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크라테온 체육관. -->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내 특유의 땀내 섞인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깡! 훅!
퍼벅, 퍽. 뻑!
인테리어는 현대 체육관이었음에도, 그 안은 마치 고대 콜로세움 대기실 같은 분위기가 흘렀다.
옥타곤을 연상시키는 팔각형 경기장 안에는 단검과 작은 방패로 무장한 사내와 창을 든 사내가 무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뜨거운 열기가 경기장 밖까지 전염됐는지, 관장으로 보이는 남자와 선수로 보이는 남자가 말다툼을 했다.
“아, 왜 안 된다는 건데요!”
“너 각성했잖아. 어떻게 각성자가 일반인이랑 경기를 해. 사람 잡을 일 있냐?”
“상관없다니까요! 그냥 헤비급 경기 참가 시켜 줘요!”
“웃기는 소리 집어 치우고, 이제부턴 무차별급 참가해야 하니까 훈련이나 열심히 해.”
선수로 보이는 남자가 크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씨발! 아무리 노력해도 등급 2개 이상 차이나면 못 이기는데, 훈련이 무슨 소용이야!”
“저, 저 거지발싸개 같은 새끼. 어디서 욕질이야!”
“됐어, 씨발. 나 훈련 때려치우고, 티어나 올릴 테니 그렇게 알아요!”
선수가 씩씩 거리며 일행 쪽으로 다가왔다.
아니. 정확하게는 출구 쪽으로 향했다고 하는 게 옳았으므로, 슬쩍 어깨만 돌려 비켜줬다.
쾅!
관장은 어이가 없는지 한동안 씩씩거렸다. 그러다 일행을 발견하고는 미안한 내색을 했다.
“아, 죄송합니다. 선수하는 녀석인데 문제가 생겨서요.”
“각성 어쩌고 하던데, 그게 왜 문제가 되는 거요?”
단순한 궁금증에 물었다.
각성했다는 걸 축하는 못할망정 화를 내다니?
“아,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크라토스 아시죠?”
크라토스는 최근 흥행하는 무투 경기였다.
맨손을 포함한 모든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경기로써, 미성년자 및 노약자는 관람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잔인했다.
물론 무기는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안전무구를 사용하기에, 경기마다 피와 살이 튀거나 사지절단이 일상처럼 일어나진 않았지만, 충분히 잔인한 경기였다.
“알다마다. 그게 왜?”
“쟤가 원래 헤비급 선수였는데… 이제 각성해서 반 강제로 무차별급으로 이동 됐거든요.”
당연한 얘기겠지만, 각성자와 일반인을 붙이면 후자가 초인급 무술인이 아니고서야 백이면 백 각성자가 이긴다.
무릇 무투 외에도 모든 체육경기가 똑같았다.
초인적인 육체능력을 가진 각성자의 등장으로, 모든 종목에서 각성자와 비각성자의 경기가 나눠졌다.
이에 크라토스 주최 측도 각성자 전용 경기를 따로 나눴는데, 그게 바로 무차별 체급이었다.
여기까지는 시대의 흐름이니 그러려니 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일반인 선수가 훈련 도중 각성하는 경우였다.
“새끼… 선수 뛰던 놈인데, F급으로 각성해 버렸네요.”
암담했다.
아무래도 등급에 따라 신체 능력이 올라가다보니, 아무리 개인의 기술이 좋아도 2등급 이상 차이나는 상대를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간혹 마법을 통해 능력치를 맞춰 오로지 기술만 확인하는 경기도 열렸지만… 흥미용 이벤트 매치가 전부였다.
“불쌍하네.”
지훈이 영혼 없는 말을 예의상 툭 건넸다.
불쌍하긴 하지만 어차피 남이다.
오지랖 떨며 신경 써 줄 필요 없었다. 단지 3초짜리 싸구려 동정이면 충분했다.
관장 역시 생판 남에게 공감을 구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바로 체육관 얘기를 꺼냈다.
“등록하러 오신건가요?”
“C등급 각성자랑 일반인 둘. 한 달 해보려고 왔소.”
관장은 이전 운동 경력을 물었다.
“셋 다 헌터. 운동은 딱히 맘먹고 해본 적 없소. 사실 목적도 경기보다는 근육 키울 겸 호신술 배우는 거고.”
지훈은 이후 민우는 다이어트가 목적이라고 강조했고, 칼콘은 군인 출신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관장은 슬쩍 뒤로 뺐다.
“그러실 거면 차라리 헬스를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단순 체력 증진이라면, 무게 치고 벤치프레스 드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다.
지훈은 체육관을 슥 둘러봤다.
“보니까 여기 운동 기구 다 있는데, 뭐가 문제요?”
“가격이 좀 셉니다.”
한 달에 70만 원.
일반인 기준으로는 비쌀지 몰랐으나, 헌팅 다니는 둘에게 있어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결국 둘은 체육관을 등록했고, 이런저런 운동을 시작했다.
일단 지훈은 무술 습득보다는 능력치 펌핑이 목적이었기에, 첫 날은 웨이트에만 집중했다.
“후읍!”
숨을 내쉬며 중량추 딸린 벤치프레스를 들어 올렸다.
끼잉!
혹시 몰라 50kg 치고 들었는데, 너무 가볍게 올라갔다.
‘예전에는 이게 딱 이었는데 말이지.’
무게 바꿔보며 들어본 결과, 110kg이 제일 이상적이었다.
“후읍!”
호흡을 내뱉으며 벤치프레스를 들어올렸다.
지훈의 팔과 가슴이 터질듯이 부풀어 올랐다.
끼 - 잉!
지훈은 벤치 프레스, 레그 프레스, 시티드 로우 등 여러 웨이트 머신을 돌아가며 사용했다.
상체보단 하체 힘이 부족했기에 레그 프레스 중량은 보통으로 잡았고, 등 같은 경우 근육이 많이 부족했던 까닭에 적은 중량으로 여러 번 반복했다.
- 근력이 1 상승했습니다. E등급 (18) => E등급 (19)
“후….”
각 30번 씩 3세트를 끝내자 온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만큼 효과도 좋았는지, 근력이 상승해서 기분은 좋았다.
‘운동은 이 쯤 하고 칼콘이랑 민우를 살펴볼까.’
칼콘은 경기장 내에서 스파링을 하는 중이었다.
처음 들어온 사람에게 스파링을 권하지 않는 게 보통이었지만, 칼콘이 추가 비용을 지불한다고 하자 흔쾌히 허락됐다.
우람한 근육 및 군인이라는 배경이 크게 작용한 듯싶었다.
후욱! 퍽! 쿵!
현재 칼콘의 장비는 중간 크기 방패에 쇠사슬이었고, 상대는 커다란 나무망치를 들고 있었다.
쇠사슬.
무기라고 보기엔 애매했지만, 방패병이었던 칼콘의 과거 병과를 생각해 보면 타당한 무기였다.
상대는 그 사실을 몰랐는지 우람한 망치를 계속 휘둘렀다.
쿵! 쿵! 쿵!
몰아치는 일격에 칼콘은 방패를 들어 막았다.
제 3자 입장에서는 칼콘이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는 걸로 보였다. 하지만 지훈은 칼콘이 이길 거라고 직감했다.
지루한 공방도 잠시.
상대가 힘에 겨워 지친 찰나…!
칼콘이 쇠사슬을 휘둘렀다.
목표는 상대의 망치였다.
휙!
쇠사슬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날아들었다!
상대는 쇠사슬 따위 막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둔기로 쇠사슬을 막았고….
촤라락!
그 결과 쇠사슬이 망치를 묶어버렸다.
칼콘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끼기기긱!
아찔한 힘겨루기!
칼콘의 팔과 상대의 팔에 동시에 힘줄이 돋아났다.
하지만 각성 없는 인간의 몸으로 오크를 이기기란 불가능했다.
끼이익!
기어이 상대는 칼콘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조금씩 끌려갔다.
그렇게 상대의 망치와 칼콘의 방패가 맞닿았을 때!
칼콘이 쇠사슬을 쥔 주먹 째로 상대를 때리기 시작했다.
퍽! 퍽! 퍽!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었다.
막아야 할 무기는 쇠사슬에 묶였고, 한 손으로 막자니 무기를 뺏길 것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얻어맞길 잠시.
“항복! 항복!”
결국 상대가 백기를 들었다.
지훈은 경기장 밖으로 나오는 칼콘에게 물을 건넸다.
“수고했다. 멋지던데?”
“고마워, 지훈. 오래간만에 싸우니 개운하네.”
“어때, 체육관 마음에 들어?”
“응. 군대 있을 때 생각나서 불편하긴 한데, 그럭저럭 버틸 만 해.”
군생활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톨퐁과 달리, 칼콘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랐으나, 군대 얘기만 나오면 표정이 좋지 않았었기에, 묻지는 않았다.
“좋아. 그럼 나랑도 한 판 붙어 볼래?”
칼콘의 입가에 흥미가 스쳤으나, 이내 사라졌다.
“아냐, 오늘은 이제 운동 할래.”
“왜. 무서워?”
“어떻게 알았어?”
둘 다 저게 거짓말임을 알았기에, 픽 하고 웃었다.
사실 예전에야 육탄전 하면 칼콘이 무조건 이겼겠지만, 각성 후에는 단 한 번도 붙어보지 않은 둘이었다.
진심으로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몰랐으나, 칼콘은 그만두기로 했다. 생명의 은인에게 복종하지는 못할망정, 어찌 싸우냐는 생각에서였다.
한편, 민우는 체육관 구석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관장이 그 모습을 매의 눈으로 지켜봤다.
“쉬면 안 됩니다. 계속 하세요.”
“헉, 이거, 헉 … 언제까지, 헉 … 해요. 꺽!”
“지방 탈 때 까지 합니다.”
민우는 그게 언제냐고 묻고 싶었지만,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물어볼 수 없었다.
보통 지방은 운동 후 30분부터 연소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겨우 8분밖에 지나질 않았고 말이다.
지훈과 칼콘이 도착했을 때 즘엔, 민우가 바닥에 대자로 엎어져 있었다.
“얘 왜 이럴까?”
“글쎄다. 나도 잘 모르겠네.”
발로 툭툭 치자 민우가 도마 위 생선마냥 눈만 굴렸다.
“오셨어요….”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가시산맥에서 산행 조금 했다고 무릎에 문제가 생겼던 민우였다. 혹시 병원에 갖다 줘야 할까 싶어 물었다.
“아뇨… 무, 물… 물 좀….”
“지친 거네. 에라이, 이 자식아. 직접 떠다 먹어.”
지훈은 쳐다보며 민우를 골렸다.
그런 민우가 불쌍했는지, 이내 물통을 가져왔다.
벌컥, 벌컥, 벌컥.
사막에서 구조 된 사람마냥 물을 쏟아 붙는 민우였다.
“푸-학… 이제 좀 살겠네요.”
“너 도대체 뭐했기에 그래?”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민우는 체육관에 온 목표가 오로지 다이어트 하나였다. 이 생각을 그대로 관장에게 묻자….
- 줄넘기 하세요. 2단 넘기로 15분.
민우가 줄넘기는 싫다며 다른 거 없냐고 묻자, 관장은 짧게 일축했다.
- 다른 곳 가보세요. 환불해 드릴게요.
곤란했다.
지현을 위해 지훈의 호감을 얻으려고 하는 마당에, 혼자 체육관에서 쫓겨난다?
무시나 잔뜩 받음은 물론, 지현 역시 멀어질 게 분명했다.
“참 극단적이시네. 그까짓 줄넘기. 할게요.”
이에 관장은 옆에서 봐주겠다며 훈수를 시작했고….
- 더 빠르게, 더 빠르게.
- 편하게 살 찌워놓고, 쉽게 빼려고 했습니까?
- 이건 전쟁입니다. 빠르게 뛰세요. 멈추면 죽습니다.
- 고추 달고 그거 밖에 못 합니까? 더. 더. 더.
더, 더, 더, 더….
관장은 멈출 때 마다 버럭버럭 화를 냈고, 민우는 거기에 휩쓸려 미친 듯이 줄넘기를 뛰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이 상황이었다.
“푸하하. 자식, 열심히 하네.”
지훈이 민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으… 형님, 저 죽을 것 같은데… 저희 언제까지 해요?”
슬쩍 칼콘을 쳐다봤다.
언제라도 상관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도 오늘 할 웨이트 다 했다. 지금 갈래?”
“가, 가죠…. 제발….”
민우가 일어섰다. 갓 태어난 망아지마냥 후들거렸다.
부축 해주면 안 되냐고 칭얼거리니, 칼콘이 등짝을 세게 때렸냐.
팡!
“아아아악!”
고통에 대한 반사 작용으로 민우가 펄쩍 뛰었다.
“펄쩍 뛸 힘 남아있네. 이제 잘 걸어 봐.”
“이이익!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칼콘은 그저 웃기만 했다.
흥겨운 분위기로 체육관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해산하려는 찰나….
“이봐 밖에서 얘기하는 거 다 들었어. 당신들 헌터지?”
관장과 싸우던 선수가 말을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