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53화 (53/173)

<-- 창고 털기. -->

아공간.

어느 누군가에게는 익숙하고 어느 누군가에게는 생소한 개념이겠지만, 대충 주머니 차원(포켓 디멘션)으로 보면 편했다.

강력한 마법사 혹은 용사 또는 그에 준하는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창고였으나….

거기에 온갖 물건들, 심지어 생명체까지 우겨 넣는다면?

아쵸푸므자의 주머니 차원이 그랬다.

처음엔 물품 관리를 위해 마법 창조물과 그 창조물들의 생존에 필요한 약간의 에너지원을 넣은 게 다였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누군가의 부탁으로 떠맡아 버린 작은 종족도 집어넣고, 겁 없이 덤벼든 인간도 몇 처박아 버리다 보니….

어느새 주머니 차원은 창고가 아닌 하나의 작은 세계(차원)으로 변해 있었다.

작은 종족은 아쵸푸므자를 신으로 숭배했고, 길 잃은 인간은 마왕 노릇을 했으며, 마법 생명체는 짐승마냥 뛰놀았다.

☆ ☆ ☆

그 세계 속 작은 종족들의 신전 안.

한 사제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아아, 신이시여. 어째서 긴 시간동안 침묵 하시오니까.”

신전 한 구석에는 안대와 귀마개를 차고 재갈을 물은 아쵸푸므자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위대한 그 분.

“제가 기도해도 보고 듣지 못하시며, 제 기도에 답도 해 주시지 못하신다는 것은 잘 압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께 이렇게 매일 기도를 올리나이다….”

사제가 신전 바닥에 엎드렸다.

“매달 사악한 마왕에게 처녀를 바친 지 벌써 2년입니다. 제발 제 기도를 듣고 계시다면, 이 세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시다면… 사악한 마왕을 없애 주소서….”

사제의 절실한 기도를 신께서 들어주신 걸까?

쿠궁, 쿠구구구구 -

작은 진동과 함께, 신전 창문 너머로 하늘이 갈라졌다.

오색찬란한 무지개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암흑이 함께하는 기묘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암흑 속에서, 거대한 인간 하나가 뚝 떨어졌다.

쿠웅!

사제는 그 상황에 깜짝 놀랐으나 금방 정신을 차렸다.

“처, 천사? 그 분께서 우리에게 천사를 보내셨도다!”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사제는 최대한 빨리 움직여 신전 옥상으로 향했다.

‘저 분께서 내 뜻을 전해야 한다!’

아무도 없는 옥상. 사제가 숨을 들이마시자, 이후 거대한 인영 2개가 더 나타났다.

☆ ☆ ☆

포탈 안으로 들어가자 마치 미니어처 장난감 같은 세계가 펼쳐졌다.

잘못 온 거 아닌가 싶어 잠시 멍하니 있자니 파리 앵앵 거리듯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천사님, 드디어 제 기도를 들어 주셨군요!

‘뭐? 천사?’

세상이 얼마나 미쳤으면 천사가 총 들고 사람 잡으러 다니나 싶기도 잠시.

시간제한이 있었기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뭐, 뭘 가져가지?’

지금 지훈은 작은 도시 한 가운데였다.

“여, 여기 뭐야? 이상해.”

“형님. 그, 그냥 나갈까요?”

뒤따라 들어온 칼콘과 민우가 불안한 듯 말을 떨었다.

그도 그럴게, 창고는 개뿔 소인국에 온 느낌이었다.

들고 갈 만한 물건은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젠장, 도대체 아티펙트는 어디있는거야?’

그러는 사이 벌써 10초가 지나가 버렸다.

남은 시간은 4분 30초.

애가 타기 시작했다.

- 제 말을 들어주세요, 천사님들!

“씨발, 꺼져. 나 바빠!”

작은 사제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천사라고 감쪽같이 믿고 있었는데, 천사라는 양반 입에서 대뜸 욕이 튀어 나왔으니 그럴 수밖에.

그럼에도 사제는 애써 정신을 추슬렀다.

종종이 다른데 어찌 문화가 같겠냐고 애써 합리화했다.

- 마왕을 토벌해 주십시오! 못된 마왕이 매달 처녀를 바치라고 하고 있습니다!

“알아서 해라. 나 바쁘다.”

천사, 아니 지훈은 쳐다도 보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 만약 토벌해 주신다면, 고대인들의 물건이 쌓여 있는 장소를 가리켜 드리겠나이다!

‘미친놈들이 나보고 천사라면서 무슨 천사한테 딜을 쳐?’

속으로는 불평했으나, 솔깃한 제안이었기에 되물었다.

“그래서 그 마왕새끼 어디 있냐.”

어차피 사람이 작다면 마왕도 작을 터였다.

빠르게 이동해서 가볍게 밟아주면 끝났다.

‘멀면 포기하고, 가까우면 빨리 끝낸다.’

그 때 가까운 산 속에서 쿵 하고 작은 먼지구름이 생겼다.

- 저기, 저 산입니다. 지금 일어서는 놈이 마왕입니다!

셋의 눈이 바로 마왕에게 향했다.

‘뭐여, 저건 또 뭔데 인간 크기야?’

마왕 역시 지훈 일행을 보고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허, 허, 헉? 인간? 누구십니까?”

지훈은 대답하지 않고 사제에게 물었다.

“저게 마왕이냐? 저거 때려잡으면 돼?”

- 예, 맞습니다! 어서 토벌해 주십시오.

슬쩍 시간을 살폈다.

남은 시간은 4분 이었다.

거리는 약 50M. 왕복 20초 정도 거리였다.

‘가속 쓰면 대충 10초.’

“콜, 새끼야. 구라면 손모가지 날아간다.”

지훈은 사제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칼콘과 민우에게 혹시 모르니 들고 나갈 거 미리 챙겨놓으라고 언질 했다.

이후 바로 가속 이능을 발동하고 달렸다.

쿵, 쿵, 쿵, 쿵!

도시의 도로들이 지훈의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박살났지만, 지금 그딴 거 신경 쓸 새 없었다.

순식간에 마왕(?)이라는 놈에게 달려갔다.

“자, 잠시 만요.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입니다.”

녀석은 변명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지금 그딴 거 들어줄 시간 없었다.

“씨발. 나 바쁘니까 그냥 마왕해, 새끼야.”

“저 마왕 아니….”

지훈이 바로 마왕(?)을 향해 점프했고, 그대로 녀석의 상체에 드롭킥을 박아 넣었다.

쾅!

- 와아아아! 마왕이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 전속력으로 사제에게 돌아왔다.

남은 시간은 3분 50초.

- 감사합니다, 천사님. 저 마왕은 정말 사악….

“씨발, 됐고. 위치, 새끼야. 위치!”

- 어… 저기, 그게… 바다 넘어 섬에 있습니다.

사제가 수평선(?) 너머로 보이는 섬을 가리켰다. 섬에는 사제 말대로 사람이 들어갈 만한 거대한 건축물이 보였다.

“야, 가자!”

바로 움직여야 했음에도 민우가 움직이질 않았다.

“뭐해!”

“저 수영 못해요! 그냥….”

“콱, 마. 진짜! 그냥 여기 있어 새끼야.”

결국 지훈과 칼콘이 전속력으로 달려 바다에 도착했다.

남은 시간 3분 30초.

바다라고 해봐야 거인인 지훈 입장에선 수영장 정도로 밖에 보이질 않았다.

전력으로 수영하기 위해 바다에 발을 넣은 순간…!

첨벙.

첨벙, 첨벙.

물이 허벅지까지 밖에 오질 않았다.

‘이게 바다라고? 지금 나랑 장난해?’

칼콘이 뒤로 돌아 민우를 부르려고 했으나, 제지했다.

“시간, 새끼야. 시간! 그냥 가!”

물을 해치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남은 시간 3분.

섬에 도착하자마자 지훈은 바로 창고로 달려가, 그대로 문을 걷어찼다.

각성한 지훈의 육체에 전속력으로 달린 속도까지 합쳐지니 철문이 무슨 대나무마냥 부러졌다.

쾅!

창고 안에는 금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는데, 드문드문 검이나 갑옷 같은 물건들도 섞여 있었다.

‘아티펙트!’

잡동사니 창고였기에 저게 아티펙트가 아닐 수도 있었지만, 적어도 동전보다는 훨씬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거나 골라. 한 손에 들 수 있는 걸로!”

둘이 나서서 물건을 고르려는 찰나, 보초로 보이는 돌덩이가 다가왔다.

“무단 침입. 무단 침입. 배제합니다.”

“주인이 허락, 새끼야. 허락! 아까부터 이 새끼고 저 새끼고, 진짜!”

지훈은 분노를 담아 여왕의 은혜를 휘둘렀다.

뻑! 하는 소리와 함께 돌덩이가 산산조각이 났다.

이제 방해꾼도 없어졌으니, 빠르게 달려 물건을 뒤졌다.

‘뭘 가져가지?’

마음먹고 마력부여 할 생각으로 만든 인위적인 아티펙트만 모를까, 자연 아티펙트는 등급이 좋다고 해서 겉모습까지 번쩍이지 않았다.

까닭에 아무거나 집었다간 복불복이 될 수 있었다.

이에 시간이 촉박한 지훈이 선택한 방법은….

“에라, 안 부서지는 거 아무거나 가져가자!”

여왕의 은혜로 모조리 때려보는 거였다.

쾅! 쾅! 쾅!

지훈은 다행히 여왕의 은혜로 부술 수 없는 장갑을 한 켤레 찾아냈지만, 불행하게도 칼콘은 아티펙트가 없었다.

“뭐 좋은 거 찾았냐?”

“나 이렇게 들고 갈 거야!”

칼콘이 선택한 방법은 최대한 뭉쳐서 들고 가는 거였다.

아쵸푸므자는 분명 ‘한 손으로 들고 나올 수 있는’ 이라고 말했다. 개수 제한 없이, 들고 나올 수 있기만 하면 됐다.

이에 칼콘은 망토를 하나 들어 몽둥이에 둘둘 말았고, 그 몽둥이를 갑옷에 끼워 총 세 가지 물건을 챙겼다.

“지훈은?”

“나도 끝났다.”

“가자!”

지훈과 칼콘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남은 시간 1분 30초.

창고 밖으로 나와, 바다를 건너, 다시 신전 앞으로 갔다.

남은 시간 30초.

각자 하나씩 챙긴 지훈, 칼콘과 달리 민우는 맨손이었다.

“물건, 새끼야. 물건!”

“없어요! 건물?”

“그걸 왜 뜯어!”

달려가고 있자니, 신전 옆에 노랗게 반짝이는 아쵸푸므자의 금상이 보였다.

크기를 보니 어째 트로피마냥 한 손에 딱 잡을 수 있을 크기였다.

“야, 저거. 금덩이!”

민우도 알아채고 급히 아쵸푸므자를 뜯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 20초.

하지만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까닭에 잘 뜯기질 않았고….

“비켜!”

결국 지훈이 달려와서 금상을 발로 차버렸다.

뽁!

빙글빙글 날아가는 금상을 그대로 민우가 받아 들었다.

남은 시간 10초.

- 감사합니다, 천사님들! 안녕히 가세요!

“감사는 개뿔, 꺼져!”

소인들의 환대를 받았다.

남은 시간 5초.

“야, 야. 포탈 닫힌다! 달려!”

지훈이 가속 이능을 이용해 제일 먼저 포탈을 빠져나갔다.

남은 시간 3초.

“으아아아아! 나도, 나도!”

칼콘이 몽둥이를 앞세워 포탈을 통과했다.

남은 시간 2초.

“어, 어, 어!”

민우가 달렸으나, 시간이 부족했다.

민우의 눈동자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 시간이 지나면 영원히 갇혀.

‘내 인생이 이렇게 어이없게 끝난다고?’

포탈이 점점 더 작아지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 .

1초.

민우는 자기가 저 포탈을 넘을 수 없을 거라 직감했다.

내심 나쁘지 않은 인생이었다고 생각하기도 잠시.

포탈 안에서 손이 튀어나왔다.

“억!?”

그 손은 민우의 멱살을 잡고는 그대로….

쑥!

남은 시간.

0초.

우우우웅 -

민우가 나가자마자 포탈이 사라졌다.

☆ ☆ ☆

훗날.

주머니 차원의 주민들은 이 사건을 ‘5분 강림’이라 불렀다.

- 기도를 들어주신 우리의 아쵸푸므자께서 세 명의 천사를 내려주시니, 한 명은 입이 험한 천사였고, 한 명은 엄니가 튀어 나왔으며, 한 명은 노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더라.

- 대사제가 천사들께 “마왕을 토벌해 주십사.” 하자, 입이 험한 천사가 “씨*!” 이라 말하며 달렸고, 이에 땅과 들이 무서워 벌벌 떨었다.

- 입이 험한 천사께서 마왕에게 다가가 한 번 더 “씨*!”이라 외치자, 마왕이 두려움에 벌벌 떨며 넘어졌다. 여기까지가 겨우 1분밖에 걸리질 않았다.

- 이후 엄니 천사와, 입이 험한 천사가 땅에서 볼 일을 보고 있자니, 노란 천사는 자애로이 우리를 굽어보았다.

- 3분이 지난 뒤, 두 천사가 돌아오고 이에 노란 천사가 물으니, 입이 험한 천사가 “저거, 씨*!”이라 외쳤고. 이에 노란 로브 천사는 아쵸푸므자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있음을 말하기 위해 아쵸푸므자 님의 금상을 떼어 가시네.

- 이후 떠나는 세 분께 감사 인사를 전하자, 천사는 자애로운 표정으로 “꺼져, 씨*!”이라 답했도다.

“기도하겠습니다.”

지훈과 독대했던 사제가 말했다.

그는 이제 일반 사제가 아닌, 대사제가 되어 있었다.

“더 이상 눈과 귀를 막지 않으신 위대한 그 분이시여. 항상 저희에게 거룩한 은총을 내려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저희의 거처를 유지해 주심에 무한한 감사를 전해 드리나이다.”

대사제가 말을 이었다.

“천사님들께서 신의 뜻을 받들었음을 뜻하는 단어를 다 같이 외겠습니다. 복창하십시오, 씨*.”

경건한 분위기 속.

대중들 사이에서 엄숙하게 ‘씨*.’ 소리가 흘렀다.

“당신의 뜻이, 밖에서처럼 안에서도 모두 이루어지길 기도하나이다.”

기도가 끝나자 다시 한 번 ‘씨*.’ 소리가 들렸다.

정작 문헌에 ‘세 천사’라고 기록 된 본인들이 보면 기절초풍할 내용이었음에도, 소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씨*’ 이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

안타까운 광경이었으나, 내버려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 ☆ ☆

[정산]

획득.

아쵸푸므자 모양을 한 순금상 (10kg, 약 4억 2천만 원)

C등급 이상의 아티펙트 (최소 5000만 원 이상)

몽둥이, 망토, 갑옷 (미식별. 알 수 없음)

지출.

고속도로 톨게이트 비용 : 36만 원. (왕복)

벤츠 기름 값 : 52만 원. (왕복)

고속도로 휴게소 식사 및 간식비 : 140만 원 (!)

작살 3개 : 45만 원.

넷 건 : 200만 원.

암흑 마법 스크롤 : 600만 원.

MRE 6봉 : 28만 원.

칼로리 바 6개 : 5000원.

침낭 하나 : 15만 원.

하수도 지도 : 500만 원.

방사능 보호 복 대여비 : 45만 원.

총액.

물건 미정산시, 1661만 5000원 지출.

물건 정산시, 4억 6000만 원 획득.

비고.

모든 금액은 지훈이 지출 함.

[결과]

[지훈]

현금 1661만 5000원 지출.

C등급 이상 아티펙트 획득. (약 5000만 원 예상)

- 장비 손상 : 티셔츠 1장

- 부상 : 미약한 방사능 피폭.

- 능력 : 티어 업 1번, 이블 포인트 2 감소

- 기타 : 신념을 지킴으로써, 사람으로 남음.

- 잔고 : 약 1억. (아티펙트 미처분 기준)

[칼콘]

망토, 곤봉, 갑옷 획득. (미감정)

- 장비 손상 : F등급 방패 박살. (수리 불가)

- 부상 : 미약한 방사능 피폭.

- 능력 : 각성자 전투 경험. 투척물 경험, 근력 + 1

[민우]

아쵸푸므자 형상을 한 금상. (10kg)

- 장비 손상 : 없음.

- 부상 : 똥독 감염, 탈수, 식중독.

- 능력 : 저항 - 1, 근력 +1, 민첩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