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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개척지로 향하기에 앞서, 지훈은 먼저 차원 여행자의 정보를 조사했다.
‘필요한 정보는 모두 반지 안에 있다고 했었다.’
생각을 끝내자마자 반지가 작게 진동했다.
- 대용량 정보를 전송합니다. 약한 어지럼증, 시야 일그러짐, 두통 등이 유발될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까?
어차피 듣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괜찮아.’
우으으으응.
누가 두개골에 드릴이라도 박은 느낌이었다.
토할 것 같은 기분으로 30초 정도 기다리자, 전송이 완료 됐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마법으로 치유할 땐 고통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고만, 이 반지는 뭐 이래?’
특히 ‘약한’이나 ‘약간’이라는 말이 들어갔을 경우는, 괴이하게도 그 고통의 강도가 굉장히 높았다.
아마 아쵸푸므자가 변이계 마나를 집어넣으며 ‘약간 아플 거야.’ 라고 말한 걸 봤을 때, 본인의 뒤틀어진 센스가 여과 없이 들어간 게 아닐까 싶었다.
‘최대한 빨리 일 끝내고 보상이나 받자. 어울려봐야 좋을 거 없는 녀석이다.’
[정보]
목표 : 차원 여행자.
차원 여행자(플레인 트래블러)는 여러 차원을 넘나드는 자들을 뜻한다. 이들의 종족은 인간, 가쉬, 오크 등 다양하나, 이러한 종족 중 어떠한 개체가 차원 여행자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현재 목표가 된 차원 여행자는 가쉬 종족이다.
외적인 특징은 개체마다 천차만별이며, 신장 역시 50 ~ 400cm로 매우 다양하다. 몇몇 존재는 아예 육체 없이 정신체로 존재하기도 한다.
가쉬는 전 종족 중 차원 여행자 각성률이 제일 높은 종족이다. 분쟁을 피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보통 싸움이 시작되면 보통 점프 잼으로 이탈한다.
강력한 전이계 능력을 사용하니 주의.
해당 차원 여행자는 차원 도약에 필요한 점프 잼을 분실했으며,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로 러시아 개척지 하수도에 은거하고 있다.
처음 듣는 단어가 난무하는 까닭에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으나, 대충은 파악할 수 있었다.
‘전이계 능력은 뭐야?’
- 순간이동, 염동력, 전송, 왜곡 등의 공간 능력을 말합니다. 현 이능 평가 가준 D등급 이상의 능력입니다.
얘기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여태껏 싸운 녀석들은 대부분 물리적인 공격을 하는 녀석이 대부분이었다.
포미시드와 만드라고라 조합이 환각과 마법을 사용하긴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수단이 다였다.
능력으로 직접적인 공격을 하는 상대는 처음이다.
‘어떻게 싸워야 하지?’
- 기쉬 종족의 능력은 시야에 보이는 것에만 영향을 끼치므로, 최대한 시야에서 벗어난 채 공격해야 합니다.
- 몇몇 정신체는 투시안 혹은 천리안 능력까지 사용해 굉장히 까다로운 공격을 하나, 해당 차원 여행자는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대충 모습을 보이지 않고 공격하면 된다는 얘기였다.
이에 지훈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원거리 저격, 엄폐 사격, 폭발물 투척 등이 있었다.
하지만 하수구라는 지형 상 저격은 거의 불가능 하다고 봐야했고, 생포라는 임무 특성상 수류탄도 쓰기 애매했다.
‘결국 남은 건 제압사격 후 육탄전 밖에 없겠군.’
입 안이 썼다.
쉬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어려울 거라고도 예상하지 못했다.
‘혼자 가야하나?’
아무래도 확실한 보상이 없는 터라, 돈으로 움직이는 칼콘과 민우를 데려가기엔 에러가 있을 것 같았다.
칼콘이야 빚이 있으니 따라오라면 오겠지만, 민우 같은 경우는 온다고 확신하기가 애매했다.
그렇다고 안 올 거라 단정 짓고 연락도 해보지 않을 순 없었기에, 일단 둘 다 불러 한 자리에 모았다.
☆ ☆ ☆
시체 구덩이, 비즈니스 룸.
칼콘과 민우가 굳은 표정을 지었다.
“강요는 안 해. 이건 개인적인 부탁이야.”
팀이라지만 돈을 전제로 뭉친 관계다.
보상이 확실하지도 않은 의뢰를 강요할 순 없었다.
“지훈 얘기만 들어보면 굉장히 어려운 일 같은데.”
칼콘이 침음을 뱉었다.
과거 혼자 살던 때야 몸 사리지 않고 돌진할 수 있었다지만, 지금은 동거인이 있는 칼콘이었다.
될 수 있으면 위험한 일은 피하고 싶어 보였다.
“이능력을 사용한다고 치면, 만드라고라랑 포미시드 보다도 위험한 녀석들이에요. 겐포 때처럼 기습이 가능하다는 보장도 없구요.”
민우 역시 턱을 괴곤 한숨을 푹 내뱉었다.
“맞아. 딱 봐도 어려운 일이야. 하지만 나한테는 꽤 중요하기 때문에, 부탁을 하고 있는 거고.”
민우는 담배를 폈고, 칼콘은 술을 마셨다.
불편한 침묵.
무언의 부정이라 봐도 무방했다.
‘용병을 쓰자. 방패 쓸 줄 아는 비각성자나, F급 용병만 있어도 충분할 거다.’
판단을 마친 뒤 해산하려는 찰나, 칼콘이 물었다.
“그거…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겠지?”
“아무래도.”
“그래. 같이 가자. 은인을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어.”
칼콘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당연한 건데 뭘.”
칼콘만 있어도 굉장히 큰 도움이 됐기에, 지훈은 민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서운하네 뭐네 할 것도 없었다.
위험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수 없는 상태였다.
도와주지 않는 게 당연했으며, 오히려 특별한 이유 없이 도와주는 게 이상해 보일 정도였다.
민우는 짙은 담배 연기와 함께 한숨을 내뱉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지현이 스쳐 지나갔다. 만약 그와 지현이 잘 되면, 지훈은 그의 매형이 될 사람이었다.
게다가 실제로 지훈이 민우를 잘 챙겨주기도 했고 말이다.
지현에 대한 걱정, 돕지 않는다는 죄책감, 동료를 버리고 도망간다는 비겁함 등 여러 감정이 민우를 두들겼다.
“형님, 잠시만요.”
민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형님께서 절 몇 번이나 믿어 주셨는데, 이번엔 제가 형님을 믿을 차례 같네요. 저도 참가 하겠습니다.”
뭐라 말 못할 고마운 마음이 들끓었다.
“새끼들… 고맙다.”
“당연한 거야.”
“이번에도 잘 해보죠.”
지훈은 칼콘과 민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 그럼 장비 구하러 가자.”
☆ ☆ ☆
일행은 포획에 앞서, 각성자 물품 거래소에 모였다.
‘일단 상대방의 눈을 봉쇄하는 게 급선무다.’
차원 여행자는 눈에 보이는 것만 공격할 수 있었다. 그 말은 시야를 차단하면 이능력 역시 봉인된다는 얘기였다.
‘굳이 방어구를 살 필요는 없다.’
반지를 통해 알아낸 결과, 적은 전이계 능력자였다.
이물질을 체내에 순간이동 시키거나, 공간 자체를 뒤틀어 버리는 상대에게 있어 좋은 방어구는 필요 없었다.
지급 입은 방어구로도 차원 여행자 외에 다른 불필요한 방해요소는 전부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무기 역시 새로운 걸 살 필요는 없다.’
목표는 사살이 아닌 포획이었다.
애초에 지금 가진 무기도 충분히 강력했기에, 굳이 공격력을 올릴 필요는 없었다.
대신 적의 행동을 봉쇄하기 위해 작살을 몇 개 구입했다.
작살 손잡이에 쇠사슬이 달려있는 녀석이었는데, 적에게 박아 넣은 뒤 잡아 당길 생각이었다.
덤으로 확실한 마무리를 위해 신금속으로 만든 그물 총(넷 건)도 하나 구입했다.
‘나이트 비전도 필요하다.’
하수구 안은 몇몇 장소를 빼고 매우 어두웠다.
칼콘이야 밤눈이 좋으니 괜찮았지만, 민우와 지훈 같은 경우엔 도구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후 차원 여행자의 눈과 귀를 교란시킬 섬광탄과 암흑 마법 스크롤을 구입했다.
‘이거면 충분하겠지.’
더 살 게 없을 거라 판단하고 나가려는 찰나, 민우가 지훈을 붙잡았다.
“형님. 가이거 계수가 사야 돼요.”
가이거 계수기라면 방사능 측정기를 뜻했다.
“아니 그걸 왜? 개척지 안에 핵이라도 떨어졌어?”
“그게… 저도 인터넷 위키에서 본 거라 제대로 설명은 못 하겠는데, 대충 이래요.”
러시아 개척지는 개척 초기에 전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개척 예정지 지하에 작은 원자력 발전소를 지었다.
정신 나간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세계 각국이 세드를 개척하는 가운데, ‘개척 속도’는 곧 새로운 영토를 얻는 속도와 같았기에 러시아 정부는 저 정신 나간 계획을 승인했다.
물론 핵발전 선진국인 러시아가 그냥 건설할 리는 없었다.
지리, 기술적으로 안전한 곳에 건설하는 것은 당연했고, 거기에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기술 및 마법적 보안 장치까지 덧붙였다.
이로 인해 러시아는 강력한 전기를 바탕으로 거대 인프라를 건설, 전 세계에서 세드 영토를 제일 많이 갖게 됐다.
딱 종족 전쟁 전 까지만.
종족 전쟁 중 이 원자력 발전소의 존재가 이종족 연합의 귀에 들어가게 됐고….
코볼트 특수부대가 원자력 발전소를 테러했다.
결과적으로 원자력 발전소는 시원하게 날아갔고, 현재까지 방사능을 뿜어내고 있는 상태였다.
이후 러시아는 광대한 영토를 모조리 잃었고, 지금에 와서는 개척지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아니 그럼 지상은?”
“다행히 지하에서 터진지라 도시 보호 결계랑 바닥에 깔린 아스팔트를 못 뚫는대요.”
“하… 그럼 방사능 보호복도 사야하는 거 아니냐?”
자칫 잘못하면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나오는 몬스터들 마냥 기괴하게 변이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마 작은 발전소라 근처에만 안 가면 될 거에요. 그리고 차원 뭐시기도 살고 싶으면 그 주변으로 안 갔겠죠.”
결국 민우의 말대로 가이거 계수기도 하나 구입했다.
“무슨 짐승 잡으러 가는 느낌이네요.”
“싸워 보면 짐승이란 말 따위 하지도 못할 거다.”
셋 다 이능력자와의 전투는 처음이었다.
제발 사망 혹은 부상만 없기를 빌었다.
☆ ☆ ☆
출발에 앞서 시연과 지현에게 다녀오겠다고 인사했다.
“페커리 잡은 지 일주일도 안 됐잖아, 조금 더 쉬는 게….”
“걱정 마, 잘 돌아올게.”
시연은 뭔가 불안한 표정이었다.
“다녀온다.”
“잘 다녀와. 다치지 말고.”
“오냐.”
지현은 애써 밝게 말했다.
☆ ☆ ☆
일행은 지훈의 벤츠를 타고 러시아 개척지로 향했다.
실어올 만한 거대한 물건도 없었고, 운전도 단순 고속도로 및 개척지 내에서만 하면 됐기에 렌트는 하지 않았다.
“저 러시아 개척지 위키 설명은 봤는데, 실제로는 처음 가요. 거기 어떤 느낌이에요?”
민우가 조수석에 앉아서 궁금한 듯 물었다.
“미국에 슬럼 알지?”
“예, 방송에서 들어는 봤어요.”
“거기에 미로 같은 무질서함만 섞으면 된다.”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민우였으나, 굳이 부연설명을 하진 않았다.
러시아 개척지는 단순 개척 속도만 중시한 도시였다.
까닭에 도시 건설도 소수의 건설사에 맡기지 않고….
국내 모든 건설사에 강제로 건설을 할당했다.
까닭에 구획마다 건설 형식이 달랐으며, 그 넓이 역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었다.
반면 인구 밀도는 낮아 유령도시처럼 황폐했고, 치안 역시 중요구획 말고는 무법지대와 다름없었다.
‘어차피 하수도에서 한 사나흘 헤매면 토악질 할 정도로 뼈저리게 느낄 거다. 벌써부터 겁주지 말자.’
이후 지훈은 엑셀에 발을 얹었다.
“잠 좀 자둬. 아무리 세게 밟아도 20시간이라, 엄청 오래 걸릴 거다.”
부웅!
이후 칼콘과 지훈이 5시간씩 운전하며 교대했고, 민우는 그 때 마다 대역죄인 마냥 욕을 들어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