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 -->
이후 신데렐라 퍼퓸은 악조건 속에서도 콘서트를 끝냈다.
혹여 방송이나 인터뷰에서 이상한 말을 할까 싶기도 했지만, 어차피 저쪽도 감정 노동자였다.
매스컴에서 사적인 일 꺼내며 눈물바다 만들어 봐야 좋을 것 없을 거라는 건 신데렐라 퍼퓸이 더 잘 알았다.
덤으로 이쪽에서 성국의 불법 및 까트 유통을 알고 있었으니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다 하고 넘어 간 것도 있으리라.
성국에게 강탈해 온 까트는 시체 구덩이를 통해 정산했다.
원래 하려던 일이 틀어졌기에, 민우나 칼콘에게서 불만이 나올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다행히 둘 다 조용했다.
“너 신데렐라 퍼퓸 좋아한다며. 아쉽지 않아?”
“형님. 원래 걸 그룹 덕질에는 끝이 없습니다. 이미 다른 애들로 갈아탔어요.”
웃는 모습을 보니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나는 재밌었어. 돈도 받고, 경호원 흉내도 내고.”
그 증거로 칼콘은 유니폼으로 받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정장을 입을 기회가 없었던지라, 이번 기회에 얻은 정장이 퍽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이 경호원이라기 보단 어깨 내지는 저승사자 같은 느낌이 났지만 딱히 말을 하진 않았다.
‘그래도 흰 스키니 진보다는 훨씬 낫지 뭐.’
잠시 이번 일에 대해서 이런저런 잡담을 나눴다.
“와 근데 형님 장난 없네요. 여자라고 봐줄 줄 알았는데.”
“무슨 소리야. 그게 봐준 건데?”
남자가 그딴 짓 했으면 지금쯤 요단강에서 저승사자랑 하이파이브 하고 있었다.
“에이, 그게요?”
“개구리 올챙잇적 모른다고, 너 이 새끼 암시장에서 있었던 일은 하나도 생각 안 나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머리부터 찍은 뒤,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서 머리에 총부터 들이댔다.
나쁜 과거가 떠올랐는지 민우가 새하얀 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야죠. 동료 아닙니까.”
동료라는 말에 칼콘이 민우의 등을 팡팡 때렸다. 있는 힘껏 때렸는지 사람 등에서 풍선 터지는 소리가 났다.
“오줌 지렸던 게 옛날 같은데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되네.”
“아, 칼콘.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와요.”
거친 스킨십을 하며 옛날 일을 꺼낸다는 건 동료로 인식한다는 뜻이었지만, 민우는 그저 부끄러워하기만 했다.
한동안 낄낄거리며 불쾌한 감정들을 털어내고 있자니 시체 구덩이 부엌 쪽에서 익숙한 얼굴이 걸어 나왔다.
- 어?
익숙한 얼굴, 전직 크라토스 선수가 방긋 웃었다.
그는 주인과 뭐라 대화를 나눈 뒤 지훈 쪽으로 다가왔다.
“잘 지내셨어요?”
살갑게 구는 거 보니 주인이 쓸 데 없는 말을 귀띔해준 게 분명했다.
‘저 새끼는 중요한 일은 입 싹 닫으면서, 꼭 이렇게 이상한데서 입 조잘거리네. 젠장.’
어울리지도 않는 감사 인사 및 귀찮은 감정 교류가 생길 것 같았기에 모르는 척 오리발을 내밀었다.
“누구시더라?”
“판크라테온 체육관에서 봤던 사람이요. 서곽수입니다.”
“미안한데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당신 같은 사람 없어.”
어찌 보면 불쾌할 수도 있는 직접적인 축객령이었다.
하지만 저번에 과격한 배려를 한 번 받아봐서인지, 곽수는 픽 웃기만 했다.
“그럼 지금부터 알아 가면 되죠. 제가 술 한 잔 살 테니, 제 얘기나 들어 주시겠습니까?”
“아니, 내가 왜 그 쪽 얘기를 들어야 되는데?”
퉁명스럽게 대꾸하고 있자니, 주인이 잭 다니엘을 한 병 가져왔다. 좋은 술에 살짝 기분이 풀릴 뻔 했으나, 술은 술이고 비밀 누설은 누설이었다.
- 너 이 새끼. 네 짓이지?
-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는데?
때려죽일 듯 쳐다보자, 주인이 미소를 지었다.
‘했네, 했어.’
곽수 성의와 주인의 응원 및 잭 다니엘을 봐서 참았다.
물론 그 중 잭 다니엘의 비중이 제일 컸다.
“있잖습니까, 제가 어떤 은인을 만나서 다시 무투 경기를 할 수 있게 됐어요. 어떤 분인지 꼭 한 번 만나서 사례를 하고 싶었거든요.”
곽수는 F등급 5티어가 됐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언더 다크가 연관 된 경기라고 해서 굉장히 추잡하고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해보니 아니라는 내용이 뒤따랐다.
“물론, 장기 채무자들이랑 몬스터 같이 우겨넣어서 데스매치 때리는 무서운 경기도 있긴 한데… 저는 그런 거 안 하고 베스티아(맹수 잡이)하고 있어요.”
이번에는 다이어 배져를 잡았다며 자랑까지 했다.
“맞다. 저희 아이 사진입니다. 예쁘죠? 그 은인 덕분에 좋은 음식 먹이고, 좋은 옷 입힐 수 있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사진을 슬쩍 훑고는, 다시 잭 다니엘을 한 모금 마셨다.
양주 특유의 높은 도수 때문에 식도가 따끔거렸지만, 그만큼 맛과 향이 뛰어났다.
‘아이라… 이 미쳐 날뛰는 세상에서도 애 키우는 사람이 있네. 참 대단하군.’
누군가 이 세상 모든 아버지는 영웅이라는 말을 했었다.
어렸을 적에는 개소리라고 생각했지만, 나이가 적당히 들어보니 딱 맞는 말 같게 느껴졌다.
이후에도 지훈은 술을 홀짝이며 곽수의 말을 들어줬다.
“그냥, 그 은인 분 닮아서 이런저런 얘기 하고 싶었습니다.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곽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런 그의 쇄골 주변에 맹수의 흔적으로 보이는 상처가 슬쩍 드러났다.
“나야 하는 거 없이 비싼 술만 잔뜩 얻어먹었는데, 고마울 거 뭐있나. 열심히 하쇼.”
열심히 하라는 말에 곽수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야, 슬슬 시간도 늦었으니까 돌아가자.”
늦은 술자리를 파하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다음날.
지훈은 처분하지 않은 F등급 단검 2개를 시체 구덩이로 발송했다. 수신인은 서곽수였다.
☆ ☆ ☆
시답잖은 의뢰를 불쾌한 방법으로 끝내서 그런지, 딱히 일을 했다는 기분이 들질 않았다. 좋게 쳐줘봐야 하루 일탈한 것 같달까?
결국 평소처럼 체육관을 다녀오거나, 집에서 웨이트를 하거나, 마법 수련하거나 했다.
그 중에 변한 게 하나 있었다면 바로 음식이었다.
지훈 일행은 판크라테온에서 땀 쭉 뺀 뒤 걸어 나왔다.
“민우 살 좀 빠진 것 같다?”
“역시, 지훈 형님.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3kg 빠졌지 말입니다?”
이런저런 잡담을 하고 있자니, 문득 배가 고파졌다.
‘아…’
마치 이 세상에 혼자가 된 것 같은 공허함이 밀려들었다.
언젠가 고독하게 미식을 즐기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현대인에게 있어 공복은 일상의 연쇄를 끊어주는 자유의 열쇠이다. 사회, 시간에 상관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최고의 포상이기 때문이다.
평소엔 웃어 넘겼으나,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허기가 몰려오자, 엄청나게 공감되는 말이었다.
“밥 먹자.”
“형님, 지금 4시 밖에 안 됐는데요? 12시에 배고프시다고 짜장면 드셨잖아요.”
각성에 따른 근밀도 증가 및 재생 변이의 효과로 신진대사가 엄청나게 빨라진 지훈이었다.
수영 선수가 하루에 2만 Kcal를 먹고, 그걸 다 소모하듯 현재 지훈도 거의 만 Kcal 이상 섭취 및 소모하고 있었다.
비슷한 식성을 가진 칼콘 입장에선 전혀 이상하지 않은 현상이었으나, 일반인인 민우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내가 배가 고픈데 그딴 게 무슨 상관이냐. 가자.”
다 필요 없었다. 지금 필요한 건 단지 맛집이었다.
‘어디 가지?’
돈이 없던 옛날이야 무조건 가격이 싼 곳을 우대했지만, 지금은 먹는 것 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다.
선택지의 폭을 넓혀서 이거저거 넣고 고민했다.
‘좋아. 오늘은 두부 음식을 먹자.’
단숨에 메뉴를 정한 뒤 무투사들이 자주 찾는 백반집으로 향했다. 맛, 양 그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곳이었다.
“어서와. 배고프지? 뭐 줄까.”
사람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다가와 물었다.
민우는 대충 먹는 시늉이라도 하기 위해 콩나물 국밥을 시켰고, 칼콘은 쌀 요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그나마 고기 비스무레한 게 많이 들어간 선지국밥, 지훈은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금방 가져다줄게. 기다려.”
기다리는 사이 입 심심하지 말라고 식탁 위에 밑반찬이 올라왔다.
어묵 볶음, 김치, 마늘 쫑, 시금치 무침이었다.
사뭇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지훈 역시 음식이 올라오자마자 바로 손을 움직였다.
‘어묵 볶음 먼저 먹어볼까.’
노르스름하고 오돌토돌한 어묵을 하나 집어, 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맛있다.’
설탕 대신으로 넣은 물엿 때문인지 달콤한 맛이 나면서도, 어묵 특유의 짠 맛이 잘 살아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비린내가 나기 쉬운 음식이었음에도, 어떻게 조리한 건지 전혀 비리지 않았다.
맛이 확인됐기에 기쁜 마음으로 여러 점 동시에 집었다.
우적우적.
씹을 때 마다 물고기 살 마냥 어묵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5분 만에 어묵을 다 해치우고는, 김치로 손을 옮겼다.
음식점의 수준은 밑반찬만 보고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 중에서도 제일 기본인 김치.
김치 맛이 좋다면 다른 모든 음식을 안심하고 먹어도 됐다.
‘어디 한 번 먹어볼까.’
잘 발효돼 붉은 빛을 띠고 있는 줄기를 집었다.
먹기 딱 좋을 정도로 썰려 있었기에, 굳이 자르지 않고 바로 입에 넣었다.
‘이것도 좋다.’
잘 익은 배추와 버물어진 고춧가루는 적당한 매운 맛과 함께 깔끔한 뒷맛을 선사했다. 덤으로 해산물을 넣었는지, 김치 중간 중간 굴이 들어있었다.
‘크, 음식 오는 걸 기다리지 못하겠어.’
결국 공기밥을 하나 시켜 밑반찬과 함께 한 그릇을 비웠다.
“어휴, 많이 배고팠나봐. 여기 찌개 나왔으니까 맛있게 먹어. 많이 먹어야 운동도 열심히 하지.”
부글거리는 뻘건 순두부찌개 위로 파와 순두부가 둥둥 떠 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입에 넣고 싶었지만, 인내심을 발휘해 일단 숟가락을 넣고 휘휘 저었다.
파와 순두부가 섞이며 아름다운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기다리길 몇 초.
결국 공복에 이기지 못한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고, 손이 움직였다.
후, 후~
입으로 가볍게 불어 식힌 뒤, 바로 입에 넣었다.
화염 속성 때문인지 뜨겁게 느껴지지 않고 딱 알맞았다.
혀를 굴려 두부를 입천장에 비볐다.
말캉거리는 두부가 부스러지는 기분 좋은 느낌과 함께, 혀끝에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이후 밥을 푹 퍼서 추가한 뒤, 오물오물 씹어서 삼켰다.
‘하… 끝내준다.’
공복에 음식이 들어가니, 마치 온몸을 옭아매던 쇠사슬이 박살나는 기분이었다.
이내 맛을 음미하는 것도 잊고 재빨리 숟가락을 움직였다.
“이모, 여기 한 그릇 더!”
“응~ 금방 가져다줄게.”
…
“여기 하나 더!”
“오늘 많이 먹는구나~”
…
“여기 찌개 하나 더!”
“어, 어… 그래.”
…
공기밥은 5개까지 숫자를 새다가 그만뒀고, 찌개는 대충 3번 정도 더 시켰다.
그제야 밥을 먹은 기분이 조금 들었다.
빵빵해진 배를 문지르니 왠지 모를 흡족함이 느껴졌다.
“와… 그게 다 들어가요?”
민우는 먹이 삼키고 소화시키고 있는 아나콘다 보듯 지훈을 쳐다봤다.
‘아니 저 인간은 무슨 하루 식사를 한 끼에 몰아서 먹나, 저게 사람 뱃속에 다 들어가?’
웬만큼 음식 좋아하는 민우였지만, 양을 보고 학을 뗐다.
기분 좋게 앉아있으니 칼콘이 말했다.
“지훈, 이제 후식 먹으러 가자.”
“커피 어떠냐.”
“좋지. 인간들은 뭐한다고 쓰디쓴 똥물을 먹나 했는데, 먹다보니 맛있더라! 가자!”
이후 칼콘과 지훈은 초콜렛 잔뜩 들어간 커피를 제일 큰 사이즈로 2잔이나 시켜먹었다.
‘미, 미친놈들.’
민우는 그 모습을 보며 무슨 곰이 겨울잠 자기 전에 음식 몰아먹는 것 같다고 느꼈다.
문제가 있다면….
매일 겨울잠 잘 것처럼 먹는다는 것 정도일까?
- 근력이 상승했습니다. D등급 (22) = > D등급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