 받나 싶어 끊으려는 찰나 교수의 목소리 들려왔다.

“여보세요?”

간단한 소개와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다.

교수는 굉장히 반가운 내색을 하며, 그렇지 않아도 최근 부탁할 일이 있어서 다시 전화하려던 참이라고 말했다.

“신금속 발견 축하드립니다.”

“다 지훈 군 덕분이지요. 그렇지 않아도 전화하려던 용건이 그거였는데, 혹시 요즘 바쁘십니까?”

“아뇨.”

혹여 일이 있더라도 일 비워가며 시간 만들 생각이었다.

“이번에 연구팀을 보호할 사람을 모집하고 있는데, 혹시 생각이 있으신가 싶어서요.”

이쪽에서 꺼내려던 얘기가 튀어나왔다.

굳이 내색할 필요 없었기에 살짝 모르는 척 한 발 뺐다.

“좋은 일거리 같네요. 근데 정부 일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절차가 있을 텐데요?”

“에이, 저희 사이에 무슨 절차입니까. 그리고 제가 담당자입니다. 전부 처리해 놓을 테니 걱정 마십시오.”

지훈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일이 쉽게 풀리는 군.’

“그럼 연구팀 출발은 언제쯤 할 지 알고 싶습니다. 준비해 놓을 게 많거든요.”

“아마 이주일 후쯤 일겁니다. 제가 출발 전에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예, 그럼 저도 준비하며 기다리겠습니다.”

뚝.

전화가 끊기자마자 지훈이 픽 웃었다.

'꽁돈 벌게 생겼군.'

이번 일은 호위였기에 타 임무에 비해 비교적 쉬울 게 분명했다. 게다가 저번처럼 소규모도 아닌 대규모였다.

이후 지훈은 칼콘과 민우에게 전화해, 의뢰 내용을 알려주고는 각자 준비하라고 일러뒀다.

“민우, 특히 너는 체력 단련 열심히 해라. 이번에 싸움 나면 강도일 텐데, 그러다 엄폐도 못하고 죽는다.”

“걱정 마십쇼, 형님. 제가 요즘 매일 달리고 있습니다.”

“그래. 네 목숨이니까 알아서 챙겨.”

아마 정부가 호위팀을 크게 만들 것 같으니, 그거 털 미친놈들은 없겠지만 혹시 또 몰랐다. 괜히 방심하고 있다가 객사 할 수도 있었기에, 적당한 긴장감은 필수였다.

일행은 일주일 후 장비를 구입하기로 하고 해산했다.

☆ ☆ ☆

대규모 연구팀 호위를 하게 됐다고 하자, 시연이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불안한 것처럼 보였다.

“너무 위험한 거 아냐? 요즘 강도 많다던데….”

“자주 나가서 괜찮아. 걱정하지 마.”

직업이 헌터라 헌팅 나가는 걸 말릴 순 없었지만, 그래도 위험한 곳으로 자꾸 나간다고 하니 걱정이 앞섰다.

C등급 헌터고 권총탄도 튕겨내는 저항을 갖고 있다지만, 그래도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는 것 아니던가.

결국 시연이 불안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나 특허랑 연구 논문 가진 거 있어서 돈 많아. 그냥 안전한 곳에 있으면 안 돼? 내가 너 책임질 수 있어.”

진심 섞인 걱정이었다.

실제로 그녀에겐 지훈과 지현 두 명 정돈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재력이 있었다.

여기서 “알겠어.” 라는 말 한 마디면 그대로 사뭇 많은 남성들의 로망인 셔터맨이 돼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누릴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생사를 넘나들며 위험천만한 짓거리 따윈 할 필요도 없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싫었다.

‘지금은 좋다지만, 얘랑 지금 이 상태로 결혼을 할지 안 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언제부턴가 헌팅을 나가는 게 좋아졌다.

개같이 힘들고, 빌어먹게 위험했지만 헌팅 한 번 나가서 남들 연봉을 벌어온다는 사실은 분명 엄청나게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항상 무시 받고 천대 받으며 살아온 반작용인지, 한 번 헌터로서 받아본 선망과 동경을 잊을 수가 없었다.

- 저거 봐, 헌터인가 봐. 멋지다.

- 나도 헌터 되고 싶다.

참 웃겼다.

비각성자 일 때는 그렇게 무시했던 헌터이거늘, 되고나니 그 맛이 끝내줘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이래서 헌터들이 다 또라이 되나.’

픽 웃음이 나왔다.

“어떻게 너한테 얹혀서 사냐. 고추 달고 태어났으면 나랑 내 가족 밥벌이는 직접 해야지. 그리고 누가 누굴 책임져. 네가 날 책임지는 게 아니라, 내가 널 책임지는 거다.”

지훈은 그렇게 말하며 시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책임져 준다는 말은 굉장히 기뻤으나, 남자 친구가 사지로 나간다는 건 여전히 못마땅해 했다.

“그래도….”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갑론을박이 계속됐지만, 결국 지훈의 승리로 끝났다.

“나 이만 가볼게. 준비해야 할 거 많아.”

등을 돌리려는 찰나, 시연이 옷깃을 붙잡았다.

“다치지 마. 알겠지?”

“이번에는 안전한 일이니까 걱정하지 마.”

“응….”

눈망울을 적시는 그녀를 보며, 지훈은 다시 한 번 저 얼굴 보기 위해서라도 꼭 조심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지현은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벌써? 돈 아직 많이 남았잖아. 요즘 헌팅 나가는 주기가 좀 빨라지는 것 같네.”

“더 이상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살기 싫다. 그리고 네 약 값이랑 치료비도 은근히 많이 나가고.”

지현은 얹혀사는 입장인지라 돈을 벌어온다는 건 좋았지만, 헌팅이 위험했기에 살짝 떨떠름해하는 것 같았다.

“아니… 치료 좀 늦춰도 괜찮아. 약 먹으면 더 이상 심해지지도 않고. 그냥 좀 쉬는 게 어때?”

“마음에도 없는 말 됐다.”

지현의 표정이 살짝 풀이 죽었다가 살아났다.

억지로라도 웃는 것 같았다.

“하, 어떻게 내 맘을 그렇게 잘 알아? 바로 돈 벌어오라면 속물 같아 보일까봐 연기 한 번 해봤어.”

“그러면 그렇지, 됐다 이 년아.”

“저 인간이 어디 가서 뒈질 놈이 아닌데, 내가 괜한 걱정을 왜 해?”

방 안에 한바탕 웃음이 흘렀다.

“어차피 열흘 뒤에 출발이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라.”

“안 해. 밥이나 먹자.”

“외식할래?”

“아, 나 오빠 헌팅 나가고 나서 너무 좋아진 것 같아.”

“사탕발림은 가서 딴 남자한테나 해라, 이 년아.”

외식을 하던 도중, 스쳐 지나가듯 지현이 말했다.

“나 돈 없어도 괜찮으니까, 너무 무리는 하지 마. 이제 가족이라곤 둘 밖에 없는데… 잘못되면 어떡해.”

역시 동생은 동생인지라, 말은 저렇게 해도 엄청나게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그 시각, 칼콘은 톨퐁과 함께 있었다.

둘은 침대 위에 땀범벅이 된 채 누워있었다.

“나 또 헌팅 나가.”

“왜? 아직 돈 남았잖아.”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야.”

“꼭 가야돼?”

칼콘은 잠시 고민했다.

사실 지훈 정도의 실력이면 칼콘 하나 정도 빠진다고 해서 큰 애로가 꽃필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실력이랑 추종이랑은 다른 문제 같아.’

“응, 가야돼. 그 지훈이 내 목숨 두 번이나 살려줬어.”

톨퐁 역시 지금은 인간의 땅에 있으나, 어렸을 적엔 오크로서 자란 존재였다.

오크에게 있어 목숨 빚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가서 두 번 죽어줘야겠네. 명 짧은 남자는 싫은데.”

“나 죽으면 다른 남자 만나면 되잖아?”

“인간은 싫어. 모르겠다~ 어렸을 땐 아빠를 그렇게 싫어했는데, 크니까 이상하게 오크만 찾게 되네.”

“그럼 기다려야지 뭐.”

작은 한숨이 흘렀다.

“늦게 오면 다른 남자랑 잘 거야.”

“마음대로 해.”

“뭐야, 화도 안 나?”

“네가 바람피우는 건 내가 능력 없기 때문이잖아. 신경 안 써. 그리고 여기서 오크는 어떻게 찾게? 나랑 자고나서 인간을 만나봐야 만족도 못할 텐데.”

톨퐁이 입을 꾹 다물었다.

질투를 자극하려고 한 말이거늘, 너무 당당한 태도에 할 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시각, 민우는.

혼자서 해피 타임을 즐겼다.

작박구리 폴더 속 그녀들과 즐거운 시간도 한 때.

얼마 후 세상만사가 비어있는 공허함이 밀려왔다.

“아… 여자 친구를 만들던가 해야지. 이게 뭐하는 건지.”

지훈처럼 책임 질 사람도 없고, 칼콘처럼 음식에 신경을 쓰는 타입도 아니었기에 돈을 벌어봐야 쓸 곳이 없었다.

일단 많으면 좋으니 벌긴 했지만… 여태껏 돈 쓴 곳이라곤 인터넷과 방탄복 그리고 체육관비가 다였다.

“나도 여자 친구 만들고 싶다… 아아, 지현씨~”

지현의 모습에 샷건이 오버랩 되어 보이는 이유는 뭘까.

민우가 한숨을 내뱉었다.

☆ ☆ ☆

셋은 각자 나름대로 유익한 시간을 보낸 뒤 동구에 모였다.

장비 구입을 위해서였다.

“근데 왜 동구로 모이라고 하셨어요? 동구엔 각성자 물품 거래소 없잖아요.”

“대신 믿을만한 뒷구멍이 하나 있지.”

석중을 말하는 거였다.

C등급 이상이라면 모를까, D등급까진 모조리 구할 수 있는 장소였다. 게다가 C등급도 사는 사람이 없어서 들여놓지 않는 거지, 석중의 수완이라면 충분했다.

“서, 석중 할배 말하는 거 아니죠?”

자기 죽이라고 킬러를 보낸 사람이었기에, 민우는 석중이 꼭 저승사자처럼 느껴졌다.

“정확하네. 맞아.”

긍정해주자 민우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익숙한 뒷골목으로 들어가, 곰팡이 냄새가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초행길인 민우에게는 굉장히 위험한 장소로 보였는지, 어깨를 움츠렸다.

“하이고, 개 또라이 새끼. 기깟 계집 년 보호하라 소개시켜 줬드마, 가서 하라는 보호는 아니고 아 병신 만들어 놨다드마. 쓰애끼, 앞으로 낯짝이 있으면 여기 얼굴 비추지 말라.”

저번 사건을 제대로 박살난 터라 화가 난 석중이었다.

“힘이 잔뜩 들어갔구만. 요즘엔 발기 좀 되나보오?”

“하하. 오크 부랄 거 효과 없더라. 우리 팔딱팔딱한 각성자 지훈이 부랄 좀 씹어보면 효과 있을지 모르겠는데. 거 이리 와보라. 내 손수 뜯어 준디.”

“내 이쪽 일 하면서 여타 상또라이 새끼들 많이 봤는데, 진짜 석중 할배만한 사람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소.”

거친 욕설을 주고받으며 지훈과 석중이 비릿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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