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59화 (59/173)

<-- 신데렐라 퍼퓸 -->

집 대금과 지현 치료비가 한 번에 빠졌기 때문일까?

잔고가 6000만 원 쯤 남았음에도 뭔가 부족해 보였다.

‘슬슬 의뢰 맡아야 할 것 같다.’

저번 헌팅에서 돌아온 지 겨우 2주 밖에 되지 않았지만, 슬슬 재정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다음 주에 지현이 치료비 내야한다. 거기다 애 대학 보내고 기타 할 거 생각하면 돈 빠져나갈 구멍 많군.’

생활적인 측면 말고 의뢰적인 측면에도 돈이 필요했다.

임무에 따라 다르지만, 장갑차는 물론 새로운 아티펙트가 필요할 수도 있었다.

돈 다 떨어지고 나서 의뢰 받았다간 정작 준비 단계에서 펑크가 날 수도 있었기에, 미리미리 신경 써야 했다.

이번에는 무슨 일 할까 머리 싸고 고민했지만, 딱히 마땅한 일은 생각나질 않았다.

공격대 임무는 수시모집이라 영 떨떠름했다.

용병들 최전방에 밀어 넣고 고기 방패로 쓴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갈 때 마다 사람 여럿 죽어나가니까, 수시 모집이겠지.’

애초에 경험 있는 사람끼리 가서 편하게 사냥하면 좋은데, 뭐 하러 경험 없는 신참 뽑는단 말인가?

결국 레이드 갈 때 마다 누군가는 죽는다는 얘기였다.

용병 일도 지금은 영 구미가 당기는 의뢰가 없었다.

떼인 돈 받아오기, 사람 찾아 달라는 것 같은 자잘한 의뢰 혹은 연구 물품 찾아오기 같은 어려운 의뢰가 다였다.

후자는 살짝 혹하긴 했지만,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이 갔다가 괜히 후송 중 박살 혹은 오염시켜 버렸다간 말짱 도루묵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잠깐 머리나 식힐 겸 소파에 누워 TV 전원을 켰다. 이름 모를 걸 그룹이 툭 튀어나왔다.

- 난 너를 사랑해.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다른 여자 보지 마. 내가 널 지켜줄게.

지현이 전에 음악 방송을 보고 있었는지, TV를 켜자마자 웬 듣도 보도 못한 걸그 룹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유치찬란한 가사였으나 아이돌 가사가 거의 거기서 거기였기에, 별 기대 없이 조용히 들었다.

아니. 들었다기 보단 그냥 춤과 몸매, 얼굴만 훅 훑었다.

‘예쁘네.’

건조한 감상이었다.

실제로 보면 다들 미인이었을 테지만, 성형수술 및 마법으로 이미 상향평준화가 될 대로 된 연예계였다.

이제는 그냥 연예인을 봐도 그냥 예쁘다, 그 이상 그 이하의 감정도 들지 않았다.

TV 속에서 젊은 여자가 뒤태를 뽐내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현재 걸 그룹은 노출도 심한 무대 의상을 입은 상태였다. 당연히 넓적다리 살이 다 드러나며 굉장히 야릇한 분위기가 흘렀다.

묘했다.

과거 몬스터 아웃브레이크 전에야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참 기괴하게 비틀어진 연예계였다.

방송 전체가 자극적으로 변한만큼, 연예계 역시 엄청난 폭풍에 휘말렸다.

종족 전쟁 직후.

정부는 정치적 안정 및 전후처리를 위해 연예계를 적극 이용했다. 시민들이 눈을 돌릴 거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규제가 느슨해지며 성적이고 자극적인 방송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에 전쟁으로 지쳐있던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 결과가 무투 경기 크라토스였고, 그 결과가 바로 저 성적인 안무였다.

괜히 미친 세계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었다. 이제 TV만 틀어도 섹스와 잔악을 너무나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물론.

지훈은 그냥 예쁜 애들이 야한 옷 입고 춤춰서 좋았다.

제 코가 석자였다. 나라고 뭐고 본인만 좋으면 끝이었다.

- 예, 이상 신데렐라 퍼퓸의 멋진 무대였습니다!

- 멤버가 전부 각성자라니, 믿을 수가 없어요.

무대가 끝나자 아이돌로 보이는 MC 두 명이 국어책 읽듯 어색한 콩트를 주고받았다.

‘요즘 그냥 개나 소나 각성자네.’

아이돌 그룹 전원이 각성자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일까?

과거 각성자가 되려고 아등바등한 자신은 도대체 뭘 했나, 싶은 생각이 잠깐 스쳤다.

‘요즘 각성자 되고 싶어서 수술 받는 사람 급증 했다더만, 이게 다 TV 때문이었나.’

각성 확률이 100%인 것도 아닌 주제에, 수명을 엄청나게 깎아 먹는 수술이었다.

시간과 돈을 걸고 하는 도박임에도, 사람들은 TV 속 아이돌, 배우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수술대에 올랐다.

그 정도로 사람들은 각성자를 동경했고, 열광했다.

- 맞다. 이번에 신데렐라 퍼퓸이 서울 개척지에 콘서트를 연다고 하던데, 그 소식 들었나요?

- 우와, 정말요? 포탈까지 넘어서 콘서트를 가다니. 열정이 대단하군요!

‘뭐?’

살짝 얼굴을 굳혔다.

개척지는 서울 본토와는 전혀 다른 장소라고 봐야 옳았다.

치안 개판에 총기 유통까지 활발한 장소였다.

누가 미친 척 하고 저격이라도 때렸다간 아이돌 머리통 날아가는 게 생방송으로 한국 전역에 퍼질 수도 있었다.

‘아니 아이돌이 왜 이딴 데를 와?’

저번에도 어떤 영화배우가 리얼 다큐멘터리 찍는 답치고 헌팅 따라갔다가 다리 두 개 날려먹은 적이 있었다.

문제는 그걸 편집해야 했는데…

이슈에 환장한 PD가 그걸 편집 없이 내보냈다.

그 외에도 저런 사건들이 분기에 한 번씩 터지는 게 바로 서울 개척지였다.

‘관광을 와도 경비 붙여야 할 판에 콘서트를 온다고?’

어이가 없었지만 동시에 일거리 냄새도 났다.

지훈은 문득 민우와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 형님, 저희는 아이돌 경비 안 해요?

- 왜, 하고 싶냐?

- 당연히 하고 싶죠.

씩 웃고는 전화기를 들었다.

먼저 민우에게 전화했으나 부재중인 듯 받질 않았다.

요즘엔 아무도 안 쓰지만, 세드에서는 불티나게 팔리는 물건. 삐삐로 연락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걸려왔다.

“예, 형님. 부르셨습니까?”

“야, 너 요즘 바쁘냐?”

“그냥 체육관에서 스파링 하고 있었습니다.”

증명하기라도 하듯, 전화 너머로 팡팡 소리가 들려왔다.

“일거리 생길 것 같아서 시간 좀 맞춰보려고.”

“전 괜찮아요.”

사실 약속 있다고 해도 비우라고 하려고 했다.

“그래, 살 열심히 빼고, 운동 열심히 해라.”

“헤헤. 당연하죠, 이제 한 사람 밥 값 해야 하는데.”

살짝 대견스러워서 웃음이 나왔다.

“야, 너 근데 아이돌 좋아하는 애들 있냐?”

“어… 형님 머굴 아니셨어요?”

머굴. 마법 관련 단어가 아닌, 연예인의 팬이 아닌 일반인을 뜻하는 은어였다.

“뭐, 이 새끼야?”

“아, 아뇨. 저는 요즘 신데렐라 퍼퓸 좋아해요.”

익숙한 단어에 지훈이 씩 미소를 지었다.

“그래, 운동 열심히 해라.”

다음으로 칼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다.”

“응, 무슨 일이야?”

“너 정산 받은 거 얼마나 남았냐?”

돈 쓰는 속도로 봤을 때 아마 5000쯤 남지 않았을까 하고 예상해 봤다.

“대충 다섯 개?”

귀신처럼 딱 맞아 떨어졌다.

“일 하나 잡을까 싶은데 어떻냐.”

“나는 무조건 좋아.”

다들 시간이 맞았다.

뭐 사실 없다고 그래도 만들라고 볶을 생각이었지만, 어쨌든 어귀가 맞으니 다행이었다.

‘그럼 오래간만에 할배 좀 만나러 가볼까.’

페커리 이후 오래간만에 석중을 찾아갔다.

언제나 그렇듯 C4 화약과 곰팡내가 섞여 났다.

“거 이거 청소 좀 합시다. 올 때 마다 느끼는데 냄새 한 번 죽이네, 진짜.”

“홀아비 굴에 기어들어 왔으면, 밤꽃 냄새 정도는 맡을 각오 와야 하는 기다.”

평소 욕설 섞인 과격한 안부에 비해 퍽 차분한 인사였다.

“됐소. 오늘은 뭐 그리 또 저기압이오?”

“밥이 맛이 없었디.”

남자는 나이가 들면 애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돈 많이 벌면서, 뭔 밥 맛 타령이요. 꿩 대신 닭이라고, 뭐 영 아니다 싶으면 계집 시중이라도 받으며 드시던가.”

“음식한테 음식 받아먹는데 퍽 맛이나 좋겠데, 쓰애끼야. 게다가 하나는 먹지도 못해서 싫디.”

“아니 할배한테 문제 있는 걸 왜 나한테 화풀이요?”

“내 오늘 기분 안 좋다. 거 물건에 고기 써는 칼 박히기 싫으면 입 다물라. 그래서 오늘은 뭔 일로 왔어.”

중배 사건이 떠올라 슬쩍 중앙이 아려왔다.

“요즘도 연예계 뒷문으로 나들이 하쇼?”

“글쎄. 원래 레니게이드 벌그지들이 까트 쥐고 흔들어서 요즘엔 뜸했으이, 요즘 갸네 이상하게 조용하디.”

그도 그럴게 중배를 시작으로 큼지막한 팀 2개가 나란히 작살났다. 선두 주자에서 밀려났으니, 이제 후발 주자들이 신경 쓰일 터였다.

“누가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같고만. 할배가 중배 조져났으니 그러는 거 아니요. 거 낯짝 참 두껍소.”

“하, 덤터기 씌우는 거 보라? 네가 레니게이드 애들 조진 거 내 모를 것 같니. 차량 조회 때려보니 그이들 꺼드마. 그거 처리한다고 등골이 서늘했다, 개-쓰애끼야.”

어디 물건인지 얘기 안했음에도, 전부 알고 있었나보다.

알 수밖에 없었던 게, 애초에 뒷골목 쥐락펴락하는 석중이었다. 아마 처분 과정에서 소문을 들었으리라.

“하하, 거 그런 건 그냥 모르는 척 하쇼.”

“레니게이드 돈 빵꾸나서 언더 다크에 대출 했대드라. 지금 범인 잡는다고 눈 뻘개져있디.”

살짝 위험한 상황이었으나, 웃음만 나왔다.

어차피 걔네 물건 거래한 석중도 엮인 상황이었다. 밀고 가능성도 없고, 증거도 없다.

“그래서. 연예계 뒷문 있소, 없소?”

석중이 슬쩍 얼굴을 굳혔다.

“내 개구멍은 안 판다. 뒷맛이 구리디.”

그렇게 말하면서도, 카운터로 명함 한 장을 건네줬다.

“온 김에 심부름이나 하나 해라. 거 전화해서, 내 이름 대고 물건 들어왔다고만 딱 말하라.”

돌려 말한 승낙이었다.

단지 다른 사람이 여럿 엮이다보니, 안전 및 보수에 대해서는 책임질 수 없었기에 저런 행동을 보인 것뿐이었다.

“고맙소, 할배. 다음에 일 생기면 또 찾아오겠소.”

“객사하지 말라. 키우던 개 뼈 추리기 귀찮디.”

“거 할배나 자꾸 키우던 개한테 물릴 개소리 싸지나 마쇼.”

서로 과격한 인사를 주고받은 뒤, 픽 웃었다.

대충 돌아다니다 저녁 깨쯤 명함을 훑어봤다.

PSK 엔터테이먼트, 이사. 박성국.

일 여부를 묻기 위해 바로 가까운 공중전화로 향했다.

수신음이 10번 쯤 울렸을 쯤 목소리가 들려왔다.

“PSK 이사, 박성국입니다.”

인사 할 것도 없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석중 할배 전화요. 물건 들어왔소.”

“조만간 찾아뵙겠다고 전해. 그리고 네가 할배가 말한 그 놈이냐?”

수화기 너머로 반말이 툭 튀어나왔다.

‘이 새끼가?’

초면에 반말을 들으니 기분이 팍 상해버렸다.

원래 지훈도 초면에 반말을 자주 하는 편이긴 했으나, 원래 모든 게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 법이었다.

“말이 짧다. 우리가 구면이던가? 거 내 듣기로 말 짧으면 명줄도 짧아진다던데. 어떻게 생각해?”

강하게 나가자 날카로운 침묵이 스쳤다.

“거… 까칠하시기는, 석중 할배한테 전화 받았어. 그래서 이쪽 경비 일 하고 싶으시다며?”

꿀리기는 싫었는지, 기묘하게 섞인 반존대를 했다.

이에 지훈은 그냥 반말로 답해줬다.

“어. 맞아.”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지구에서 걸 그룹 하나 오는데, 걔네 경비 자리가 좀 남디다. 그거면 괜찮겠나?”

아마 신데렐라 퍼퓸을 말하는 것 같았다.

“페이?”

“관광 포함 3일. 일당 1000만. 원래 1500인데, 내 몫으로 수수료 500. 콜?”

어차피 걸 그룹 호위라고 해봐야 별 거 없을 것 같았다.

대형 기획사를 끼고 있었기에 콘서트 때는 알아서 추가 경비 배치 딱딱 할 테니 저격 걱정이 없었다.

게다가 관광도 내부 정보 새어나가지 않는 한 기습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덤벼봐야 홧김에 달려든 일반인일게 분명했다.

그 정도라면 대충 따라다니기만 해도 일당 챙길 수 있겠지.

“일은 언제부터 시작이지?”

“사흘 뒤. 서류 작업해야 하니까 사진하고 신분증 내 주소로 보내주쇼.”

이후 일에 대한 주의사항을 들은 뒤 전화를 끊었다.

‘이번 일은 좀 쉽겠군.’

내심 그렇게 생각했으나, 언제나 예상치 못한데서 일이 꼭 한 번씩은 터졌음이 떠올랐다.

애써 그 생각을 꾹 눌러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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