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의 반지-44화 (44/173)

<-- 능력치를 어떻게 올리지? -->

그렇게 시끄러운 파티가 끝나고, 사흘이 지났다.

그 동안 지훈은 저번 헌팅에서 생각했던 대로, 건설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솔직히 C등급에 능력치 평균 E라는 게 말이 돼?’

말이 되다 못해, 인간에게는 그게 정상이었으나 지훈은 기분이 나빴다. 적어도 능력치 하나 C 만들기 전에는 만족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에 따라 아침 일찍 조깅 및 맨몸 운동을 시작했다.

주로 아침 8시에 일어나 가까운 하천 주변을 뛰었고, 이후 공원에서 팔굽혀펴기, 윗몸 일으키기, 앉았다 일어서기 등 여러 운동을 했다

- 근력이 1 상승했습니다. E등급 (17) => E등급 (18)

하지만 각성한 까닭일까?

사 일 동안 열 세트씩 백 번 넘게 열심히 운동해도 근력 하나 상승하고 말았을 뿐, 가시적인 성과가 나질 않았다.

몸무게에 비해 근밀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까닭이었다.

‘헬스장이라도 가야하나.’

결국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땀이나 씻어내고 좀 더 자야겠다, 하고 있자니 집배원이 말을 걸어왔다.

“혹시 김지훈 씨 맞으세요?”

“맞소만?”

“우편 왔습니다. 티그림에서만 세 통 왔네요.”

티그림이라는 말에 궁금증이 솟았다.

‘뭐한다고 나한테 편지를 보내?’

발신인은 다음과 같았다.

1 - 티그림 산림청,

2 - 에피도우

3 - 에르파차

산림청 편지는 별 거 없었다.

저번 만드라고라 사건에 대한 감사 인사와 더불어, 페커리를 사냥해 줘서 고맙다는 얘기가 다였다.

‘감사 인사보다는 돈이나 음식이 더 좋은데 말이지.’

에피도우의 편지를 펼쳐봤다.

번역기라도 돌렸는지, 썼다기보다는 그렸다고 해야 옳을 것 같은 글자들이 펼쳐졌다. 눈 찌푸리고 해석해보니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 저번에 밥 먹자고 했던 건, 정말 호기심 때문이니까 이상한 오해는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아직 제 호기심은 유효하니까 마음 내키면 언제든지 찾아와도 좋아요.

‘별 이상한 여자 다 보겠네.’

그 아래엔 주소와 함께, 에르파차라는 사람이 지훈을 찾아서 우편 번호를 알려줬다는 얘기가 이어졌다.

‘뭐야, 이 새끼들 내 이름은 어떻게 안 건데?’

무섭다거나, 신경 쓰이는 건 아니었다.

알려주지도 않은 이름을 알아낸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기억 재생 마법을 이용해 몽타주를 그린 후 엘프 신원 관리 사무소에서 찾아낸 거였지만, 엘프들의 생리를 모르는 지훈으로선 신기하기만 했다.

에르파차에게 온 편지 내용은 감사 인사였다.

-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요즘 인간들이 엘프를 납치한다는 소문이 돌아서 너무 무서워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후 지훈 님의 말씀대로 될 수 있으면 도시 밖에 나가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 그 때 저희를 구해주셨던 지훈 님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훈련을 해서 구조대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원래는 지훈 님처럼 헌터가 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저희는 각성자가 아니거든요.

- 부디 몸 건강하시고, 다음에는 저희가 목숨을 구해드릴 수 있게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매우 정성스러운 편지였으나, 지훈의 감상은 간단했다.

‘지랄하네.’

헌터가 될 수 없어서 구조대가 된다. 어찌 보면 멋져 보이긴 했으나, 구조대라고해서 안전한 건 아니었다.

지훈 같은 작은 팀이야 작은 몬스터를 사냥하니 구조 과정도 간단했지만,

길드 레이드의 경우 사상자가 수십, 수백 씩 났다.

그런 위험천만한 곳 가서 사람 구해오는 일인데, 그 일이 절대 안전할 리 없었다.

이에 지훈은 귀찮음까지 무릅쓰고 답장을 해줬다.

에르파차 형제에게는 따끔한 조언을,

- 살려준 목숨 쓰레기통에 버리지 말고, 평범하게 살아라.

에피도우에게는 관심 없다는 확답을 보내줬다.

- 나 말고도 인간은 많으니 다른 사람 알아보쇼.

우체통에 두 편지를 넣고 돌아와, 이제야 쉬겠구나 하고 소파에 누웠다.

딱 눈 감고 편히 쉬려는 순간….

따르르릉 - 따르르릉 -

‘또 뭐야….’

“여보세요.”

민우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결의에 찬 목소리였다.

“형님. 복싱하실 생각 없으세요?”

뜬금없이 복싱이 튀어나오자, 지훈이 눈을 찌푸렸다.

“갑자기 복싱은 왜?”

“저 살 빼기로 결심 했습니다.”

“잘 생각했다. 근데 네가 살빼기로 한 거랑, 내가 너랑 복싱 같이 하는 게 무슨 상관인데?”

상관있었다.

민우에게 있어선, 지훈과 접점을 늘려야 그만큼 지현과 만날 기회가 늘어났다.

더불어 살도 빼고, 격투 기술도 배우니 일석이조 아니던가?

“솔직히 혼자 하면 얼마 못 갈 것 같아서요. 형님이 옆에서 봐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구미가 살짝 당기는 제안이었다.

마침 혼자 맨몸 운동해서는 능력치 올리기 힘들다고 생각하던 참이지 않던가.

“근데 복싱보다는 다른 게 좋지 않겠냐?”

복싱을 비하할 생각은 없었지만, 무기 들고 싸우는 헌터에게 있어 비무장 전투 훈련(격투기)은 별 의미가 없었다.

실제로 ‘백병전의 승자는 총알 남은 놈’ 이라는 명언도 있지 않던가. 굳이 총과 아티펙트 내버려 두고 맨손으로 싸울 필요가 없었다.

살다 보면 자다가 기습을 당하거나, 비무장 상태에서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 상황이면 이미 뭘 해도 죽는다.’

결국 격투기는 맨몸 강화계 이능력자가 아니고는 굳이 시간 내서 배울 필요가 없었다.

“차라리 무기 다루는 법을 배우지 그래? 그리고 요즘 격투기 배울 수 있는 도장도 거의 없을 텐데.”

맞는 말이었다.

과거 총기 및 무기 휴대가 엄격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지금은 도시 내에서도 삑 하면 총기 사고가 터졌고, 누구든 호신용 무기 한 둘은 무조건 들고 다니기 일쑤였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격투기는 상대적으로 빛이 바랬고, 대신 그 자리를 단검술, 검도, 사격술 등이 꿰찼다.

이 사실을 제일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방송이었다.

포탈 이후 전 세계가 광기와 폭력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대중은 기존보다 더 자극적인 볼거리를 원했다.

이제 TV에선 격투기 대신 무투 경기가 나왔다.

선수들은 글러브 대신 무딘 무기를 들었고, 경기마다 뼈 몇 개 부러지는 건 예사가 됐다.

특히 그 중에서도 대중들이 제일 열광하는 건 바로 각성자간의 무투 경기였다.

CG로 영화에서나 보던 각성자들간의 실제 전투는, 마치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 처럼 대중의 피를 끓게 만들었다.

“추천 좀 해주세요. 형님이 하자는 거 하겠습니다.”

웬일로 적극적인 태도에 지훈은 뭔가 괴리감을 느꼈다.

‘뭐야, 왜 이렇게 적극적이야?’

매일 수동적이고 움츠러든 모습만 보이던 민우였다.

“새끼, 너 좋아하는 여자 생겼구나?”

덜컥!

전화기 너머로 뭔가 큰 소리가 났다.

정답인 모양이다.

“저번에 엘프한테도 들이댈 정도로 아주 극심한 솔로통에 몸부림치더니 드디어 정신 차렸네. 그래, 잘 생각했다.”

물론 지훈은 민우가 누굴 좋아하는지는 꿈에도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살 좀 빼고, 몸 좀 만들면 너도 인기 많을 거야.”

“고, 고맙습니다. 형님.”

이름 모를 섬뜩함에 민우는 속으로 샷건을 떠올렸다.

‘사, 살 빼면 괜찮겠지. 좋은 모습 많이 보여주자.’

“그럼 일단 만나서 뭐 할지부터 정하자. 너 어디냐?”

“저 집이에요.”

“데리러 갈 테니까 서구역 앞에서 기다려라.”

“네? 네.”

데리러 간다는 말에서 민우가 궁금증을 표시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아직 차가 생겼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는 김에 칼콘도 부른다?”

“예, 전 괜찮습니다.”

이후 지훈은 칼콘도 호출한 후 집 밖으로 나갔다.

‘그럼 어디 한 번 벤츠나 몰아볼까.’

지훈은 집 주변 공영 주차장에 세워놨던 벤츠에 올라탔다.

차 문을 열고 들어가니 깔끔한 인테리어와 함께, 은은하게나마 시연의 향수 냄새가 났다.

‘무슨 향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좋단 말이지.’

그 외에도 차를 여기저기 살펴봤다.

운전석 오른편에 있는 수납공간에는 물 티슈와 손 세정제 그리고 힐 대신 바꿔 신을 슬리퍼가 들어있었다.

그 외에도 룸미러 주변 터치식 오픈 케이스는 선글라스가, 조수석 수납장에는 자동차 양도 증명서가 들어있었다.

‘치밀하게도 준비 했네.’

본인 동의도 없이 무슨 양도냐는 생각도 잠시.

저 말은 곧 처음부터 시연이 차를 줄 생각으로 벤츠를 끌고 왔다는 얘기가 됐기에, 흐뭇한 미소가 돋았다.

‘거, 참… 이렇게까지 챙겨 줄 필요 없는데.’

벤츠보다는 못하겠지만, 시연에게 가방이나 구두라도 선물해 줘야겠다고 마음먹는 지훈이었다.

“그럼 출발해 볼까.”

차 시동을 걸자 벤츠가 작게 으르렁 거렸다.

부으으우 -

운전자끼리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하나 있었다. 외제차를 몰면 운전이 정말 편해진다는 말이었다.

지훈은 웃기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중학생 때 아웃 브레이크를 겪은 터라 외제차와 같은 도로를 달려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타 보니 달랐다.

무슨 모세라도 나타난 양 가는 족족 전부 길을 비켜줬다.

‘아니 뭔, 화물차 몰 때는 전투민족이던 양반들이 외제차 타니 순한 양이 되나.’

극단적인 변화에 어이가 없어지기도 잠시.

편안한 주행에 익숙해져 서구까지 쑥쑥 달렸다.

☆ ☆ ☆

기다리고 있자니 민우와 칼콘이 느긋느긋 걸어서 도착했다.

임대 아파트와 서구역 사이에 거리가 꽤 있음에도, 자전거를 타고오지 않은 모습에 살짝 의구심이 들었다.

“민우, 칼콘.”

“저, 저요?”

“응?”

창문을 열며 부르자, 민우와 칼콘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외딴 차량이 제 이름을 부르니 당황한 모양이다.

“타라.”

“뭐야, 지훈 차 샀어?”

“산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까 생겼지 뭐.”

차마 여자 친구에게 받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부끄럽다기보다는, 솔로인 민우 염장 쑤시는 짓이 될까 싶은 생각에서였다.

부으으으 -

“엄청 부드럽네요. 근데 처음 보는 차인데, 어디 거예요?”

민우가 차종을 물었기에, 짧게 벤츠라고 답해줬다.

“잘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어렸을 적 아웃브레이크 터진지라, 수입차를 보지 못한 탓이었다.

“알아 본 곳 있냐?”

“아, 예. 형님이 각성자시니까, 일반인이랑 각성자 같이 할 수 있는 체육관으로 알아 봤어요.”

인터넷이 있는 만큼 역시 정보력은 민우가 제일 좋았다.

“여기 주소요. 서구랑 동구 사이에 있는 곳이에요.”

☆ ☆ ☆

판크라테온.

참으로 독특한 모습을 한 체육관이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인지, 이름이 적힌 간판 옆에 스파르탄을 연상시키는 창병이 그려져 있었다.

그 모습이 체육관이라기 보단 테마파크처럼 보였다.

“우와, 전시장이야?”

칼콘은 스파르탄 병사를 보며 흥미를 보였다.

반면 지훈은 지뢰 밟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여기 맞냐?”

“예, 여기 맞아요. 겉모습은 좀 이상해도 유명한 선수 여럿 배출한 곳이에요.”

아무리 수상해 보인다고 한들, 인터넷보다 정확한 순 없었기에 그냥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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