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랑 18세, 칼콘. -->
병원에서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누워있는 건, 사람을 굉장히 피폐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였다.
활동적인 사람은 더 그랬는데, 특히 지훈이 그 과였다.
결국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미라마냥 쪽쪽 말라가는 가운데,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겨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봐, 인간 아가씨. 나 안 아프다니까. 그러니까 제발 그 바늘 좀 놓고 얘기해.”
칼콘이 간호사의 양 손목을 부여잡고 말했다.
표정과 말투에는 애써 두려움을 지운 표시가 났으나, 손은 그렇지 못했는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안 돼요. 방사능이라 꼭 혈액검사 해야 한다니까요?”
“아니, 아픈 곳이 없는데 내 소중한 피를 왜 뽑아가. 진짜야, 나 지금 엄청 팔팔해.”
방사능은 조금 쬔다고 해서 즉효가 나는 물건이 아니었다.
피폭 효과라고 해봐야, 자다가 코피 한 번 쏟은 게 다였다.
이에 방사능에 대해 모르는 칼콘은 ‘별 거 아니네.’ 하는 태도를 고수했지만, 방사능 피폭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는 간호사는 절대 안 된다며 계속 주사기를 들이 밀었다.
“생니 뽑히거나 자다가 피 토해봐야 정신 차릴래요?”
생니가 뽑힌다는 말에 칼콘이 잠시 버벅거렸다.
“오크 엄니도 뽑혀?”
칼콘에게 있어 엄니의 존재는 그 자체로 훈장이오, 영광이며, 강한 수컷이라는 증거였다.
주먹질은 일상다반사에 매일같이 전쟁 나가서 치고 박는 종족이 바로 오크였다. 그러니 엄니가 붙어 있다는 건 곧 ‘아 저 놈 싸움 좀 하는구나.’ 하는 증거였던 것.
그 중요한 엄니가 전투 때문에 뽑힌 게 아니라, 방사능 같은 어이없는 걸로 쑥 뽑힌다?
절대 안됐다.
“아마도요?”
간호사는 교모하게 말을 돌렸다.
생니가 빠질 정도로 피폭되려면, 러시아 하수도 기준 1년 정도 쥐랑 바퀴벌레랑 친구하며 뒹굴어야 했다.
하지만 사실을 말했다간 분명 칼콘이 ‘싫어. 그럼 피 안 뽑아.’ 라고 할 게 안 봐도 비디오였다.
“어, 어서 꽂아라.”
“진짜 꽂습니다?”
칼콘이 제 팔 내어주는 장군마냥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둘의 합의가 이뤄지자 마자 간호사는 바로 알코올 솜을 문지르고는 주사기를….
푹!
“끄아아아아아아!”
겨우 2~3mm짜리 주삿바늘 들어갔거늘, 무슨 저격총에 맞은 것 같은 비명이 울렸다.
주사기 안으로 신선한 피가 차올랐다.
그렇게 채혈까지는 문제없이 잘 진행됐다.
“끝났어요. 이제 뽑을게요.”
간호사는 드디어 피를 뽑았구나, 하는 심정으로 주사기를 당겼지만….
“어?”
꾸욱, 꾸욱.
뽑히질 않았다.
칼콘이 긴장해서 팔에 힘을 꽉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힘주면 잔뜩 부풀어 올라, 침 꽂은 모기도 도망가지 못하게 만드는 풍선 근육이었다.
주사기 따위 빠져나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거 왜 이러지?”
“빨리 안 뽑고 뭐해!”
칼콘은 제 탓인지도 모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결국 위축된 간호사가 깜짝 놀라 주사기를 세게 당겼고….
뽁!
빠졌다.
바늘 빼고 주사기만.
그럼 바늘은 어디에 갔을까?
“끄아아아아!”
당연히 칼콘 팔에 박혀있었다.
☆ ☆ ☆
칼콘이 난리를 치는 바람에 결국 수간호사가 찾아왔다.
근육 특성상 긴장을 풀지 않는 이상 바늘이 절대 뽑힐 수 없음을 알았는지, 수간호사는 초콜릿을 들고 왔다.
“잠깐 드시고 계세요.”
“머, 먹는 동안 뭐 하려고!”
칼콘이 상처받은 짐승마냥 눈을 희번덕거렸다.
“아무것도 안 해요. 걱정하지 마요.”
“진짜야?”
“아무렴요.”
칼콘이 초콜릿을 우적거렸고, 잠시 긴장이 풀린 사이 수간호사가 바늘을 쑥 하고 뽑아냈다.
“어? 어?”
칼콘은 그 모습을 멍 하니 보고만 있었다.
“다 큰 어른이 뭐 그렇게 주사를 무서워해요?”
수간호사는 핀잔을 주며 칼콘의 신상명세를 훑었다.
크라카투스 콘트레스 보더워커.
M, 21.
“아, 미안합니다.”
수간호사는 슬쩍 말을 고쳤다.
칼콘은 본인은 한 사람의 몫을 다 하는 전사라고 주장했으나, 주사바늘에 패배한 직후라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
간호사 무리가 나가자 지훈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또라이 새끼야. 총 맞는 건 안 무서우면서 어떻게 바늘을 무서워 하냐.”
칼콘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확 붉어졌다.
“그런 거 아니야. 지훈, 봐봐. 피는 생명의 상징이라고. 근데 저 녀석들이 내 생명력을 강탈하려고 했어!”
약이나 몇 번 타다 먹었지, 바늘을 한 번도 못 본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관용은 관용이고, 장난은 장난이었기에 지훈은 한참이나 그 껀덕지로 칼콘을 놀려먹었다.
긴 웃음이 지나간 후, 민우가 슬쩍 칼콘을 쳐다봤다.
“칼콘, 몇 살이에요?”
“어디보자… 이쪽 나이로, 아마 22살일걸?”
민우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유 대신 술을 처먹었나, 얼굴이 무슨….’
신진대사 빠르고, 수명이 짧은 오크는 13살 이면 성인이었다. 당연히 인간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전문가 빼고는 별 관심 없는 사실이었기에, 민우는 슬쩍 얼굴을 굳혔다.
민우는 24살이다.
칼콘은 21살이다.
민우가 3살이나 많다!
하지만 여태 민우는 당연하다는 듯 칼콘에게 존대를 했다!
“칼콘, 나보다 어리네?”
민우가 은근 슬쩍 칼콘에게 하대했다.
“응. 내가 어리네. 근데 왜 말이 짧아?”
칼콘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문화 차이에서 온 상반된 반응이었다.
유교주의가 짙은 한국에서 자란 민우에게 있어서는 당연히 나이 혹은 계급이 곧 서열관계였다.
하지만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개인 팀이었으니 당연히 나이만 놓고 계산하면….
지훈 - 민우 - 칼콘
순이 됐다.
반면 힘 있는 자가 곧 권력을 취하는 경쟁사회에 살았던 칼콘에게 있어서는 개인의 무력이 곧 서열관계였다.
이에 따르면 아래와 같았다.
지훈 - 칼콘 - … … … - 민우
나이로 따지면 민우가 3살 많았으나, 칼콘이 보기에 민우는 오크 소년보다도 못한 나약한 존재였다.
“그, 그야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나이? 그게 무슨 상관이야. 네가 나보다 약하잖아.”
서로가 서로의 문화를 모르니 당연히 충돌했다.
“칼콘, 봐봐. 본디 모든 생명체는 나이가 많은 존재를 존중해야 하는 거야.”
“존중? 어차피 나이 들어서 약해지면 전쟁하다 죽잖아. 곧 죽을 사람한테 배려를 왜 해?”
서로의 말이 방향을 달리하며 교차됐다.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이 대화하는 꼴이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결국 나이냐, 무력이냐 가지고 한참을 논쟁하던 칼콘이 제안을 하나 했다.
“붙자. 네가 이기면 존대까진 아니어도 대접은 해 줄게.”
빈정 상해서 던지는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자.’ 가 아닌 오크기준 당연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민우는 코웃음을 쳤다.
“내가 어떻게 너하고 싸워서 이겨. 웃기는 소리 하네.”
뭔가 논쟁이 심해지는 것 같아 슬쩍 끼어들었다.
“개소리 그만 싸재끼고, TV나 봐 새끼들아.”
가끔 양보할 수 없는 게 있듯, 칼콘과 민우가 거절했다.
“지훈, 얘가 자꾸 이상한 소리 하잖아.”
“형님. 칼콘이 저보다 어리지 않습니까?”
결정해 달라는 말투였다.
아마 칼콘 손을 들어주면 좀 더 본능적이고 상식을 깨는 제안을 많이 들을 수 있을 테고, 민우의 손을 들어주면 인간적이고 이성적인 제안을 많이 들을 수 있을 터였다.
이에 지훈의 의견은….
‘그걸 왜 내가 정해. 나보고 어쩌라고?’
듣자마자 이런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고, 당연히 이 말은 아무런 필터도 없이 바로 입 밖으로 튀어나갔다.
“그냥 둘이서 알아서 해결해. 뭣하면 진짜 싸워 보던가.”
“아, 아니 어떻게 저랑 칼콘이 싸웁니….”
“그래. 사실 그게 제일 쉽지!”
결재도 떨어졌겠다, 칼콘이 바로 민우에게 다가갔다.
“자, 잠깐만요. 칼콘, 진정해요. 우리 문명인이잖아요. 대화로 해결합시….”
“우리 문명에서는 이게 대화인데?”
꽈아악.
“아아악!”
칼콘이 민우의 양손을 붙잡고 애가 인형 갖고 놀듯 이리저리 흔들었다. 어찌 보면 개가 인형을 물고 도리질 치는 것 같아 뵈기도 했다.
병실에 비명이 울리기도 잠시.
결국 서열 전복(?) 없이, 현재 체재를 유지하기로 결정됐다.
“그만들 하고 TV나 봐. 새끼들아. 걸 그룹 나온다.”
칼콘과 민우가 동시에 TV로 고개를 획 돌렸다.
TV에선 어웨이큰즈라는 그룹이 군무 비슷한 춤을 추고 있었다. 전원 각성자로 구성 된 그룹으로,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그룹이었다.
헌팅 한 번 나가지 않은 F등급임에도, 대중들은 예쁘고 몸매 좋은 각성자에 열광했다.
최근 각성한 가수, 각성한 배우 등 여러 연예인이 히트를 치며 ‘각성자는 일반인과는 급이 다른 우월한 생명체다.’ 라는 풍조가 돌기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방송사는 자극적인 내용과 곱게 포장 된 방송을 앞세워 저 풍조를 더욱 확산시켰다.
마법 및 각성의 여파로 급격히 발달하는 기술과, 자본주의의 단점이 겹쳐져 발생한 씁쓸한 현상이었다.
사회 전체로 치면 점점 더 비틀어지고 있었으나, 개인 입장인 지훈은 이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TV에서 예쁜 인형이 나와서 ‘나는 네가 좋아요~’ 라며 예쁜 재롱을 부리는데, 걔가 각성까지 했댄다.
좋으면 좋았지, 싫을 게 어디 있나.
“와, 진짜 저런 애랑 사귀면 무슨 기분일까요?”
“방송이랑 악플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고, 담배나 뻑뻑 피면서 까트하고 섹스 질펀하게 하겠지.”
핑크빛 환상을 펼치던 민우에게 핏빛 현실을 던져줬다.
“에이, 형님. 저렇게 예쁜 애가 무슨 까트에요.”
“왜. 예쁜 애들은 담배나 까트 안 필 것 같냐?”
비슷한 예제가 몇 개 더 있다.
예쁜 여자는 밥을 많이 먹지 않는다거나, 배변을 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신화 속 유니콘 같은 거면 모를까, 예쁜 여자도 사람이었다. 밥도 먹고, 담배도 피고, 배변도 하며, 섹스도 했다.
“네. 저렇게 예쁘고 착한 애들이 어떻게….”
민우는 ‘그런 짓을 해요?’ 라고 하려다 말문이 막혔다.
지현도 담배 피지 않던가?
- 왜 그렇게 못 찾아? 너 처음이야?
민우는 지현이 담배를 잡아다 직접 제 불 앞에 가져다 준 걸 떠올렸다.
화악 하고 얼굴이 붉어졌으나, 지현에게 연모를 품은 걸 걸렸다간 샷건 맞을 걸 알았기에 들킬까 싶어 빨리 털어냈다.
“요즘엔 하도 극성팬이랑 사생팬들 많아서, 경비도 각성자 쓴다던데… 우리는 저런 일 안 해요?”
민우가 슬쩍 화재를 돌렸다.
“왜. 하고 싶냐?”
“하고야 싶죠.”
“석중 할배가 아마 그 쪽 애들 잠깐 만졌었을 걸.”
“어, 에… 네? 뭐라고요?”
안 될 거 있냐는 반응에 민우가 깜짝 놀랐으나, 이에 ‘시끄러우니까 TV나 봐 임마.’라고 떼어냈다.
☆ ☆ ☆
방사능 피폭을 위한 약물 치료 및 똥독 치료를 위해 일행은 약 7일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의료보험을 적용 받는 지훈과 민우는 그럭저럭 납득할 가격이 나왔지만, 문제는 칼콘이었다.
단순 주거허가만 받은지라 의료 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것.
병원비가 2000만 원을 훌쩍 넘어버렸다.
“어, 어…. 나 어떡해? 돈 없는데.”
“너 여태까지 받은 돈은 어쨌는데?”
“전부 고기, 술, 단백질 사먹었지….”
어이없는 대답에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뭘 어떻게 먹으면 식비로 억 단위 돈이 날아가?’
이번 보상은 각자 챙기는 형식이라, 모아서 나누지 않았다.
곧 칼콘은 이번 임무에서 현금 수익이 없다는 얘기였다.
칼콘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지훈을 쳐다봤으나, 지훈도 지현 치료비 및 기타 나갈 구멍이 많았다.
반면 민우에게는 이번에 10kg짜리 순금상을 얻었다.
“칼콘, 형이라고 한 번 해봐. 그럼 도와는 드릴게.”
민우가 영화 속 악역을 연기하며 거만하게 말했다.
칼콘은 이에 이를 꽉 깨물었으나,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혀, 형… 병원비 좀 내줘.”
마지막 자존심으로 존대까진 붙이지 않았으나, 민우는 그걸로 만족했다.
“푸하하하. 내 팔을 반으로 접더니, 꼴좋다!”
2000만 원 짜리 일회용 호칭이었으나, 민우는 만족했다.
이후 병원 밖으로 나온 뒤, 슬쩍 금상을 어쩔 건지 물었다.
- 그거 어쩔 거냐?
- 칼콘한테는 비밀인데, 팔아다 정산하려고 했어요.
- 네가 주워온 건데 나눠도 되겠냐?
지훈이 C등급 아티펙트를 팔아서 동료에게 나눠주지 않는 것처럼, 민우의 금상 역시 민우의 개인 자산이었다.
처분이 쉽다는 이유로 정산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 동료잖습니까. 만드라고라 때 저 한 거 없는데 돈 받았잖아요. 겐포 때도 비슷하고. 꽁돈 먹은 값 해야죠.
기특한 마음에 민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추가 정산]
아쵸푸므자 금상 판매비 : 4억 2천만 원
지훈 : 1억 4천만 원 획득.
민우 : 1억 4천만 원 획득.
칼콘 : 1억 2천만 원 획득.
공통 : 방사능 및 병에서 회복 됨.
“뭐야, 왜 나만 1억 2천이야?”
“병원비 공제했는데, 왜요?”
“너 나한테 형 소리 들었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야 이 새끼야!”
칼콘이 성난 멧돼지처럼 달려들었고, 민우는 신난다는 웃음을 흘리며 도망쳤다.
물론 1분도 안돼서 잡혔고, 비명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