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릇없는 사람 -->
보통 연예인의 힘은 쓰는 대기실로 슬쩍 엿볼 수 있다.
잘 나가고 누구나 알 법한 연예인 TV달린 개인 대기실을, 신인 혹은 뜨지 못한 연예인은 좁은 방, 그것도 야전 병원마냥 칸막이로 나눠진 곳을 써야했다.
그런 의미에서 신데렐라 퍼퓸은 잘 나가는 연예인이었다.
신인임에도 개인 대기실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화가 났는지 표정이 좋지 않다.
“아, 짜증나!”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무대 의상을 거칠게 벗어 던졌다.
그녀의 이름은 호진.
신데렐라 퍼퓸의 맏언니이자 리더였다.
“우리가 소, 돼지야? 아니 어떻게 대전에서 콘서트 하고 다음 날 바로 개척지 라이브를 잡아!”
고와서 벌레 한 마리 못 잡을 것 같은 얼굴에 온갖 짜증과 불쾌한 감정이 묻어났다.
“사람을 가축 취급하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이게 뭐하는 거냐고!”
대기실 안에 한 동안 날카로운 욕설이 튀어 다녔다.
사람 불편하게 만들기 충분한 분위기였음에도, 정작 남은 두 멤버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아쉽다. 나 이번에 화이트 프린스랑 미팅 잡아놨는데!”
화이트 프린스. 근래에 바짝 뜬 남자 아이돌이었다.
“나도 싫어. 솔직히 이렇게 일 했으면 하룻밤 정도는 푹 쉬게 해줘야 하는 거 아냐?”
막내 소휘가 투덜거리는 아리에게 작게 속삭였다.
“언니. 근데 걔네 작대.”
“걔네 키 작은 거는 다 알고 있는데. 뭘 새삼스럽게?”
아리가 물음표를 띄우자, 소휘가 음흉하게 까르르 거렸다.
“그거 말고~ 있잖아.”
“아, 그거? 작기만 하면 다행이게. 물컹거린다며~ 완전 싫다.”
“내가 저번에 걔네 리더랑 놀아봤는데, 진짜 완전 별로.”
“어머, 얘 봐. 일반인으로 만족하려고?”
소휘와 아리는 팬들이 들으면 입에 게거품 물며 실신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내던졌다.
사실 아이돌이래 봐야 사람이었다.
사회에서 잘 나가고, 노는 거 좋아하는 애들을 아이돌 시킨다고 사생활 단속하니 욕구는 쌓여갈 수밖에 없었다.
풍선을 과도하게 불면 어딘가 찢어지듯, 사람의 욕구도 똑같았다. 그 결과가 바로 동종계통 연애 및 유희였다.
피차 소문 새어나가면 죽을 입장이라 비밀 유지도 철저했고, 뒷맛 쓰릴 거 없이 재밌게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굉장히 위험했으나, 소속사들도 적당한 선에서 묵인했다.
사람이 짐승도 아닌데 기본 욕구인 연애 욕구, 성적 욕구까지 억누를 순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러한 사실이 최근 정치 문제 소화제로 쓰이면서, 연달아서 연예계 마약 및 섹스 스캔들이 뻥뻥 터진 적이 있었다.
이미 대중들도 다들 짐작은 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남자 둘이랑 놀면 무슨 기분일까?”
“밝히기는. 너 그러다 한 방에 훅 간다?”
둘이 청초한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온갖 음담패설을 입에 담고 있자니, 리더 호진이 작게 욕을 내뱉었다.
“적당히 해라 미친년들아. 너희는 이딴 취급 받았는데 화도 안 나냐?”
호진이 씩씩거리며 물었지만, 아리와 소휘는 갸웃거렸다.
“이런 거 일상이잖아. 그냥 언니도 빨리 익숙해 져. 이참에 세드 관광 한 번 갔거니 해야지 뭐.”
“거기 부작용 없는 좋은 약 있다며~ 이사님이 하나 구해 준다고 했단 말이야. 궁금해!”
호진은 결국 고개를 저으며 한 숨을 내뱉었다.
“됐다. 내가 너희랑 무슨 말을 하겠냐.”
리더가 한숨을 쉬거니 말거니, 아리와 소휘는 떠들었다.
“이번에 세드에서 헌팅 뛰던 사람이 경호로 붙는다며?”
“어떤 남잘까. 키 크고 근육질이었으면 좋겠다.”
“거기다 친절한 훈남이고!”
키 크고 근육질에 친절한 훈남.
신화 속에나 나오는 그런 존재였다. 왜 비슷한 거 있지 않는가, 아무리 먹어도 흉부에만 살찌는 그런 여자 말이다.
신데렐라 일행은 어떤 사람이 경호원으로 올지 꿈에도 모른 채
☆ ☆ ☆
성국은 이런 일을 많이 해봤는지, 사진과 신분증 사본 몇 개 가져다주자 금세 서류를 작성했다.
- 잘 들어 둬. 당신들은 이제부터 KS 캡스 직원이요. 물론 KS 캡스는 페이퍼 컴퍼니지. 단지 노동 유통을 위한 회사라고, 알겠소?
- 일단 유니폼이랑 장비는 전부 다 지원 할 거니까, 괜히 일반 헌팅용 소총 들고 오지 마쇼. 온실 속 화초… 랑은 거리가 멀긴 한데, 어쨌든 애들 겁먹어서 좋을 거 없으니까. 권총 한 정 정도는 괜찮소.
- 아니, 잠깐만. 오크 있다는 말은 안 했잖아? 오크는 눈에 너무 띄니까, 안… 잠깐만, 총 좀 내려놓고 얘기합시다. 응?
- 어쨌든. 석중 할배 때문에 넣어 주는 거니까, 제발 서로 머리 아플 사고만 치지 마쇼. 그럼 너희도 돈 제대로 받고, 나도 수수료 떼고. 딱 좋은 거요.
- 그리고 마지막 충고인데. 누가 위험한 사진 찍으려고 하면 무조건 뺏으쇼. 그리고 절대 애들이 뭐라고 해도 화내거나, 때리거나 하지 말고. 제발. 제발. 제발 좀 부탁하오.
지훈은 성국이 설명해 준 내용을 대강 설명해 줬다.
“이번에는 장비 새로 안사도 되겠네. 좋다.”
“우와, 그럼 저희도 막 검은 정장 입는 거예요?”
굳이 대답할 거 없이, 성국에게 받은 장비들을 건네줬다.
[장비]
[지훈의 장비]
무기.
글록 19 (9mm 비살상 고무탄, 마력 탄환 예비)
16인치 삼단봉 (40cm, 탄소강/두랄루민)
방어구.
핏이 잘 맞는 검은색 정장 (캐시미어, 일반 물품)
정장 구두 (일반 물품)
기타.
핸드폰.
[칼콘의 장비]
무기.
16인치 삼단봉 (40cm, 탄소강/두랄루민)
슈타이어 M 권총 (9mm 비살상 고무탄)
방어구.
꽉 끼는 검은색 정장 (캐시미어, 일반 물품)
정장 구두 (일반 물품)
선글라스 (일반 물품)
[민우의 장비]
무기.
16인치 삼단봉. (40cm, 탄소강/두랄루민)
글록 19 모델건. (BB탄)
방어구.
루즈한 검은색 정장 (캐시미어, 일반 물품)
정장 구두 (일반 물품)
컨텍트 렌즈 (시력 보정용)
[공통]
호루라기.
블루투스 이어폰.
이동용 승합차.
까트가 든 가방
단순 요인 경호가 목적인지라 다들 장비가 가벼웠다.
지훈은 전체적으로 경호원보다는 퇴폐미를 풍기는 모델 같은 분위기였다.
반면 칼콘은 덩치 때문인지 잘못 건드렸다간 바로 허리를 반으로 접어 버릴 것 같은 위압감을 뿜어냈다.
마지막으로 민우는 최근 살이 빠진 까닭인지 그래도 후덕한 느낌은 나질 않았다.
“야, BB탄 총이 뭐야. 애야?”
칼콘은 민우의 BB탄 총을 보며 비웃었다.
아무래도 개인 권총을 갖지 않았던 터라 겉이라도 그나마 비슷한 걸 가져온 듯 했다.
“에이, 씨. 총 없어서 그랬죠. 모른 척 하고 넘어가면 안 돼요? 기껏 멋지게 차려입었구만!”
민우가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 칼콘에게 쐈다.
틱, 틱!
BB탄이라 아플 법 했음에도 칼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낄낄거리며 다 맞아줬다.
“가만히 있어. 민우 너도 총 집어넣어. 괜히 총 들고 있다가 문제 생기면 위험하다.”
현재 일행은 개척지 포탈 터미널로 향하는 중이었다.
“크다. 여기 지나면 이방인의 땅으로 가는 거야?”
지구의 또 다른 이름. 이방인의 땅.
세드의 주민들은 지구를 ‘이방인의 땅'이라 불렀다.
원래대로라면 3층 건물만한 포탈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던 장소였으나, 지금은 거대한 빌딩이 자리 잡고 있었다.
벤츠를 주차장에 주차하고는 터미널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라면 몇몇 환영객만 있어야 했지만 아무래도 신데렐라 퍼퓸 때문인지 온갖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사진을 찍기 위한 기자, 팬으로 보이는 사람들, 단순 연예인을 보기 위해 구경 온 나들이객 등등이었다.
“우와, 역시 연예인이네요. 나 넘어왔을 때는 사람 거의 없었는데 말이죠.”
“이제 농담 그만하고 자세 잡아. 저 중 누가 뭘 어떻게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번거롭더라도, 일당 1000만 받고 하는 일이었다.
돈을 받기 위해서라도 괜한 모습이 사진에 담겨 트집을 잡히거나, 사건 터져서 귀찮은 일 생기는 건 피해야 했다.
각 잡고 기다리고 있자니, 옆에 있던 기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얘기 들었어? 이번에도 각성자 경호 쓴다는데?
- 걔네는 무슨 세드 넘어올 때 마다 각성자 경호야. 누가 뒤에서 장난질 치는 거 아냐?
- 그런 찌라시 있긴 한데, 잘 모르겠어. 소문으로는 마약파티도 한다던데?
얘기에 흥미가 돋았는지, 민우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고개 돌리지 마라. 그냥 각 잡고 있어.”
아무래도 지훈은 범죄 전과가 있는지라 괜히 스포트라이트 받을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연예 기획사 사장이 언더 다크 측 사람인지라, 아예 대놓고 언더 다크 인력을 붙이는 쪽도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포탈이 활성화 됩니다. 잠시 진동 및 이명이 있을 수 있으니 당황하지 마시고 기다려 주십시오.
‘시작인가.’
지훈은 살짝 눈을 감고 숨을 멈췄다.
드드드드드…. 위이이이 - 잉!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 마냥 주변이 작게 떨리더니, 이내 작은 이명이 지나갔다. 포탈이 열리는 소리였다.
‘곧 도착하겠군.’
기자들도 자세를 잡고 플래시 세례를 터트릴 준비를 했다.
민우는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본다는 마음에 가슴이 설렜고, 지훈은 별 일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으며, 칼콘은… 그냥 빨리 끝내고 밥이나 먹고 싶었다.
- 모든 이용객께서 포탈을 건너셨습니다. 서울 개척지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즐거운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그 말과 함께 포탈룸 문이 열리며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신데렐라 퍼퓸 역시 그 무리에 끼어 있었다.
촤자자자작!
마치 섬광탄이라도 깐 듯, 여기저기도 카메라 플래시가 잔뜩 터져 나왔다.
눈도 뜨지 못할 짙은 빛의 세례였으나 신데렐라 퍼퓸은 눈 한번 깜빡하지 않았다.
- 게이트 쪽으로 붙어. 호위한다.
디펜스 라인이 없음에도 신데렐라 퍼퓸에게 달려드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특종 기다리며 기자들이 침 질질 흘리고 있는 상황에서, 좋아하는 연예인 손 한 번 잡겠다고 달려간다?
기자들이 얼씨구나 특종이다 싶어 당장 포털 사이트 대문에 올라갈 건 분명했고, 잘 하면 뉴스에도 나올 수 있었다.
한 순간에 범죄계의 스타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니 섣불리 행동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수밖에 없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의 경호를 맡게 된 KS 캡스의 김지훈입니다. 여러분의 경호를 맡게 되었습니다.”
신데렐라 퍼퓸의 리더, 호진이 맑게 웃으며 고개만 숙였다.
“가시죠. 숙소로 모시겠습니다.”
지훈이 이후 신데렐라 퍼퓸을 안내했고, 양 옆으로 칼콘과 민우가 따라붙었다.
얼굴로 따가운 플래시 마사지 받으며 터미널 밖으로 나가 바로 밴이 승차했다.
아무래도 아이돌인 까닭에 승합차에는 칼콘이, 벤츠에는 지훈과 민우가 탑승했다.
아니 탑승할 예정이었다.
“벤츠? 좀 사나 봐요? 우리 저거 탈래요.”
신데렐라 퍼퓸의 둘째, 아리가 벤츠를 보고 칭얼거렸다.
살짝 얼굴이 찌푸려졌으나, 3일간 일당 1000 받고 애 돌본다는 심정으로 참았다.
“안전상 벤츠보다는 승합차가 더 안전합니다.”
일반 주행용인 벤츠와 달리, 승합차는 썬팅은 물론 방탄유리에 강화 장갑까지 달린 차량이었다.
“그냥 저거 타면 안 될까요? 기자님들 계시잖아요.”
호진이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물었다.
기자들 잔뜩 있는데서 괜히 시간 끌고 싶지 않았기에, 그냥 못이기는 척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시죠. 칼콘, 민우. 승합차 몰고 뒤에서 따라와.”
민우는 신데렐라 퍼퓸과 같은 차에 타고 싶었는지 울상을 지었다.
여태껏 운전면허 없는 게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 단 한 본적 없었거늘, 지금은 마음이 두 쪽으로 갈라질 정도로 슬픈 민우였다.
결국 지훈은 신데렐라 퍼퓸을 태운 벤츠에, 칼콘은 민우를 태운 승합차에 올라 엑셀을 밟았다.
- 부르르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