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55화 (55/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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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하자 지현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입원해 있을 때 격일마다 병문안을 왔음에도, 걱정이 가시질 않은 모양이었다.

“괜찮아?”

“검사 결과 방사능 배출 끝났다. 걱정 마라.”

최근 연구가 시작된 마법의학 힘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인간의 몸에 축적된 방사능을 뽑아낼 수도, 망가진 단백질을 원상복귀 시킬 기술도 없다.

하지만 종족 전쟁 이후 방사능 및 마법 오염 지대가 급속도로 넓어지며 피해자가 속출했고,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나온 게 바로 마법 의학이었다.

마법과 의학을 합친 현대 기술이었는데, 아직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방사능과 마법 오염을 치료하는 데 그쳤다.

아마 시간이 더 흐른다면 인류의 수명을 극단적으로 늘릴 기술이 되리라.

“너 나 걱정하지? 이제 곧 치료일이잖아.”

“그래도… 이번에는 돈 많이 못 벌어 온 것 같은데….”

자금 사정이 신경 쓰였는지, 지현이 얼버무렸다.

예금이 1억 가까이 있어도, 수입이 불규칙적이라면 혹시 모를 위기 상황을 대비해 아껴야 했다.

본인이 벌어도 그런데, 받기만 하는 지현은 오죽할까.

“그런 거 신경 쓰지 마라.”

“그래도… 오빠가 힘든 일 하면서 벌어 오는데….”

방금 정산 받은 1억 4천만 원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인 것 같았다.

퍽!

스포츠 백을 내려놓자 묵직한 소리가 났다.

“못 보던 백인데. 장비야?”

“열어 봐.”

지현이 가방을 열자 황금 빛 지폐들이 반짝거렸다.

“어, 어…. 이거 어, 얼마야?”

“1억 4천.”

입만 떡 벌리고 있는 지현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이사 가자.”

“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꿈을 안고 개척지에 왔지만, 정작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그걸 증명하듯 남매는 개척 초기에 지어진 다 허물어져 가는 집에서 살아야만 했다.

비가 오면 물이 새고, 우범 지대인지라 치안은 바닥이었으며, 사회 인프라는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세드 드림을 꿈꾸던 남매의 희망은 순식간에 짓밟혔다.

남매에게 있어 집은 족쇄요, 멍에며, 감옥이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삶과 병에 치여 내일이 불투명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족쇄를 찼고, 멍에를 멨으며, 감옥에 들어갔다.

싫어도 살기위해 참았고, 이게 최선이라 자위했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 없다.’

지훈은 각성자요, 헌터가 됐다.

개척 시대의 부르주아.

모든 사람들의 동경을 받는 사람.

더 이상 족쇄 따위는 필요 없었다.

“정말? 진짜로…?”

“나도 힘들었지만, 너도 고생 많았다.”

지현이 지훈의 손을 잡고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난 아무것도 한 것 없는데… 미안해….”

“징그럽게 뭐 하냐. 손 놔라.”

“고마워. 정말, 진짜… 나 앞으로 말도 잘 듣고, 병도 빨리 나아서….”

평소 감정교류가 없던 이유에설까.

눈가가 주변이 간지러우며, 가벼운 습기가 찼다.

“됐어. 나중에 보사나 아이덴티티 취직해서 갚아.”

지현이 눈물 가득한 얼굴로 올려다보며 물었다.

부끄러웠는지, 애써 평상심을 가장하는 것 같았다.

“웃기네, 내가 거길 어떻게 들어가.”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한 말이었지만, 지현에게는 알려주질 않았다.

“다 방법이 있으니까, 공부나 열심히 해 둬. 대학 가야지.”

“대학이라니?”

종족 전쟁 이후 대학에 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비싼 학비 대가며 학업을 지속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몇 몇 선택받은 금, 은수저만 가거나 인생 올인 해가며 들어가는 게 요즘 대학이었다.

“맨날 TV에서 대학 드라마 챙겨 보는 거 모를 것 같았냐, 지지배야. 저번에는 무슨 모집요강 같은 것도 들고 왔더만.”

돈이 없을 때에는 지현이 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 걸 알면서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모른 척 해야 했었다.

이제는 애써 외면하지 않아도 됐다.

“내가 저번에 얘기 했잖아, 사람답게 살아 보자고. 병도 치료하고, 이사도 가고. 그리고 너 대학도 가라.”

지현은 그간 지훈에게 했던 못된 짓들이 떠올랐는지, 더 이상 울음을 참지 못했다.

대성통곡 하며 숨도 못 쉬고 쉴 세 없이 사과와 미안한 감정들을 눈물과 함께 토해냈다.

“괜찮아, 이 년아. 뭘 사과 해. 원래 사람이 아프고, 힘들면 그럴 수도 있는 거야. 미안하면 앞으로 열심히 살아.”

아프고 힘들면 그럴 수도 있다.

이는 지훈에게도 똑같이 적용 되는 말이었다.

사실 지훈도 힘들었고, 지훈도 아팠고, 지훈도 짜증났다.

하지만 참았다.

자기가 쓰러지면 지현도 같이 쓰러진다.

자기가 아프면 지현도 같이 아프다.

자기가 울면 지현도 같이 운다.

가장이니까.

쓰러질 것 같아도 이 악물고 참았고,

힘들면 술이라도 먹으며 달랬고,

슬퍼도 감정을 외면했다.

가족이, 동생이, 사랑하는 사람이 괜찮다면 그걸로 좋았다.

미친 사냥개 소리 들어가며 뒷골목을 헤매도,

등이 아무리 상처투성이가 된다고 해도,

매번 목숨 걸고 어려운 일을 해도,

전부 괜찮았다.

‘돌아보면 참 좆같은 인생이었어. 다시는 그런 삶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다.’

지훈은 아무도 보지 못하게 꼭꼭 숨겨 둔, 가장의 무거운 눈물 한 방울에 걸고 맹세했다.

☆ ☆ ☆

“이 집은 어떻습니까?”

부동산 중개업자가 집 안을 가리켰다.

“이번에 새로 지은 신축 아파트인데, 아마 각성자 보조금 들어가서 정말 싸게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신축, 46평, 11층, 남향, 창밖에 개천.

딱 봐도 좋은 조건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얼마나 들어갑니까?”

“실례지만 각성 등급이 몇 등급이십니까?”

“C등급 3티어”

중개업자는 살짝 계산기를 두드렸다.

“대충 보조금 끼고 1억 5천이면 들어가겠네요.”

지현 치료비 나갈 거 계산해도 감당 가능한 액수였다.

게다가 여차 싶으면 시간 걸리더라도 되팔면 그만이었다.

바로 구입 의사를 밝혔다.

집은 총 46평으로, 방 4개에 화장실 2개 딸려 있었다.

이에 방 하나 지현에게 넘겨주고 나니 고민거리가 생겼다.

‘내 방 제외하고도 2개나 남는다. 이걸 어쩐다?’

며칠간 고민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방 하나는 헬스 기구 및 헌팅용 장비 거치대를 설치했고, 다른 방 하나는 드레스 룸으로 쓰기로 했다.

아직 지훈에게는 옷이 많지 않았으나, 지현이 입을 옷 및 이후 시연에게 질질 끌려 다니며 살 옷들을 생각해서였다.

☆ ☆ ☆

지훈의 이사 소식에 민우도 살짝 고민을 했으나, 그만뒀다.

월 300이나 되는 월세가 부담됐으나, 어차피 적응기간 제외하고는 서구 집값은 거기서 거기였다.

‘돈 많이 버는데 굳이 쉐어 하우스 같은 거 할 필요 없지. 그냥 여기서 살자.’

혼자 사는데 굳이 큰 집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말이다.

이사 했다는 소식을 알리자, 칼콘은 기쁘게 축하해줬다.

“너는 이사 안 가냐? 동구 불편하잖아.”

“난 여기가 편해. 게다가 이제 여자 친구도 챙겨야 하고.”

최근 톨퐁과 동거를 시작한 칼콘이었다.

“그럼 됐다.”

☆ ☆ ☆

집 이사하랴, 지현 치료하랴, 시연과 데이트 하랴….

정신없는 일주일이 흘렀다.

지훈은 여유가 생기자 슬쩍 서구에 있는 아이덴티티 휘하 아티펙트 상점으로 향했다.

“반갑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식별 좀 하고 싶은데.”

“매장 내 검사기를 이용하시는 쪽으로 안내해 드릴까요, 아니면 일회용 스크롤로 드릴까요?”

아쵸푸므자에게 받은 물건이었기에, 장물 우려 없이 검사기 쪽으로 선택했다.

뚜벅, 뚜벅.

전체적으로 검은색과 흰색만 사용한 심플한 인테리어에서 간결함을 중시하는 현대적인 감성이 묻어났다.

일부러 이렇게 꾸며놓은 지는 몰랐으나 가는 길에 멋들어진 아티펙트가 많이 보였다.

정부 산하에서 영업을 하는 각성자 물품 거래소가 아울렛 같은 느낌이라면, 아이덴티티나 보사가 직접 운영하는 아티펙트 상점은 명품점에 가까워 보였다.

‘A등급 아티펙트가 50억인가.’

쇼 윈도우 너머로 중세 용사가 드래곤 잡을 때나 쓸법한 휘황찬란한 검이 전시되어 있었다.

“저희 지점에 하나밖에 없는 A등급 아티펙트입니다. 칼날은 크릴나이트로 만들었고, 자루와 코등이(가드)는 맥들킨토 비늘로 만들었습니다. 한 번 가까이서 보시겠습니까?”

A등급 아티펙트가 필요할 정도로 위험한 적을 상대한다?

지금 실력으로는 휘둘러보기도 전에 죽는다.

“됐소. 가던 길 마저 갑시다.”

검사기는 마치 거대한 현미경 같은 모양이었다.

“검사판 위에 물건 올려주세요.”

샬레 비스무리하게 생긴 검사판 위에 장갑을 올려놓았다.

챙길 당시에는 너무 바빠서 못 봤지만, 자세히 보니 쇠사슬 뼈대에, 검푸른 비늘을 붙인 모습이었다.

‘B등급 이상이었으면 좋겠군.’

검사판을 검사기 아래에 놓으니, 직원이 작게 중얼거렸다. 마법공학 물품인 만큼, 작동에 마법이 필요한 모양이다.

푸으으 - 옹 - - 파앗!

검사기 주변에 푸른빛이 이는가 싶더니, 갑자기 확 하고 터지듯이 빛났다.

눈을 감았다 뜨자, 벽면에 장갑의 정보가 나타났다.

[Paer klinker 954(습작 954번)]

종류 : 장갑

등급 : B 등급

재질 : Error code 495#1D.

설명 : 기록 시작. 공방력 9년 5492시간 째. 저번에 만들었던 Paer 901(901번)을 보안하기 위해 tootmine(제작)함.

pear 954(954번)은 전작에 비해 보호력은 높아졌으나, Managua kontrolli(마나 제어)능력은 현격히 떨어졌음.

추가. 다음 작품에는 Hobujõud neli toetused(#*sa Sa**. 데이터 손상)의 영혼을 넣어 봐야 할 것 같음.

추가 노트 2. 시전자가 원할 시 마나 võimendus(증폭)을 제공하게 만드는 데에는 성공함. 하지만 간혹 폭주하여 의도치 않은 tugevdama(강화), pikendamine(연장), vaikne(무음) 등의 Täiendav tellimusi(주문 강화)가 될 수 있으니 주의.

추가 노트 3. 사용에 사용자의 마나를 nõudlus(요구)함. Non-ärkamine(마나 미각성자)가 착용 시 leke(마나 노출)현상으로 circuit ummikud(회로 폭주)의 가능성이 있으니 주의.

올라오는 정보를 보며, 처음으로 든 생각은 이랬다.

‘이건 도대체 뭔 소리야.’

보통 식별 마법은 물건에 대해 개괄적인 설명을 해준다.

하지만 이 물품에는 그런 것 하나 없이, 오로지 제작자의 코멘트만 잔뜩 달려 있었다.

‘이, 이게 뭐야?’

직원 역시 당황하긴 매한가지였다.

식별 마법은 물건을 설명하는 마법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내용을 이해할 수 없으면 무용지물이기에, 식별 마법은 언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에 아이덴티티가 빠르게 치고 나가, 설명 번역이 포함된 마법을 발명했고, 이를 특허와 비밀로 옭아맸다.

그렇게 언어학과 마도학의 정점에 올라있는 아이덴티티의 식별 마법임에도, 지금 나타는 설명문에는 비번역문이 가득했다.

대충 설명으로 보건데 마법사용을 도와주는 장갑처럼 보였으나, 그 뜻이 괴이했다.

현재 마법 보조 도구는 스태프나 완드가 전부였다.

그나마도 마나 회로를 재정비 및 안정시켜주는 용도지, 절대 마나를 증폭시키거나 마법의 능력을 강화하진 못했다.

물론 이 사실을 일개 아이덴티티 직원이 알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멀찍이 마법에 관련 된 아티펙트라는 사실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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