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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의 반지-61화 (61/173)

<--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

대충 터미널을 지나 대로에 오르자, 싱글벙글 웃던 신데렐라 일행의 표정이 유리창 올라감과 동시에 차갑게 굳었다.

“아, 짜증나. 어디만 가면 자꾸 카메라 들이대네.”

“언니가 참아, 우리가 좋다는데 어쩌겠어.”

“기자 새끼들이 우리를 좋아해? 웃기네. 난 걔네만 보면 카메라로 패고 싶어.”

어느 정도 방송용 모습과 평소 모습의 차이가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그걸 실제로 보니 또 달랐다.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르다.’

속으로만 씹으며 운전을 하고 있자니 호진이 말했다.

“야, 경호.”

지훈을 부르는 것이었다.

부르는 투, 표정, 행동 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단 한 번은 참기로 했다.

성국이야 어차피 수틀리면 거래 안 하면 됐기에 줘 팰 수 있었지만, 현재 신데렐라 퍼퓸은 지훈의 거래 상대였다.

될 수 있으면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했다.

“예.”

“너 거만하더라. 고용인이 말대답이나 하고 우리가 타고 싶다면 타는 거지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야?”

대답하지 않고, 두 번 참았다.

지훈은 인내심에 한계가 다다르는 걸 느꼈다.

될 수 있으면 여자는 건들고 싶지 않았으나, 그것도 일반인 기준이다. 나발이고 사람 덜 된 인간은 예외였다.

‘얘네 건들면 석중 할배 손에서 커버 가능할까?’

당연히 안 된다.

석중은 음지 쪽 수완가지, 양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사업가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소개도 에둘러 해줬고, 아무런 확답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화내면 돈이 날아간다. 조금만 더 참자.’

하는 일이라곤 경호가 다인 쉬운 일이었다. 콘서트나 기타 스케줄이 있을 때는 그저 경계만 하면 됐다.

속으로 참을 인자를 새기고 있기도 잠시.

“새끼야, 대답 안 해?”

호진의 폭언에 지훈은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차라리 사람 찾는 거 하고 말지, 이게 뭐하는 짓거리야.’

돈?

만드라고라 때만 해도 일당으로 8000이나 땡겼다.

근데 겨우 일당 1000짜리에 자존심을 굽혀야 할까?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최소 임금을 준다는 건, 일도 최소로 하라는 뜻이라고.

능력에 비해 돈을 적게 준다는 건, 그 만큼 개판으로 일 해도 상관없다는 얘기였다.

게다가 지훈이 맡은 일은 요인 경호 혹은 애들 돌보기.

말하는 짐승 새끼랑 같이 있어 주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연예인이라도 적당히 사람 된 녀석 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막나가는 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결국 지훈이 폭발했다.

“사람이 겁이 없으면 오만을 용기로 착각 하는 것 같아. 그렇지?”

“뭐?”

호진이 얼굴을 찌푸렸다.

헌팅이든, 뒷골목이든 똑같았다.

능력 없는 주제 겁까지 없으면, 일찍 죽는다.

“존대 써가며 대우해 줄 때 그냥 입 다물고 있어라. 여기가 아직도 지구인줄 아냐?”

CCTV도 없어서 당장 차 돌려서 으슥한 곳으로 가면 누구 하나 죽어도 아무도 관심 없는 우범지대가 나왔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호진은 계속 큰소리를 쳤다.

“하. 너 미쳤냐? 돈 받기 싫어?”

미쳤냐는 물음이 돌아왔다.

항상 하는 입버릇이자, 지훈이 좋아 하는 말이 있었다.

“미친 세상에선 미친 새끼가 정상인이지. 안 그래?”

때 마침 밤이었다. 가까운 인도에 차를 세웠다.

“차는 왜 세워, 지금 해보겠다는 거야?”

더 이상 짐승과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내려, 쌍년아.”

호진은 한동안 목소리를 높이며 실수하는 거라고 말했지만, 쿨하게 무시했다.

“내가 뒤에 누가 있는지 알아? 대형 연예 기획사라고!”

“차 내려서 5분만 걸어봐. 무슨 일이 생길지는 그 잘난 연예 기획사 관계자만 알 수 있을 거다.”

반복해서 강조해도 부족하질 않았다.

지금은 밤이고 여기는 세드였다.

누구든 혼자서 밤거리 나돌아 다녔다간 10분 만에 피해자 올림픽 그랜드 슬램을 달성 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호진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내렸다. 아리와 소휘 역시 살짝 눈치를 보다 따라 내렸다.

‘어디 빅엿 한 번 먹어봐라.’

죽게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지훈이 막나간다고 할지라도, 사리 분별까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단지 저들이 지금 어떤 장소에 있고, 지훈이 그들에게 어떤 보호를 제공하는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쾅!

문이 닫히는 소리를 음악 삼아 담배에 불을 불이곤, 그저 사람 덜 된 녀석들이 어떻게 될지 지켜봤다.

☆ ☆ ☆

차에서 내리자마자 호진은 기묘한 섬뜩함을 느꼈다.

연예인 혹은 굉장히 외모가 뛰어난 사람은 사람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모든 사람들이 호진 일행을 쳐다봤다.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심지어 하던 일도 멈췄다.

원래대로라면 다가와서 연예인이냐고 묻거나, 사진을 찍어야 정상이었다.

‘뭐 그래봐야 지들이 별 거 하겠어? 나는 각성잔데.’

싸움 한 번 해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썩어도 준치였다.

일반인이 맨손으로 덤빈다면 이길 수 있었다.

물론 맨손이라는 전제 하에.

하지만 현재 호진 일행을 쳐다보는 사람들은 전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상태였다.

‘핸드폰이라도 꺼내려고 하나?’

안타깝게도 세드에선 핸드폰을 잘 갖고 다니지 않는다.

그럼 주머니 안에는 뭐가 있을까.

산타마냥 선물이라도 들고 다니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저 사람 짜증나. 그냥 택시 타고 가자.”

“언니, 왜 그렇게 서있어?”

나중에 나온지라 시선을 느끼지 못한 아리가 물었다.

“별 거 아냐. 그래, 우리 택시타고 가자.”

호진은 애써 시선을 무시하곤, 택시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도중에 벤츠 안에서 주시하는 지훈과 눈을 마주쳤기에, 가볍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줬다.

‘겨우 경호원 주제에 날 무시해? 주제도 모르는 놈!’

몇 분이나 기다렸을까.

택시는 지나가지 않았다.

대신 뒤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이보쇼.”

“아, 네?”

소휘가 깜짝 놀라서 대답했지만, 말 건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위아래로만 훑었다.

먹잇감을 보는 시선이었으나, 안전한 곳에서만 살던 입장에선 전혀 알 수 없었다.

“아, 예. 맞아요. 신데렐라 퍼퓸이에요. 사진해 드릴까요?”

소휘가 묻지도 않은 걸 대답해 주며 영업용 미소을 지었다.

“연예인. 연예인이라고?”

“네. 이번에 새로 데뷔했습니다!”

이번에도 남자는 소휘의 말을 무시하곤 뒤로 외쳤다.

- 이봐, 연예인 이라는데?

뒤에 앉아서 담배를 피던 사람들이 술렁거리더니, 우르르 차도 쪽으로 몰려왔다.

‘여, 연예인 처음 보나?’

한 여섯 쯤 되는 남자가 소휘에게 바싹 달라붙었다.

아리와 호진은 여전히 택시를 잡으려 하고 있었다.

“네, 전부 사인해 드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처음으로 말 걸었던 남자가 중저음으로 말했다.

“다들 잘 들어. 내가 찾았으니까, 내가 제일 먼저야.”

섬뜩한 말이었으나, 소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은 단지 뭔가 이상하다는 것만 멀찍이 알 수 있었다.

“펜하고 종이 있으세요?”

싸인 도구 있냐는 말에 남자가 부자연스럽게 끄덕였다.

“아… 그래. 사인을 하려면 그게 필요하지. 아가씨, 내가 연필하고 종이를 저쪽에 두고 왔거든. 같이 가자.”

두고 왔다는 장소는 남자들이 있었던 어두운 장소였다.

소휘는 그제야 잘못 됐다는 걸 깨달았다.

“어… 죄, 죄송합니다. 저희가 좀 바빠서… 이제 가봐야….”

“금방이면 돼. 걱정하지 마.”

덥썩.

남자의 덥수룩한 손이 소휘의 하얗고 하늘은 손을 잡았다.

단순 힘으로만 따지자면 소휘가 훨씬 강력했으나, 따져야 할 외적인 요인이 하나 더 있었다.

공포였다.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짙은 공포는, 지금 소휘의 머릿속에 5분 후 일어날 끔찍한 일을 재생시키고 있었다.

짙은 공포 속에서 제대로 저항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당장 따라와. 진짜 금방이면 돼.”

남자가 소휘를 끌었고, 비명이 튀었다.

그 소리에 호진과 아리가 고개를 돌렸으나, 이미 상황은 틀어진 상태였다.

“너희도 따라와!”

남자들이 호진과 아리에게도 달려들었다.

호진은 용기 있게 남자들을 떼어냈으나….

철컥.

남자 중 하나가 권총을 꺼내자 얼굴이 하얗게 탈색됐다.

“죽기 싫으면 따라와.”

☆ ☆ ☆

그 시각.

승합차 안에서 신데렐라 퍼퓸이 엿을 집어 먹고 있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칼콘이 조심스럽게 블루투스 이어폰에 속삭였다.

- 지훈, 저거 어떡해?

- 그냥 둬. 내가 알아서 할게.

민우는 속이 타는지 손톱만 잘근잘근 씹었다.

☆ ☆ ☆

“당신들 정말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호진은 질질 끌려가면서도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

“관심 없어.”

“후환이 두렵지 않아?”

“그럼 일 끝내고 죽이면 되지?”

남자는 죽기 싫으면 입 다물라는 말을 꺼냈다.

호진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연예계 데뷔 후 이런 식으로 말 몇 마디만 하면 전부 알아서 기던 사람들만 만나왔던 까닭이었다.

하지만 세드에 들어오자마자 연달아 이런 경험을 하니, 꼭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기분이었다.

여자 셋의 비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벤츠 문이 열리며 남자가 내렸다. 지훈이었다.

제 3자의 등장에 남자들의 시선이 지훈에게로 향했다.

“너는 또 뭐하는 새끼야?”

호진 일행의 눈이 희망으로 반짝였다.

그들도 지훈이 헌팅을 나가는 강력한 각성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 경호. 빨리 우리 도와줘. 그러면 아까 있었던 일 없었던 걸로 해줄게!”

슬슬 도와줄까 싶었거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정나미가 뚝뚝 떨어졌다.

‘쯧, 사람 아직 덜 됐네.’

경호원이라는 말에 남자들이 바싹 긴장했다.

“꺼져. 이거 우리 거야.”

호진 일행의 눈이 희망으로 부풀었다.

“누가 뭐래? 나는 그냥 재밌어 보여서 구경 온 거야.”

손목을 원 모양으로 그리며, 하던 거 마저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럼에도 남자들은 일단 멈춰 섰다.

적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위험 요소를 신경 쓰는 듯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호진은 일단 소리부터 질렀다.

“개새끼야! 너 돈 받았잖아. 빨리 우리 경호하라고!”

“내가 개새끼라 그런가, 사람 말이 잘 안 들리네.”

지훈은 귀를 후볐다.

“아아아악!”

호진은 제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분이 차올랐는지 고함을 질렀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입가를 비틀었다.

“이봐, 이렇게 위험한 장소에 살다보면 말이야. 굉장히 뒤틀린 선구안을 하나 갖게 돼. 그게 뭔지 알아?”

바로 사람들 속에 섞여있는 괴물을 찾는 눈이었다.

지훈은 본인이 괴물이 됐던 사람이었던지라, 그 선구안이 더더욱 뛰어났다. 머지않아 괴물이 될 사람까지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내 계약사항은 사람 지키라는 내용이었지, 말하는 짐승새끼 지켜주는 내용이 아니었어.”

“헛소리 그만하고, 제발!”

“어떤 영화에서도 그러잖아.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고. 너는 사람 되기 전에 매너부터 배워라. 이번 기회에 그 잘난 돈 주고도 못할 경험 한 번 해봐. 그럼 매너가 마음속으로부터 샘솟을 거다.”

아리와 소휘가 울음을 터트렸다.

“어떻게, 어떻게 하면 구해줄 거야?”

“나이도 어린 게 어디서 반말 찍찍 내뱉고 있냐. 존대부터 해 봐.”

“구, 구해주세요… 제발….”

결국 호진이 이를 꽉 깨문 채 존댓말을 뱉어냈다.

‘그럼 서비스 한 번 해줄까.’

이미 화를 내서 경호대상과 틀어진 사이였다.

지금 구해준다고 해도 돈도 못 받고 잘릴 게 분명했다.

그래도 본인이 이런 상황으로 몰아넣고는 끔찍한 일 당하게 그냥 내버려 두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돈을 못 받는다는 얘기를 꺼내면 칼콘과 민우가 시무룩할 터였지만 뭐 어쩌랴.

‘발에 땀나게 뛰면서 다른 일거리 찾아봐야겠네.’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강도 쪽으로 다가갔다.

“다, 다가오지 마 이 새끼야! 총 안 보여?”

남자가 지훈에게 총을 겨누며 외쳤다.

‘수제 제작 총기인가. 총알은 9mm 권총탄이겠군.’

9mm 권총탄이라면 맞아줘도 전혀 상관없었다.

이미 저항 등급이 D이상으로 높아진 지훈이었다.

웬만한 몬스터 뺨칠 만한 저항인데, 감히 권총으로 뭘 어쩔 수 있을 리 없다.

“쏴 봐 새끼야. 근데 총 쏠 거면 죽을 각오하고 쏴. 알간?”

진심어린 충고였거늘, 남자는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어두운 거리가 잠깐 반짝였다. 그리고….

팅!

총알이 지훈의 손을 뚫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허, 헐?”

지켜보던 일동의 입이 동시에 쩍 벌어졌다.

“내가 얘기했잖아. 죽을 각오 하고 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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