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51화 (51/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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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르르르….

버석버석버석.

찍, 찌직 찍.

오물이 흐르는 소리,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는 소리, 쥐들이 우짖는 소리 사이로 셋의 발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최대한 소리를 죽였으나, 장비 때문에 소리가 크게 울렸다.

철컹, 철컹, 철컹.

칼콘의 갑옷과 작살 때문이었다.

쇠사슬을 잡고도 움직여 보고, 갑옷 관절을 주의하며 움직여 봐도 소리를 완벽하게 차단할 수는 없었다.

- 어떡해?

고민됐다.

기습을 위해선 칼콘을 놓고 가는 게 좋았지만, 그럼 작살을 사용할 수 없었다.

‘안 돼. 작살은 무조건 필요하다.’

비록 차원 도약은 하지 못한다지만, 저쪽은 전이계 능력자였다. 중, 단거리 도약으로 도망간다면 잡을 방법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남은 시간을 고려했을 때 기회도 딱 한 번 밖에 없었다. 무조건 작살을 박아서 도약을 막아야 했다.

- 어쩔 수 없어. 그냥 최대한 소리 죽여.

- 알겠어.

터벅, 터벅, 터벅.

철컥, 철컥, 철컹.

쇠사슬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가늠하건데 서로의 거리는 모퉁이 끼고 약 100M.

이제 코너만 돌면 서로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 민우, 섬광탄 준비해.

- 넵.

- 칼콘, 섬광탄 터지자마자 바로 작살 던지고 다시 숨어.

- 알겠어.

터벅, 터터벅, 터벅, 터터벅….

지훈이 왼손을 들어 준비 신호를 보냈다.

‘작살이 박히면 칼콘의 방패를 앞세워 상대방을 제압하자.’

이후 계획을 완벽히 끝내고 주먹을 쥐려는 순간…!

“거기 누구 계세요? 제발,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어린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녀?’

굽히려던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만약 차원 여행자가 아니라, 정말 길을 잃은 아이라면?

섬광탄이 터진다.

칼콘이 명령 받은 대로 작살을 던진다.

소녀가 작살에 맞는다.

어리고 약한 몸, 그 어디에 맞든 치명상이다.

병원에 데리고 가면 살려줄 순 있겠지만, 시간이 없다.

버려야 한다.

소녀는 죽는다.

소녀가 하수구의 벌레들과 쥐의 뱃속에 들어간다.

지훈은 사회의 법망을 무시하며, 공권력의 손이 닿지 않는 도시의 어두운 그늘에 살던 사람이었다.

본디 심연을 쳐다보면, 심연 역시 나를 쳐다본다고 했던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지훈은 뒷골목을 헤맬수록 더 더러운 일, 더 어두운 일을 하게 됐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처음에는 사람을 해하는 일을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로 생각했으나, 언제부턴가는 ‘그냥 일이니까 하는 것’으로 변해버렸다.

그렇게 심연 속 괴물마냥 뒷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돈 때문에 불쌍한 모녀를 죽였다.

손에서 피를 씻어내고 있자니,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이 썩어 문드러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뭐지?

사람인가. 아니면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인가.

이후 결심했다.

사회의 법망을 무시하는 만큼, 적어도 자기가 정한 룰은 철저하게 지키기로.

절대 죄 없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어린 아이와 여자는 건들지 않는다.

의뢰와 관련이 없는 제 3자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곤, 될 수 있으면 위 세 가지를 무조건 지켰다.

물론 저 세 가지를 지킨다고 해서, 과거에 저질렀던 악행과 더러운 일들이 사라지진 않는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적어도….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 아닌,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다.

“살려주세요… 제발 그냥 가지 마세요….”

그 사이 소녀가 점점 더 다가왔다.

시간이 허비되고 있다.

손이 부르르 떨렸다.

- 형님, 어떡해요! 계속 기다려요?

- 빨리! 거의 다 왔어!

지훈이 한숨을 푹 내뱉고는, 손을 내렸다.

공격 중지 표시였다.

- 지훈, 진심이야?

- 애잖아!

- 잘 생각해. 여기는 위험천만한 장소야. 절대 계집애 혼자서 들어올 수도 없고, 살아남을 수도 없는 장소라고.

맞는 말이었다.

겨우 5일차인데도, 성인 남성인 민우가 탈진 상태였다.

어린 소녀가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었다.

- 지훈, 나는 지훈이 하자는 대로 할 테지만. 적어도 나는 저 녀석이 절대 인간 여자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 형님께서 그러셨잖아요. 외적인 특징이 전혀 없다고요. 목소리가 작고 여리다고 해서, 그게 무조건 어린 아이라고 보는 것도 무리라고 봅니다. 하플링도 그렇잖아요.

선택의 순간이었다.

이블 포인트와, 본인의 신념을 무시하고 공격하는가,

아니면 위험을 자초하는 대신 상대방과 대화를 시도하는가.

계산 할 시간 따위 없었다.

본인만 위험해 진다면 상관없었지만, 지금은 민우와 칼콘이 함께한 상태였다.

알량한 신념으로 동료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순 없었다.

‘정체를 모르는 소녀보다 내 동료가 더 소중하다.’

왼손을 들어 공격 준비 사인을 보냈다.

철컥!

칼콘과 민우가 각각 작살과 섬광탄을 꺼내들었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면… 제발 제 얘기를 들어주세요.”

거리는 약 10M.

섬광탄에 직격할 거리였다.

- 던져!

주먹을 쥠과 동시에 민우가 섬광탄을 던졌다.

섬광탄이 거세게 날아가 하수구 벽에 부딪혔고, 다시 튀어 공중에서….

- 눈 감아, 쳐다보면 눈 탄다!

파 - 앙!

어두운 하수도에 날카로운 빛의 파동이 퍼졌다.

“아, 아아아악!”

지훈의 죄책감과 소녀의 비명소리가 동시에 튀었고,

“후!”

칼콘의 작살이 뒤이어 하늘을 날았다.

촤라라라락!

이제 맞기만 하면 일이 끝났다.

소녀였다면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다시 전진하면 됐고, 차원 여행자라면 그대로 넷 건을 발사하면 됐다.

하지만 작살이 빗나갔다.

깡!

소녀.

아니 차원 여행자가 허공에 손짓하자, 작살이 돌연 휘어져 벽에 처박힌 것이었다!

‘빌어먹을?’

원인은 전이계 능력이었다.

“싸우고 싶지 않아요! 도와줄 거 아니라면 그냥 사라져요. 제발….”

차원 여행자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저 쪽은 싸움을 원하지 않는 듯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이쪽도 사활에 준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였다.

이제 차원 여행자라고 확인했으니 걸릴 것도 없었다.

“칼콘, 방패 앞세워서 전진해! 민우, 섬광탄이랑 연막탄 동시에 까!”

칼콘의 방패 뒤에 딱 달라붙어 전진했다.

현재 차원 여행자는 딱 봐도 부상이 심한 상태였다. 아마 일행을 만나기 전에 큰 싸움을 겪은 모양이었다.

상태가 온전했다면 모를까, 부상을 입은 상태라면 무조건 이길 수 있었다.

“던져?”

“섬광탄 터질 때 까지 기다려!”

말이 끝나자마자 섬광탄과 연막탄이 동시에 휙 날았다.

파 - 앙!

취이이이!

귀에 짙은 이명이 왔지만, 다행히 직격이 아닌 터라 버틸 수 있었다. 동시에 연막탄도 연막을 뿜어냈다.

“아, 아아악!”

반면 바로 앞에서 섬광탄이 터진 차원 여행자는 바닥을 굴렀다. 고막이 나갈 정도로 큰 굉음을 들었을 터였다.

“던져!”

“으롸!”

칼콘이 두 번째 작살을 던졌다.

훅 하는 소리와 함께 작살이 하늘을 날았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무기였기 때문인지, 작살이 애꿎은 바닥을 때리곤 다시 튕겨 나왔다.

‘젠장! 회복하기 전에 제압해야 한다.’

결국 빈토레즈를 꺼내들었다.

‘이능 발동, 집중!’

시간이 길게 늘어지며, 주변 사물들이 서서히 늘어진다.

그 사이 지훈은 방패 옆으로 살짝 튀어나와 차원 여행자의 다리를 겨눴다.

조준을 마친 뒤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 전방 전이계 이능 사용 감지.

- 매우 위험한 이능입니다. 회피하십시오!

죽음을 예고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아쇠를 당기지 않고 그대로 몸을 다시 방패 뒤로 숨겼다.

퍼억!

방금 머리가 있던 장소에서 괴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공간이 일그러지기라도 한 것 같았다.

섬뜩했다.

만약 경고가 없었다면 그대로 머리가 터져나갈 상황이었다.

“지훈, 방금 그거 뭐야!?”

“왜곡 같다. 공간 자체를 뒤트는 것 같아. 절대 방패 밖으로 몸 내밀지 마!”

“알겠어!”

급히 이능을 해제해서인지 극심한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당장은 움직이기 어려울 것 같았기에, 바로 칼콘을 보냈다.

“연막 있어서 녀석도 시야가 흐릴 거다. 방패로 후려 쳐!”

“알겠어!”

칼콘이 성난 짐승처럼 달렸다.

쿵쿵쿵쿵!

“오, 오지마! 끼야악!”

- 전방 전이계 이능 사용 감지.

- 매우 위험한 이능입니다. 회피하십시오!

다시 한 번 이능 사용이 감지됐지만 상관없었다.

노출되지만 않으면 직접적인 공격이 불가능한 이능이었다.

현재 칼콘은 방패로 급소를 전부 막은 상태로 달리는 상황!

상대가 집중 이능이라도 있지 않는 한은 제대로 맞출 수 있을 리 없었다.

퍼석!

그 증거로 칼콘의 방패가 주먹만큼 뜯겨나갔다.

까닭에 머리가 노출돼서 한 번 더 맞으면 위험하겠지만, 이미 칼콘은 차원 여행자 코앞까지 온 상태였다.

“이 개자식아!”

“끼억!”

칼콘이 차원 여행자를 그대로 방패로 들이 받았다.

연막탄으로 흐린 시야 너머로, 작은 인영이 공중에서 반 바퀴 돌아서 바닥에 퍽 쓰러졌다.

“넷 건 준비해.”

“알겠습니다!”

마땅한 무장이 없어서 뒤에 빠져있던 민우가 지훈 옆에 딱 달라붙었다.

넷 건을 발사하려는 찰나…!

- 전방 전이계 이동 발동.

‘젠장, 또!?’

상대방의 이능은 방어구에 상관없이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무시무시한 공격이었다.

맞으면 최소 관절 절단 혹은 빈사였기에, 바로 민우를 붙들고 엎드렸다.

“어, 억!?”

지훈과 민우가 넘어지듯 바닥에 찰싹 달라붙었다.

하지만 공간이 뒤틀리는 소리는 전혀 나지 않고, 대신….

우 - 응.

연막 속에 있던 인영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공간 도약!?’

도망가려는 시도였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식량도 부족했으며, 민우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태다.

“그냥 보내줄 쏘냐. 칼콘, 작살 박아!”

“알겠어!”

칼콘이 던진 작살이 공간이동 중이던 차원 여행자에게 틀어박혔다.

“끄아아!”

몸에 이물질이 박혔으니, 공간 도약을 해봐야 칼콘도 같이 딸려 갈 터였다.

이제 차원 도약자 따위 독안에 든 쥐였다.

공간 도약을 해봐야 왜곡을 쓰기 전에 칼콘에게 제압될 테고, 이대로 있으면 그대로 그물을 뒤집어 쓸 운명이었다.

이 사실을 차원 여행자도 알았는지, 더 이상 반항하지 않고 움직임을 멈췄다.

“민우. 넷 건.”

“알겠습니다!”

푸확!

마지막으로 지훈이 입고 있던 티셔츠를 차원 여행자의 머리에 씌웠다.

‘이로서 차원 여행자는 완벽하게 무력화 됐다.’

“저한테…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차원 여행자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훈은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사실 아쵸푸므자가 왜 차원 여행자가 필요한지도 몰랐다.

단지 반지 사용을 위해 시키는 일을 했을 뿐이었다.

‘뒷맛이 찝찝하다.’

그도 그럴게, 아쵸푸므자는 반지를 만들 때 ‘악인은 사용할 수 없다.’ 라는 전제를 걸어놓은 녀석이다.

근데 정작 계약 조건으로 선해 보이는 차원 여행자를 잡아오라고 시켰다.

이래서야 두 얘기가 어귀가 맞지 않았다.

큰 부상 없이 일이 끝났음에도, 왠지 모르게 구린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계속 혼잣말을 하는 차원 여행자를 내버려 둔 채, 하수구 출구에 도착할 무렵….

입구에 한 인영이 보였다.

아쵸푸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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