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성이 항상 좋은 결과만 가져오진 않는다. -->
살다보면 엮이기 귀찮은 부류가 몇몇 있다.
너무 많아서 딱 집기 애매했으나, 굳이 예를 하나 들자면 앞에 있는 선수 같은 사람이 있었다.
거만한 자세에 어딘가 오만해 보이는 말투. 언행 모두에서 앞에 서있는 사람을 깔보는 냄새가 풍겼다.
“내가 헌터면 네가 어쩌게?”
잽 마냥 툭 던지자 선수도 덕 아웃으로 피하며 말했다.
“헌팅에 날 끼워줘.”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다.
서로 목숨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 여러 번 오는 게 바로 헌팅인데, 저런 인간성에 문제 있어 보이는 종자를 넣다니?
실제로 민우를 껴줬을 때도 수틀리면 죽일 생각이었다.
“꺼져.”
거칠게 일축했다.
“나 선수생활 하던 사람이야. 실력 좋다고! 거기다 각성까지 했다니까?”
선수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 자기 장점을 어필했다.
“꺼지라고.”
지금 당장 팀원이 필요하지도 않았거니와, 팀원이 늘면 그만큼 분배금도 줄어들게 된다.
정말 필요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넣고 싶지 않았다.
“지금 너도 나 무시하는 거냐?”
선수는 의견이 무시당하자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이상한데서 뺨 맞고 호랑이한테 화풀이 하지 마라. 그나마 있는 몸 병신 돼서 오줌 줄 꽂는다.”
금방이라도 주먹을 주고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칼콘은 싸움이 날 것 같자 슬쩍 몸을 낮췄다. 싸움이 나면 바로 달려들 것처럼 보였다.
“그래. 그럼 이렇게 하자. 지금 내가 못마땅한 거 아니야? 한 판 붙어 보자고. 내가 이기면 팀에 넣어 줘.”
선수는 나름 제 실력에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F급 각성자 아니던가.
보아하니 총은 다루지 못하고 오로지 냉병기로 싸우는 스타일 같았는데, 그래서야 비각성자와 다를 바 없다.
그나마 안전한 몬스터에 속한 페커리만 해도 그랬다.
압도적인 크기와 무게를 이용해 들이 받은 뒤, 커다란 입에 넣고 씹으면 저등급 각성자는 버틸 수가 없었다.
인간과의 싸움에서도 똑같았다.
이미 인간은 F~E급 각성자 혹은 아티펙트를 손쉽게 무력화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굳이 OTN탄 쓸 것도 없이, 기관총으로 200발 드르륵 긁으면 저지력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다.
차라리 총 좀 다룰 줄 아는 비각성자가 더 쓸모 있었다.
‘써 봐야 금방 뒤진다. 저건 민우보다도 못한 새끼다.’
정보 능력 빼도 민우 쪽이 압승이었다.
민우는 총도 잘 못 다루며 뒤에서 지원사격 하는 게 다였지만, 적어도 자기 능력을 잘 알았다.
위험한 상황이 되거나, 제 능력을 넘는 부분에선 절대 나서질 않았다.
삐끗하면 죽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본디 토끼한테는 토끼만의 생존 방식이 있는 법이었다.
토끼가 제 본질을 착각하고 맹수들 싸움에 끼는 순간, 짐보다도 못한 방해꾼으로 전락한다.
‘괜히 중요한 순간에 나대면 다 위험해진다.’
안 봐도 비디오였다.
선수 때 경험을 잊지 못하고 돌진했다가, 첫 전투에서 목숨이나 날려먹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실력 문제가 아니니까 꺼져라.”
“싫으면 내가 먼저 덤빈다.”
선수가 검을 꺼내들었다.
연습용인지 날이 무뎠지만, 그래도 철 덩어리다.
잘못 맞았다간 뼈가 부러진다.
“지훈, 어떡해?”
칼콘이 덤덤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마 상대가 적이라는 걸 인식했으니 때려 부술까, 말까를 묻는 모양이었다.
‘간만에 몸이나 좀 풀어볼까.’
이쪽은 마법, 이능 둘 다 사용 가능한 각성자였다.
나무껍질 쓰고 저쪽 공격 다 맞아주며 주먹만 휘둘러도 이길 수 있었다.
지훈이 나가려는 순간, 칼콘이 소매를 잡았다.
“지훈, 내가 해도 돼?”
판크라테온 안에서 끓었던 피가 덜 식은 모양이다.
“됐어, 네가 하면 애 병신 된다. 내가 하지.”
단순 다툼으로 운동 인생에 마침표 찍어주고 싶진 않았다.
“준비 됐냐?”
선수가 자신 만만하게 물었다.
“Koor puu(나무 껍질).”
이에 지훈은 간단하게 마법 한 번 시전한 뒤….
훅!
…
- 저항이 상승했습니다. E등급 (15) = > E등급 (16)
- 마력이 상승했습니다. E등급 (11) = > E등급 (12)
…
얼마나 독했는지, 몇 번을 쓰러뜨려도 다시 일어났다.
결국 30분 넘게 있는 패고 있으니 가디언이 다가왔다.
다행히 지훈이 넘어져 있는 선수를 기다리고 있던 터라, 바로 달려들지는 않았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싸우고 있소만, 뭐 문제라도?”
지훈은 가디언을 위 아래로 훑으며 말했다.
“민간인 폭행 현행범으로 연행하겠습니다. 당신은 불리한 진술에 대해 묵비….”
가디언이 말하고 있자니 선수가 비틀거리며 외쳤다.
“제 3자는 빠져!”
가디언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얘도 각성자요. 그리고 폭행 아니고, 저 녀석이 먼저 덤빈 거라 정당방위고.”
그 증거로 지훈은 선수가 넘어져 있을 때는 전혀 공격하지 않았고, 칼콘과 민우 역시 체육관 벽에 기대서 담배만 피고 있었다.
가디언은 선수에게 저 말이 맞냐고 물었다.
“맞아. 그러니까 방해하지 말고 꺼지라고…!”
“협박당하신 거라면 가디언 지부까지 호위를….”
“너도 날 무시하는 거냐!”
선수가 악을 썼다. 결국 가디언도 고개를 젓고는 물러섰다.
“더 할 거냐?”
“당연하지, 씨발놈아!”
선수가 달려들었다.
…
싸움이 길어지자 지친 칼콘이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나 배고파. 먼저 갈게.”
그 외에도 관장, 경찰, 민간인 등 몇 사람이 다가와서 만류했으나, 합의 된 싸움이라는 걸 알리자 별 말 없이 물러섰다.
…
1시간 정도 더 두들기자, 결국 선수가 포기했다.
녀석은 바닥에 대자로 누워 쉬어버린 목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씨발… 씨발… 씨발!”
“독한 새끼. 아직도 욕할 힘이 남아있냐?”
이 쯤 되니 도리어 때리는 사람이 지쳤다.
“선수 생활 하려고 미친 듯이 노력했는데… 식단도 맞추고, 매일 한계까지 몰아치며 훈련했는데….”
누구 들으라고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단지 각성했다는 이유 하나로 강제로 무차별급으로 이동 된 후, 쌓이고 쌓인 설움이 터진 것처럼 보였다.
“빌어먹을 포탈, 빌어먹을 각성. 아무리 노력해도 등급을 넘을 수 없다니. 씨발… 난 도대체 뭘 위해 훈련했지….”
지훈은 조용히 내려다 보다 담배 하나를 들이밀었다.
“시끄럽다, 그거 처물고 닥쳐.”
선수는 조용히 상반신만 일으키곤,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곤 울기 시작했다.
“어흑. 꺽, 흑. 챔피언 되고 싶었는데. 조금만 더 가면 챔피언이었는데. 난 각성자 되기 싫었는데. 왜, 내가….”
사실 각성자가 되고 싶어 엄청나게 몸부림치던 지훈으로선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꿈을 뺏긴 기분은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에, 선수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세상사는 거 다 그렇지. 힘내, 씹새야.”
이번엔 싸구려 동정이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선수도 그 마음을 알았는지, 눈으로 굵은 물줄기를 토했다.
“너 뭐 때문에 그렇게 티어 올리고 싶었냐?”
“챔피언… 아니, 이제 그거 아니지. 무차별급에선 챔피언 못 해….”
현재 무차별급 챔피언은 미국의 흑인 각성자로 강화계 A등급 각성자였다. 노력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미친 듯이 노력해서 A등급을 찍었다고 할지라도, C등급에서 이능이 뭐로 선택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돈 벌어야 돼. 이제 곧 아들이 태어나는데… 좋은 음식, 좋은 옷 입히고 싶었어….”
아버지의 마음. 입 안이 썼다.
‘썅.’
해줄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
언제 약을 사왔는지, 민우가 선수에게 약을 발라줬다.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죠. 근데 앞으로 사람한테 막 덤비지 마세요. 그러다 죽어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무슨 이유에선지 지훈은 저 선수와 과거의 자신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선수는 곧 태어날 아이와 부인을 위해서.
지훈은 병에 걸린 지현을 살리기 위해서.
이 거친 세상과 멱살잡이하며 흙밭을 뒹굴었다.
‘젠장, 나도 오지랖 더럽게 넓네.’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석중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배, 나요. 혹시 요즘 양지 쪽 일거리 있소?”
“폐품업자 일 있다. 와?”
“그런 거 말고, 좀 안전한 거.”
“여기는 없디. 거 시체구덩이 호모한테 전화해 보라.”
이번엔 시체 구덩이로 전화를 걸었다.
“어, 나다. 너희 검투 아직도 하냐?”
“전화 걸자마자 인사도 없이 무슨… 응, 아직 하지.”
“그거 많이 위험하냐?”
아무래도 언터파이팅이니 엄격한 룰이 있는 크라토스보다는 훨씬 위험할 터였다.
“목숨 걸고 하는 매치도 있긴 한데, 대부분은 애들 몸 생각해서 안전하게 하고 있어.”
“F급 각성자는 좀 어떻냐.”
“요즘 사람 없었는데 잘 됐네. 데려와.”
“이따 가지.”
전화를 끊고 돌아갔다.
선수는 민우를 붙잡고 대성통곡을 하는 중이었다.
“계집애도 아니고 질질 짜기는. 차에 타 새끼야.”
“어디… 가는데?”
선수가 반말로 물었다.
“나이도 어려보이는 새끼가 반말 찍찍 싸재끼는 거 봐라. 존댓말, 새끼야. 존댓말!”
이에 지훈이 선수의 머리를 파리채마냥 찍었다.
“꺽… 억, 어디로 가는데요?”
“술이나 한 잔 사줄 테니, 먹고 털어 새끼야. 나중에 깽 값 달라고 지랄하지 말고.”
“고맙습니다….”
☆ ☆ ☆
시체 구덩이에서 맥주 몇 잔을 들이켰다.
그 사이 지훈은 주인과 조용히 말을 섞었다.
- 저거?
- 내가 소개시켜줬다고 하지마라. 괜히 귀찮아진다.
- 응, 실력은 좀 어때 보여?
- 크라토스 헤비급 선수랜다. 기본은 하더라.
주인은 슬쩍 머리를 굴렸다.
‘메인매치 전에 들러리 매치로 붙이면 좋겠다.’
- 오케이, 콜. 고마운데, 소개비라도 줄까?
- 필요 없어. 줄 거면 술이나 공짜로 줘.
지훈은 시연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술을 홀짝거렸다.
민우는 선수와 친해졌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주로 들어주면서 위로를 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새끼, 성격은 좀 괜찮네.’
버리고 가자거나, 다 엎어버리자는 등 이상한 제안만 꺼내서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하지만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만약 싹수가 누랬다면 이미 헌팅에서 고인이 됐을 거였다.
이유야 간단했다.
지훈이나 칼콘이 직접 죽이거나, 조그마한 위험에 빠져도 그냥 버려두고 왔을 테니까.
이후 지훈은 선수가 주인과 얘기를 나누는 걸 보고, 적당히 다 됐거니 싶어 자리에서 물러났다.
잠시 걷고 있자니 민우가 말했다.
“의외네요. 저는 형님이 저 놈 죽일 줄 알았거든요.”
“내가 무슨 인간 백정이냐. 툭 하면 사람 죽이게.”
“솔직히 저랑 강도한테 하셨던 거 보면….”
지훈이 주머니에 손을 넣자, 민우가 기겁을 했다.
안에 글록이 들어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개소리 하네. 너는 중배랑 엮여 있었잖아.”
“그, 그렇죠. 뭐. 농담 한 번 해봤어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둘은 각자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며 다음 헌팅은 언제, 뭐로 할까 생각하고 있자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블 포인트가 1 감소했습니다.
- 현재 포인트는 64점입니다.
그 외에도 평소와 같은 이블 포인트 감소 알림과는 다른, 기묘한 진동이 반지로 퍼져나갔다.
우으으으응 -
- 성향이 변경됐습니다. 이블(악) = > 뉴트럴(중립)
- 성향 보너스(행동강령)를 선택해 주십시오.
성향 보너스. 처음 듣는 얘기였다.
어리둥절하고 있으니 가로등 아래 한 인영이 보였다.
붉은 머리에 일그러진 왼쪽 얼굴.
아쵸푸므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